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미궁’
오래 사랑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온전히 아는 것은 아니다. 한집에서 살아온 가족도, 속마음을 나누던 친구도 어느 순간 낯선 얼굴로 우리 앞에 선다. 때로는 평생 옳다고 믿어온 자신의 생각이 삶을 가두는 벽이 되기도 한다. 오철환 소설집 『미궁』은 그렇게 익숙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그 틈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상처를 들여다본다.
여섯 편의 중단편소설에는 결혼과 이혼, 가족과 유산, 노년의 사랑, 두 소녀의 우정이 담겨 있다. 시대도 나이도 처지도 다른 인물들이지만, 이들은 저마다 가까운 관계 속에서 길을 잃는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 상처를 주고, 진실을 확인하려다가 소중한 것을 잃으며, 뜻밖의 불행을 겪고서야 곁에 있던 사람을 새롭게 알아본다.
「혈흔」은 오랜 소꿉친구와 결혼한 성공한 증권맨의 첫날밤에서 시작된다. 신부의 몸에서 자신이 기대한 ‘순결의 증거’를 찾지 못한 남자는 배신감에 괴로워하고, 그 불신의 고리는 끝내 결혼을 무너뜨린다. 오랜 사랑조차 압도하는 관념은 어디에서 왔는가. 한 사람을 판단하는 믿음은 과연 얼마나 진실한가. 작품은 이혼에 이르는 남자의 여정을 통해 사랑과 소유, 그리고 삶의 참뜻을 되묻는다.
「엄마와 딸」에서는 재벌의 이혼 과정이 두 여성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남의 결혼이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와 딸은 어느새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본다. 가족 안에서 맡아온 역할과 타인의 시선 너머에 어떤 ‘나’가 있는지, 두 사람의 정체성을 향한 질문이 이어진다.
「산지기 전설」은 임진왜란에 의병으로 나섰던 백정의 전후 삶을 따라간다. 전쟁을 겪은 그는 어린 여성을 성폭행하고 그와 인연을 이어가며 문중의 산에 정착한다. 이후 산의 주인이 찾아오면서 그의 삶은 산지기의 운명으로 접어든다. 전쟁의 공로와 개인의 폭력, 신분의 굴레와 생존의 욕망이 얽힌 이야기는 한 인간의 삶을 쉽게 미화하거나 단죄할 수 없는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차가운 유산」에서는 아내의 환갑을 기념한 조지아 여행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바뀐다. 빙하에서 낙석에 맞아 아내가 숨지고, 남편은 자녀들의 적그적인 도움으로 시신을 수습해 돌아온 뒤 여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두 아들과 딸의 서로 다른 삶과 태도가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추위가 닥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옛말처럼, 슬픔은 가족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누가 곁을 지키고, 누가 뜻밖의 힘을 발휘하는가. 남겨진 남편에게 유산은 재산을 넘어 관계를 다시 헤아리는 일이 된다.
「고목에 핀 꽃」은 예순아홉 남자와 일흔하나 여자의 만남으로 노년의 욕망을 꺼내 놓는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자란 초등학교 동창들은 뒤늦게 사랑에 빠지지만, 아내에게 밀회가 발각되면서 그 관계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늙은 몸에도 설렘과 성적 욕망은 남아 있다. 작품은 그 욕망을 바라보게 하면서, 욕망이 다른 사람의 삶에 남기는 상처 또한 함께 묻는다.
「딜리트」는 두 여고생 사이에서 사라진 용돈을 둘러싼 에피소드다. 돈을 되찾으려는 소녀는 덫을 놓고, 마침내 의심의 실체를 확인한다. 그러나 돌아온 돈과 함께 우정까지 돌아오지는 않는다. 진실을 알아내는 일이 언제나 바른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이, 작고도 쓰린 사건 속에서 선명해진다.
『미궁』의 인물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받기를 바라며, 손해 보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와 닮아있다. 그래서 이들의 선택은 낯설다가도 문득 마음에 걸린다. 나는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왔는가. 내가 지키려던 것은 사랑이었는가, 체면이었는가. 진실을 얻기 위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여섯 이야기를 지나고 나면 ‘미궁’이라는 제목은 한층 가까워진다. 그곳에는 타인의 비밀뿐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얼굴도 있다. 오철환의 『미궁』은 그 얼굴과 마주하도록 독자를 이끈다. 누군가의 사연을 따라 펼친 책이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삶을 묻는 책으로 바뀐다.
