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이광수교수와시인최희철의인문학컬래버레이션!
“사진,시처럼철학처럼읽다”
사진,시처럼철학처럼읽다!
사진으로하는인문학놀이,사유놀이
현대의대표적인대중예술인사진은인문학의향연을펼치기좋은매체다.사진만큼시간,존재,재현등에관한다양한시선과그것을둘러싼권력과맥락을포함하는매체는그리많지않다.그래서이책의공저자인이광수교수는전작《사진인문학》에서사진을인문학의보고寶庫라했다.
이광수교수는사진으로인문학적사색의향연을펼칠뿐아니라,그‘생각’을다른이와‘같이’나누어보고자했다.누구나사진을찍지만,사진에대해서말하는이는드물다.사진에관해서는“좋은사진”과“나쁜사진”이라말하면끝일까?사진에담긴생각을제대로말했다고,제대로읽었다고말할수있는가?이광수교수는자신이인도와파키스탄에서수년동안직접찍은사진들에서출발하였다.그리고자신의오랜벗이며후배인“철학하는시인”최희철과사유의길에나섰다.
이책《사진이묻고철학이답하다》는사진찍는인문학자와철학하는시인이함께한사유의놀이,인문학의향연이다.사유의주고받음을통해,멈추어서지않은채지속하는것,즉삶의의미를곱씹고자했다.사진은‘무엇을’이아니라,‘어떻게’를추구하는예술이다.모사가아닌재현의예술이다.시간과우연,존재와비존재,세속과성스러움에대해사유하기좋은인문학의보고인것이다.
창조적종합을향한사진과시의패킹작용
그리고인문학적삶
최희철시인은두저자의만남을일종의패킹작용이라고비유하였다.이광수교수는인도사를전공한역사학자이다.최희철시인은배타는일(항해사)과닭치는일로생계를꾸렸던,철학하는시인이다.스스로도사유의경계지음이없었던이들인데,두저자의만남은더더욱무경계의사유를보여준다.텅빈경계가충만할수있는지점이다.패킹작용이란관管과관사이에서자신도관그자체가되는것이다.일종의창조적종합creativesynthesis이라할것이다.
모든게그렇듯혼자서어떤작용을하는것은없다.가령탁자위의패킹은‘패킹작용’을하지않는다.패킹은관管과관사이에있을때,자신이조여지며변형될때,말그대로‘packing’이되는것이다.그런의미에서패킹은‘애무술愛撫術’과관련되어있다.타자他者를뜨겁게달구는것말이다.하지만애무술엔‘정통正統’이있는것도아니고그것만으로다되는것도아니다.그것은‘창조적종합creativesynthesis’이어야한다.(최희철,나가는글)
서로다른사람이대상을바라볼때같은느낌을받는다는것은있을수없다.그것은대상에게부여되는의미가그것을대하는주체의인식정도에따라달라지기때문이다.그런데사진찍는기술이전문가수준에까지미치지못해,찍는사진마다얼추비슷하게나타날수는있다.그렇다고그대상을대하는인식조차같다고할수는없다.이광수교수가,“그냥,편하게이야기를나눠보자.이장면을대할때,난이렇게보았다,이사진을보니이런저런생각이든다,라는것을서로이야기해보자”고제안하는이유이다.이것이이광수교수가말하는인문학적삶이다.
사진가와시인은삶속에서무엇을발견했을까?
사진은이광수교수가5년여동안인도와파키스탄등지에서찍은것들이다.이광수교수는‘좋은사진’만을고르지않았다.사진이말하기방식의하나이듯,말하기/말나누기에좋을사진들을골랐다.이광수사진가의사진에는(최희철시인의표현대로)“수많은시선들이교차하고있었다.”사진은시선들이목소리를은밀하게드러내는‘접선장소’같다는생각이든다는것이다.사진의속에담기지않더라도사진의외부에도시선들은이어지고있었고,보고있는사진이미지는내부가아니라,외부가내부로드리워진잔상과도같았다.
