인생을 돌아보니 축복과 감사더라!
작가는 이 수필집 곳곳에서 끊임없이 축복과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가난하고 외진 전남 신안의 압해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새마을 운동 과정을 거치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힘들었지만, 그마저도 축복과 감사였다며 이렇게 표현했다.
“이 세상에 온 지 벌써 팔십하고도 두 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동안 내 속에 또 다른 나는 어린아이처럼 어디서 왔다가 어디 로 갈까 하는 생각과 환상을 헤매며 궁금했다. 그러면서 민들레 홀 씨처럼 날아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살짝 앉아 태어남이 축복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많은 것을 움켜쥐고 풍족하게 살면서도 끊임없이 힘들고 불행하다고 푸념하는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큰 경종을 울린다.
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따뜻한 글
이 수필집에서 작가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요양 보호사로서 모신 어르신들과 자녀들, 오랜 친구들, 목사와 신도를 비롯한 교회 사람들, 부모형제와 조카, 병원에서 만난 환자 등 현생에서 인연으로 맺어진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과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가슴이 훈훈해지고,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 수필집에는 여든이 넘은 작가가 현대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과거로 소환하는 글도 상당수 있다. 이러한 글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읽는 이들에게 경험하지 못한 간적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세대 간의 이해와 공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담쟁이문학회’ 이영순 회장이 ‘추천사’에서 밝혔듯이, 작가는 “사적인 자리나 문학회 에서나 선생님은 늘 먼저 사랑과 행동으로 베푸시는 가슴이 따듯한 분이시다.” 이 수필집은 그 따스함이 녹아들어 있어 읽고 나면 저절로 마음속에 따뜻함이 감염된다.
책 속에서
또한 어르신은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소중한 가족을 떠나 고생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며 ‘우리가 식민지 생활에서 나라를 되찾으려면 남자든 여자든 기술을 배워 돈을 벌고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광복 직후 가난하던 때 예림미용고등기술학교를 만들어 기술자 양성을 위해 힘쓰셨다. 그리고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누구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친척들에게도 기술을 가르쳤다. 더 나아가 낮에는 빈둥거리며 놀다, 밤이 오면 손가락에 담배나 끼고 연기를 코로 뿜어내며 몸을 팔던 여인들을 데려다가 기술을 가르치기도 하셨는데, 많은 이들이 힘들어 못하겠다고 밤의 여인으로 되돌아가 아쉬웠다고 회고하셨다.
그렇게 열정적이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던 여장부로 불리던 분도 가는 세월은 이기지 못했다. 2024년 1월 11일, 105세 연세로 향기와 그늘이 짙던 큰 나무였던 임형선 어르신은 저 산 너머 구름의 고향으로 길라잡이도 없이 홀로 떠나셨다. 하지만 예림미용고등기술학교의 설립자인 임형선 회장님의 손끝에서 피어난 수많은 꽃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서 향기를 피워내고 있다.
임형선 회장님, 저에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하늘에서 잘 계시지요?
- ‘1장. 밥 한번 먹지요’ 중에서
6·25 참전 전사자 명단 호명이 끝나고, 살아남은 동료 중 각 지역 대표 몇 분이 제상 앞으로 올라갔다. 그분들은 국화꽃 한 송이씩을 들고 머리를 숙여 묵념했다. 한 어르신은 “여보게들, 우리만 살아서 미안하네. 머지않아 그곳에 가서 우리 다시 만남세”라고 하셨다. 내 곁에 계시던 어르신 한 분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한들 저들의 영혼에 쌓인 한이 풀리겠나”라며 한숨을 크게 쉬셨다.
행사가 끝나고 가을바람을 가르며 한참을 달려 버스에 탄 우리 일행은 자그마한 도가니탕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르신들도 입에 맞는지 모두 맛있게 잘 드셨다. 그 모습을 보니 참으로 흐뭇했다. 6·25 참전 용사님들, 먼저 가신 호국영령들에게도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 동족의 총칼에 순국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가 잘살고 있는 것이 다. 지금은 비록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송 같은 모습이지만, 내 눈에는 그분들이 ‘철갑을 두른 남산 위의 소나무’처럼 강인하고 숭고해 보였다.
- ‘2장. 아버지를 바다에 묻고’ 중에서
회원들은 큰 건물의 현관문을 지나 애기봉으로 가기 위해 출렁다리를 건넜다. 목재로 만들어진 계단이 지그재그로 만들어져 있어 애기봉까지 올라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계단, 두 계단 오르며 골짜기의 숲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벗삼아 정상에 올랐다. 날씨가 맑아서인지 강 건너편 북한이 이웃 동네처럼 잘 보였다. 군데군데 기와집도 있었으나 사람은 안 보였다. 북한 쪽의 산은 홍수가 할퀸 것처럼 군사길만 흉하게 보였다.
웃자고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이런 말도 들은 적이 있어 한 번 옮겨 본다. 우리는 모내기를 앞에서부터 뒷걸음으로 심어 나가는데, 북한은 모종을 이앙기로 심듯, 아이가 앞으로 기어가는 것처럼 심는다고 했다. 왜 우리와 반대로 심느냐고 물으니 “앞으로 심어야 적군의 침투를 보지요” 했다고 한다.
- ‘3장. 오늘뿐 내일은 없다’ 중에서
오지 말래도 봄은 오고,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시간은 야속하게 가버린다. 누구에게나 시간과 세월은 공평하게 주어졌고, 그 시간은 시냇물처럼 무심히 흘러가 버린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어떤 사람은 효율적으로 잘 활용해서 값지게 살고, 어떤 사람은 허송세월, 가버린 세월 탓만 하며 덧없이 보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고, 아주 공평하게 흘러간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나도 예전에는 세월이 이렇게 소중하고 값진지 몰랐다. 오가는 세월 속에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고, 기쁨도 느끼고, 슬픔도 겪었지만, 이 모든 것을 살아 있어 겪는 것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창조주의 위대함에 감사한 줄도 모르고, 내가 잘나서 사는 것으로 알았다. 창조주가 이 세상에 대가 없이 주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사계절, 또 그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공짜로 누리면서도 고마운 줄도 몰랐다. 자연의 위대함과 시간의 순리는 모르는 척하고 그저 시간 탓, 세월 탓만 했다.
그래도 나이 들어 철든다더니 이제야 세월의 소중함과 자연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알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예쁘고, 감사하다.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 한 송이도 그냥 핀 것이 아니고 창조주의 사랑이 없이는 필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 ‘4장. 소금꽃을 아시나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