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25의 학도병, 그리고 과학자 송창원입니다

나는 6.25의 학도병, 그리고 과학자 송창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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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또다시 과학자의 길을 택할 것이다”

세계가 인정한 방사선생물학자 송창원
암 치료 정복에 매진해온 90년 평생의 회고록
한국인 최초 〈네이처Nature〉 지 논문 게재, 미국국립보건원 Merit Award 수상, 국제온열학회 스가하라상 수상, 북미온열학회 유진 로빈슨상 수상을 비롯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 고문(11년간)을 역임하고 대한민국 호국영웅기장을 수여받은 송창원 박사. 60여 년간 암의 방사선 치료 효과 증진을 위한 방사선생물학 연구에 매진했고, 최근에 주목받는 방사선 수술 치료 효과의 과학적 기전을 규명하는 등, 이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방사선생물학자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18세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6.25에 참전했고, 과학자의 꿈을 키워 국비 원자력 유학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 이후 세계적인 학자로 자리하기까지의 여정을 돌아본다. 이 책은 목숨을 걸고 조국을 수호했고 일생을 과학 연구에 바친 과학자 송창원이 90 평생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이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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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송창원

1932년강원도춘천에서태어났다.6.25전쟁이발발하자학도병으로참전,18세에국군소위로임관돼보병부대소대장으로전투에참여했다.최전선에서사선을넘나들며공산군과싸우다전상을당해의병제대한뒤,부상의후유증을극복하며과학자를향한꿈을키운다.남다른학구열로독학한끝에서울대학교문리과대학에입학ㆍ졸업하고,고려대학교대학원을졸업한후제1호대한민국국비원자력유학생으로선발된다.
미국아이오와대학교에유학,방사선생물학전공으로박사학위를획득하였다.아인슈타인메디컬센터에서연구를시작하여지금에이르기까지60여년간암의방사선치료효과증진을위한방사선생물학연구에매진했고,최근주목받는방사선수술치료효과의과학적기전을규명했다.1968년〈네이처Nature〉지에한국인최초로논문이게재되는쾌거를이루었을뿐만아니라평생동안세계적의학전문지에300여편에가까운논문을발표하는등,이분야에서지대한업적을쌓은세계적인방사선생물학자다.또한그동안20여명의한국의방사선전문의들에게유학의기회를제공하여국내방사선치료의정립에도크게기여했다.
미국국립보건원최고의영예인MeritAward,북미온열학회로빈슨상,국제온열학회스기하라상등을수상했고,연세대학교,서울대학교,일본간사이의과대학,대만양명대학교초빙교수를지낸송창원은90을바라보는나이에도여전히연구에몰두하고있다.

송창원박사주요약력
1950년학도지원병으로6·25참전
1957년서울대학교문리과대학화학과졸업
1959년고려대학교대학원화학과졸업(석사)
1959년국비원자력유학장학생으로도미유학
1964년아이오와대학이학박사(방사선생물학)
1969년버지니아의과대학방사선과조교수
1970년미네소타의과대학방사선치료과조교수
1973년연세대학교의과대학초빙교수
1987년국제원자력기구IAEA고문(11년간)
1988년서울대학교자연대학초빙교수
1988년미국국립보건원(NIH)MeritAward
1991년중국시안암센터방사선치료과명예교수
1994년북미온열학회회장
1995년일본간사이의과대학초빙교수
2000년북미온열학회유진로빈슨상수상
2001년미네소타대학교의료원장우수교수상
2005년대만양명대학교초빙교수
2006년미네소타대학교은퇴,명예교수임명
2008년국제온열학회스가하라상수상
2014년한국원자력의학원고문
2016년대한민국호국영웅기장수여받음
2019년미주서울대학교총장학술상수상

목차

추천사_유병팔,김귀언,김재호,송진원,김태환

제1부춘천의아이
1장출생과성장:출생/가족이야기/유년기
2장초등학교시절:춘천소학교입학/태평양전쟁과전시총동원령/창씨개명/일본인교사들/그리운추억
3장중학교시절:입학과근로봉사/그날의수제비맛/8·15광복/미군의진주,일본의퇴거/샘밭의추억/해방후의혼란
춘천중학교생활/독서의즐거움/과학과의만남/파란만장했던과학전람회관람여행

제2부나는대한민국의육군소위입니다
4장6·25전쟁발발:전쟁의파고/6·25전쟁발발,그리고피난/학도병으로38선을넘다/탈출/차이콥스키의비창교향곡/가족과의재회,다시이별
5장육군종합학교:육군종합학교를향하여/대기훈련소/육군종합학교25기생/18세육군소위
6장전선의포화속에서:또다시전선으로/대전차부대소대장/현리전투/보병부대소대장/우리소대장은예수쟁이/포화에쓰러지다
7장부산으로후송:제15육군병원/육군원호대/대학진학의꿈/제대/국민학교교사,그리고대학입시준비