최희철시인은사진가의사진들속에서이미지뿐아니라온갖냄새를맡을수있었다.그냄새들은사진이온전히빛과관련된시각적이미지만을다루는것이아닐수있다는생각을들게하였다.그렇다면사진은온갖것들이무한히접혀있는‘모나드’라고할수있을것이다.모나드Monad는라이프니츠에의해“무엇이실체인가”라는물음에대한해답으로활용된개념이다.그러고보면,사진예술에서모나드는의미있는개념이다.사진이재현하는것은사물의‘세계속의또다른세계’를드러내는것이아닐까?사진은본질의속성을재현한다.원본을모사할수없기에,원본같은사본이대신하여본질을드러낸다.
이광수사진가는작품에<작업노트>를달듯,작품에대한(자신의)주석을달았다.사진작품의의미를읽어내는작업이었다.“사진에담긴생각을어떻게읽을것인가”“사진으로어떻게말할것인가”는저자가추구하는‘사진으로철학하기’의주제이다.여기에,교차된시선으로바라보는일종의패킹작용이덧붙여졌다.작품마다<작업노트>를개별적으로달수있겠지만,교차된시선으로서로주고받음을통해,작품의의미는다시해석되고풍성해졌다.
모나드에존재를물었더니……
사진한장을같이들여다보며사진가와시인이나눈대화의첫화두는그저세상살이를있는그대로보는것이었다.하기에는쉬운말이지만,세상을있는그대로본다는것은사실무척어려운일이다.특히,차이나는시선을가지고있는두세계관이부딪힐때에,타자는하나이지않고,무한히탈주하기때문이다.
사진가는그저셔터를눌렀을뿐이다.누르고나서즉흥적인감정이떠올라때론불편해지며때론슬퍼하며때론탄식을하였다.사진이우연한,순간의모나드를포착하였다.
시인은그저생각을풀어보려고했다.사진가의사진속에수많은시선이교차하고있음을읽었다.사진이,시선들이목소리를은밀하게드러내는접선장소같다는생각을하였다.보고있는사진이미지는내부가아니라,외부가내부로드리워진잔상이라는생각이들었다.그렇다면사진이미지역시내부와외부사이에서어떤패킹작용을하고있는것은아닐까생각해보았다.
사진은온갖것들이무한히접혀있는‘모나드’라고할수있을것이다.시인은사진가의사진속에서,이미지속에접혀있던온갖냄새들이서서히드러나는것을보았다.그냄새들은사진이온전히빛과관련된시각적이미지만을다루는것은아닐수있다는생각이들게하였다.
대화의첫번째주제로사진가와시인은존재에대한의문을삼았다.사진으로포착하는모나드의순간에존재하는것은무엇인지,그순간사진가의카메라에,시인의눈에포착되는그실체는과연어떤존재인지를의문으로삼았다.존재한다는것에대한의문은끝내“무언가가존재한다는것은무엇인가”라는의문으로이어졌다.그저제자리에그대로있어무심히흘러갈뿐인그것을존재한다는틀에가두는것은아닌가싶었다.그순간을보고자한노력을담았다.
본다는것은무엇일까?
눈의해부학적구조가밝혀진19세기이전까지눈에서광선이나가사물을인지하는것으로이해했다.외부의빛을받아들여망막안에서뒤집어진채보이고,그것을두뇌가인지한다는것을‘발견’한역사는오래되지않았다.인간에게본다는행위는삶의조건이기도했다.보고싶은것을보지않을권리를지키기위해조선시대화가최북崔北은자신의눈을찔렀다.최북에게본다는것은자존위에서는것이었다.
사진가는카메라를통해인간의눈으로담을수없는,뒤집어진채인간의망막을스쳐지나가는순간을“잡는다.”인간의시선이미처거두지못한찰나를잡는다.카메라는시선의한계를해방시킨다.그렇다면인간의자존은카메라를통해시선의해방으로이어지는것일까?인간이허투루놓쳐버린순간을잡아내정지시키는카메라는결국사진가의손을거쳐우연을필연으로만들어버렸다.