여섯 편의 중단편소설에는 결혼과 이혼, 가족과 유산, 노년의 사랑, 두 소녀의 우정이 담겨 있다. 시대도 나이도 처지도 다른 인물들이지만, 이들은 저마다 가까운 관계 속에서 길을 잃는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 상처를 주고, 진실을 확인하려다가 소중한 것을 잃으며, 뜻밖의 불행을 겪고서야 곁에 있던 사람을 새롭게 알아본다.
「혈흔」은 오랜 소꿉친구와 결혼한 성공한 증권맨의 첫날밤에서 시작된다. 신부의 몸에서 자신이 기대한 ‘순결의 증거’를 찾지 못한 남자는 배신감에 괴로워하고, 그 불신의 고리는 끝내 결혼을 무너뜨린다. 오랜 사랑조차 압도하는 관념은 어디에서 왔는가. 한 사람을 판단하는 믿음은 과연 얼마나 진실한가. 작품은 이혼에 이르는 남자의 여정을 통해 사랑과 소유, 그리고 삶의 참뜻을 되묻는다.
「엄마와 딸」에서는 재벌의 이혼 과정이 두 여성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남의 결혼이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와 딸은 어느새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본다. 가족 안에서 맡아온 역할과 타인의 시선 너머에 어떤 ‘나’가 있는지, 두 사람의 정체성을 향한 질문이 이어진다.
「산지기 전설」은 임진왜란에 의병으로 나섰던 백정의 전후 삶을 따라간다. 전쟁을 겪은 그는 어린 여성을 성폭행하고 그와 인연을 이어가며 문중의 산에 정착한다. 이후 산의 주인이 찾아오면서 그의 삶은 산지기의 운명으로 접어든다. 전쟁의 공로와 개인의 폭력, 신분의 굴레와 생존의 욕망이 얽힌 이야기는 한 인간의 삶을 쉽게 미화하거나 단죄할 수 없는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차가운 유산」에서는 아내의 환갑을 기념한 조지아 여행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바뀐다. 빙하에서 낙석에 맞아 아내가 숨지고, 남편은 자녀들의 적그적인 도움으로 시신을 수습해 돌아온 뒤 여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두 아들과 딸의 서로 다른 삶과 태도가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추위가 닥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옛말처럼, 슬픔은 가족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누가 곁을 지키고, 누가 뜻밖의 힘을 발휘하는가. 남겨진 남편에게 유산은 재산을 넘어 관계를 다시 헤아리는 일이 된다.
「고목에 핀 꽃」은 예순아홉 남자와 일흔하나 여자의 만남으로 노년의 욕망을 꺼내 놓는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자란 초등학교 동창들은 뒤늦게 사랑에 빠지지만, 아내에게 밀회가 발각되면서 그 관계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늙은 몸에도 설렘과 성적 욕망은 남아 있다. 작품은 그 욕망을 바라보게 하면서, 욕망이 다른 사람의 삶에 남기는 상처 또한 함께 묻는다.
「딜리트」는 두 여고생 사이에서 사라진 용돈을 둘러싼 에피소드다. 돈을 되찾으려는 소녀는 덫을 놓고, 마침내 의심의 실체를 확인한다. 그러나 돌아온 돈과 함께 우정까지 돌아오지는 않는다. 진실을 알아내는 일이 언제나 바른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이, 작고도 쓰린 사건 속에서 선명해진다.
『미궁』의 인물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받기를 바라며, 손해 보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와 닮아있다. 그래서 이들의 선택은 낯설다가도 문득 마음에 걸린다. 나는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왔는가. 내가 지키려던 것은 사랑이었는가, 체면이었는가. 진실을 얻기 위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여섯 이야기를 지나고 나면 ‘미궁’이라는 제목은 한층 가까워진다. 그곳에는 타인의 비밀뿐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얼굴도 있다. 오철환의 『미궁』은 그 얼굴과 마주하도록 독자를 이끈다. 누군가의 사연을 따라 펼친 책이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삶을 묻는 책으로 바뀐다.
미궁 (오철환 소설집)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