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우리궁궐지킴이와 문화재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저자가 어린이들을 위해 쓴 궁궐 탐방 시리즈 세 번째 책으로, 근대 역사의 현장을 담은 덕수궁과 경희궁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현재 덕수궁이 있는 서울 정동이라는 지명은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이 있던 곳, 정릉동에서 유래되었다.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선조는 월산대군의 사저를 행궁으로 삼아 임시 거처로 사용하였다. 이후 선조에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창덕궁을 다시 지어 이어한 후 선조가 머물렀던 정릉동 행궁에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창덕궁은 법궁이 되었고, 경운궁은 별궁이 되었다. 광해군은 재위 기간 동안 궁궐 건설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중 경덕궁(경희궁)의 건설은 인조와 얽혀 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어 결국 광해군은 경희궁을 사용해보지 못하고 인조와 후대 왕들이 사랑하는 궁궐이 되었다.
덕수궁이 역사에 다시 등장하는 시기는 고종 때이다. 을미사변으로 인해 아관파천한 고종이 덕수궁을 고쳐 사용하면서 일본에 의해 꺼져가는 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한 국난 극복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후 덕수궁과 경희궁은 철저히 훼손되기 시작하였고, 이 책은 뼈아픈 근대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현재 덕수궁이 있는 서울 정동이라는 지명은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이 있던 곳, 정릉동에서 유래되었다.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선조는 월산대군의 사저를 행궁으로 삼아 임시 거처로 사용하였다. 이후 선조에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창덕궁을 다시 지어 이어한 후 선조가 머물렀던 정릉동 행궁에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창덕궁은 법궁이 되었고, 경운궁은 별궁이 되었다. 광해군은 재위 기간 동안 궁궐 건설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중 경덕궁(경희궁)의 건설은 인조와 얽혀 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어 결국 광해군은 경희궁을 사용해보지 못하고 인조와 후대 왕들이 사랑하는 궁궐이 되었다.
덕수궁이 역사에 다시 등장하는 시기는 고종 때이다. 을미사변으로 인해 아관파천한 고종이 덕수궁을 고쳐 사용하면서 일본에 의해 꺼져가는 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한 국난 극복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후 덕수궁과 경희궁은 철저히 훼손되기 시작하였고, 이 책은 뼈아픈 근대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덕수궁과 경희궁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