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성당 이야기

가회동성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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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천주교의 뿌리 가회동성당,
성당 건축 중 만난 하느님 이야기
〉〉 한국 천주교의 뿌리 가회동성당, 성당 건축 중 만난 하느님 이야기
오늘날 북촌한옥마을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북촌한옥마을에는 가회동성당이 있는데 밖에서 보면 한옥으로 보인다. 성당의 입구 쪽은 한옥으로 안쪽은 서양건축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이 성당은 단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선비와 푸른 눈의 선교사가 어깨동무를 하는 형상이 있는 등 동서양의 디자인 요소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김태희와 비가 결혼한 곳으로 유명하고, 예비 신랑신부들이 결혼식장으로 선호하는 곳이다.
가회동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뿌리이기도 하다. 1795년 4월 5일 부활대축일에 가회동성당 인근에서 주문모 신부에 의해 조선 최초로 미사가 봉헌되었고, 천주교를 박해한 사건인 ‘북산사건’이 벌어졌다. 북산사건을 시작으로 조선에서 천주교를 박해하게 되었으니, 북산사건의 중심에 위치한 가회동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뿌리인 셈이다.
이 책의 저자 송차선 신부는 가회동성당의 주임신부가 된 이후 가회동성당을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성당이 아니라 초대한국천주교회의 기념비적 건물(Monumental Architecture)로 짓기로 했다. 당시 관광객의 인기선호도 1위가 북촌한옥마을인데 가회동성당이 그 한복판에 있으니 반드시 선교본당을 지향하고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가회동성당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신비한 일들이 일어났다. 공사비가 부족해 도저히 성당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큰손의 기부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또 건축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알고 보니 가회동성당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의 후손인 것이었다. 이처럼 신비로운 일들을 체험한 이 책의 저자 송차선 신부는 “이 모든 일들은 하느님을 빼면 설명이 안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 책은 한국 천주교의 뿌리가 된 가회동성당의 종교사적 이야기뿐만 아니라 성당 건축 과정에서 만난 하느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송차선

교회밖에서는건축학과인문학을공부했고교회안에서는철학과신학을공부했다.해외에서는캐나다에서현대영성(contemporaryspirituality)을공부했다.유학후가톨릭대학교에서사제양성을했고가회동성당,석관동성당주임신부를거쳐현재용산성당에서선교담당사제로재직중이다.
지은책으로『더불어사는숲캐나다』(창해,2004),『화해와치유』(분도출판사,2010),『자유로운영혼을위하여』(분도출판사,2017),『곱게늙기』(샘터,2018,한국문화예술위원회2018문학나눔우수도서선정)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며
1.부르심
2.건축과이별후생긴일
3.신학교에서가회동성당으로
4.건축기획
5.건축비마련
6.증인들
7.토목공사
8.암수술과자유로운영혼
9.한옥공사
10.파이프오르간이야기
11.하느님께서보내주신사람들-예술인들과협조자들
12.건축사용허가를받은날
13.준공후첫장례식
14.건축상
15.방글라데시와하느님의역사
정리하며

출판사 서평

>>북산사건의가해자인황실을천주교신자로받아들인가회동성당이야기
1795년4월5일부활대축일에최인길마티아의집(가회동성당인근)에서주문모신부는조선땅에서첫미사를봉헌했다.밀고자가생겨미사중에포졸이들이닥치자주문모신부는황급히대피하고,최인길마티아가영대를메고주문모신부의행세를했다.그리고주문모신부를대신해잡혀가서곤장50대를맞아즉사했다.최인길마티아가순교한이후주문모신부는가회동성당관활내에있는강완숙골롬바의집에피신했는데,주문모신부를못잡게되자박해는더욱심해졌고그는중국으로돌아가기로결심했다.하지만중국으로돌아가던중한양으로발길을돌려자수했다.자신이잡히지않으면수많은무고한사람들이고초를당할것을염려했기때문이다.자수한주문모신부는군문효수(화살로두귀를밑에서위를향하게뚫고,목을잘라서그목을창에끼워높게매다는형벌)로순교했다.또강완숙골롬바도결국잡혀서참수를당했다.
이와같이첫미사후에일어났던최인길,주문모,강완숙등순교자들이치명당한사건을‘북산사건’이라고부르는데,이북산사건이후조선땅에서본격적으로박해가시작되었고수많은순교자들이피를흘리게되었다.따라서북산사건의중심에위치한가회동성당은한국천주교의뿌리인셈이다.
뿐만아니라박해의주체가박해의대상을받아들이는놀라운일이북산사건이발생한가회동성당관할내에서일어났다.북산사건당시박해의주체는황실이었는데,황실의마지막왕이었던의친왕과의친왕비가가회동성당에서세례를받았다.의친왕‘이강’이‘비오’,의친왕비‘김숙’이‘마리아’라는세례명으로세례받았는데,조선의마지막황실이가회동성당에서세례받은것이다.이책은이러한일들을흥미진진하게이야기하고있다.