시인은사진속에서삶의수많은순간중하나를발견한다.시인에게,여럿중에서하나의핵심적이고본질적인무언가를찾는사진은‘고대적방식’을닮았다.카메라는근대의발명품임에도고대적사유를하는기계장치인것이다.허나존재의순간을잡는다하더라도그존재의시간을잡지는못한다.카메라가잡는것은흐름일수없다.삶의미세함,삶의최소단위에멈춘다.그삶의모나드에서카메라가발견할수있는것이무엇인지,시인은카메라너머를짐작해야알수있다고말한다.
삶은무수한점들의변화로이어진다.이것을분자적으로잡아내고해석하는것이사진가의일이다.편견은시선이현상을가둘때발생한다.눈을뜨고망막을거쳐홍채로빛이들어오는순간어쩌면우리는편견을먼저보고있는건지도모른다.본다는것은판단한다는것이다.사진가의카메라가해방시키는것은그판단이다.카메라는삶의순간을지극히미세한단위로쪼개고갈라한순간을포착한다.어떠한편견이나판단도없는사진속에서시인은비로소해방을맞이한다.
사진가와시인의두번째이야기는카메라의해방성이다.카메라는인간이무심코흘려보내는순간을가두지만동시에근대적해방의도구이다.그것은시선의한계에서인간을해방시키고,판단의한계에서인간을해방시킨다.삶의무수히작은순간,삶의모나드안에서시선과편견은존재할수없다.그렇다면카메라가가두는것은무엇일까?사진가와시인은인간의기억과현재사이에존재하는카메라의역능에대해이야기한다.
세속의성스러움
산다는것은중독이다.그고단함에대한중독이다.고단함에고단함을더하는방식으로우리는살아간다.삶의무게를온통짊어진발끝에,힘없이치켜세운눈빛에우리는자신이살아온삶의중독을드러낸다.살아있기에우리는삶에중독된다.
삶을이루는수많은단편속에서사진가가발견한것은삶그자체다.삶은거부할수도없고피할수도없다.산다는것앞에선존재하느냐존재하지않느냐라는판단마저무의미하다.존재하기전에우리는이미살고있었다.사진가의카메라에담긴세상모든것은살아있다.어디에도죽은것은없다.나무,바위,구름,먼지모두살아있다.삶의우주속에서모든것은살아있고,살아있는것은동시에지속된다.멈추어서지않은채지속되는것,사진가는지난하고비루한삶속에서영원을발견한다.
시인은현실감을잃은세상을바라본다.거대한코끼리같은산도한참을쳐다보면현실감을잃는다.익숙해지는것이다.눈으로바라볼뿐존재론적관계를맺지못한채나뉘어버린다.그렇게의미는상실되고,세상은이미지로소비될뿐이다.그삶의순간을포착하는것이카메라였다면,거기서시인이발견한것은삶의민낯이었다.그민낯에는아무런표정이없다.감격,공포,고통,환희모두사람이삶에덧씌운감정이다.그것들은모두해석된것이다.
붓다는삶은고통이라고했지만시인은삶은고통이아니라고선언한다.삶에대한착각이고통이라는것이다.일상이‘삶에대한착각’으로가득차있다면,그것이고통이다.하여모든고통은‘삶의착각’과관련되어있고,그모든것은다시삶으로수렴된다.살면서우리는고통을잠시잊은채돈을벌고,밥을먹고,섹스를하고,정치를한다.피와눈물도흘린다.시인의눈에,이모든것들은더럽지만또한숭고하다.고통마저잠식해버릴정도로숭고하다.
세번째이야기에서사진가와시인은찰나속에숨어있는삶의단편을손에쥔다.지극히평범한일상을쪼개고쪼개고쪼갠뒤남는것을파악한다.그극미의삶속에서,순간의모나드에서사진가와시인이발견한것은숭고함이다.모든고통의근원인동시에모든고통을잠식하는곳이바로삶이다.태어남과죽음이라는현상사이에서사람들은순간순간늘변화한다.그변화는멈추게하거나멈출수없다.그것은죽음이다.어쩌면삶이란죽음에이르기위해끊임없이변화하는숭고한과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