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모든일은사람이이루어내지만,
조직없이는그어떤것도지속되지않는다.
_장모네
-연구소라는‘사회적장치’의탄생
국가의약점을진단하고미래를설계하기위해등장한제도적발명품
연구소는과학자의실험실을확장한조직이아니다.국가가자신의약점에직면했을때-산업의표준이필요할때,모방의한계에닿았을때,기반을다시세워야할때-유사한형태들로등장한‘사회적장치’였다.
19세기말독일은정밀측정과기술표준의부재가산업경쟁력의약점이되자제국물리기술연구소를만들었다.이후막스플랑크협회로이어지는기초과학체제는과학을국가전략의장기기능으로끌어올린제도적실험이었다.일본도산업화는이뤘지만서구모방을벗어나지못했던1910년대,다카미네조키치가국민과학연구소를제안하며제동이걸린발전경로를다시그리려했다.그문제의식은학계·재계·정계를묶어냈고,결국이화학연구소라는형태로구현되었다.추격전략의끝에서일본은기초과학을‘자기힘으로서기위한’돌파구로삼으려했던것이다.
한국의경우엔조건이또달랐다.해방직후의단전사태,기술과원자재의해외의존,냉전과오일쇼크로인한에너지공급의불안정은곧국가생존의문제였다.법과조직을서둘러만들고해외의지식과제도를도입하며연구소는한국에서산업기반·전력안보·국가재건을떠받치는중요한인프라중하나가되었다.1959년한국원자력연구소의설립은그응축의결과였고,이후국가R&D체제의출발점이되었다.
독일의막스플랑크협회,일본의이화학연구소,미국의국립연구소체계가시대를건너며택한경로는결국같은질문으로이어진다.
“국가는언제연구소를만들고,왜그제도에미래를걸었는가?”
이는달리말하면,‘위기와필요가교차하는자리에서연구소는어떻게발명되었는가?그리고그선택은과학,산업,국가전략을어떻게바꿔놓았는가?’라고할수있다.이렇게연구소의기원은언제나과학자체보다더넓은배경에서시작된다.연구소의탄생에는언제나‘무엇을연구할것인가’라는명제와함께‘누가이끌것인가’라는물음이함께했다.그리고국가는바로그자리에서미래를설계했다.오늘의한국이같은질문앞에서있다는사실도,이책이보여주는반복된장면중하나다.
- 해외모델을해석한현장경험으로,한국연구소의새로운도약을묻다
연구소의탄생·성장·전략을‘안에서본사람’이풀어낸최초의서사
연구소를이해하는일은실험장비목록이나연구성과리스트를보는것그이상이다.교육,산업,정치적선택과인재의흐름은물론국가의비전까지얽힌복합적장치를읽어야한다.《연구소의승리》는이장치가어떻게생겨났고,오늘날왜더중요해졌는지를세계의역사와기술경쟁의흐름속에서구체적으로보여준다.
저자는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15년이상연구소기획과해외제도이식을담당해온실무자다.연구소의논리,예산,정치,인재의이동을가장가까운자리에서본경험이세계연구소의역사를하나의흐름으로꿰는힘이되었다.사회학적시야를바탕으로과학·정책·제도·사회를한체계안에서바라보는저자는세계연구소의역사를입체적으로엮어낸다.막스플랑크협회,이화학연구소,미국국립연구소의탄생과전환,그리고그뒤에놓인시대적요구가하나의거대한흐름으로연결된다.그는연구소를단순한기관이아닌‘국가의문제해결능력’으로본다.이관점덕분에,왜지금한국에서연구소에대한이해가전략적자산인지가명확해진다.
현장의디테일을놓치지않으면서도흐름이매끄럽고명확한글쓰기는저자의큰강점이다.꾸준한글쓰기훈련에서나온균형잡힌문장덕분에,독자는지난100여년에걸친변화-근대국가연구소의탄생에서국제협력이중심이된오늘에이르기까지-를자연스럽고흥미롭게따라갈수있다.
연구소가무엇인지궁금한일반독자에게는가장명료한입문서가,과학기술정책을고민하는독자에게는미래전략을상상할수있는관점을제공하는책이될것이다.