>>가회동성당을새로건축하는과정에서만난신비로운하느님이야기
가회동성당을건축할당시에교적신자수는당시약1,600명에불과했다.송차선신부는가회동성당주임신부로부임한이후실거주자를꼼꼼하게살펴보니대략1,100명이었고그나마대부분고령자였다.성당을짓기위해서는교적신자들이적어도4,000명이상되어야하는데그정도의본당신자들이자력으로성당을짓는것은불가능했다.성당을짓기위해본당신자들로부터건축기금을마련해야했지만,송차선신부는신자들에게부담감을주지않기위해두가지를약속했다.하나는건축헌금을내라고절대강요하지않겠다는것과,다른한가지는현금을80%이상확보하지않으면건축을시작도안하겠다는것이었다.
송차선신부는건축기금을마련하기위해네가지안을생각했다.첫번째안은사후기증자가기증한삼청동에있는로마나의집을매각하는것이었다.하지만당시땅값이비싸서130평에이르는이집을매각하는것이쉽지않았다.두번째안은로마나의집을가회동성당의맞은편에있는벨라뎃다의집과맞바꾸어매각하는것이었다.세번째안은모금을나가면서큰손을찾아내는것이었다.네번째안은미국식모금방법인데,건물각각의방입구에기증자의이름을붙여주거나,아예기증자의이름을방의이름으로정해주어기금을받는것이었다.그런데평일미사를드리던어느날송차선신부와세례명이같은송요한이가회동성당으로찾아왔다.이후송요한은로마나의집을매수했고,가회동성당신자들의건축기금과건축을위한2차헌금,바자회수익금등을모두합치니,송차선신부가생각한첫번째안이이루어지게되어건축을시작할수있었다.
그런데가회동성당의부지는340평정도밖에안되었고,건폐율도낮았으며,고도제한으로12m이상지을수가없었다.게다가주차시설까지마련해야했기에반드시지하3층까지파야했다.지하3층과지상3층의건물을지으면유지비도그만큼많이드는데,이문제를해결하기위해가회동성당에서결혼식을올리도록해혼배수입을얻고자했다.그리하여지하토목공사를했는데그과정에서가회동성당의지반이궁궐의주춧돌로쓰인암반으로되어있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모진박해속에서도꿋꿋하게신앙을지켜온순교자들의모습처럼가회동성당은하느님의섭리로반석위에지어져어떤지진이오더라도끄떡없이버텨낼성당이될수있었다.
이책은성당건축과정이그리만만치않다는교훈도건넨다.송차선신부는건축과정에서여러난관에부딪치고암수술을받기도했다.좋은한옥을짓기위해서는함수율15%이하의한국산소나무를구해야하는데,어렵사리강원도홍천에서사찰건축용으로채벌했다계획이취소되어임업사업소에서보관하고있던적송을구할수있었다.국산소나무를구하기쉽지않은현실에서마치가회동성당의한옥을짓기위해준비되어있었던것처럼기막힌적송을구한것이다.흔히목수들은“집(한옥)을지을때나무는하늘이내려준다”고말하는데송차선신부는“이나무를하느님께서내려주셨다”고믿는다.
또건축비를제외한건축부대비용으로4억원이상의파이프오르간을포함해제대,십자가,십사처,예수성심상,감실,성물등을마련하기위해10억원이필요했다.모두가10억원을마련하기가불가능하다고했지만송차선신부는암수술이후에도혜화동성당과세검정성당에서각각1억원이상모금했다.그리고신비하게도혜화동성당에서정영자세레나를만났는데,이후파이프오르간설치비용으로4억원을기증받았다.정영자세레나는원래성북동성당신자인데고향인김제에갔다가교통체증이심해서서울에도착하니저녁8시30분가량이었다.그시간이면이미성북동성당에서는미사가끝나서오후9시미사가남아있는혜화동성당을찾았고,그곳에서송차선신부의강론을들은것이다.송차선신부는이러한일이일어난것역시“하느님을빼면설명할수없다”고말한다.
이책은성당건축과정을자세히다루고있는데,세상모든성당은하느님이지으신다는교훈을건네고있다.송차선신부는“하느님이머무시는집,성전은하느님께서지어주셔야한다”고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