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쿠데타가만든테러·감시·가위질의시대
한국의민주주의는퇴행했고,양심과사상의자유도제약을받았다
혁명?5·16은반혁명쿠데타일뿐!
한국현대사의문제적인물박정희성찰하기
《서중석의현대사이야기》5권의주제는‘제2공화국과5·16쿠데타’이다.서중석교수는이책에서4월혁명이후의제2공화국과5·16쿠데타가일어난상황까지를다루고있다.대체왜쿠데타가일어난것일까?왜장면정권의제2공화국은쿠데타를막지못한것일까?미국은왜쿠데타를눈감았던것일까?당시대한민국은어떤상황이었을까?
박정희전대통령은한국현대사의문제적인물이다.그가죽은지오래되었지만,‘박정희’라는이름은아직도한국현대사의논란거리이다.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는낯뜨거운말로찬양하는이들이있는가하면,박정희세력이끼친폐해를직시해야한다며비판적으로바라보는사람들도있다.이처럼박정희에대한평가는극명하게차이가난다.그런데이런평가가과연올바른형태로진행되고있을까?박정희가어떤삶을살았고,왜쿠데타를일으켰는지,그당시한국상황은어땠는지,그리고그의집권기에어떤일들이벌어졌는지를먼저성찰하면서평가가이뤄져야하는것아닐까?그러나그래보이지는않는다.박정희를과도하게떠받드는세력들에의해그의우상화가하나씩진행되고있기때문이다.더군다나2017년은박정희전대통령이태어난지100년이되는해이다.벌써부터혈세를쏟아부어100주년기념사업을추진하려는움직임이엿보인다.구미시는당장28억원가량을들여박정희탄생100주년을기념하는창작뮤지컬을제작하겠다고발표한바있다.비판과성찰은없이일방적인미화와우상화가여기저기서진행되고있다.
제2공화국의등장,4월혁명이끝나자모든것이뒤집어졌다
4월혁명이끝나자모든것이뒤집어졌다.1959년진보당사건으로목숨을잃은조봉암이재평가되기시작했고,혁신세력이진보정당을꾸려정치활동을재개했다.이승만집권기때무고하게목숨을잃은집단학살문제가다시수면위에떠올랐고,여기저기서진상규명운동이벌어지기시작했다.김구암살사건도재조명됐다.김구는부활해독립운동과민족주의,통일의상징이됐다.교원노조가결성되는등노동운동도활발해졌다.데모규제법과반공임시특별법에반대하는2대악법반대투쟁도일어났다.또한통일운동과더불어반미운동도일어났다.이당시“가자북으로!오라남으로!”라는그유명한구호가나왔다.그러나장면정부는이런4월혁명의분위기를이어가지못했다.4월혁명의과실을대부분차지한민주당은자유당과마찬가지로보수세력이었고,분단·반공세력일뿐이었다.더군다나민주당정권은부정선거원흉이나발포책임자,부정축재자,반민주행위자를처단하기위한특별법인혁명입법을만드는데대단히소극적이었다.서중석교수는장면정부가비록4월혁명의분위기를이어가지는못했지만,9개월의짧은집권기간동안경제정책을세우고공무원을공채로뽑은점,경찰을대폭숙정해물갈이한점,국군숫자를대폭줄여국방비를경제발전에돌려쓰려고했던점은뛰어난성과라고말한다.1961년에들어서면서장면정부는점차안정되지만곧쿠데타가일어나제2공화국은막을내리게된다.
박정희는누구인가?“정말대운을타고난사람”
그렇다면쿠데타를일으킨박정희는누구인가?“많은사람이‘박정희대통령이18년이나집권했기때문에적어도박정희에대해서는사람들이잘알것아니냐’고생각한다.그렇지가않다.우선쿠데타를일으켰을때박정희는국민에게너무나도생소한사람이었다.언론계나지식인층도잘몰랐다.국회의원들도‘박정희가누구야?’하고서로얘기했다고그런다.”서중석교수의말처럼당시박정희는그누구도정체를모를만큼무명의군인이었다.사실군인시절에도박정희는눈에띄게활동한게없었다.한국전쟁때도별다른활약상이없었다.당시에도그랬지만그이후에도박정희가어떤삶을살아왔는지는철저히베일에싸여있었다.박정희의창씨개명이름인오카모토미노루,다카키마사오도1970년대후반,1980년대에들어와서알려졌다.박정희가만주군관학교에두번째응모하면서했던말“일본인으로서수치스럽지않을만큼의정신과기백으로써일사봉공의굳건한결심입니다”도2009년에서야밝혀졌을만큼박정희의과거는잘알려져있지않았다.
