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조정변호사가 써 내려간
미움과 용서, 그 경계의 순간들
미움과 용서, 그 경계의 순간들
새엄마와 의붓딸이 법정에 섰다. 의붓딸이 새엄마에게 소송을 건 사건인데,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속마음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친엄마는 두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열 살에 새엄마를 만났습니다. 정이 많은 새엄마는 엄마 없이 자란 오빠와 나를 친자식처럼 키워주셨죠.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준 적이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새엄마가 우리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바람을 피웠습니다. 새엄마는 이것만은 참을 수 없다며 이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위자료와 친정에서 꿔준 돈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돈이 없다며 5년 동안 다달이 나눠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빠를 믿을 수 없었던 엄마는 오빠와 나에게 보증을 서라고 했습니다. 평생 우리를 키워준 엄마가 아빠 잘못으로 빈손으로 헤어지는데, 차마 각서에 사인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아빠는 엄마에게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돈을 못 준 달이면, 엄마가 전화해서 나를 들들 볶았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대신 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까지 짐을 떠넘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마 전화도 잘 받지 않았고 아빠 대신 돈을 갚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은행에서 압류가 걸렸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새엄마가 압류를 걸었던 거죠. 어떻게든 엄마 편에 서려고 했던 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딸아이가 열 살일 때 처음 만났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처음부터 나에게 살갑게 구는 것이 정이 갔습니다. 내 자식처럼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딸은 야무지게 자기 앞가림을 잘했고, 어렵고 고달픈 인생에 친딸은 아니어도 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하면서는 내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의 자식만 키워주고 돈 한 푼 없이 집을 나서려니 억울함이 복받쳤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각서를 받았습니다. 애들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이혼 후, 갈 곳이 없어 늙으신 친정엄마를 찾아갔습니다. 낮에는 복지센터에서 일하며 푼돈을 벌고 집에 오면 아픈 엄마를 돌봐야 했죠. 전남편은 예상대로 약속한 돈을 다 갚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딸이 가끔 찾아와 같이 술도 마셔주고 용돈도 주고 가 힘이 되었습니다. 결혼을 한다기에 없는 살림을 털어 축의금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더니 갑자기 전화를 안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남편 직업도 번듯하고 이제 좀 살 만해지니 날 외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친엄마라도 이렇게 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의 통장에 압류를 걸었습니다. 전남편에 대한 미움, 딸에 대한 서운함에 한 행동이었습니다. 또 이렇게라도 해서 전남편에게 못 받은 돈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영 돈을 받을 수가 없고 계속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정 전문 변호사(재판 전이나 재판 과정 중 원고와 피고가 대화와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조정절차를 주재하는 역할)이자 소년재판의 국선변호사로 활동한 저자가 실제 담당했던 사건을 이야기로 푼 것이다.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딸의 심정이, 새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난감한 상황이다. 만약 내가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이들의 싸움을 말리고 화해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
탁월한 법정 전문 지식으로 이들을 설득하거나 일반인은 생각지도 못할 비상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문제를 해결했던 방법은 의외로 매우 본질적이며 단순했다.
“그저 한 사람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귀 기울여 듣기만 했습니다. 처음 두 사람이 함께 마주한 조정실에서 이렇게 운을 뗐을 뿐이죠. 이런 곳에서 만나실 두 분이 아니신데, 여기에 오시기까지 말 못 할 사연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오시면서도 마음이 많이 무거우셨지요? 기록을 읽어보니 두 분이 서로 애정을 갖고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애정이 있으니 화도 나는 게 아니겠어요? 어렵고 길게 재판을 하기보다는 모쪼록 오늘 잘 이야기해서 해결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힘껏 돕겠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후,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시라고 하자 딸은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그래도 엄마가 있잖아!”
그런 딸을 보며 ‘엄마 아닌 엄마’도 함께 눈물을 훔쳤고, 결국 서로 양보해서 합의하고 압류도 취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세상의 다양한 다툼 속에서 소년재판의 국선변호사이자 조정변호사로서 일하며 느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깊은 통찰과 울림이 있다.
“산업재해 사고나 교통사고,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조정실에서 많이 하는 말이 상대방이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고로 다쳐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는데 찾아와 보지도 않느냐고 한다. 만약 미안하다고 한 마디라도 했다면 이렇게 소송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라고도 말한다. 학교 폭력 사건이나 직장 내 성추행 사건, 명예훼손 사건도 비슷하다. 가장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많은 개인 간의 소송은 상대방으로부터 사과와 승복을 받아내기 위한 감정싸움 내지는 자존심 싸움인 경우가 많다. 내가 잘못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나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면 오히려 괘씸한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는 것은 사실 재판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목표만을 보고 달려가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재판에 임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우지만, 막상 승소 판결을 받고 나면 판결을 받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밥퍼’의 최일도 목사는 “(저자는)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이 세상 가운데, 미움과 용서의 경계선에서 과연 어느 쪽으로 발을 내디딜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많은 이들이 타협 없는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보면 우리는 가히 분노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갈등과 싸움이 펼쳐지는 대표적인 장소인 법정, 서로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어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오게 된 이곳에서, 이들이 극적으로 화해하고 상대를 용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통해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우리 사회에도 희망의 실마리가 있음을 찾아볼 수 있길 바란다.
