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

백서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

$16.70
저자

이상훈

저자:이상훈
현재영화감독및방송PD로활동하고있다.성균관대를거쳐서울대행정대학원에서수학했다.KBS공채피디로방송에입문,SBS개국에참여해숱한히트프로그램을만들었으며채널A제작본부장으로채널A개국을진두지휘했다.그후대학교수로재직하며많은글을발표했는데,방송프로그램대본을직접집필하는등작가적역량을발휘했다.첫에세이집《고향생각》으로베스트셀러작가의반열에오른데이어《더늦기전에부모님의손을잡아드리세요》,《상식이통하는나라에살고싶다》,《유머로시작하라》등을출간해반향을일으켰다.2014년첫소설《한복입은남자》가독자의사랑을받는가운데뮤지컬로제작되어공전의히트를기록하고있다.게다가미국메이저OTT회사에서글로벌콘텐츠로드라마제작이추진되고있다.백제의의자왕과일본여자천황인제명천황과의사랑과일본탄생의미스터리를추적한두번째소설《제명공주》는국내뿐만아니라일본에서도큰반향을불러일으켰다.세번째소설《김의나라》는역사소설의최고권위있는상으로일컬어지는제16회류주현문학상을수상함으로써문학성을인정받았다.《김의나라》는드라마판권계약이체결되어현재드라마제작이진행중이다.

목차

머리말

황사영백서의미스터리
사랑이싹트다
조선최초천주교의씨앗을뿌린이벽
최초의영세자이승훈
1784년정약용,정약전이세례를받다
명례방사건
명례방을찾다
사랑과함께찾아온천주교
황사영,세례를받다
진산사건과신해박해
주문보신부와황사영의첫미사
1798년,황사영의아들이태어나다
밀고사건
정조의사망과노론의대반격
정약종의체포
1801년신유박해
정약종의죽음
주문모신부순교
황사영의도피
황사영과정약용과정약전의마지막만남
배론성지
살아남은자의슬픔
정약용의번민,정명련의시련
추자도의황경한
정하상,황사영의뜻을이어가다
주역과천주교
고향마재를떠나는정하상
1836년정약용,하느님의품에안기다
정약용생가와마재성지
조선최초의신학생정하상
정명련이아들황경한을만나다
1839년기해박해와상재상서上宰相書
앵베르주교와샤스탕,모방신부의순교
수선화꽃이지다
정하상바오로와정난주의무덤
125년만에전달된편지,황사영백서
황사영의무덤을찾아서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백서를쓰는황사영의심정을가슴으로느끼며또읽었다.내가황사영이되고황사영이내가되었다.239년전에살았던황사영이내안에서다시살아나는것같았다.황사영은천주교순교자로하느님을위해기꺼이사지가찢겨죽는순교의길을택했지만,그는천주교에서도대접받지못하고우리역사에서도버림받은존재가되었다.그가외국군대를동원해서라도조선에서벌어지는살육의미친춤판을끝내달라고교황님에게편지를써서보낸일이과연역적으로비난받을행위일까?당시조선백성의삶과정치상황그리고천주교박해의실상을안다면,누가황사영에게돌을던질수있을까?
---「작가의말」중에서