그런박정희가쿠데타를성공했다.1961년5·16쿠데타과정을되짚어보면보안이철저하지도않았고,쿠데타당일병력동원도매끄럽게이뤄지지않았다.쿠데타군자체가그리많지도않았다.그런데도박정희는한나라를손에쥐는데성공했다.서중석교수는이렇게말한다.“그전엔안그랬는데요근래박정희정권에관해강의할때빠지지않고얘기하는게있다.‘박정희는정말대운을타고난사람이다.운이너무나도좋은사람이다’,그런얘기를한다.쿠데타에성공할때도여러가지가겹치면서정말운이좋았고,경제발전문제만해도그렇다.국내외조건이그야말로그보다더좋을수없는시기에경제발전을이룩해낼수있었다.중화학공업화를할때에도선진국에서사양산업이된일부중화학공업을넘겨주기시작하는시기와맞물렸다.또정부에서는중화학공업에매진했지만기업들이투자를꺼렸던1970년대후반에중동건설경기가갑자기일어난것도굉장히운이좋은것이다.”
쿠데타는어떻게시작되었나?
서중석교수는쿠데타를가능케한배경으로다음두가지를꼽고있다.하나는당시한국군이굉장히비대했다는것.이승만대통령은군인숫자를늘리는게국방력을갖추는길이라고생각했다.1953년에벌써60만이넘었고,나중에는72만명까지늘어났다.또하나는다른어떤집단보다도군인들이엘리트의식이강했다는것.당시어지간한장교는모두미국에서훈련을받고돌아왔다.박정희,김종필도마찬가지였다.당시미국유학이란큰부자,특권층이아니면갈수가없었다.이런상황에미국을다녀온군인들은강한엘리트의식을갖게되었고정권을넘볼힘도갖추게되었다.실제로1959년미국콜론연구소에서작성한보고서는한국에서쿠데타가일어날가능성을언급하기도했다.“하층경제계급출신의유망한청년장교가한국에서다수생겼고,이들은특권적관리나정치가에게분노를품게된다.이것이폭발할우려도있다.”
우선쿠데타모의는김종필,김형욱등육사8기들에서시작된다.왜육사8기가쿠데타를도모했나?이들은군상층의부패에불만이많았고이를거세해야한다고봤다.그러면서군상층부를바로잡자고정군운동을벌이기도했다.무엇보다이들은진급을하지못하고있었다.5·16쿠데타가날때까지극소수만대령진급을했고,좀괜찮다고하는사람들정도가중령에머무르고있었다.후에이들은쿠데타를일으킨이유를장면정부의부패,군의부패등을들었지만,서중석교수는권력욕과진급하지못한것에대한불만등이가장직접적인요인이었을거라고말하고있다.그리고이들은역시이전부터쿠데타를모의하고있던박정희를끌어들였고,결국쿠데타를성공시킨다.
5·16쿠데타,막을수는없었을까
쿠데타세력이꿈꾼나라는?
쿠데타는분명막을수있었다고서중석교수는말한다.하지만장면정부의인사실책과윤보선의묵인때문에결국막지못했다고진단한다.우선장면은이종찬을국방부장관에서내리고현석호를새로임명했다.이종찬은군인이정치에개입하는것에적극반대하는입장이었다.그리고신임육군참모총장에장도영을앉혔다.장면은이전부터쿠데타가일어날것이란소문을몇차례들었지만,그때마다장도영은‘염려할것없다’면서박정희를치지못하게막은것이다.
장도영만큼이나쿠데타에기여한사람은윤보선대통령이었다.장면과감정적으로사이가좋지않았던윤보선은쿠데타군을진압할수도있었다.그러나군일부에서쿠데타군을진압하려하자하지못하게막아버렸다.곧쿠데타를묵인하고만것이다.
결국쿠데타에성공한박정희일행.그렇다면그들은과연어떤나라를꿈꾸었을까?서중석교수는단호하게말한다.그들에게는정치적이념이하나도없었다는것.“쿠데타를성공시켰지만이들은어떤나라를만들것인지에대한상은없었다.'반공체제를재정비,강화'한다는게혁명공약1번이었을뿐어떤정치적이념도보이지않았다.반공을제외하면무(無)이데올로기에가까웠다.”
