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에 대한 묵상

묵은지에 대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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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인 연규민 이력은 독특하다. 청주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고 법무사로 오래 일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는 사회복지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연 친화적 성품대로 숲해설가로도 활동했다. 〈백수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에세이문예〉를 통해 수필로도 등단했다.
지금은 고향에서 농사지으면서 시를 쓴다. 그는 젠체하지 않는 시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쓱대지 않고 낮게 엎드린 풀, 굼벵이 같은 미물과도 교감하고 소통한다. “작고 하찮은 것들을 ‘우주 속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존재감을 나눌 뿐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정우영 해설)” 시인이다. 그런 마음으로 쓴 시들을 묶었다.

저자

연규민

연규민의시집에는‘시는우주적연민이다’는말에매우합당한시편들이가을밤별처럼널려져있다.그것은시가일상이되고수행이되는시인에게서만볼수있는매우드물고도아름다운광경이다.그연민의눈빛은상위자나강자의동정이아니라우주적존재로서타자나사물과동등한위치에서낮고도따스하게분출한다.그런수행자의삶은때때로곤혹스럽고버겁지만,‘그순수한사랑의속살은드디어당신의아침상고소한땅콩조림’으로무르익는다.
-박윤규(시인,동화작가)

목차

제1부주름잎
고광나무
주름잎
는쟁이
가래나무두그루
아직은때가아니라고
가시박
털별꽃아재비
도씨삼형제
너는너의길을가고
터주깨
그대가정말제비콩
비름나물
나는울금입니다
혼의소리
미스트
백운사가는길
월세는얼마예요
신혼살림
목인동에서
선사초

제2부인동
인동
갈참나무
살생부
거기까지
질마재를넘으면
고구마는구워야제맛이다
만항재연가
오늘도숙면은글렀다
잘가라아픈오십
꽃무릇
인생의쓴맛
봄은오는게아니다
바람처럼
낡은기계사용법
상사화
탑평리막국수
베고니아붉은꽃잎
용천사꽃무릇길
곰배령
파종
둘이었으면

제3부업경대
기천불종합상사
쇠전거리해장국
업경대
옥수수밭의정사
언어유희
감꽃
장국죽
광반사재채기
봄술(2)
저이가누구신가
안경잡이로산다는것은
우리는언제어른이되나
겡기랍
만성변비
광고천국
멸종위기종1급
카피킬러
유전자지도
까마중
예명짓기
개미
홀딱벗고
굼벵이호의
설거지천국
허공에수북한거짓말

제4부땅콩조림
땅콩조림
사형집행5분전
비문증
어정쩡한수행자
죽기살기
제몸별이되어
기대수명
처서모기
마당질
통새미로
살피꽃밭
홍매
서리꽃
완두콩전
망우초의노래
김치선호사
늦살이
밥보자기나물
구굴기
묵은지에대한묵상

해설/정우영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글을쓸때중요한것은뜻밖에도그가서있는자리이다.그자리에따라그의시선이열리고그열린시선으로사물을보고느끼거나만지게되기때문이다.시에서도이는마찬가지다.그의시선이어디에놓이는가가시의몸과맘을결정한다.이성이냐,감성이냐,관념이냐,현실이냐하는시적태도도시선에따라갈린다.머리를먼저보는사람은머릴중점적으로다룰것이고발을주로보는이는발을중심에놓고쓰기시작할것이다.

나는가급적시를쓰는사람의자리가낮은곳에위치하길바란다.그래야아주하찮은미물에서부터저광활한우주까지다그의시선에잡아둘수있다.이렇게그의시야에포착된시는언어적호흡과사물과의호흡두가지로숨을쉬게된다.언어적호흡이언어와의호응을문장으로드러낸다면사물과의호흡은대상과의긴장을감응으로표현한다.이중어느것하나만잘선취해도시는곧잘쓰여지나,보다나은시는이둘의조합을한결돈독하고유려하게그려낸다.

이런점에서나는연규민이‘시인의말’에적은발언을주목한다.그는여기에,“내가젤이라는생각,사람이젤이라는생각을버리고우주속에한구성원이라는생각이제일먼저건져올린생각입니다.그래서작은것들에눈길을줄수있게되었습니다.”라고쓴다.이로보건대연규민은,나를버리고우주속의한구성원으로서살고자하며작은것들에도눈길을주고자하는사람임을알수있다.
이와같이생각하는그이므로,나는그가자기자리를세계의맨아래쪽에두지않을까짐작한다.그렇지않다면저와같은자기생각들을구현하기란좀체쉽지않을터인까닭에.실제작품들을둘러보면그의시선은매번작고하찮은것들에가서얹힌다.거의평교(平交)에가깝다.앉거나눕지않으면잘드러나지않을작은꽃이나잡풀들에게그는그의마음을내어준다.하지만그마음은연민이거나동정이아니다.이작고하찮은것들을‘우주속의한구성원’으로인정하며존재감을나눌뿐불쌍하게여기지않는것이다.

나는이점에안도하며그가이들생명체를동류자로받아들이는것에대해적잖은의미를부여하고자한다.일반적으로는한갓잡풀에불과한존재를우주적유기체로인식한다는것은,그가사물과의호흡에감응함을드러내는명백한징표아닌가.-정우영해설중에서

책속에서

어깨뽕에
팔꿈치를밖으로크게휘젓고
다리는쩍벌려서
몸집을부풀려깡패를의태(擬態)하는인간도있는데
두메고추나물이란고상한별호를가진털보별꽃아저씨가
들깨좀흉내내면어떠리

세상만물제살방도하나씩은있는법
열두가지재주에저녁거리도없는인사가
들깨흉내하나로살아남아꽃피워보려는
쓰레기꽃이란이름조차마다않는그댈탓하랴
<털별꽃아재비>부분

예쁘장해서멋모르고만지면
온통잔가시를묻혀놓는넌
도둑놈의갈고리
사랑의기쁨일까
실연의아픔일까

밭고랑도씨삼형제를뽑으며
내마음의삼독형제도함께뽑으며중얼거린다
세상미운게도둑놈이라지만
너희를보고지퍼도만들고찍찍이도만들고
마음수행도하니
가만보면너희들도이쁜구석이있긴있구나
<도씨삼형제>부분

세상미운짓만하는게어디있으랴
마디마다뿌리를내려기어가며번져가고
참깨줄기휘감고
땅위에바짝엎드려예초기칼날피하고
그도안되면예초기날을휘감아멈춰버리는
미운너이지만

퇴비로너만한게없고
쇠꼴로도너만한게없으며
땅마름을막고토사유출을막는데도너만한게없으니
세상미움도사랑도한가지에서나오느니
너는바랭이의삶을살고
나는사람의인생을살아가면그만인것을
<너는너의길을가라>부분

키가작아개비름,털이뽀얘털비름,빨간줄기에다소곳하니참비름,그어찌무찌르기만할잡초랴.데치고무치면그사람좋아하는비름나물.

마음밭에도잡생각전쟁터같다.내몰아도내몰아도끊임없이달려드는파리모기떼.강력한살충제라도한방뿌려버릴까바라보다,그래도이건아니다싶어파리채들고.명상!

예쁜여자는고름과구더기와콧물과가래와같다근사한권력과일자리는꿈이다암투다배신이다골머리다존경과인기는구름이다자살이다감옥이다술과담배는건강과맞교환이다두통과거북과속쓰림과동행이다그래도비름나물은그리움이다손맛이다.

때로는사랑이다살맛이다.
<비름나물>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