-연구소를둘러싼이해관계의정치학
통일독일의막스플랑크모델에서드러난구조,그리고오늘의한국이반복하는장면
연구소에는언제나과학적이상과정치적현실이맞물린다.이책은이런충돌과조율의메커니즘을가장선명하게드러낸사례로독일재통일기의막스플랑크협회를다룬다.
1990년,서독의세계적연구체제와연구기능이약한동독시스템을하나로모으는작업은단순한통합이아니었다.막스플랑크협회는‘연구의자유’와‘조직의자율성’을기준으로삼아서독모델을전국표준으로삼았다.이를위해동독대학에일단연구그룹을심어연구기능을복원한뒤,1990년대에걸쳐동독지역에18개의연구소를설립했다.
문제는비용이었다.정부지원은턱없이부족했고,협회는자체예산을마련하기위해기존연구소의구조조정과직위감축까지단행했다.외부에서영입된회장후베르트마르클은강한개혁드라이브로내부반발을감수하면서까지조직전체를재편했다.이과정은결국막스플랑크협회재창립으로평가될만큼연구체제를뒤집는일이되었다.그리고그긴장위에서얻어진성과는과학을넘어사회통합으로확장되었다.드레스덴·라이프치히·포츠담등동독도시는연구소를중심으로경제·산업·대학이재생되며통일독일의새로운혁신거점으로자리잡았다.연구소는과학의기반이면서동시에지역균형발전의핵심인프라임을입증한셈이다.
그런데이구조는독일만의이야기가아니다.오늘의한국에서도이풍경은낯설지않다.재생에너지발전잠재력이큰전남과광주는AI혁신연구소와에너지거점구축을위해적극적으로경쟁중이다.나주는켄텍을배경으로에너지연구소와핵융합실증로유치를어젠다로삼고있다.전남은물론전북또한경상권대비낙후된경제적조건을뒤집을전략자원으로‘국가연구소’를바라보고있다.대전은전통의연구단지로서기존생태계와연계된신규연구기관유치를추진하고,고리·월성·경주일대는핵폐기물문제의정치적보상으로관련연구소를요구한다.수도권역시연구인프라확대를통해경쟁력을유지하려하고,강원도는“아무것도없기때문에하나는받아야한다”는지역정치의논리속에서연구소유치를개발의출발점으로삼는다.
이처럼한국각지역은자신들의산업자원,정치적이해,지역정체성을기반으로연구소유치를해석한다.전남의재생에너지,경북의원자력,포항의연구인프라,대전의연구단지,서울의수도권프리미엄,강원의‘빈땅’논리가서로충돌하면서,연구소는과학기관이기전에정치적선택이자국가균형발전의수단이된다.
독일재통일기의압력-재정부족,지역의요구,국가전략,조직자율성-은오늘날한국에서도연구소유치경쟁으로반복되어나타나고있다.지역의자원과정치적이해가연구소의의미를바꾸는순간,연구소는과학기관을넘어‘지역의미래설계도’가될수있다.연구소는언제나구조적긴장을품고움직인다.그긴장을피할수는없다.하지만국가가과학을어디에,어떻게배치할지에대해현명한선택을한다면,팽팽한긴장은미래의성장동력으로거듭날수있을것이다.
-연구소가만든산업과혁신의토대
KIST가보여준‘연구소형산업화’의작동방식
한국산업화의방향은1966년KIST가설립되면서새롭게그려졌다.당시한국은소규모경공업과몇몇원자재수출에의존하던가난한농업국가였다.인력·기술·자본모두부족했고,수출1·2위를가발과섬유가차지하던시절이었다.이런조건에서“나라를먹여살릴기술”을만들겠다는발상자체가새로운패러다임이었다.
KIST는산업화를위한연구소라는목표를분명히선언했다.해외원천기술을들여와,이를국내기업의생산환경에맞게개량하여산업에곧바로투입하는구조였다.벨연구소의‘자유로운기초연구’대신,정부·기업의과제를받아수행하는바텔기념연구소의계약연구방식을택한것도이런이유였다.연구주제는산업계수요를기준으로선정되었고,금속·화학·전자·기계·식품등당시로서는산업의기초체력을구성하는분야가핵심축이되었다.
