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어필 탈취사건과 600년 수난사

세종대왕 어필 탈취사건과 600년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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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세종대왕 친필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
11년 추적 스토리
■ 세종대왕 어필(御筆)은 존재하는가

세종대왕 어필(御筆)은 존재하는가. 왕이 지은 글이 어제(御製)이고, 임금이 쓴 글이 어필(御筆)이다. 역대 조선의 왕이 쓴 글을 모은 게 열성어제(列聖御製)다. 세종의 글은
열성어제에 시(詩) 1제 1수와 문(文) 20편이 소개돼 있다.
그러나 지금 전해지는 공인된 세종의 어필은 단 한 점도 없다. 실용주의 군주인 세종이 문학 창작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게 큰 이유다. 또 소수였던 작품도 전란 등으로 인해 소실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국사 정치와 문화 과학 등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세종의 친필을 찾으려는 노력은 꾸준히 계속돼 왔다. 그렇게 발굴된 작품 중 하나가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御賜喜雨亭孝寧大君房文)이다.
세종이 쓰고 형 효령대군에게 선물한 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은 600년 동안의 탄탄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역대 왕들이 이 서첩을 세종의 친필로 인정하고 보존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왕실용 고급 한지 10매에 쓰인 528자의 글이 하나의 첩을 이루고 있는 어사희우정문에는 수백년에 걸쳐 세종과 후손의 우여곡절 삶이 켜켜이 쌓여왔다. 이 내용을 이상주 왕실문화작가가 최근 출판한 '세종대왕 어필(御筆) 탈취 사건과 600년 수난사(다음생각 펴냄)'에 담았다.

저자는 2014년 봄 이 책자를 처음 접한 후 11년간 세종어필에 관한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
왕의 글인 열성어제를 연구하고, 세종이 쓴 글로 거론되는 전의이씨 가훈(가전충효세수인경)과
세종의 어명으로 출간된 설원서첩의 병외삼 등의 배경연구와 함께 취재에 몰두했다.
저자

이상주

본관전주(全州),호는여천(礪川)이다.신문기자출신의역사작가로조선왕실비화에밝다.
문헌과구전,현장취재를종합한세종대왕스토리발굴로인기가높다.중앙일간지에서20년넘은언론계생활을뒤로하고10여년동안서울시립대,서울시민대등에서조선왕실사와역사스토리텔링등을강의했다.2021년언론계로돌아와세종대왕신문을발행하고있다.세종왕자밀성군파종회학술이사,백강이경여문중문화이사다.
세계문화유산인종묘사직환구왕릉제향전수자로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전례위원과문화위원을역임했다.
세종의삶을다룬주요저서에는‘세종의공부’,‘세종의자녀교육법’이있다.
세종후손을추적한저술에는‘세종의후손여산에뿌리를내리다’,
‘조선의혼백강에흐르다’,‘도봉산에깃든세종왕자영해군500년이야기’,‘(중종왕자)봉성군과을사사화’가있다.또조선왕실의사당과왕릉을살핀‘왕의영혼조선의비밀을말하다’,
‘태조와건원릉’,‘태종과헌릉’을썼다.태종승하600주년(2022년)에는‘위대한군주태종대왕’을
대표집필했다.조선선비의가치관이녹아있는‘조선명문가독서교육법’과연안이씨의정공종중
역사를복원한‘혁명가와의병장을키운어머니(공저)’도주목받는작품이다.

목차

들어가는말

1장.세종대왕어필,단하나의진실이야기
세종대왕어필을접한순간의감흥
한국고미술협회의감정,어사희우정은세종친필
어사희우정문은세종시대인1400년대왕실종이
세종의친필로확인하는어필판하완문(御筆判下完文)
세종의어필가능성이거론되는3점과진실찾기
가전충효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은세종의친필일까
전의이씨가훈이세종친필로알려지는과정
세종대왕어필을추적하다만난문화유산몽유도원도

2장.열성어제(列聖御製)와세종의글
임금의글모음집열성어제(列聖御製)
열성어제와세종의글
세종의시,임금이꿈에서본나라
세종의문(文),함길도도절제사하경복에게내린글
세종의백독백습과신묘한글씨

3장.어사희우정문에담긴사연
세종어필(御筆),왕위양보한두형님고맙습니다
효령대군이어필을받은배경과농사철물부족
대제학변계량이기록한세종과효령대군의아름다운사연
세종왕자들의글과정자희우정추억
신하들에의한세종과희우정예찬
변계량의희우정기에묘사된세종과효령대군의우애
효령대군,고개숙여세종의만수무강축원
희우정에서망우정으로바뀐이름

