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6: 박정희와 배신의 정치, 거꾸로 된 '혁명'과 제3공화국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6: 박정희와 배신의 정치, 거꾸로 된 '혁명'과 제3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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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제6권. 주제는 ‘박정희와 배신의 정치’이다. 1961년 5·16쿠데타에서 1963년 12월 제3공화국의 출범에 이르기까지 박정희가 보인 모습은 개인적 신의와도, 민주주의 원리와 역사의 흐름을 준거로 한 대의와도 거리가 멀었다. 이 시기에 박정희는 목숨을 걸고 자신과 함께한 동료들 중 상당수를 내쳤다. 그것도 반혁명이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을 찍은 채. 그런 식으로 밀려난 이들 중에는 박정희가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여러 차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은인 장도영도 포함돼 있었다. 권력 앞에서는 동료도, 은인도 안중에 없었던 셈이다. 일제 시대에 만주군 장교였다가 해방 후에는 남로당 프락치로 변신하고, 그 후에는 군 내부의 남로당 조직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만은 살아났던 박정희로서는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모습이다.

저자

서중석,김덕련

저자서중석은1948년충남논산에서출생했다.서울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연세대학교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79년부터1988년까지동아일보기자로재직했으며,6월항쟁당시《신동아》취재기자로역사적현장에서그날의사건들을생생히목격하고기록했다.현재성균관대학교사학과명예교수이며역사문제연구소이사장,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상임공동대표,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을맡고있다.
주요저서로《80년대민중의삶과투쟁》《한국근현대민족문제연구》《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1·2》《신흥무관학교와망명자들》《남북협상:김규식의길,김구의길》《조봉암과1950년대》(상·하)《비극의현대지도자》《배반당한한국민족주의》《이승만의정치이데올로기》《한국현대사60년》《이승만과제1공화국》《대한민국선거이야기》《지배자의국가민중의나라》《6월항쟁》《사진과그림으로보는한국현대사》등이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연표
첫번째마당
박정희권력의심장
중앙정보부의탄생
두번째마당
경제논리무시한군부정권,
경제난만가중했다
세번째마당
‘혁명재판’의반혁명성
쿠데타권력의발가?벗은모습
네번째마당
박정희와각별한사이였던황태성은
왜간첩으로죽어야했나
다섯번째마당
군복귀공약,
박정희는처음부터지킬생각없었다?
여섯번째마당
정치정화허울아래
혁신계묶고‘구악중구악’포섭
일곱번째마당
경제망치고법치뒤흔든
4대의혹사건
여덟번째마당
박정희는왜‘민정불출마’
2·18성명을발표할수밖에없었나
아홉번째마당
군정연장협박으로
민정불참선언뒤집다
열번째마당
밑바닥까지추락한박정희인기
야당은이전투구벌이며지리멸렬
열한번째마당
사상논쟁불붙은1963년대선,
“박정희좌익전력당연히짚어야”
열두번째마당
박정희는민족주의자인가
대륙침략한일본우익이친한파?
열세번째마당
왜박정희는서울에서완패했나
밀가루·관권이만든15만표차이
나가는말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박정희는정말무서운사람”
권력앞에선동료도,은인도안중에없었다
권총을찬군인들의권력쟁탈전,
혁명이라는가면뒤에숨은진짜얼굴
‘반혁명’이라는무시무시한낙인
《서중석의?현대사이야기》6권의주제는‘박정희와배신의정치’이다.‘배신의정치’는박정희의딸박근혜대통령이유포한표현이다.이를통해박근혜대통령은자신과다른의견을낸정치인을배신자로낙인찍었다.이는박근혜대통령이절대적으로추앙하는것으로보이는부친박정희의집권과정에도그대로나타난다.1961년5·1...
“박정희는정말무서운사람”
권력앞에선동료도,은인도안중에없었다
권총을찬군인들의권력쟁탈전,
혁명이라는가면뒤에숨은진짜얼굴
‘반혁명’이라는무시무시한낙인