“친엄마는 두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열 살에 새엄마를 만났습니다. 정이 많은 새엄마는 엄마 없이 자란 오빠와 나를 친자식처럼 키워주셨죠.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준 적이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새엄마가 우리를 먹여 살렸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바람을 피웠습니다. 새엄마는 이것만은 참을 수 없다며 이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위자료와 친정에서 꿔준 돈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돈이 없다며 5년 동안 다달이 나눠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빠를 믿을 수 없었던 엄마는 오빠와 나에게 보증을 서라고 했습니다. 평생 우리를 키워준 엄마가 아빠 잘못으로 빈손으로 헤어지는데, 차마 각서에 사인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아빠는 엄마에게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돈을 못 준 달이면, 엄마가 전화해서 나를 들들 볶았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대신 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까지 짐을 떠넘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마 전화도 잘 받지 않았고 아빠 대신 돈을 갚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은행에서 압류가 걸렸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새엄마가 압류를 걸었던 거죠. 어떻게든 엄마 편에 서려고 했던 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딸아이가 열 살일 때 처음 만났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처음부터 나에게 살갑게 구는 것이 정이 갔습니다. 내 자식처럼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딸은 야무지게 자기 앞가림을 잘했고, 어렵고 고달픈 인생에 친딸은 아니어도 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하면서는 내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의 자식만 키워주고 돈 한 푼 없이 집을 나서려니 억울함이 복받쳤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각서를 받았습니다. 애들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이혼 후, 갈 곳이 없어 늙으신 친정엄마를 찾아갔습니다. 낮에는 복지센터에서 일하며 푼돈을 벌고 집에 오면 아픈 엄마를 돌봐야 했죠. 전남편은 예상대로 약속한 돈을 다 갚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딸이 가끔 찾아와 같이 술도 마셔주고 용돈도 주고 가 힘이 되었습니다. 결혼을 한다기에 없는 살림을 털어 축의금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더니 갑자기 전화를 안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남편 직업도 번듯하고 이제 좀 살 만해지니 날 외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친엄마라도 이렇게 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의 통장에 압류를 걸었습니다. 전남편에 대한 미움, 딸에 대한 서운함에 한 행동이었습니다. 또 이렇게라도 해서 전남편에게 못 받은 돈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영 돈을 받을 수가 없고 계속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정 전문 변호사(재판 전이나 재판 과정 중 원고와 피고가 대화와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조정절차를 주재하는 역할)이자 소년재판의 국선변호사로 활동한 저자가 실제 담당했던 사건을 이야기로 푼 것이다.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딸의 심정이, 새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난감한 상황이다. 만약 내가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이들의 싸움을 말리고 화해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
탁월한 법정 전문 지식으로 이들을 설득하거나 일반인은 생각지도 못할 비상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문제를 해결했던 방법은 의외로 매우 본질적이며 단순했다.
“그저 한 사람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귀 기울여 듣기만 했습니다. 처음 두 사람이 함께 마주한 조정실에서 이렇게 운을 뗐을 뿐이죠. 이런 곳에서 만나실 두 분이 아니신데, 여기에 오시기까지 말 못 할 사연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오시면서도 마음이 많이 무거우셨지요? 기록을 읽어보니 두 분이 서로 애정을 갖고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애정이 있으니 화도 나는 게 아니겠어요? 어렵고 길게 재판을 하기보다는 모쪼록 오늘 잘 이야기해서 해결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힘껏 돕겠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후,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시라고 하자 딸은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그래도 엄마가 있잖아!”
그런 딸을 보며 ‘엄마 아닌 엄마’도 함께 눈물을 훔쳤고, 결국 서로 양보해서 합의하고 압류도 취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세상의 다양한 다툼 속에서 소년재판의 국선변호사이자 조정변호사로서 일하며 느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깊은 통찰과 울림이 있다.
“산업재해 사고나 교통사고,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조정실에서 많이 하는 말이 상대방이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고로 다쳐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는데 찾아와 보지도 않느냐고 한다. 만약 미안하다고 한 마디라도 했다면 이렇게 소송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라고도 말한다. 학교 폭력 사건이나 직장 내 성추행 사건, 명예훼손 사건도 비슷하다. 가장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많은 개인 간의 소송은 상대방으로부터 사과와 승복을 받아내기 위한 감정싸움 내지는 자존심 싸움인 경우가 많다. 내가 잘못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나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면 오히려 괘씸한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는 것은 사실 재판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목표만을 보고 달려가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재판에 임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우지만, 막상 승소 판결을 받고 나면 판결을 받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밥퍼’의 최일도 목사는 “(저자는)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이 세상 가운데, 미움과 용서의 경계선에서 과연 어느 쪽으로 발을 내디딜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많은 이들이 타협 없는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보면 우리는 가히 분노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갈등과 싸움이 펼쳐지는 대표적인 장소인 법정, 서로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어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오게 된 이곳에서, 이들이 극적으로 화해하고 상대를 용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통해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우리 사회에도 희망의 실마리가 있음을 찾아볼 수 있길 바란다.
법정 희망 일기 : 조정변호사가 써 내려간 미움과 용서, 그 경계의 순간들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