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기피대상인사회에서교육의설자리는어디인가?
아무리노동을‘근로’라는이름으로바꾸고,교육이‘입시’로대체된사회에살고있다고해도,우리삶의근간이‘노동’임을,그노동을더든든하게,풍성하게,가치있게만들어주는것이‘교육’임을부정하기는힘들다.하지만현실은다른속살로채워져있다.
한국사회에서‘노동’은여전히기피해야할‘무엇’이다.…어떤국회의원에게학교급식노동자는“밥이나하는동네아줌마”로,또어떤교육공무원에게노동하는국민은“개돼지”로불린다.최근촛불집회와대통령탄핵이후탄생한정부의고용노동부장관이‘근로자’라는용어대신‘노동자’로부르겠다고해서기사가되기도했지만,아직까지5월1일은‘일만하는’사람인‘근로자’의날이고,노동에대한기초적인것을규정한법의정식명칭은‘근로’기준법이다.(7쪽)
우스개급훈이라고는해도‘공부못하면공돌이공순이된다’‘10분더공부하면배우자가바뀐다’‘대학가서미팅할래,공장가서미싱할래’등의말은노동과교육에대한씁쓸한우리현실을보여준다.그래서한국사회에서교육은‘노동자가되지않기위한교육’이며‘노동을다루지않는교육’이다.청소년들의50%는교사,연예인,전문직이되고싶어한다.반면,육체노동은‘몸빵’노동이라부르며수치스럽게생각한다.(8쪽)
사건,사고가터지면늘‘교육이문제’라고하고,그답은스웨덴이나덴마크같은북유럽복지국가에서찾지만,정작마지막에는돈타령으로끝나고만다.
스웨덴같은선진국에서실시하는유급교육휴가는과연한국에서는꿈같은이야기일까?노동자의노동에대한전문성과이직을위한준비교육을국가와사업장이책임져야한다고우리는생각해본적이나있을까?이렇듯우리사회에서노동과교육은서로를성장시키기보다는짐을지운다.(9-10쪽)
노동과학습이만난자리,노동야학
도서출판따비의신간《노동야학,해방의밤을꿈꾸다―노동과학습은어떻게만나는가》는실제노동야학의현장에서더나은노동과교육을고민하던한실천가,연구자의여정에서나온결과물이다.
노동을생각해볼수있게하는교육,더나은자신의노동을위한학습,노동자의권리와노동중심의사회는꿈꿀수없는것일까?그가능성을엿보기위해노동과학습이만난역사적실천들을찾아보았고,1970년대이후등장한‘노동야학’을만났다.(10쪽)
물론한국야학夜學은“1890년의세천야학교,광흥학교를야학의시초로보며,1907년마산노동야학에서처음으로‘노동야학’의명칭을찾을수있”(25쪽)는,“130년이넘는긴역사와다양한내용을가진,한국사회에서가장오래된대중교육기관이며민중을위한교육형태”(24쪽)이다.일제강점기아래“민중에대한계몽을독립운동이나사회주의운동의밑거름으로삼고자”(25~26쪽)시작한지식인중심의활동이었다.이러한야학이본격적으로노동야학으로전국에들불처럼번진것은1980년대였고,그이전의불씨는전태일열사의분신과노동운동의태동이었다.
1970년대후반부터1980년대까지전국적으로적어도100여개가넘는노동야학이생겨났고,체제보완적인검정고시야학도그영향을받아교육내용에변화를주거나노동야학을접목한중간형태인생활야학으로탈바꿈하기도했다.(30쪽)
이책은노동야학을좀더두텁게바라보기위해교육학적,철학적논의도다루는데,실제로노동야학의밑거름이되었던프레이리의의식화이론과최근민주주의,노동과학습에대해새로운문제제기를하고있는랑시에르의‘프롤레타리아트의밤’과관련한내용이그것이다.이책의제목인‘노동야학,해방의밤을꿈꾸다’역시랑시에르에닿아있다.
랑시에르는19세기프랑스혁명이전노동자들이시인,화가,철학자와같은다른무언가가되기위해꿈꾸었던것을“프롤레타리아트의밤ProletarianNights”이라고불렀다.그리고이책은배움을열망했던노동자들이(지식인들과함께)‘밤’에‘노동야학’에함께모여학습하고,토론하고,자신의문제를풀어나가려했던,새로운‘밤(또는낮)’을모색하기위한실천에대한기록이다.여기서‘밤’은노동자가야학에서학습했던구체적시간을뜻하기도하지만,다른‘무엇’이되고싶은마음으로오로지자신을위하고자했던시간,공간,행위에대한은유라고도할수있다.(19~20쪽)
그리고무엇보다이책에서소중한것은노동야학에다니던노동자학생의이야기를복원해낸데있다.그속에서당시노동,교육,사회의면면을되짚어볼수있다.
