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시를 쓰고,
구호ㆍ표어를 외치고,
투사회보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며
국가폭력에 대항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펼쳐진 열흘간의 문화정치
“5ㆍ18 광주항쟁 연구를 한 단계 진전시킨 역작”
“선전선동은 생명과 같은 거야. 다시 싸울 수 있게 알리고 또 알려야 된단 말이야! 전두환이는 총칼보다 투사회보 한 장을 더 무서워해.” -윤상원
시민들의 문화투쟁, 80년 5월 광주의 ‘현장’ 재구성
1980년 5월, 당시 광주 시민들은 무엇으로 국가에 대항했을까? 어떤 구호를 외쳤을까? 각종 성명서, 유인물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어떤 노래들을 불렀을까? 윤상원 열사가 주도한 《투사회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당시 어떤 시들이 발표되었을까?
〈오월의 문화정치〉는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현장’에서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시민과 조직이 전개했던 문화적 실천과 투쟁을 규명하고 있다. 그동안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기존의 책이나 연구가 광주민주항쟁이 끝난 후의 ‘기억투쟁’ 방식으로 광주를 조명하거나 재해석했다면, 이 책은 항쟁의 ‘현장’ 속에서 ‘문화’적 측면을 조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항쟁이 전개된 열흘 동안 ‘현장’에서 생산된 ‘시’ ‘노래’ ‘노가바’ ‘유인물’ ‘구호’ ‘표어’ ‘그래피티’ ‘음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항문화 현상에 주목하는 한편 현장의 자료를 토대로 ‘문화적 전환’과 ‘언어ㆍ미디어’의 발전이 응축되는 봉기의 문화정치를 규명하고 있다. 또 항쟁 시기에 투쟁 방향을 지도했던 사회운동조직 간의 결합과 시민과의 연계망을 밝혀, 현장의 문화가 시민들의 ‘집합적 분출’이자 ‘공동체 문화’의 핵심이었음을 밝혀내고 있다.
저자는 ‘광주’가 불러일으킨 효과를 살펴보고자, 크게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째, 광주민중항쟁 시기에 생산된 자료를 토대로 80년 5월의 광주 ‘현장’을 재구성했다. 당시 시민과 운동 세력이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전개한 문화정치의 전략들을 ‘현장’의 기록물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예컨대 시민들이 항쟁에 참여한 이유와 투쟁 방법을 살펴보면서 공동체를 구축해나간 과정을 담아냈다.
둘째, 기존 광주민중항쟁 연구의 주류적인 흐름이 담지 못한 주제를 문화론적 관점에서 조망했다. 항쟁 기간 시민들은 시, 노래ㆍ노가바, 유인물, 구호ㆍ표어, 음향 등의 문화적 실천을 전개하며 정치적인 지향을 드러냈다. 이러한 활동에는 시민들의 경험, 공통감각, 의식, 가치가 내재하여 있는데, 국가권력이 투여된 매체와는 반대방향에서 당대 미디어의 테크놀로지와 매체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직 항쟁 ‘현장’에서 전개된 ‘문화’를 주목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말하자면 기존 연구들은 ‘항쟁 사후’에 이룩한 성과에 주목하여 ‘당시’의 문화적 성과를 공백으로 남겨놓았다. 이는 한동안 광주민중항쟁에 관한 언급마저 통제의 대상이 되고 자료 수집마저 원활하지 못하게 되어 광주민중항쟁의 문화적 성과를 ‘항쟁 사후의 것’으로 보는 좁은 시각을 구축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새롭게 발굴하고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그동안 연구되지 못한 항쟁 ‘현장’의 문화적 전환과 언어와 미디어의 발전이 응축되는 광주민중항쟁의 문화정치를 규명하고, 그 문화적 심층 구조를 확장했다.
셋째,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한 운동 세력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다양한 운동 방식을 살펴보았다.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한 들불야학, 송백회, 극단 광대 등 운동 세력의 미시적, 문화적 요건을 분석하고, 이들이 시민들과 구조적, 문화적으로 통합을 이루어나간 과정을 규명했다.
