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시간을 달린 지도자 3 (나라를 세우고 지킨 후 잠들기까지 1948~1965)

이승만 시간을 달린 지도자 3 (나라를 세우고 지킨 후 잠들기까지 1948~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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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이승만 시간을 달린 지도자》 1권은 이승만의 ‘성장부터 해방까지(1875~1945)’ 그리고 2권은 ‘미군정과의 대립부터 UN 결의까지(1945~1948)’ 다뤘다. 이번 3권은 ‘나라를 세우고 지킨 후 잠들기까지(1948~1965)’ 다룬다. 1권과 2권 서문에서 3권은 1년 후 출판 예정이라 했으니, 결국 독자들과의 약속을 6개월 지체해 지키는 셈이 됐다.
1권과 2권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의 저본은 필자가 자유일보에 130회에 걸쳐 연재한 ‘시간을 달린 지도자 이승만’이다. 자유일보 창간에 맞추어 2021년 12월 1일 첫 글 ‘연재를 시작하며’부터 2024년 11월 12일 끝 글 ‘서울의 장례식’까지 매주 원고지 20매 분량의 ‘이승만 일대기’ 원고를 사진과 함께 준비한 3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애초에는 연재를 전부 마치고 세 권을 한꺼번에 출판하려 했다. 그러나 2024년 2월 1일 개봉한 영화 ‘건국전쟁’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1권과 2권을 이 성공에 편승해 2024년 4월 급히 출판했다. 반면 이번 3권은 연재를 모두 마친 후 비교적 여유를 가지고 원고를 다듬어 출판한다. 독자들과의 약속을 6개월 늦게 지키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이번 작업의 몇 가지 큰 방향과 특징을 독자들께 보고한다.
첫째, 연재물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자료와 새로운 연구 성과가 있는 경우 이를 최대한 반영했다. 대표적인 예가 3권 104번 꼭지에 실린 ‘한강 인도교 폭파로 희생된 민간인? 없다’라는 글이다. 영화 ‘건국전쟁’ 상영과 함께 자유일보의 필자 글이 방아쇠를 당긴 이후 이 문제는 관련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해 추가적인 사실과 자료 그리고 해석을 쏟아내며 논쟁을 거쳤다. 이번 기회에 이를 모두 소화해 책에 반영했다. 다행히 필자의 최초 주장이 틀리지 않았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방식으로 이런 과정을 거친 글들이 무수히 많지만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최선을 다했다고만 말씀드린다.
둘째, 1권, 2권, 3권 모두에서 한 꼭지로 소화하기 어려운 주제지만 해당 시기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전문성을 가진 필자의 기존 논문을 각각의 책 부록으로 추가했다. 1권 부록은 “만주국과 이승만·박정희 그리고 김일성”이라는 글이다. 2권 부록은 “이승만의 건국헌법과 정치제도”라는 글이다. 3권 부록은 “북한 친일(親日) 청산론의 허구와 진실”이라는 글이다.
각각의 논의 주제와 범위가 시간적 또 공간적으로 퍼져 있고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이 우리 현대사의 가장 무겁고 굵직한 주제들이기 때문에 짧은 글로 다루기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부록 덕분에 책 내용이 더욱 풍성하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셋째, 이미 출판한 1권과 2권의 오탈자 및 편집 과정의 실수를 최대한 바로 잡았다. 이에 더해 각각의 책 표지에 등장하는 부제 또한 세 권의 책이 일관된 표현을 가지도록 다듬었다. 물론 이번에 처음 내는 3권에서는 앞의 두 책이 범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도 각별히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한 결과란 있을 수 없다. 기회가 닿으면 또 고칠 것이란 당연한 말씀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이승만이라는 ‘시간을 달린 지도자’가 우리 현대사에 크나큰 봉우리로 존재하고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자유를 지키고 번영을 지속해야 하는 오늘날의 과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이승만을 통해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베트남처럼 공산당이 통일한 나라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