친구들과교정에서까르르웃으며학교를다닐나이,어린노동자는“구멍난살림을꿰매는”노동자가됐다.노동자들은하루열시간넘게일하며자신의몸보다기계가부서질까걱정했고,관리자들의폭언과성희롱에시달려야했다.하지만소아마비철이에게,또다른누군가에게의미있는존재가되고자했던꿈을포기하지는않았다.그꿈의한자락이라도잡기위해노동야학이라는공간을찾았다.
야간학교는차가운공장과달리따뜻한곳이었고,‘공순이’‘공돌이’라칭하는노동자형제자매가모인곳이었다.집안살림을책임지기위해학교를그만둘수밖에없었던노동자는뒤늦게,막연하게나마공부라는것을하기시작했다.그런데이공부는하면할수록이상한공부였다.짧은가방끈이지만그래도학교다닐때는공부를곧잘했는데,야학에서의공부는때로는혼란스러움과분노,때로는희열,때로는자신과의싸움같았다.(18-19쪽)
노동야학의소멸과새로운노동의밤
그러나아이러니하게도“1980년대는‘노동야학의시대’이기도했지만,억압적정권과기업주의착취,탄압이횡행하던때이기도했다.그속에서수많은노동야학이생겼다가사라졌다.”(14쪽)왜이런일이일어났을까?그리고지금우리에게는더이상노동야학이필요없어진걸까?
1987년이후노동자의식화나문화활동을위한합법적기구가늘어나기시작하고노동자의기본적인학력수준도높아지면서,야학을찾는노동자가줄어들기시작했다.야학교사의주축을담당했던대학사회역시신세대논쟁등으로변화를겪고,사회운동성의약화로1990년대중반부터야학운동은급속히쇠퇴하기시작했다.진보적생활야학도1990년대후반대부분문을닫고,검정고시야학의주학생층도노동자대신비문해자,중년여성,학교중도탈락청소년,이주민으로변화되기시작하면서분화과정을겪었다.(31~32쪽)
물론지금노동야학은사라졌다.하지만몫없는노동자들이자신의목소리,권리그리고몫을찾기위해,다른무엇이되고자했던“‘인간을위한노동과학습’을되찾기위한문제의식”(293쪽)마저사라진것은아니다.신자유주의세계화의시대에광범위하게우리삶에서노동이소외되고있기에,오히려“노동을담는교육,더나은노동과노동자를위한학습의가능성을탐색”(15쪽)하는일이더욱절실하다.
이에저자는국내에서진행되는노동교육의현실을먼저점검하고,이에대한대안으로,노동교육을위한구체적방법론과과정으로프레이리방식을적용한캐나다의노동교육방법론과주로노동건강이슈에자주쓰이는참여적실행연구participatoryactionresearch,PAR의사례를소개한다.또한,노동과학습을결합해사회변화를위한기본동력으로만들어가는스웨덴의노동교육체제를통해,우리사회에서노동교육체계화의방향도모색해보았다.
기본소득은…노동과상관없이주는임금이아니라,생존과생활로써노동을하는인간의존재가치를전제로하는관점이라고할수있다.이러한맥락에서는학습도자신의자본가치를높이는교육과다른,인간의삶의질을변화시키는차원에서여러논의를할수있을것이다.이러한문제의식처럼,새로운노동자의밤은노동운동이라는차원에만국한되지않는‘노동’에대해좀더본질적으로접근할필요가있다.(293쪽)
*노동야학은당시급속한근대화에따른도시화와산업화속에서교육으로부터소외된,그럼에도배움에대한열망을가진노동자를위한배움의공간이자해방의장이었으며,우리사회에서노동운동이성장하는데산파역할을했다.
*이제노동야학은사라졌지만,노동야학이가졌던‘인간을위한노동과학습’을되찾기위한문제의식이사라진것은아니다.
*이책은사라진노동야학의역사에대한부분적인복원작업인동시에,그역사적의미에대한분석을통해우리사회의새로운노동교육,노동자학습,노동자의밤을모색하는작업이기도하다.
*이는여전히10대의파견현장실습생과알바노동자,그리고이주노동자가작업중사망을당하고,삼성이라는거대기업에서산업재해를인정받기위해유가족이싸우고있으며,직장에서의갑질과괴롭힘으로부터벗어나기위해수많은노동자가싸우고있는상황에서,새로운노동자의밤은어떻게가능하며이를위한교육은어떻게진행되어야할지묻는과정이라고할수있다.
*이제는새로운꿈을꿔야한다.힘겹고탈출하고픈노동에서가치있고자유로운노동으로,노동자를위한노동운동에서노동하는모든시민을위한노동운동으로,이윤창출을위한경쟁적교육에서서로의감각을일깨우는수평적학습으로변화하는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