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네 집 : 치매 할머니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양장)

할머니네 집 : 치매 할머니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양장)

$13.15
Description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걸까?
점점 허리가 굽고, 자주 사레가 걸리고,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늘어나고,
집 앞 산책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것.

그리고 여기가 어딘지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

저자

지은

어느새그림이나의말이되었습니다.매일내뱉지만삼킬때가더많습니다.다정하고따뜻한사람이되고싶고,나의그림도그랬으면좋겠습니다.다음생엔나무로태어나지금보다더맘껏흔들리고싶습니다.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

19년전,할머니가우리집에오셨다.지팡이를짚고왼쪽다리를살짝끌면서...

이그림책은작가의실제이야기입니다.지금작가의나이스물아홉이니,할머니가오신것은열살무렵.다리를절며지팡이를짚고오신할머니,오자마자평생쪽지어온머리를짧게자르고파마를하신할머니,스스로를돌볼수없어자식의집에몸을맡기러오신할머니는어린손녀의눈에꽤낯설었을겁니다.이제막생명의기운이차오르는아이에게치매에걸린노인의모습이익숙할리없을테니까요.
그러나부대끼다보면친숙해지는법.성장기내내함께해오는동안,작가에게할머니는친근한말벗이되고,노년의삶을성찰하는모델이되고,사랑과연민으로가슴이아릿해지는그리움의대상이되었습니다.이윽고작가는자신의첫작품속으로할머니를초대했지요.

“나오늘은집에간다아!이따가나기다리지마.”

복지관에가시는금요일마다이렇게말하는할머니.떠나온지열아홉해가지나이제는남의집이되었는데도,할머니는여전히전에살던‘효자동집’에살고계십니다.익숙한것을안전하다여기는치매환자의심리기제일까요,좋았던시절속에머물고싶은소박한욕망일까요.
어떻든작가가보기에그곳은할머니가‘날마다쓸고닦아먼지한톨없는곳’이요,‘손수심은나무들과손수담근장항아리가나란히서있는곳’이며,할머니가기억속에서여전히대문을열고들어가시는,할머니가돌아갈곳-‘할머니네집’입니다.
그처럼여기에계시면서도저기에살고있는할머니와,작가는종종이런대화를나눕니다.“할머니,효자동집어땠는지기억나요?”“효자동집?마당에,주목나무랑대추나무!”“마당에?”“있었어,거기.들어가는대문있는데에울타리.”“그리고또?”“아이,가서사진찍어와.우리집,집그리기싫어.”“땅도파고?”“응,내가땅도파고장도담고장독묻고그랬지.”...
미국의인류학자자넬테일러는치매어머니를돌보면서얻은깨달음을이렇게썼습니다.‘대화는우리가흔히생각하는것처럼‘의사소통’이아니라서로말을주고받는제스처...누군가를하나의인격,혹은사람으로만드는것은그사람이가진인지능력이아니라지금이순간을살아가는그사람에대해,그리고그사람과내가주고받는제스처들에대해내가기울이는관심,무의미해보이는그사람의몸짓들이의미를갖게하는관계와돌봄의제스처‘(김희경의칼럼<아냐,난사는게좋거든>에서재인용)이책의작가또한치매할머니와함께지내며같은깨달음을얻은걸까요?

할머니가계시지않은우리집을자꾸만생각하게된다

그런‘대화’를나누며,할머니라는한‘인격’과더불어성장한작가는이제죽음을구체적으로인식하는어른이되었습니다.그사이할머니는죽음앞으로한걸음더다가가게되었을테지요.그래서작가는‘가끔주무시는할머니를가만히보며할머니의코밑에손을대보기도하고,오르락내리락하는가슴팍을확인’하곤합니다.그러고나서야마음이놓이는날들이점점늘어갑니다.
머지않아보이는이별앞에서작가는생각합니다.‘할머니가계시지않은그때도아무렇지않게현관문을열고들어갈수있을까?아마도한동안할머니방문은닫혀있지않을까?떠나간사람은모르는,남아있는사람의시간은어떨까?...’

그리고‘남은사람의시간’을채워줄할머니의흔적들을하나씩떠올려봅니다.‘날마다들고다니던빨간가방과가짜밍크코트,늘두르고계시던머플러들,시장놀이에서산500원짜리귀여운무지개털모자,보라색가죽장갑,보실보실한양말,칠이다벗겨진나무지팡이,꽃무늬내복,어디서난지모르는보석반지들...조용조용살금살금,어떤때는총총총걷던발소리와,박자를맞추던지팡이소리,집안에짜랑짜랑울려퍼지던노랫소리,“지은양,”하고부르던목소리...’
그러나그런것들이할머니를대신하게되지는않을듯싶습니다.그래서작가는다시묻습니다.‘그땐거기에가면할머니를만날수있을까?효자동569-13,연분홍앵두꽃이핀할머니네집.’그곳이할머니가평생을살아왔고지금도살고있으며돌아가신뒤에도가계실진짜‘할머니네집’이라는사실을잘알고있으니까요.

어쩌면‘할머니네집’은...

생명이있는것은모두,결국은죽습니다.그러므로살아간다는것은죽어간다는것과같은뜻이며,나이가든다는것은죽음에가까워진다는뜻입니다.그런데죽음은대개뚝끊어진길처럼오지않습니다.서서히생명의기운을잃어가는과정을거치기마련이지요.그것을우리는‘노화’라부릅니다.
기력이떨어지고총기가사라져가는,그리하여마침내는앞가림조차할수없게되는과정...우리가세상을홀로사는존재들이라면,노화는얼마나비참한걸까요?하지만사람은홀로살지않습니다.누군가곁에서지켜보고돌봐주기마련이며,그래야만‘인간다운노화’라할수있습니다.
이그림책은작가인손녀가지켜보는할머니의‘노화’이야기입니다.머지않아죽음으로마무리될,마지막단계의노화...그러므로이그림책은슬픕니다.그러나그럼에도슬프기만하지는않은까닭은,할머니의노화를지켜보는작가의시선이참따뜻하기때문입니다.
작가는질서를잃어버린할머니의삶을있는그대로인정하고바라보면서,무의미해보이는할머니의몸짓에관심을기울이며끊임없이‘대화’를주고받습니다.그처럼따뜻한시선이있어,여기‘우리집’에있으면서도저기당신의집에살고있는‘치매할머니’가‘하나의인격’으로존재할수있는것이지요.
책을덮으며생각해봅니다.무의미해보이는몸짓을하나의인격으로세워줄따뜻한시선이필요한삶이,어찌‘치매노인’뿐일까요.그러니어쩌면‘할머니네집’은,갖가지이유로고통받고무시당하는모든‘약자들의집’인지도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