결정적이었던건인재와자율성이었다.미국과유럽에서활동하던한국인과학자들이대거돌아왔고,정부는KIST에연구자율권과함께과감한재정적뒷받침을제공했다.회계감사나부처승인에서자유로운운영체계,당시기준으로파격적이던급여와연구환경은국내에존재하지않던새로운연구생태계를만들었다.이체제는이후수십년간한국과학기술정책의기본문법이되었다.
결과는빠르게산업적성과로이어졌다.KIST는자기테이프,프레온가스,동복강선등당시수입에의존하던기술의국산화를이끌었고,수많은기업이이를기반으로성장했다.더크게보면포항종합제철,조선·전자·자동차산업의초기설계까지KIST가관여했다.이들금속공학자가참여한제철소건설계획은포스코의시발점이되었고,철강연계산업이자리잡으면서동시에중화학공업의기반이구축되었다.연구소가산업을만들고,산업이다시연구소를확장시키는순환구조가형성된것이다.
이추격형R&D모델은한국의산업화전략을하나의체계로묶는데결정적역할을했다.기술을확보하고,이를적용하고개선하는사이클을국가단위에서짧은주기로돌릴수있게된것이다.이후정부출연연구소와대덕특구가잇달아등장한것도이구조의연장선에있다고할수있다.
KIST가보여주는것은단순한기술개발이아니라국가가연구소를통해산업국가의골격을다시그릴수있다는사실이었다.독일이연구소로지역을재편했다면,한국은연구소로국가전략의기반을설계한것이다.
-연구소라는‘세계적장치’의부상
초거대과학을떠받치는국제협력의시대
오늘의연구소는더이상국가단위의실험실이아니다.세계적위험과과제를다루는거대한운영장치다.팬데믹직후백신이이례적으로빠르게개발될수있었던것은미국·유럽·아시아의연구소와기업이데이터를공유하고기술을교차검증하며임상과생산을국제적으로분업했기때문에가능했다.
우주탐사와소행성충돌대비도마찬가지다.미국항공우주국(NASA),유럽우주청(ESA),일본항공우주탐사청(JAXA)등각국연구소는관측능력과탐사선을별도의체계로묶어공동운영해단일국가가해결할수없는우주위험을통합적으로관리한다.입자가속기와중력파관측기같은초거대장치도이미수십개국의자금·기술·인력이결합해야유지된다.CERN의LHC는그대표적사례다.
기후변화연구에서는이흐름이더욱뚜렷하다.위성관측,해양·대기모니터링,장기모델링은세계각지연구소의데이터가네트워크에서통합될때비로소의미를갖는다.연구소는지식을생산하는기관을넘어,지구규모문제를다루는운영플랫폼이되었다.
이변화가알려주는건분명하다.연구소는이제국가단위의실험실이아니라세계전략의핵심플랫폼이라는점이다.국제과학협력은장비와돈의문제만이아니다.오히려조직과문화,리더십과전문가의이동이뒤섞여만들어내는‘사람의네트워크’가본질이다.바로그지점에서연구소의성격이뚜렷이달라지고있는것이다.
-오늘우리가다시연구소를이야기해야하는이유
불확실한투자,정치적논란을넘어,미래는연구소에서먼저드러난다
연구소는언제나쉽지않은선택이었다.돈은많이들고,결과는불확실하며,정치적논란은피할수없다.1970년대미국에서국립과학재단(NSF)이‘사람은왜사랑에빠지는가’같은기초연구로조롱받았던것처럼,연구소는지금도“당장무슨소용이있는가”라는질문에끊임없이시달린다.하지만시간이지나면맥락이뒤집힌다.우스꽝스럽다던연구들은심리학과뇌과학의핵심지식이되었고,NSF가연구자용전용망으로깔았던NSFNET은오늘의인터넷으로이어졌다.효용이보이지않는지점에서이루어진느린투자가결국문명의기반이되었다.
한국에서도이문제는첨예하다.지역간경쟁,정치적이해,산업적유불리가얽혀연구소유치는늘갈등의한가운데선다.“과연이투자로무엇을얻을수있나?”라는의심은자연스럽다.그러나역사가보여주는건다른사실이다.연구소는한번제대로세워지면기술의뿌리,산업의원천,미래인프라의출발점이된다.연구소가만든지식은10년뒤를바꾸고,연구소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