제3부과학도의꿈,그리고시작
8장대학과대학원시절:서울대학교화학과에입학/대학원석사논문/원자력과의인연/국비원자력유학장학생선발시험합격/결혼
9장미국으로떠나다:아이오와를향해/우물안개구리/방사선생물학연구소/갑상선연구/아내와의재회/아내의석사논문
10장아이오와시티의추억:유학생생활/도둑맞은음반/첫딸페기가태어나다/감격의졸업식/아이오와를떠나며

제4부과학자송창원
11장필라델피아의아인슈타인메디컬센터:방사선이피부혈관에미치는영향연구/피부줄기세포의DNA합성연구/필라델피아에서의추억
12장리치먼드의MCV:버지니아의과대학으로옮기다/암의발현과치료/방사선치료및방사선생물학/암의혈관연구/리치먼드의추억
13장미네소타대학교:미네소타대학으로/암속의환경연구/백혈병의전신방사선치료연구/온열치료연구/송창원,머리가돌았나/메트포르민연구/새로운방사선치료법의기전연구

제5부송창원의사람들
14장송창원연구실:인종의균형을맞추어라/한국의방사선치료를세계무대로/스가하라교수와일본인친구들/나의연구비
15장미네소타와나:미네소타의한인사회/미네소타의벗들/우리아이들이야기

회고록을마치며_후배과학자들에게/나의꿈,나의연구인생

출판사 서평

◎5년간5개의정부아래서살아야했던,기구한운명의소년이야기

사람들은어린시절부터어떠한누군가가되겠노라고꿈을꾸지만,그꿈을이룬다는것은쉽지않다.꿈은변하는경우가많고,설사꿈이여전하더라도온갖사정으로포기하고꿈과상관없는직업을선택하여살아가는사람들도많다.저자송창원은중학교때부터과학자가되겠다는꿈을꾸기시작하여우여곡절끝에결국그꿈을이루고과학자로서의일생을살았다.그는현재90세나이에도여전히연구실에서좋아하는연구를하며하루를보낸다.

◎18세육군소위
중학교6학년때6·25전쟁이발발했다.학도병으로자원입대하여총알이빗발치고포탄이작렬하는최전선에뛰어들어큰부상을당했지만다행히목숨은건졌다.언제완쾌될지도모르고평생장애를안고살수도있는처지가되었지만,실의에빠져넋놓고허송세월하지않도록지탱해준것은과학자를향한꿈이었다.그꿈을이루기위한첫걸음으로그는대학입시를독학으로준비한다.상이병이되어집으로돌아온후,원주교외의치악산기슭,작은촌마을피난민국민학교에서교편을잡았다.
적과생사를다투던전우들생각이간절했지만고지에서총을들고적과싸우는대신,산마을에서책을들고대학입시라는새로운도전을시작한다.밤마다학교교무실겸숙직실에서밤을밝히며입시준비에매달렸다.중학교6년중앞의1년을태평양전쟁에,또마지막1년을6·25전쟁에빼앗겼고또전쟁터에서2년의세월을지냈음에도,그는움츠러들지않았다.그렇게촌마을교사로일하면서5개월간촌음을아껴가며공부에전념한끝에,기적처럼서울대학교문리대화학과에합격한다.

◎과학도의꿈,그리고시작
그렇게들어간대학이었지만중고등학교6년간을제대로공부하고들어온,2살어린동급생들을따라가기란만만치않았다.그럼에도피나는노력으로학업을마친그는,학문의길을가기위해대학원에진학했다.낮에는서울대와고려대두학교에서조교로일하며학부생들과의예과학생들의실험을지도했고,밤에는야간고등학교의시간강사로근무했다.밤이돼서야녹초가된몸을이끌고실험실에돌아와실험을시작할수있었다.6·25전쟁의여파로당시대학들의연구실은황무지상태였다.연구에필요한시약이나실험기구거의전부를주머닛돈으로사야했다.화학약품이나실험기구를판매하는상점들은구멍가게수준이었고,방문상인에게필요한약품을부탁하면그것을받기까지며칠에서몇달이걸렸다.유리실험기구는직접만들거나유리가공공장을찾아가주문해야했다.
그런척박한환경에서도석사학위를위한연구는가슴을뛰게하였다.세포생물학은세포안을들여다보며그안에서벌어지는현상을연구한다.세포는한없이작지만그안에는끝을알수없는또다른우주가존재한다.생물학자들은분자크기의탐사선을세포속으로들여보내고그것이보내오는시그널을받아서분석하는,그속을항해하고그안의것들을만져보는사람들이다.
송창원은성공적으로석사학위연구과제를수행해내고,비로소과학자로서의한걸음을내딛으면서더큰꿈을품기시작했다.그러한그에게길이열린다.전후원자력연구소를설립하고그에걸맞은연구인력을양성하려는목표로시행된제1차국비원자력유학장학생선발시험에합격한것.그는미국아이오와대학으로유학하여방사선생물학을공부한다.그런데1년으로예정된학업은한국의정권이바뀌면서수정이불가피해졌고,결국귀국이무산돼미국에남게되었다.그것이이후의삶을암치료를위한방사선생물학을연구하고가르치는데보내게된시작이다.

