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리고 있어라

두드리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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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수려

저자:김수려
경남창녕에서태어났다(1950).
서강대학에서영문학(1975)을,그대학원에서국문학(1983)을공부하고졸업했다.
조선일보신춘문예평론부문에당선(1985)하여등단했다.
《대전작가시선》에시를발표(2007)하기시작했다.
시집으로《물이되어저물도록》(2019)이있다.
아직은결정적이지않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다녀온다밤에
나는들었다
첫발자국
2월31일
산거야싼거야
인연
간님
어그부츠
버찌
세모
벚꽃
원고지
우리는네살바기
바람
전류

제2부
게임
오솔길2
고등서사
가난한내가
굴껍질
나는울지않는다
더멀리
의자
나그네

물결에멀리
경례
물들다
입춘무렵
초록
두드리고있어라

제3부
쪽지
접시꽃
앉을자리
메꽃
마스크
펭귄
한줄
첼로와안경2
골무
바이러스
달력과
골목이살아난다
클라우드
공중전화
코드를뽑는다
널뛰다
티셔츠
평화
오늘죽는사람
군무
앞으로
Y자의자
높은곳으로
태풍후
초록
봄동김치
12월을위하여
껍질로살기
팽목
구럼비를안아주소물할망
소녀들,날고싶다

해설
보편적질서를향해서-복거일

출판사 서평


보편적질서를향해서
복거일(시인)

I

시집에서가장중요한시는표제시다.그다음이첫시이고그다음이마지막시다.김수려의둘째시집《두드리고있어라》에는표제시가없다.시집제목은첫시인〈다녀온다밤에〉의뒷부분의한구절에서뽑았다.

딱딱딱
아직은머뭇거릴힘밖에없다
두드리고있어라
꺼질지도모르니
밝아올지도모르니
그러니
똑똑똑
똑또독똑

당연히,이시는이시집에실린시들가운데가장중요하다.이시에서‘두드리다’는말은‘문을두드리다’는뜻으로쓰인듯하다.즉간절한무엇이다가오기를기다린다는얘기다.그러나그렇게기다리는것이무엇인지짐작할단서를시는내놓지않는다.‘다녀온다밤에’라는시의제목도앞쪽구절들도독자들이시인의뜻을알아차릴단서를내놓지않는다.

비가내린다
똑똑똑깊은밤
낮게두드린다밤
언제일지모를나의그시간을
두드린다
똑똑똑

시의첫구절은두드리는주체가비라고밝힌다.빗방울이시인이오기를기다리는어떤시간을깨운다는얘기다.빗방울에그런역할을부탁하는마음을상상하기는쉽지않다.그렇게어려운처지로몰린사람을떠올리기도쉽지않다.

어둠아아프고자라는내속어둠아
딱또닥딱
어디로날까아래로?아니면
위로?
아래로꺼져서더떨어질수없을만큼처박힐까
위로?조금이라도위로?

마음에서어둠이자라난다는시인의독백은독자의마음에아프게닿을수밖에없다.그절실함에“예술은경험에질서를주는일”이라는얘기가떠오른다.실은모든지적활동이―사람의수준높은지적활동만이아니라단순한생명체의모든정보처리들까지―경험에질서를부여한다.위의시구는시인의어둡고괴로운경험들에질서를부여하려는시인의노력에서나왔고그경험들의모습을보여준다.
여기서예술작품의소재가된경험의성격이문제가된다.그런경험이보편적일수록,즉많은사람들이겪고중요하게여기는경험일수록,사람들이쉽게이해하고가치가높다고여길것이다.이점은간절한기다림을드러낸시한편을감상함으로써이내이해될것이다.

까마득한날에
하늘이처음열리고
어데닭우는소리들렸으랴
모든산맥들이
바다를연모해휘달릴때도
차마이곳을범하던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광음을
부지런한계절이피어선지고
큰강물이비로소길을열었다.
지금눈내리고
매화향기홀로아득하니
내여기가난한노래의씨를뿌려라
다시천고의뒤에
백마타고오는초인이있어
이광야에서목놓아부르게하리라

이시를절창으로만드는것은물론이육사가담아낸경험이일본식민지시기의2천만조선인들의경험을대변했다는사정이다.자신의죄수번호‘264’를자신의호로삼은지사의삶에질서를부여한작품이기에〈광야〉를읽는사람이마음의옷깃을여미게된다.그리고그런사정은조선민족을넘어서온인류로확대된다.

II

이시집에실린시들은대체로내부지향적이다.시인자신의마음속을살피는시들이비교적많고다른사람들과의교섭을다루거나우리사회의중요한문제들에대한생각을드러낸작품들은적은편이다.
이런사정은시들이사적(私的)특질을짙게띠도록만들고공적(公的)특질을띠는것을막는다.다른사람들이공감할수있을만큼보편적성격을띠므로,예술작품은사적독백의영역에서벗어나공적영역으로들어간다.
그래서시인자신의어두운마음으로끌린눈길을바깥으로돌리면,독자들이이내공감할수있고독자자신의마음에어떤질서를주는작품이나온다.

간밤에폭발하였네
가을겨울긴긴
기다림
두드림
뒤집어폭발하였네
하얗게
소복한기다림북적댄외로움
폭발하였네
기절하였네
두껍게도무겁게도
이제깨어나그만
버렸네
배웅하였네
하얗게독하게
이제다시
살아야하겠네
하얗게
〈벚꽃〉전문

이시가들려주는경험은보편적이라할수있다.꽃잎이날리는광경은,특히벚꽃이바람에날려땅을덮는광경은,모든사람들이경험하고비슷한감정을품게되는일이다.그래서마지막연이뜻밖의힘을얻어독자들의마음에깊이들어온다.

III

우리가자주하는얘기들가운데하나는“사람은사회적동물”이라는얘기다.자연히,우리는사회적맥락에서씌어진작품들에끌린다.

앞동네하나
건너마을에하나
겸상차리고
피어있다
웃고있다
잘산다고
저길에몇개
이쪽길섶에두어개
나보러오라
어스름속에걸리었다
가슴켜고있었다
등불로
〈접시꽃〉전문

이시를읽으면서,필자는칠십년전의고향모습을,초가들모인산골짜기에서어려운삶을꾸려가던사람들을,읍내오일장에서만나아는사람들의안부를묻던시절을,오래전에사라져서다시나올수없는그시공을,떠올렸다.그처럼사람들과꽃들에공통된질서를이시는문득불러낸다.

수가
엄마가부산카니
밥차러낫다
체겨무그라
(1973년08월11일)
〈쪽지〉전문

시인의엄마가남긴쪽지를,날짜만덧붙여서,그대로실은이시는독자들의얼굴에미소를떠올리게할것이다.그리고나름으로어머니의모습을떠올릴것이다.모녀사이의무척사사로운일이라서‘과연이런글을시집에올려도되나?’하는생각이들만도하다.그러나이시는보기보다는깊은사회적맥락속에자리잡았다.
미국진화생물학자로버트트리버스(RobertTrivers)는모든생명체들이사회적존재라고지적했다.생식자체가,즉한개체가다른개체를낳는행위자체가,사회적활동이라는얘기다.필자는생식이,유성생식이든무성생식이든,가장사회적인활동이라고생각한다.그래서〈쪽지〉라는시가감동을불러오는것이다.사회적인경험보다더보편적인경험이어디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