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초상화

엄마의 초상화

$13.37
저자

유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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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밥하고빨래하고청소하고……,가족을위해사는사람,엄마.
하지만그게엄마의모습전부일까?
엄마의가슴속에감춰진,미영씨의진짜모습은어떤걸까?


부르기만해도가슴이따뜻해지는이름,엄마.생각만해도마음이편안해지는사람,엄마…….엄마는모든사람이처음으로깃들였던집이고,세상에나와처음으로만난사람입니다.누구에게나엄마는언제라도돌아갈수있는보금자리이며,어디서든나를지켜줄등불입니다.바꿔말하면,엄마는늘내가의지하고위안을바라는대상이며내가원하는모든것을주는헌신적인후원자이기도합니다.
그런데그한없는베풂의신화는어디서비롯된것일까요?그리고,대상이요후원자가아니라스스로도위안을바라고일탈을갈구하는욕망의주체로서,고유한이름을지닌엄마이전의한여성은어디에있는것일까요?
안타깝지만당연하게도베풂의신화는주체의희생에서시작합니다.모든‘엄마’는어떤‘여성’이포기하거나미루어둔꿈과욕망과자아의뒷모습인것입니다.우리가그들에게바라는것,보고싶어하는것,당연히여기는것은늘바로그뒷모습이지요.어느순간내비쳐지는,엄마의이면에감춰진‘아무개씨’의진짜모습은슬프게도우리에게낯설기만합니다.그런데그낯선느낌은정당한것일까요?

이책은엄마가‘엄마’이기만한줄알고살아오다가어느날문득엄마의또다른자아인‘미영씨’의모습을발견한자식이,자신이느낀그낯섦이과연정당한것인가라는질문에대하여답을찾는과정을그린작품입니다.
작품속화자인나는그림을그리는사람입니다.나는엄마의초상화를그리는데,내가그리는초상화는늘익숙한엄마의모습그대로입니다.갈라진틈새로빨간립스틱이침착된메마른입술,성긴세월을감추는뽀글뽀글한파마머리,무슨일론가심하게삐친나를위해기도할때펑퍼짐한엉덩이를받치던울퉁불퉁한발,집안의다른생명들을살리느라정작스스로는바짝바짝메말라가는손…….그러나그이면엔문화센터에나가라틴댄스를배우고,자주쓰지도않는색색깔모자들을정성들여모으며,주말이면교회성가대에서목청껏찬송을한뒤도도하게쇼핑을하고,반짝거리는장신구를걸치고거울앞에서곤하는미영씨가있음을나는알고있습니다.그런데그런미영씨의모습들이나에겐왠지낯설기만하지요.

나는생각합니다.이낯섦의근원은어디에있을까?그래서상상해봅니다.어쩌면내가아는엄마의모습뒤에는상상치도못할미영씨가있는게아닐까.소파에누워티브이를보다가잠들어버리는엄마의일상은지루해보이지만,알고보면미영씨는동화속주인공과대화를나누는재밌는사람이아닐까?몸통일랑식구들을위해양보하며생선은머리가맛있다고주장하는엄마이지만,미영씨는카리브해의노인처럼두려움을모르는탐험가일수도있지않은가?엄마는낡은블라우스의꽃무늬처럼지지않고우리를응원해줄것같아도,미영씨는꽃을찾아떠나버릴지모르며,엄마는언제든내가돌아갈수있는집이지만,미영씨는더이상집이아니고싶을수도있지않은가……?
생각이여기에미치자,이제알것도같습니다.그림그리는나를자랑스러워하지만,내가그려준초상화는좋아하지않던엄마의마음을,어느날느닷없이가방을챙겨먼이국으로여행을떠났던엄마를,그리고그곳에서낯모르는이국의화가가그려준자신의초상화를맘에쏙들어하는미영씨를말이지요.

그렇게해서엄마는두개의초상화를갖게되었습니다.그초상화는엄마의오래된자개장위에내가그린초상화와나란히놓여있습니다.그러고보면이제미영씨는내가그린‘엄마’를부인하지않는듯합니다.아니,처음부터부인하지않았던것이아닐까요.다만,잃어버린‘미영씨’를찾고싶은엄마가있었을뿐.
두개의초상화를보면서,나는이제낯섦의근원을알것같습니다.그건내가엄마가아닌미영씨를부인했던탓이었을테지요.나의욕망,나의꿈,나의자아만을위한,나의욕심때문에.그러므로그낯섦은정당한것이아니었습니다.이제나는미영씨를인정하고자합니다.미영씨가내가그린엄마를인정해주듯.그러자두개의초상화가새로이내마음에들어옵니다.서로다르게생겼지만,하나뿐인우리엄마,미영씨의모습으로.바야흐로희생과베풂의신화를끝내고인정과사랑의이야기를써나가야할때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