그렇다면박정희에겐사상이있었는가.서중석교수는박정희의생각은일제식민사관에기반을둔저열한민족성론,식민지노예근성을고쳐야한다는주장,극단적인반공노선같은것밖에없다고말한다.“혼란과무질서를물리력으로뿌리뽑겠다는파시즘적질서관,그리고일제시기의청년장교들이가졌던군국주의,국수주의나군인정신같은것도조금은엿볼수있지않나하는생각이든다.아주낡은,시대착오적인생각이라고볼수있지만,그것을아주강렬하고과격하게,단정적으로표현하면,일제유산이청산되지못하고비민주적·파쇼적사고나행태가횡행하는사회에서는혁신적이거나개혁적인느낌을갖거나그것을신선하고민족적인것처럼받아들이는사람들이있을수있었다.파시즘이념이나행동이유럽에서일부층에영향을끼친것처럼,또일제군국주의청년장교들의정치이념이상당수의일본인들에게영향을끼친것처럼그럴수있었다.어쨌건구부러진,기이한‘민족의식’이당시존재할수있었다는점을무시해서는안된다고본다.”곧쿠데타세력의사상이란식민사관과극단적인반공노선,군인정신이결합된것일뿐내용은없었다는것이다.
미국은왜쿠데타를눈감았나
5·16쿠데타때CIA국장이던앨런덜레스는나중에“재임중CIA의해외활동으로서가장성공을거둔것은이혁명이었다”라고증언한다.미국정부는‘처음부터쿠데타를지지했다’고까지얘기할수없을지는몰라도‘그것에개입해야한다’는노력도보이지않았다.미국은왜이런태도를취했을까?주한미국대사관에오래근무했던그레고리헨더슨은미국정부가쿠데타지지로나선건케네디정부의쿠바침공작전이실패로돌아간것이큰요인이라고설명하고있다.
미국은장면정부를상당히불안하게여기고있었다.이것은민간인정부에대한불신이었다.민주와자유를어느정도지키는민주주의정부가과연한국에적합한가하는것이었다.4월혁명후진보세력이등장해통일운동과전후학살을비롯한과거사진상규명운동을강하게하자,미국은이를상당히두려워했다.그러면서장면정부대신자기들이정말믿는,탄탄한반공권력이들어서는것을생각했을수있다.다만쿠데타를직접지원하지는않은것으로볼수있지만,적어도쿠데타가진행되는것을막을필요를못느꼈다는것은확실하다.
곧미국은처음부터박정희를노골적으로지지한건아니지만사실상박정희의쿠데타를묵인했다.주한미군과미국은박정희를인정했다.박정희를잘알지않으면그런일이생길수가없다고서중석교수는말한다.“5·16쿠데타가일어났을때미국은박정희가이승만못지않게반공정책을철저히수행할것임을확신했다고본다.남로당프락치로서한박정희의배신적행위,기회주의자로서면모,권력에대한강한집착을잘알고있었던것이다.하나더짚을것은,한번배신한사람은거기다시안붙는다는걸하우스만이잘알고있었다는점이다.‘미국측에서그간보니공산당을배신한자들이공산당에다시가는건못봤다’,이런점을강조하더라.”
5·16쿠데타,어떻게평가할것인가
서중석교수는5·16쿠데타의평가는“쿠데타세력이어떤국가,어떤사회를만들려했는가에따라”이뤄질것이라고말한다.그러면서“5·16반혁명쿠데타”로부르는게제일정확한용어라고말한다.서중석교수는혁명이냐반혁명이냐의문제는다음의질문을던져보면알수있다고말한다.자유또는민주주의와관련해어떤역할을했는가.사회적혁명,경제적혁명을과연하려고했는가.분단고착화인가,통일지향인가.이질문을놓고보았을때쿠데타권력은확실히반혁명세력이라는것이다.
실제로쿠데타이후자유와민주주의는억압되었다.정기간행물1,200종을폐간시키는등언론의자유도퇴행했다.양심과사상의자유,표현의자유도제약받았다.반공법이통과되면서내면의자유까지짓눌렸다.예술가들도가위질의공포에항상두려움을느낄수밖에없었다.국가보안법을개정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