◎과학자송창원
미국에서의첫번째직장아인슈타인메디컬센터에서연구를시작했을때,그는백인들을따라가려면아니그들보다우수한연구자가되려면몇배의노력이필요하다는것을절감했다.뜻이있고,노력하면길이열린다는성경말씀을믿었고그것이사실이라는것을삶으로경험했다.그가선택한방법은목적지를향해남들이걸어갈때자신은뛰어가는것이었다.그렇게지난60년간,매일12시간이상연구에몰두했고하루24시간은늘모자랐다.그러한노력은헛되지않아서,1968년그는한국인최초로〈네이처〉에연구논문이게재되는쾌거를이룬다.

송창원박사는암치료법연구에일생을걸고몰두해왔다.어떻게하면암의방사선치료효과를높일수있는지를연구하는방사선생물학에전념했다.
한국정부의장학금으로미국유학을온원자력유학생1호로서,그빚을갚는다는마음으로20명이넘는한국의방사선종양학전문의와대학원생들에게유학기회를제공해왔다.그의실험실에와서배우고함께연구했던인재들은이제곳곳에서한국의방사선치료학계를주도해나가고있다.조국대한민국에방사선치료가정착하는데미력이나마도움이된것을,그는다행스럽게여긴다.
그의끊임없는노력,많은조력자들,그리고약간의행운덕분에이루어진연구결과는300여편의논문으로발표되었다.학계는그결과들에관심을두기시작했고그가치를인정해주었다.학회회장으로선출했고,수많은상장과감사장을주었고,많은학술지의편집위원으로초대했고,미국과해외학회및연구소와학교등에서연사로초청했다.과학도로서의그의업적은한국과미국은물론,세계방사선종양학회에도오래도록기억될만한것이다.
송창원박사는이미10년전에미네소타대학교교수직에서은퇴했지만아직도실질적으로는일을놓지않은현역이다.코로나시국인요즘에는대면강연대신온라인상으로학회초청강연을하고있다.

언젠가는나를강연자로초청하는일이점차줄어들것이고,학회에서나를볼수없게될것이고,또내이름ChangWSong이들어간새논문을만날수없게될것이다.그렇게나는조금씩잊혀갈것이다.과학자로살아오는동안,여러가지시련과좌절도많았다.그러나만일이세상에다시태어난다면나는그때도또다시과학자의길을택할것이다.-본문347쪽,〈회고록을마치며〉중에서

★★★★★

송박사의일생은많은사람에게귀감이되기에부족함이없다.60년간의체험을바탕으로후배과학도에게전하는글은과학도나과학자가되려는꿈을품은젊은이들에게꼭들려주고싶은,참으로주옥같은조언이다.
-이학박사김재호_(전)헨리포드종합병원방사선치료과과장

송교수님이이룬모든학문적업적은세계적으로인정받은눈부신쾌거이기에개인에게도영광이겠지만,국가로서도학문적수준을높이면서긍지와명예를드높이는데크게일조한귀중한자산이다.무엇보다우러러볼부분은대한민국의방사선종양학발전을위해헌신적노력을아끼지않으셨다는점이다.
-의학박사김귀언_연세대학교의과대학명예교수,(전)대한방사선종양학회이사장ㆍ회장,(전)대한두경부종양학회회장,(전)연세암병원원장

6·25전쟁발발60주년인2010년에송창원박사는국가로부터호국영웅장을수여받았다.송창원박사는젊은날뜨거운피를아낌없이조국에바치고자참전하여,공산침략군으로부터조국을수호하는데앞장서다전상을입었고,또조국의방사선의학발전에크게기여한애국자다.
-예비역육군준장송진원_(전)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부회장

송박사님은지난60년간끊임없이방사선암치료의연구에몰두했고,1968년〈네이처〉지에한국인최초로논문을게재했으며300편에가까운논문을발표하는등엄청난업적을쌓은세계적인방사선생물학자다.그는90세에이른지금도연구에몰두하고있다.-성계용_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