열흘 동안, ‘현장’에서 외쳐진 익명의 언어와 기호들
1980년 초, 유신정권이 무너지자 민주화의 서곡을 알리는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전국 대학가에서 유신독재에 항거해온 민주화의 열망이 상승했고, 그를 저지하기 위한 신군부의 정권찬탈 음모도 시작되었다. 특히 5월에 이르면 전국 대학의 학생들이 유신ㆍ군부독재의 종식을 위한 투쟁을 전면화하며 전국적인 민주화 대행진을 펼쳐나갔다. 민주화에의 열기는 남녘의 광주까지 번져, 광주에서 진행되던 ‘학원 민주화 투쟁’을 사회 ‘정치투쟁’으로 방향을 전환시켰다. 이러한 투쟁은 전남대 학생총회로부터 시작되어 5월 8일부터 14일까지 ‘민족ㆍ민주화성회’를 이끌었다.
항쟁 직전에 개최된 ‘민족ㆍ민주화성회’에서는 광주의 여러 대학의 학생이 민주화의 열망을 담아 한국 사회가 이룩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가두시위ㆍ성명서 발표ㆍ민주 시 낭독ㆍ전두환 화형식ㆍ횃불시위 등의 활동을 전개하며 자기의식을 드러내고 이념적 지향도 표출했다. 이는 그 자체만으로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자 민주화를 지향하는 혁명의 활동이었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해 전국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들은 ‘광주’에 박달나무 곤봉과 총칼로 무장한 병력을 쏟아 부으며 ‘화려한 휴가’를 시작했다. 5월 18일 오전, 전남대에 배치된 공수부대와 학생들이 충돌하면서 시위는 점점 봉기로 확산했고, 공수부대의 진압에 희생당하던 학생ㆍ시민들은 목숨을 담보한 투쟁의 길에 나섰다. 광주민중항쟁이 진행된 열흘 동안, ‘현장’에서는 익명의 언어와 기호들이 저항을 표현했고 다양한 주체가 부여한 의미가 충돌ㆍ경합하며 변화해나갔다. 이때부터 다양한 문화적 실천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 항쟁을 겪던 ‘현장’의 시민ㆍ시인이 창작ㆍ낭독한 시. 둘째, 시민들이 상황을 반영하여 외치고 적은 구호ㆍ표어. 셋째, 시민들의 심성을 담아낸 노래와 투쟁 의지를 드러낸 노래ㆍ노가바. 넷째, 항쟁을 고발하여 시민들을 선동한 각종 유인물. 다섯째, 시민들에게 상황 전파ㆍ호소ㆍ선전 활동을 해낸 음향장치 등이었다. 이러한 구분은 각 양상이 표출ㆍ수용되는 방식, 시각적ㆍ가청적ㆍ청각적ㆍ언어적 등 다양한 형태라는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시민ㆍ시인이 창작ㆍ낭독한 시
첫 번째 부류는 광주민중항쟁 전 과정에 걸쳐 시민들이 집회에서 낭독한 시와 현장을 목격한 시인이 창작한 시였다. 두 주체가 창작한 시는 ‘현장’의 상황을 직접 목격ㆍ체험한 내용을 제재 삼아 작성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ㆍ공간에서 창작되었음에도 그 형식과 내용에서는 명백한 차이를 드러냈다. 시민이 창작한 시는 수많은 군중이 모인 ‘집회’에서 낭독되었고, 내용도 감정의 직접 표출에 가까웠다. 이는 죽음 앞에 물러설 곳이 없던 자들의 열망이 한꺼번에 분출되어 시의 정치성을 발현한 것으로, 투쟁의 열기와 분위기와 같은 봉기의 ‘현장성’을 핵심동력으로 삼았다. 이와 달리, 김준태가 창작한 시는 은유와 각종 수사를 통해 ‘현장성’을 소거하고 담담하게 항쟁을 증언ㆍ기록했다. 이는 발표 매체가 ‘현장’이 아닌 공식 매체라는 점에서 ‘검열’을 피하고자 우회적으로 시를 기술한 까닭이었다. 즉 5ㆍ18에서는 ‘현장성’을 그대로 표출한 시와 문학적 언어ㆍ형식을 담보한 정제된 시가 창작되어 항쟁을 고발ㆍ증언했다.
