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되어 저물도록 (김수려 시집)

물이 되어 저물도록 (김수려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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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삶을 독학한 자에게 11월 장미를
김수려의 시집 『물이 되어 저물도록』에 실린 시들은 요즈음 젊은 시인들이 쓰는 시들과 같다. 시인이 1950년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점은 흥미롭다. 시인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대부분 50대 중반 이후에 씌어진 작품들이다. 함께 이 시집 원고를 읽어본 어느 중견 평론가가 맨 먼저 한 말도 내 생각과 같았다, “젊은 시인들처럼 쓰시네요.”
젊은 시. 아마도 상대적으로 젊은 시일 것이지만, 이것을 특질이라 한다면 김수려가 독학으로 삶을 끌어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독학은 여상고를 졸업, 잠깐의 직장생활을 접고서 혼자 공부로 대학의 인문학 전공으로 크게 진로를 바꾼 것에서 시작된다. 평론 등단에도 특별한 지도나 경험 전수를 받은 적이 없었고 시 역시 혼자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독학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보다 영향 받지 아니함에 있을 것이다. 외부로부터 쉽게 고무되지 않고 쉽게 위축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가야 할 길이면 걷고, 해야 할 일이면 한다. 그의 시가 젊게 읽히는 것은 시 쓰는 자아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시는 아직 늙을 사이가 없지 않았을까.
막상 그녀의 작품들을 감상하려면, 그러나 쉽게 읽히지 않는다. 시인의 감정이 날카롭게 노출되어서, 사금파리를 집어 드는 느낌이 든다.
저자

김수려

경남창녕에서태어났고열한살이후30년간서울에서자라고살았다.현재는대전에있다.서강대학에서영문학을,그대학원에서국문학을공부했다.1985년조선일보신춘문예평론부문에당선하여등단했다.2007년대전작가시선에시를발표하기시작했다.결정적인시를기다린다.

목차

시인의말

1부

만져지는이야기
헤엄
아무말도하고싶지않은날
서리장미
고온
봄2
오월
색채들흔들리다
부호의근원
시월
졸았다
매미
연두의발기

2부

플라타너스
손님

아직글이없습니다
일과
자판기
물이되어
고흐를만난밤
세상을잠그다
앉아도될까요?
입맞춤
말들
지금뭐하고있어요
15와19
빨간잎
염색
월중(月中)
빛을안다
배낭
작은

3부

씀바귀
투약
깊은밤에
이명
숟가락
풀의말을전하다
커피
시래기
스마트육십
잘풀리는집
부추전
머나먼
나의예수
강이자꾸생긴다
휠체어

4부

국제빗물포럼
바나나를
넘어지다
순수한아기
우파
오로지새벽
소녀들날고싶다
깃대
건리곤감,저멀리
고졸
컵라면
웃자사과나무
똑딱선아가자
첫돌

발문
삶을독한한자에게11월장미를-복거일

출판사 서평

나는서늘한한기에젖어
아침성가를부른다
위로뻣뻣한머리칼
주여
나에게나에게
펄펄뛰는피와위안을주소서
뜨거운시간을희유하게하소서
?「졸았다」의부분

이“펄펄뛰는”사금파리를조심스럽게집어들면,문득“서늘한한기”를느끼게된다.그래서한글로만씌어진“희유”라는낱말앞에서망설이게된다?흔하지않은것이있다(稀有)는뜻인지,즐겁게논다(嬉遊)는뜻인지,아니면실없는짓을하면서논다(戱遊)는뜻인지.문맥으로보면,‘稀有’로읽는것이적절할듯한데,나로선‘戱遊’로읽었을때문득솟구쳐오르는저항의기세가마음에든다.그것이더잃을것이없는‘이미깨어진존재’에게어울리는자세가아니겠는가?

목청센곡부여
너무길구나
올슬픔은그만하니
내년슬픔에와다오
?「매미」전문

무심코읽다가마지막구절에서문득사금파리에손을베는듯한느낌을받는다.무슨위안도마다하고자신의슬픔을완강하게껴안고살겠다는선언앞에서독자는
자신도모르게잡았던사금파리를떨어뜨리게된다.

있음으로있어보지도못하고깨진다
피를뱉아세상을잠갔다
?「세상을잠그다」의마지막부분

시인이“세상을잠갔다”고가볍게말할때,마치‘수도꼭지를잠갔다’고하듯가볍게말할때,우리는깨어진사기그릇의한조각인사금파리가품은완강함에충격을받는다.그리고세상을잠그는것이무엇을뜻하는가성찰하면서손에쥔사금파리의날카로운날을살피게된다.
여기서물음하나가거세게고개를쳐든다,“그처럼괴롭게사금파리를집어서살피는것이과연비용을넘어서는가치를지닌일인가?”시인이야물론확신한다,그렇게괴로운성찰이가치가있다고.그러나시인은또한안다,독자들의의견들은엇갈릴터이고긍정적답변을내놓는독자들이그리많지않으리라는것을.그래서그녀는정면에서그러나조심스럽게묻는다.

앉아도될까요?
쉬고싶은데
?「앉아도될까요?」의첫연

“그럼요.앉아도돼요”하고선선히대꾸할독자들이아주드물지않기를희망한다.60편이넘는시들을거듭읽고나면,손에아프게닿는60조각이넘는사금파리들을하나씩살피고나면,묘하게도,정말묘하게도,그사금파리들이모여서깨어지기전의사기그릇의모습을희미하게나마보여준다는느낌을받게된다.

늦어도할일은하느라고
분주하다
울음끝에매달린마음
달랑
하나라고허투루보지말란다
너오면내어주려고붉힌
얼굴한점이여
초록이없어도
빼어나다
?「서리장미」전문

이아름답고힘찬시에서우리는날선사금파리들이지향하는질서를어렴풋이느낄수있다.시인은‘자기손으로잠근세상’을열고서리속에서피는장미를말없이가리킨다.
젊었을적에박경리의『토지』를분석한평론이조선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어문단에나온평론가가머리에서리덮이는나이에이런작품을담은첫시집을세상에내놓는것은시를사랑하는모든이들을흐뭇하게할성취다.그런성취가이어지기를기대한다.-복거일
이시집의발문(跋文)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