《서중석의현대사이야기》6권의주제는‘박정희와배신의정치’이다.‘배신의정치’는박정희의딸박근혜대통령이유포한표현이다.이를통해박근혜대통령은자신과다른의견을낸정치인을배신자로낙인찍었다.이는박근혜대통령이절대적으로추앙하는것으로보이는부친박정희의집권과정에도그대로나타난다.1961년5·16쿠데타에서1963년12월제3공화국의출범에이르기까지박정희가보인모습은개인적신의와도,민주주의원리와역사의흐름을준거로한대의와도거리가멀었다.이시기에박정희는목숨을걸고자신과함께한동료들중상당수를내쳤다.그것도반혁명이라는무시무시한낙인을찍은채.그런식으로밀려난이들중에는박정희가아주어려운처지에놓였을때여러차례구원의손길을내밀었던은인장도영도포함돼있었다.권력앞에서는동료도,은인도안중에없었던셈이다.일제시대에만주군장교였다가해방후에는남로당프락치로변신하고,그후에는군내부의남로당조직정보를제공하고자신만은살아났던박정희로서는어쩌면지극히자연스러운행보아니었을까하는생각마저들게하는모습이다.
‘혁명재판’의반혁명성,쿠데타권력의발가벗은모습
1961년6월22일,최고회의는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이라는걸소급입법했다.이특별법에서제일문제가되는조항이바로제6조다.제6조는정당,사회단체의주요간부가반국가단체나그구성원의활동을찬양,고무,동조하는행위를하면사형,무기징역또는10년이상의징역에처한다는것이었다.그법으로혁신계인사,한국전쟁전후집단학살의진상규명을요구한피학살자유족회간부등을잡아들이고중형을선고했다.반국가단체의활동을찬양,고무,동조하는행위로몰아붙여서정당,사회단체의주요간부를처형하고처단한것이다.
서중석교수는쿠데타정권의반혁명적성격을가장잘보여주는것은이반혁명사건이라고말한다.반혁명사건은5·16쿠데타의존재이유를드러내는것이기도하다.쿠데타가일어나자마자좌익혐의를받은사람들이대거검거되었다.쿠데타가일어난지일주일도안돼2,014명을검거했고,얼마지나지않아숫자는3,500명으로늘어났다.민족일보사장인조용수도이때사형선고를받았다.그리고통일운동세력을철저하게처단했다.민간인학살의진상을밝히려던이들도가혹하게처벌을받았다.심지어희생자들의묘까지훼손되는일까지겪어야했다.그렇지만3·15부정선거원흉과4월혁명발포사건핵심인물들은대거석방된다.
쿠데타에반대한세력,쿠데타관련정보를누설한자들,쿠데타군을진압하려한사람들도모두반혁명사건으로처단되었다.그중에서제일대표적인반혁명사건은장도영사건이다.장도영은5·16쿠데타가성공하는데결정적인역할을한사람이다.쿠데타이후계엄사령관이되고,군사혁명위원회의장을맡기도했다.그러나권총을찬군인들의권력쟁탈전에밀려나고말았던것이다.
군복귀공약,처음부터지킬생각이없었다
“이와같은우리의과업이성취되면참신하고도양심적인정치인들에게언제든지정권을이양하고우리들본연의임무에복귀할준비를갖추겠습니다.”
박정희의‘배신의정치’는공적인측면을살펴보면더욱두드러진다.박정희는쿠데타이후권력을내놓지않기위해거듭반칙을했다.곧민정이양문제를두고줄기차게말을바꾼것이다.이른바군복귀와민정이양을이야기한‘혁명공약’을지킬생각이애초부터없었던것으로보인다.쿠데타세력은겉으로는민정이양을표명하면서도야당을비롯해다른사람들의손발을계엄으로다묶어놓고중앙정보부라는초거대조직을이용해신당조직에착수하여대선과총선에서승리하는것,그리고그러한승리를가능하게할새헌법과선거제도를고안하고있었다.그러다가여러압력에못이겨2·18성명을통해민정불참선언을했다가얼마안가이를다시뒤집는다.1963년3월16일그유명한3·16성명을발표한것이다.“정권인수의태세를갖추지못한정치인들에게정권을이양한다는것은너무나국가장래가염려되고일방우리스스로혁명당국의무책임성을자책하지않을수없습니다.……따라서본인은앞으로약4년간군정기간의연장에대하여그가부를국민투표에부쳐국민의사를묻기로결심하였습니다.”이른바또하나의‘배신의정치’를한셈이다.얼마뒤박정희는군복을벗고민주공화당대통령후보지명을수락하며대통령선거에나서게된다.
사상논쟁불붙은1963년대선,그리고제3공화국의탄생
박정희의공약은별다른게없었다.“정당정치구현,지방자치제도실시,중농정책도이야기했는데이것들은유권자를헷갈리게하는공약이었다.박후보와정당정치구현은너무나거리가멀었고,지방자치를실시하려는생각은전혀없었으며,이당시에는중농정책과정반대되는정책을펴고있지않았나.”
이선거에서사상논쟁이격렬하게벌어졌다.먼저논쟁을건사람은박정희였다.박정희는“이번선거는개인과개인의대결이아니라민족적이념을망각한가식의자유민주주의사상과강력한민족적이념을바탕으로한자유민주주의사상의대결”이라고말했다.그러면서“이조500년동안의사대주의적근성과일제식민지적근성을일소하고민족주체의식의확립외에외국의주의,사상,정치제도를우리체질과체격에알맞도록적용,실시하자는것이나의주장이다”라고얘기했다.그러자윤보선은“여순반란사건의관계자가정부에있는듯하다”는중대발언을했다.이발언을들은민주공화당은윤보선을허위사실유포,후보자비방금지위반혐의로서울지검에고발했다.
사실윤보선의공격은터무니없는것이었다.박정희는남로당프락치이긴했지만여순반란가담자는아니었다.그만큼윤보선에겐박정희에대한정보가없었다.“쿠데타를일으켜일국을장악한박정희최고회의의장에대해서조차그사람이무엇을했는가,어떤일을하며살았는가를모르고있었다는건대단히심각한문제다.박정희일생에서굉장히중요한것인데그걸모르고있었던것이다.”
결국우여곡절끝에대선은박정희의승리로끝이났다.15만표차이였다.역대대선에서가장근소한표차이였다.“이선거는박정희한테큰영향을끼쳤다.이선거에서박정희후보는말할것도없고민주공화당간부들도얼마나가슴이탔겠나.정말아슬아슬한맛을본것이다.그렇지않아도박정희는서구적정치,선거를중심으로하는의회정치,정당정치에대해대단히비판적이었고‘한국사회에맞는정치를해야한다’,이런얘기를하지않았나.그런박정희가이선거를보면서여러가지로생각하는게있었다고본다.”이렇게제3공화국이탄생했다.군복을벗은박정희가대통령이되었지만여전히군인들이지배하는국가였다.이군사문화는계속존재하면서우리정치,문화,사회에큰영향을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