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전한, 아마도 유일한 20세기 철학자 푸코를 읽는 실험
장자와 푸코의 철학적 기풍은 시간과 문화의 차이에도 서로 만난다. 기존의 규율 사회적인 질서와 상징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소요하며 노니는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2300년과 동서양이라는 차이에도 있음에도, 두 철학자의 만남을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푸코의 철학과 장자의 철학은 인문학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인기 있는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특유의 광기와 독설로 지성을 자극하고 문명의 작위성을 비판한다. 문제는 지성을 비웃는 광기의 언어가 더 정교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특히 푸코의 언어는 더더욱 난해하다. 19세기부터 축적된 서양철학의 방법론적인 논의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과 도덕을 비판하는 미친 장자의 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장자의 언어는 우리의 전통에 속한지라 서구적 전통에서 성장한 푸코의 언어보다는 우리에게 더 쉽게 다가온다. 장자를 통해 푸코를 읽는다면 푸코의 현란한 20세기의 서구 언어를 받아들이기가 더 쉽지 않을까?
김성우 교수(올인고전학당 연구소장, e시대와철학 편집위원장)가 주목하는 두 철학자의 공통점은 먼저 그들이 삶의 실험철학자였다는 점, 당대의 다양한 학풍을 경험했다는 점, 주체와 구조의 논의를 넘어섰다는 점, 그리고 철학적 에토스(기풍, 스타일)이다.
김성우 교수는 먼저 삶의 실험철학자로서 푸코와 장자의 면모를 그려 낸다. 푸코는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고 선언했다. 삶의 실험철학자인 그는 자신의 신분 확인을 거부한다. 굳어진 정체성이란 사회가 자신에게 강요하는 일종의 굴레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노자는 명名, 즉 이름의 세계라고 부른다. 여기서 이름이란 사회 질서를 상징한다. 이런 이유로 노자와 장자는 무명無名, 즉 이름 없음을 추구한다.
하지만 푸코의 언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방법론적 논쟁을 거친 산물이기에 상당히 세련되고 난해하다. 악명 높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글에 못지않다. 그래서 전문적인 철학자들도 읽기 버거울 때가 많다. 또, 푸코는 마르크스주의, 니체주의, 정신분석학, 현상학, 해석학, 실존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탈현대주의) 등 현대의 다양한 철학적 운동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상을 펼쳤다. 그런데 장자의 언어도 혜시로 대표되는 명가名家의 고도로 논리적인 분석과 논쟁을 거쳤기에 말 그대로 현학적이라고 할 만큼 어렵다. 장자도 마찬가지로 당대의 모든 사상과 학파에 정통했다.
다행히도 장자와 푸코는 동일한 철학적 기풍, 즉 에토스를 지니고 있다. 기풍이란 니체가 말한 일종의 스타일과 동의어이다. 각각의 철학자는 나름의 스타일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장자와 푸코의 철학적인 기풍은 동일하게도 극단적인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신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둘 다 정주민이 아닌 유목민의 철학자인 것이다.
푸코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리고 장자 철학과 함께 읽으면 얼마나 흥미로울 것인가?
1990년대 초반에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었고, 이후에 마르크스와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회의가 일면서 많은 이들이 포스트모던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철학자가 미셸 푸코였는데, 푸코는 기존에 철학이 가졌던 중심 주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독특하다. 대신에 예전에는 전혀 다뤄본 적이 없었던 광기, 범죄, 성욕 등에 관해 썼다. 이 점 때문에 노동 해방과 민족 해방이라는 거대 서사가 효력을 상실한 시대에 푸코의 철학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 장자의 눈으로 푸코를 읽으려면 먼저 장자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장자가 자기 자신을 묘사한 바에 따르면 그의 사상은 크게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장자의 지혜는 소극적인 은둔의 철학이나 비겁한 도피주의가 아니라, 도리어 세속의 프레임을 깨뜨리는 적극적인 현실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푸코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참여(앙가주망)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를 이어받은 실천적 지식인이다. 둘째로 장자는 “마음과 생명을 상하게 하지 않는 책”을 지었다. 푸코도 마찬가지로 규율 사회에서 버림받고 억압받는 광인, 범죄자들을 다루었다.
셋째로 장자는 시작도 끝도 없는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삶의 무게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무위자연의 도道와 함께 소요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배타적인 협소한 구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푸코도 마찬가지로 한계 체험을 통해 나눔의 이분법적 논리와 배제의 지배 권력의 메커니즘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장자의 말처럼 유명有名의 세계는 억압적인 배제와 착취적인 구분으로 지배하고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노예적인 삶을 주조한다. 이는 도의 무명無名의 세계와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규율 사회적인 질서와 상징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소요하며 노니는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장자와 푸코의 철학적 기풍은 시간과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만날 수 있다.
비교철학인가? 계보학적 접근인가?
