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치여론 (표점현토역주 | 양장본 Hardcover)

격치여론 (표점현토역주 | 양장본 Hardcover)

$52.98
Description
● 《格致餘論》은 朱丹溪가 67세일 때인 서기 1347년에 문하생인 張翼 등의 요청에 따라 저술한 책이니, “格致”는 《大學》에서 유래한 “格物致知” 즉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지극히 한다.”라는 말의 줄임말이고, “餘論”은 흔히 “자질구레하고 짧은 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 朱丹溪도 이 책의 自序에서 “古人들은 醫學을 우리 儒者들이 格物致知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 책의 명칭을 《格致餘論》이라 하였다.”라고 말하였으니, 대체로 이런 뜻으로 책의 이름을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 이 책의 《四庫全書》 本의 〈提要〉에 보이는 “學醫는 特其餘事라.” 즉 “醫學을 익힌 것은 다만 그 餘暇 때의 일일 뿐이었다.”라는 말에 의거하면 “格致餘論”을 “格物致知의 여가 시간에 論한 글”이라는 뜻으로 본 것이니 또한 뜻이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 朱丹溪는 30세에 모친의 脾疼을 여러 의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醫學에 뜻을 두어서 마침내 《素問》 등의 의서를 取하여 읽기 시작하여 34세 경에는 모친의 질병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36세 때에 東陽의 八華山으로 가서 朱子의 四傳之學을 이어받은 許文懿公에게서 道學 즉 性理學을 배웠으니, 이때까지만 해도 朱丹溪에게 醫學이라는 것은 儒者가 하는 格物致知의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본서의 내용 중에는 《周易》과 《尙書》와 《禮記》와 《論語》와 같은 여러 儒家經典의 글들과 《素問》과 《金匱要略》과 《素問玄機原病式》과 《內外傷辨惑論》과 같은 여러 醫書의 내용들이 縮約되거나 變文되어 인용된 것들이 매우 많아서 朱丹溪의 말처럼 儒者가 아니면 읽을 수 없는 글이 많으므로 역자가 古漢文에 능숙하지 않은 오늘날의 전공자들을 위하여 이런 글들에 일일이 脚注와 標點을 달고 懸吐를 하였으며 가능한 한 逐字飜譯을 하여 醫學의 이치와 함께 漢文의 文理까지도 터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저자

