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치여론 (표점현토역주 | 양장본 Hardcover)

격치여론 (표점현토역주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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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 《格致餘論》은 朱丹溪가 67세일 때인 서기 1347년에 문하생인 張翼 등의 요청에 따라 저술한 책이니, “格致”는 《大學》에서 유래한 “格物致知” 즉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지극히 한다.”라는 말의 줄임말이고, “餘論”은 흔히 “자질구레하고 짧은 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 朱丹溪도 이 책의 自序에서 “古人들은 醫學을 우리 儒者들이 格物致知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 책의 명칭을 《格致餘論》이라 하였다.”라고 말하였으니, 대체로 이런 뜻으로 책의 이름을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 이 책의 《四庫全書》 本의 〈提要〉에 보이는 “學醫는 特其餘事라.” 즉 “醫學을 익힌 것은 다만 그 餘暇 때의 일일 뿐이었다.”라는 말에 의거하면 “格致餘論”을 “格物致知의 여가 시간에 論한 글”이라는 뜻으로 본 것이니 또한 뜻이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 朱丹溪는 30세에 모친의 脾疼을 여러 의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醫學에 뜻을 두어서 마침내 《素問》 등의 의서를 取하여 읽기 시작하여 34세 경에는 모친의 질병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36세 때에 東陽의 八華山으로 가서 朱子의 四傳之學을 이어받은 許文懿公에게서 道學 즉 性理學을 배웠으니, 이때까지만 해도 朱丹溪에게 醫學이라는 것은 儒者가 하는 格物致知의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본서의 내용 중에는 《周易》과 《尙書》와 《禮記》와 《論語》와 같은 여러 儒家經典의 글들과 《素問》과 《金匱要略》과 《素問玄機原病式》과 《內外傷辨惑論》과 같은 여러 醫書의 내용들이 縮約되거나 變文되어 인용된 것들이 매우 많아서 朱丹溪의 말처럼 儒者가 아니면 읽을 수 없는 글이 많으므로 역자가 古漢文에 능숙하지 않은 오늘날의 전공자들을 위하여 이런 글들에 일일이 脚注와 標點을 달고 懸吐를 하였으며 가능한 한 逐字飜譯을 하여 醫學의 이치와 함께 漢文의 文理까지도 터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저자

주진형

주진형(朱震亨)은원(元)나라세조(世祖)때인서기1281년음력11월28일에무주(婺州)의금화부(金華府)의의오현(義烏縣)에서출생하였으니자(字)는언수(彦脩)이다.
나중에선생에게배우던사람들이선생을높여서단계옹(丹溪翁)이라불렀기때문에후대의사람들은대체로그를주단계(朱丹溪)또는단계선생(丹溪先生)이라는이름으로일컬었다.
단계선생(丹溪先生)은어려서부터타고난성품이밝고활달하였으며,글을읽을때곧바로대의(大義)를깨우치고,성운(聲韻)과격률(格律)을맞춘부(賦)를지을때초에눈금을그어서그곳까지타는동안에완성하여장로(長老)들이모두훌륭한그릇이라고여겼었는데,얼마지나지않아글공부를버리고협기(俠氣)를숭상하였다.
30세때인서기1310년에모친이비동(脾疼)을앓을때여러의사들이속수무책인것을보고의학(醫學)에뜻을두어서처음에는당시에유행하던《화제국방(和劑局方)》을베끼며공부하다가,얼마지나지않아마침내《소문(素問)》을취(取)하여읽어서34세때인1314년에는어머니의질병이단계(丹溪)의처방(處方)으로편안해질수있는수준이되었다.
36세때인서기1316년에협기(俠氣)를숭상하던것을버리고,동양(東陽)의팔화산(八華山)으로가서주자(朱子)의사전지학(四傳之學)을이어받은허문의공(許文懿公)에게서도학(道學)즉성리학(性理學)을배웠고,이후에향시(鄕試)에두차례응시하였으나모두떨어졌다.
40세때인1320년에허문의공(許文懿公)의권유도있고하여성리학(性理學)을익히는중에도의학(醫學)을버리지않고《소문(素問)》을조석(朝夕)으로깊이연구하며의학(醫學)의스승을찾아사방의각지를두루돌아다녔으나찾지못하다가,45세때인1325년여름에진지암(陳芝岩)의말을통하여나태무(羅太無)라는이름을처음으로듣고서마침내가서사사(師事)하려하였지만,처음에는심한꾸짖음만5∼7차례들으며문전박대를당하였는데,그래도떠나지않고머물러배회하니3개월이지났을때비로소부드러운낯빛으로맞이해주어사사(師事)할수있어서,1년반동안왕래하며나태무(羅太無)가진료하는것을참관하며배웠다.
47세때인1327년에나태무(羅太無)의의학을모두깨우치고향리(鄕里)로돌아오니,고향의여러의사들이단계(丹溪)의말을듣고비웃으며배격하였지만,오직허문의공(許文懿公)만은기뻐하며말하기를,“나의질병이마침내낫겠구나!”라고하였다.
여러의사들이10여년동안치료하지못하던허문의공(許文懿公)의사지말단의질병을단계(丹溪)가터득한방법으로치료하니효험이좋았다.이에여러의사들중에서비웃고배격하던자들이비로소모두충심으로승복하고입으로칭찬하니,수년사이에명성이갑자기드러났다.
67세때인1347년에문하생(門下生)인장익(張翼)등의요청(要請)에따라《격치여론(格致餘論)》과《국방발휘(局方發揮)》를저술하였고,78세때인1358년음력6월24일에별세하였는데,사후에제자인대원례(戴原禮)가선생의유고인《금궤구현(金匱鉤玄)》을출간하였다.
대원례(戴原禮)가명(明)나라초기에황실의어의(御醫)로명성을크게떨쳤기때문에대원례(戴原禮)의스승인단계(丹溪)도이때문에더욱유명해졌다.

목차

앞세우는말_5
凡例_9

【提要】_11
【格致餘論原序】_14
【格致餘論序】_20
格致餘論_24
【飲食色欲箴序】_24
【飲食箴】_24
【色欲箴】_26
【陽有餘隂不足論】_29
【治病必求其本論】_35
【濇脉論】_39
【養老論】_43
【慈幼論】_55
【夏月伏隂在内論】_62
【豆瘡陳氏方論】_69
【痛風論】_78
【痎瘧論】_82
【病邪雖實胃氣傷者勿使攻擊論】_88
【治病先觀形色然後察脉問證論】_94
【大病不守禁忌論】_99
【虚病痰病有似邪祟論】_103
【面鼻得冷則黑論】_109
【胎自墮論】_111
【難産論】_113
【難産胞損淋瀝論】_116
【胎婦轉胞病論】_118
【乳硬論】_121
【受胎論】_125
【人迎氣口論】_129
【春宣論】_131
【醇酒宜冷飲論】_134
【癰疽當分經絡論】_138
【脾約丸論】_143
【鼓脹論】_146
【疝氣論】_154
【秦桂丸論】_157
【惡寒非寒病惡熱非熱病論】_162
【經水或紫或黑論】_167
【石膏論】_169
【脉大必病進論】_171
【生氣通天論病因章句辯】_172
〖太僕章句〗_177
〖新定章句〗_178
【倒倉論】_179
【相火論】188
【左大順男右大順女論】_198
【茹淡論】_202
【吃逆論】_207
【房中補益論】_213
【天氣屬金說】_217
【張子和攻擊法論】_220
朱震亨年表_227
처방색인(處方索引)_230

부록《標點懸吐譯注太極圖說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