류석춘

柳錫春
류석춘은1955년출생으로2020년연세대에서정년을맞았다.연세대사회학과1975년입학,1981년졸업,미국일리노이대학교(Urbana)1983년사회학석사,1986년사회학박사다.
1987년부터2020년까지연세대에서사회학교수로일했다.전공분야는발전사회학,경제사회학,동남아시아연구등이다.〈한국사회학〉및〈동남아시아연구〉편집위원으로활동했으며,1993년영국옥스퍼드대학교(St.AnthonyCollege),1999년쿄토동지사대학교,2002년필리핀국립대학교(Diliman),2009년호주국립대학교(Canberra)및미국캘리포니아대학교(SanDiego)교환교수를지냈다.연세대이승만연구원원장(2010~2015)그리고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박정희연구회회장(2016~2017)을역임했다.자유한국당혁신위원장(2017)및자유통일당광화문연구소소장(2022~2023)으로도일했다.
대표적연구업적은TheKoreanEconomicDevelopmentalPath:ConfucianTradition,AffectiveNetwork(Palgrave,2013),《박정희는노동자를착취했는가》(기파랑,2018),《유교와연고》(북앤피플,2020)등이있다.

목차

서문이승만대통령이없었다면우리는아마도

89.대한민국건국후첫현안은친일청산위한‘반민법’제정이었다
90.북한·프랑스가과거사청산을잘했다고?무식하면용감한주장
91.노획한‘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가기록한남로당지령과4·3폭동
92.2003년정부보고서책임자양조훈,12년시차로박갑동인터뷰두번?
93.1948년제주4·3사건은폭동이자반란,결코봉기아냐
94.1948년10월19일여순반란,대한민국국시(國是)를반공으로만들어
95.김창룡,여순반란발생한달도안된1948년11월11일박정희검거
96.주한미군철수와같은시기북은대한민국국회에‘프락치’심어
97.1949년6월청년장교안두희,김일성추종한김구를쏘다
98.국군전신조선경비대,‘빨갱이소굴’vs‘일본놈앞잡이’알력
99.1950년3월이승만의‘개정농지개혁법’은대한민국발전초석
100.이승만,미군정정책보완한귀속재산불하로시장경제활성화성과
101.1949년신생대한민국을덮친5가지복합위기와이승만의선택
102.6·25발발원인은북·중·소3국이공유한‘미국불개입’에대한오판
103.1950년6월27일밤10시이승만대통령육성방송연설전문
104.1950년한강인도교폭파로희생된민간인?없다
105.전쟁중보도연맹요시찰인물제거사건,전쟁일으킨김일성책임
106.1950년8월칠곡다부동전투,한미연합작전으로남침저지성공
107.이승만,9월29일서울환도식및10월29일평양입성환영대회
108.맥아더가오판한1950년10월19일중공군참전과장진호전투
109.조갑제,정일권·미전문가증언근거로맥아더오판은‘의도적’
110.우리가잘모르는1951년1월휴전제의,미국이승만무시
111.트루먼대통령1951년4월,반격에성공하던맥아더를전격해임
112.1951년상반기‘국민방위군사건’정치적배후는이승만아닌신성모
113.휴전반대하며반공포로석방한이승만,한미상호방위조약얻어내
114.6·25전쟁,한미상호방위조약·국가자율성·국민정체성확립기여
115.전쟁중이승만,평화선선포하고인하공대·한국외대추진
116.1952년통계국,‘6·25사변중피살자,피납치자,월북자’명부작성
117.1952여름부산정치파동,직선제개헌과미국의내정간섭이핵심쟁점
118.정전3주후이승만‘혼자라도자유위해싸우는이유’밝혀
119.1952년직선제개헌부터1954년자유경제개헌까지,이승만질주
120.1954년이승만,미의회연설에서‘중공자유화전쟁’불사호소
121.이승만,1954년부터1955년까지7차례유시로불교정화
122.1956년1월김창룡암살,이승만집권기권력생태계변곡점
123.1956년김창룡암살배후,단순한원한관계vs군내파벌갈등
124.타공(打共)에헌신하며이승만도운김창룡이비난받는까닭은…
125.김창룡사후현실정치역관계,이기붕·박마리아중심으로재편
126,건국헌법의기형적권력배치아래후계경쟁이이기붕띄워
127.1959년12월14일재일한인북송,이승만외교의뼈아픈실패
128.3·15부정선거불러온이승만의노쇠:판단력·인내심·기억력감퇴
129.4·19전후정국전개와이승만부처의하와이여행그리고영면
130.1965년7월19일서거이승만유해,23일박정희대통령공항영접
131.“우리국민,이승만에대해잘못알고있는게너무많아재평가시급”

부록북한친일(親日)청산론의허구와진실-류석춘·김광동
이승만연보(年譜)
색인(Ind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