주진형

주진형(朱震亨)은 원(元)나라 세조(世祖) 때인 서기 1281년 음력 11월 28일에 무주(婺州)의 금화부(金華府)의 의오현(義烏縣)에서 출생하였으니 자(字)는 언수(彦脩)이다.
나중에 선생에게 배우던 사람들이 선생을 높여서 단계옹(丹溪翁)이라 불렀기 때문에 후대의 사람들은 대체로 그를 주단계(朱丹溪) 또는 단계선생(丹溪先生)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었다.
단계선생(丹溪先生)은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밝고 활달하였으며, 글을 읽을 때 곧바로 대의(大義)를 깨우치고, 성운(聲韻)과 격률(格律)을 맞춘 부(賦)를 지을 때 초에 눈금을 그어서 그곳까지 타는 동안에 완성하여 장로(長老)들이 모두 훌륭한 그릇이라고 여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글공부를 버리고 협기(俠氣)를 숭상하였다.
30세 때인 서기 1310년에 모친이 비동(脾疼)을 앓을 때 여러 의사들이 속수무책인 것을 보고 의학(醫學)에 뜻을 두어서 처음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화제국방(和劑局方)》을 베끼며 공부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소문(素問)》을 취(取)하여 읽어서 34세 때인 1314년에는 어머니의 질병이 단계(丹溪)의 처방(處方)으로 편안해질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36세 때인 서기 1316년에 협기(俠氣)를 숭상하던 것을 버리고, 동양(東陽)의 팔화산(八華山)으로 가서 주자(朱子)의 사전지학(四傳之學)을 이어받은 허문의공(許文懿公)에게서 도학(道學) 즉 성리학(性理學)을 배웠고, 이후에 향시(鄕試)에 두 차례 응시하였으나 모두 떨어졌다.
40세 때인 1320년에 허문의공(許文懿公)의 권유도 있고 하여 성리학(性理學)을 익히는 중에도 의학(醫學)을 버리지 않고 《소문(素問)》을 조석(朝夕)으로 깊이 연구하며 의학(醫學)의 스승을 찾아 사방의 각지를 두루 돌아다녔으나 찾지 못하다가, 45세 때인 1325년 여름에 진지암(陳芝岩)의 말을 통하여 나태무(羅太無)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듣고서 마침내 가서 사사(師事)하려 하였지만, 처음에는 심한 꾸짖음만 5∼7차례 들으며 문전박대를 당하였는데, 그래도 떠나지 않고 머물러 배회하니 3개월이 지났을 때 비로소 부드러운 낯빛으로 맞이해주어 사사(師事)할 수 있어서, 1년 반 동안 왕래하며 나태무(羅太無)가 진료하는 것을 참관하며 배웠다.
47세 때인 1327년에 나태무(羅太無)의 의학을 모두 깨우치고 향리(鄕里)로 돌아오니, 고향의 여러 의사들이 단계(丹溪)의 말을 듣고 비웃으며 배격하였지만, 오직 허문의공(許文懿公)만은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의 질병이 마침내 낫겠구나!”라고 하였다.
여러 의사들이 10여 년 동안 치료하지 못하던 허문의공(許文懿公)의 사지말단의 질병을 단계(丹溪)가 터득한 방법으로 치료하니 효험이 좋았다. 이에 여러 의사들 중에서 비웃고 배격하던 자들이 비로소 모두 충심으로 승복하고 입으로 칭찬하니, 수년 사이에 명성이 갑자기 드러났다.
67세 때인 1347년에 문하생(門下生)인 장익(張翼) 등의 요청(要請)에 따라 《격치여론(格致餘論)》과 《국방발휘(局方發揮)》를 저술하였고, 78세 때인 1358년 음력 6월 24일에 별세하였는데, 사후에 제자인 대원례(戴原禮)가 선생의 유고인 《금궤구현(金匱鉤玄)》을 출간하였다.
대원례(戴原禮)가 명(明)나라 초기에 황실의 어의(御醫)로 명성을 크게 떨쳤기 때문에 대원례(戴原禮)의 스승인 단계(丹溪)도 이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목차

앞세우는 말 _5
凡例 _9

【提要】 _11
【格致餘論原序】 _14
【格致餘論序】 _20
格致餘論 _24
【飲食色欲箴序】 _24
【飲食箴】 _24
【色欲箴】 _26
【陽有餘隂不足論】 _29
【治病必求其本論】 _35
【濇脉論】 _39
【養老論】 _43
【慈幼論】 _55
【夏月伏隂在内論】 _62
【豆瘡陳氏方論】 _69
【痛風論】 _78
【痎瘧論】 _82
【病邪雖實胃氣傷者勿使攻擊論】 _88
【治病先觀形色然後察脉問證論】 _94
【大病不守禁忌論】 _99
【虚病痰病有似邪祟論】 _103
【面鼻得冷則黑論】 _109
【胎自墮論】 _111
【難産論】 _113
【難産胞損淋瀝論】 _116
【胎婦轉胞病論】 _118
【乳硬論】 _121
【受胎論】 _125
【人迎氣口論】 _129
【春宣論】 _131
【醇酒宜冷飲論】 _134
【癰疽當分經絡論】 _138
【脾約丸論】 _143
【鼓脹論】 _146
【疝氣論】 _154
【秦桂丸論】 _157
【惡寒非寒病惡熱非熱病論】 _162
【經水或紫或黑論】 _167
【石膏論】 _169
【脉大必病進論】 _171
【生氣通天論病因章句辯】 _172
〖太僕章句〗 _177
〖新定章句〗 _178
【倒倉論】 _179
【相火論】 188
【左大順男右大順女論】 _198
【茹淡論】 _202
【吃逆論】 _207
【房中補益論】 _213
【天氣屬金說】 _217
【張子和攻擊法論】 _220
朱震亨年表 _227
처방색인(處方索引) _230

부록 《標點懸吐譯注 太極圖說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