“살인마 전두환을 때려죽이자” 구호ㆍ표어를 통한 언어시위
두 번째 부류는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주장을 담아 공중의 마음을 변화ㆍ통제시켰던 구호ㆍ표어이다. 이는 사회나 개인의 행위를 유발하거나 행위를 위한 상징적 정당화의 작업으로 투쟁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항쟁 시기에도 시민들은 정부에게 원하던 바를 전달하거나 자신들의 의사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시대정신을 반영한 구호ㆍ표어가 등장했다. 그 내용에는 보편적 언어로 감당하기 어려운 체험들이 고도로 함축되어 표현되었는데, 폭력적인 현실이 논리적 언어로 산출되기보단 시민들이 느꼈던 감각이 상징어로 쏟아져 나왔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민중의 노래, 투사의 노래
세 번째 부류는 ‘현장’에서 시민들이 불렀던 노래이다. 노래는 봉기마다 투쟁의 열기를 고조시키고 대중의 정의감과 연대의식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즉 노래라는 양식이 지닌 ‘일체감 형성’이란 기능적 측면이 봉기마다 표출되었다. 광주민중항쟁에서도 시민들에 의해 노래ㆍ노가바는 창작ㆍ개사ㆍ제창되어 시민들의 심성을 대변하며 그들을 하나로 묶는 ‘문화코드’로 작용했다. 당시 불렸던 노래들은 〈애국가〉 〈아리랑〉 〈우리의 소원은 통일〉 〈투사의 노래〉 〈정의가〉 〈훌라송〉 〈광주 시민 장송곡〉 〈선구자〉 등이었다.
《투사회보》, 진정한 시민의 대안언론
네 번째 부류는 광주의 상황을 외면하는 언론을 대신하여 항쟁공동체가 상황을 전파하고자 제작ㆍ배포한 유인물이다. 이는 시시각각으로 항쟁 상황을 전파하고 시민궐기대회를 홍보하는 등 현장에서 ‘대안언론’의 역할을 수행했다. 더불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시민들의 정체성ㆍ이념ㆍ가치ㆍ지향ㆍ이데올로기 등의 담는 심층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특히 윤상원 등이 주도한 《투사회보》의 역할이 컸다. 《투사회보》는 이전까지 산발적으로 제작, 발행되던 유인물을 일원화하여 일관된 견지에서 상황을 전파할 매체였다. 당시까지 여러 단체에서 산발적으로 쏟아내던 유인물은 과장되고 왜곡된 것이 많았고, 각기 다른 내용으로 시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었다. 더불어 5월 17일 밤에 군부가 자행한 예비검속으로 운동의 지도자마저 없는 상황에서 체계적인 투쟁 방향을 제시할 방법을 윤상원은 《투사회보》에서 찾은 것이다.
심리전 공격, 음향전
다섯째 부류는 계엄당국과 시민, 양측이 자신의 의제를 전달하고자 전략적으로 선택한 음향장치이다. 이때 소리를 통한 정치행위는 청취자에게 특정한 상을 연상시키고, 마음을 흔드는 기제로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음향장치는 시민들에게 상황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정동적 동원에 높은 효용가치로, 파급력 또한 막강했다. 전파성ㆍ호소력은 물론 소리를 듣는 데 그 어떤 장비도 필요치 않다는 효율성까지 겸비하여 다중의 감정을 선동하고 문화적 긴장을 증폭시키는 데 활용되었다.
항쟁에 참여한 ‘운동세력’과 이웃연결망을 통한 ‘시민과의 연대’
또 이 책은 국가폭력에 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