4장.어사희우정문과세종친필증언
효령대군이밝힌세종의친필
효령대군이밝힌세종친필상속자
철종이작성한세종친필인정서내사완문(內賜完文)
내사완문(內賜完文)의내용
철종대왕이형조와한성부에내린희우정과세종어필보존대책

5장.어사희우정문의세종어필진실게임
왕의친필인가,사자관이베껴쓴것인가
역사에없는세종7년4월정축일
왕이형에게쓴글!왕의수결인가,왕의이름인가?
어사희우정문은명필이쓴신묘한작품
왕의휘(이름)로친필여부를알수있을까
어사희우정문과안평대군글씨체는닮은꼴

6장.어사희우정문수난사
세종대왕친필의우여곡절
희우정정자와세종친필탈취사건
효령대군후손이진호의호소,빼앗긴세종친필찾아주세요
효령대군후손들의세종친필문권되찾기운동
상주유림들의세종친필찾기탄원
궁궐에서사라진세종의신묘한글씨
국정감사에서지적된세종어필어사희우정문도난사건

출판사 서평

■세상에단한점인세종대왕친필을추적한'세종대왕어필(御筆)탈취사건과
600년수난사'

-세종친필사연이600년동안켜켜이쌓인'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御賜喜雨亭孝寧大君房文)'-


이상주작가는2014년봄에이서첩을처음접했다.문화재에밝은한원로스님의주선덕분이었다.그는600년동안세상에공개되지않은세종대왕어필을보는순간의감흥을잊지못한다.

"황금색비단보자기가풀어졌다.찰나,경외심(敬畏心)에온몸이전율한다.600년동안잠잔세종대왕의친필(이하추정)이다.‘御賜喜雨亭(어사희우정)!’첫문장이펼쳐지는데숨이콱막힌다.혹여,글이손상될까,혹여예에어긋날까머리칼이쭈볏선다.정성을다해한장씩조심스럽게넘겼다.모두10매에쓰인528자의글.손에낀면장갑위로대왕의따스함이전해져온다."〈13쪽〉

그는이날이후10년이상세종어필추적을계속해왔다.왕의글인열성어제를연구하고,세종이쓴글로거론되는전의이씨가훈(가전충효세수인경)과세종의어명으로출간된설원서첩의병외삼등의배경연구와함께취재에몰두했다.

이상주작가는이기간에세종대왕어필로유력시되는어사희우정문실물을10여차례깊이관찰했다.또서지학자,서예가,왕실문화를연구하는학자들과대화하며세종어필에대해다양한접근을했다.긴시간의추적을통해세종이효령대군에게하사한어사희우정문에서600년에걸친대서사시와같은깊은스토리를발굴했다.세종의어사희우정문과백성사랑,세종과효령대군의형제애,효령대군이세종의어필이라고기록한전문사연을찾아냈다.

특히영조,정조,문조(효명세자)의어사희우정문과이를보관한정자를보존하려는노력,조선후기모리배들에의한어사희우정문탈취사건,이에대해엄정수사를촉구한전국유림의사발통문,철종대왕의세종어필확인서인내사완문발급과보존대책등조선시대내내켜켜이쌓인사연을확인했다.

'세종대왕어필(御筆)탈취사건과600년수난사'에는어사희우정문이세종의어제(御製)어필(御筆)임을보여주는여러자료가제시돼있다.효령대군친필전문,헌종(재위1834~1849년)때형조에서어사희우정문소유자로부터받은글,철종(재위1849~1863년)때효령대군종친회에서쓴탄원서,충청도화양서원통문,경상도상주흥암서원통문,경상도함창도회통문,철종의격쟁비답,철종의내사완문,철종이형조와한성부에내린정부여형한양사게판절목(政府與刑漢兩司揭板節目)등이다.

이같은귀중한역사자료가화보로도구성돼있다.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御賜喜雨亭孝寧大君房文),철종의내사완문(內賜完文),정부여형한량사게판절목(政府與刑漢兩司揭板節目),효령대군친필전문(孝寧大君親筆傳文),고종7년에어사희우정문등을인쇄한목활자(木活字)사진70여장이다.이자료들은왕과왕실의고급문화감상과함께연구자들에게는소중한자료가될수있다.

조선사를관통하는왕실문화의핵심키워드인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은2005년한글날SBS의보도로세상에알려졌다.문화재전문위원을지낸천혜봉박사가1년여의연구끝에세종대왕친필이라는논문을발표하고,한국고미술협회에서도2017년에세종친필로감정했다.그러나국가차원의진위감정이이뤄지지않는가운데관리사각지대에놓이기도했다.이에2018년국정감사에서는어사희우정문도난사건과관리문제가도마위에오르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