진복은신부는되지못했지만,항상마음속에하느님을거부할수없었다.그것은7대조할아버지의혼령이그를따라다니는것같았다.진복은힘들때마다명례방이있던명동성당으로가서할아버지의흔적을찾았다.당시신자들은조정의추적을피해모임장소를명례방의김범우집으로옮겼다.그곳에서조선천주교회의씨앗이싹을틔웠다.그명례방모임의주역은이벽과이승훈그리고정약용이었다.사학자인진복은정약용집안에관심이많았는데정약용집안은천주교와떼려야뗄수없는인연의울타리처럼엮여있었다.우리나라에서처음으로천주학을학문이아닌종교로받아들여조선천주교의시발점이된인물은광암이벽이다.그는정약용집안과사돈관계였는데,이벽의누이가정약용의큰형정약현의부인이되었다.그리고정약현의딸정명련은황사영과혼인함으로써황사영은정약용집안의사위가되고,우리나라최초의영세자이승훈은정약용의누이와혼인함으로정약용과이승훈은처남매부사이다.최초의순교자윤지충은정약용의외사촌이었고정약용의작은형정약종과그의아들정철상은천주교회의중추적인역할을하다가순교했으며정약종의막내아들정하상은김대건신부와함께우리천주교회의수호성인으로지정되었다.이렇게보았을때한국의천주교는정약용집안에크게빚지고있다.진복은자신도신부가되지못한죄책감이정약용이천주교를배교한것과중첩되어가슴을울리고있었다.배교로써목숨을부지한정약용과끝까지믿음을지키다황사영백서사건으로능지처참을당한황사영의얼굴이대비되어진복의눈앞에아른거렸다.
---「황사영백서의미스터리」중에서

천진암에모인일행은처음에는서양의사상과기술에집중하였다.서양의학문을공부하는가운데이벽은특히천주교의교리를중시하였다.이벽이주도하는천주학강학모임이서서히종교적신앙으로발전하고있었다.실학자들은천주실의책을필사하여나누어보며천주학을학문에서신앙으로발전시켰다.그것이최초의한국천주교신앙의시작이었다.세계에서유례가없는자발적인신앙의시작이었다.한국최초의천주교는1777년이벽,권철신,정약전,정약용,이승훈등이경기도광주의주어사에딸린암자천진암에모여천주학을비롯한서양학문을연구한데서시작된것이다.
---「조선천주교의씨앗을뿌린이벽」중에서

정하상이일곱살때황사영이죽었지만,정하상은사촌자형황사영을똑똑히기억하고있었다.정하상이아버지의뜻을이어천주교를조선에서부활시키려고할때가장먼저떠오르는사람이황사영이었다.하상은황사영이교황님에게보낸백서를찾아헤매었지만,어디에서도찾을수없었다.1801년신유박해이후좀처럼부흥의계기를찾지못하는조선천주교회를위해흩어진교인들을찾아내신앙의불길을다시태우게하고신자들의신앙생활을조직화하는한편,조선천주교에다시금성직자를파견해주도록북경주교에게계속편지를보내기로했다.
---「정하상,황사영의뜻을이어가다」중에서

1838년,명련이제주에온지38년이지났다.고왔던손은부르트고굳은살이박여이제는영락없는노비의손이었다.명련의머리는하얗게서리가내렸다.육십가까이되자이제제주사람들은명련을한양할망으로불렀다.명련은한양으로떠나는대정현감의배려로독립해서살수있는외거노비로인정받아초가집에혼자살며전교활동을계속하고있었다.명련의외딴집에서전해진성경말씀은,바다에서남편을잃은과부들과희망을잃고살아가던섬사람들의마음에,마른수건에물이스며들듯조용히스며들고있었다.명련의친구간난이가아주열심히전교활동을하여명련을따르는신자들이이백여명에이르렀다.
---「정명련이아들황경한을만나다」중에서

황사영묘에는참배객이끊이지않았다.황사영의묘는의정부교구송추성당에서관리하면서무덤주위에십자가의길을세우고무덤옆에작은성당을지었다.진복이황사영의무덤앞에섰는데마침진복의마음을아는듯비가내리고있었다.황사영묘앞에는십자가의길기도를드릴수있게조그맣게조성되어있었다.신자들이황사영의무덤앞에서십자가의길기도를드리고있었다.황사영의길이십자가의길이었다.진복은무덤앞에서고개숙여기도하였다.황사영의죽음은헛되지않았다.황사영의피가후손들에게이어져서오늘의우리나라를만든것이다.우리순교자들의피로이루어진우리나라의교회는세계가부러워할정도로천주교개신교할것없이예수님을믿는십자가로대한민국성공의밑바탕이되었다.모두가대한민국을한강의기적이라이야기하지만,이는순교자들이흘린피의기적이었다.
---「황사영의무덤을찾아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