김성우 교수는 이 책에서, 푸코의 역사비판적 존재론이나 장자의 양생술이라는 처세 철학이 실존의 미학으로 연결된다고 보며, 니체의 자기 수양으로서의 실험 정신과 연결 짓는다. 단순히 푸코와 장자를 비교하려는 ‘비교철학’은 2300년의 시간과 동서양의 사상/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푸코를 정점으로 그 이전 철학자 특히 니체 철학부터 계보학적으로 접근해 간다. 이 점에서 중요한 것은 푸코가 가진 지식의 고고학과 계보학이란 주제이며, 장자가 제물론에서 취했던 방식이다.
푸코가 던진 ‘실존의 미학’으로서의 주체의 변형이라는 주제는 니체의 자기 수양으로서의 실험 정신과 장자의 양생술과 동일한 철학적인 기풍을 지니고 있다. 즉, 김 교수는 니체를 매개로 해서 장자의 양생술과 푸코의 자기 테크놀로지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니체가 제시한 관점의 전환과 가치의 전도, 이로부터 생겨난 운명애와 위대한 건강은 주체의 변형으로서의 위대한 스타일로 구현된다. 이는 장자의 안명安命 및 진인眞人이 되기 위한 양생술과 동일한 스타일을 보여 주기도 한다. 또한 푸코는 니체를 이어받아 자기 수양인 실존 미학으로서의 자기 테크놀로지를 주창한다. 이렇게 니체를 통해 푸코와 장자는 연결된다. 다시 말해서 니체, 장자, 푸코는 동일한 철학적인 기풍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2장에서 김성우 교수는, 계몽주의의 과학 맹신주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 대체로 푸코 사상을 구조주의로 대표되는 인식론이나 과학사의 관점에서 읽는 것이 통상적인 해석이다. 구조주의는 객관적 과학성의 외관을 띠기 때문에 현대 학자들의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구조주의에 대한 열광은 과학주의에 대한 맹신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로 간주된다. 비非과학이라는 딱지는 적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그러나 구조는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역사를 무시하기에 특정 프레임에 갇힌 감옥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구조주의는 ‘언어의 감옥’(프레드릭 제임슨)인 것이다. 장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물 안 개구리’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주의란 일종의 언어의 감옥이라는 갇힌 ‘우물 안 개구리’ 신세라는 말이다.
실제로, 칸트가 의미하는 인식 대상은 인식의 한계 안에 들어오는 과학성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푸코가 탐구한 대상은 광기, 질병, 범죄, 성처럼 비과학적이거나 전과학적인 대상이다. 푸코의 역사적 접근 방식은 바로 초월론적인 철학이 추구하는 접근 방식의 과학성 경도傾倒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적 합리성의 문제는 초월론 철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주의에도 그리고 구조주의화된 마르크스주의에도 나타난다.
푸코의 ‘사상 체계들의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딜레마, 과학적 인식과 대중적 의견의 이분법, 계몽과 반反계몽의 협박에서 벗어나려는 탐구이다. 이 사상 체계들의 역사적 방법론이 ‘고고학’과 ‘계보학’이다.
푸코 철학의 초기 방법론인 고고학은 단순히 담론 구성체 분석을 통해 지식만이 아니라, 이와 연관된 권력 관계 및 주체의 현존 조건들도 탐구해야 했다. 그러나 푸코의 초기 연구에서는 권력과 주체가 주제적으로 명시화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고학적 시기 이후에 푸코는 이 담론, 즉 지식과 연관된 권력 관계를 탐구하는 계보학을 제시한 것이다.
고고학이 주로 진리와 지식의 차원에서 담론 구성체의 체계와 그 담론의 내적인 변형 과정을 다루는 데 반해, 계보학은 담론이 어떻게 권력에 의해 효과적으로 형성되고 있는가를 취급한다. 계보학은 담론의 형성을 권력지식 관계의 영역 안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계보학은 역사적 기념물에서 홀대받고 무시당해 온 것을 탐구한다. 고고학이란 역사적 지층들에서 유물(기념물)들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계보학도 역사학과 관련된 분과들이다. 예를 들어 담론의 질서, 사물의 질서, 말과 사물, 고고학은 주로 진리 의지 또는 지식 의지와 연관이 있다. 이는 니체의 권력 의지와 짝을 이룰 수 있다. 계보학, 감옥, 규율은 주로 권력 의지와 연관이 있다. 더 나아가 권력 의지는 자기 극복을 위한 자기를 해체하며 초월하는 초인에게서 잘 구현된다. 초인이란 기존의 휴머니즘의 종언이자 새로운 주체성과 윤리의 탐색점이다.
결론적으로, 푸코의 비판은 초기에는 (지식과 진리의) 고고학, 중기에는 (권력의) 계보학, 후기에는 (윤리적인) 실존의 미학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전정한 중심 탐구 대상은 진리, 권력, 윤리가 아닌 주체이다. 그러므로 그의 비판은 진리, 권력, 윤리와 삼중으로 연관된 주체의 계보학인 것이다. 즉 현대 사람들의 에토스를 바꾸는 실험인 실존의 미학으로서 새로운 주체를 세우려는 비판적인 존재론이다.
푸코의 계보학은 장자의 제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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