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이중용 첫번째 잡문집)

탈피 (이중용 첫번째 잡문집)

$9.00
Description
인간을 벗기는 것들과 벗겨지는 인간에 관하여
건축편집자가 빚은 생각으로의 초대
오픈북, 생각 속에 짓는 집
건축가는 자신이 계획하여 지어진 집을 ‘오픈하우스(open house)’라는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기대가 겹쳐 있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소원했던 관계들을 다지기도 하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도 하고, 매체 PR 과정의 연결고리로 활용하기도 하고, 비평가 등 건축 전문가들과 더불어 건축적 평가 가능성을 살피기도 하고, 더불어 이러한 과정들 전부가 SNS 및 개인 웹 미디어의 홍보 소스이기도 하다. 건축 전문가들은 ‘건축’에 대해 논하기를 즐기지만, 그것을 포함한 많은 일들이 ‘집’을 포함한 결과물을 통해 비롯된다. 건축 전문 에디터는 특히나, 건축가가 만들어낸 결과물과 더불어서 그 역할에 가치가 생기는 것으로 생각돼 온 직업 중 하나다. 하지만 건축잡지 에디터가 굳이 비판하기 위해 건물과 건축가를 선별하는 경우를 보기도 드문 일이고, 건축 단행본 에디터는 당연히 결과물의 좋은 면이 세일즈·마케팅 포인트와 연관돼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오늘의 건축 분야 전문 에디터들은 건물에 있어서도 건축가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면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무한 긍정에 가까운 관점과 태도가 건축 전문 에디터들의 다양한 문화적 가능성 뒤에 도사리는 부정적 인식의 배양액이 되기도 한다.
상품을 곱게 포장해서 신속하게 배달하는 것이 건축 전문 에디터의 작업이나 능력과 다르지 않다면, 건축 전문가 계통 내에서의 건축 전문 에디터에 대한 의심과 등한시는 오히려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한 기능은 이미, 언제든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축가의 말하기를 대신하는데 몰두해 온 에디터의 글은 말하기처럼 익숙해지는 글쓰기를 통해 건축가의 몫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판성으로 건축의 권위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던 비평가의 글이 대중의 관심과 자리를 차지하여 자신의 권위를 형성한 동료 건축(전문)가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과 결과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건축의 문화를 만드는 에디터나 비평가 등의 업역이 오늘날 포장 기술과 권위를 위한 사인으로 취급되거나 대체되는 것은 온당한가? 부당함을 전제할 필요는 없지만 합당함에 대한 모색은 필요할 것이다. 물론 건축을 읽는 노력 없는 포장 기술과 건축을 읽을 준비 안 된 보증서 사인의 문제에서 에디터나 비평가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때 건축 전문 에디터였던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문제들에서조차 격리돼 있는 상황이다. 그는 매체라는 껍질을 벗은 에디터가 문화 생산자로서의 역할과 가능성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단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되는 동안에는 성급히 껍질 속으로 들어가거나 만들기보다 건축 전문 에디터라는 자신이 선택한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중이다. 비평가는 ‘고쳐 쓰기’ 등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수용하면서도 창작이라는 작업의 가능성 안에 머무를 수 있다. 중간 영역에서 건축가든 비평가든 그 누구든 말을 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정리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대신 쓰기’라는 본연의 역할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느낄 때, 에디터는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 문제를 설정한 저자는 넓은 길로 나가는 대신 좁은 길을 택한다.
자신을 ‘건축편집자’로 소개하는 이유 역시 일단은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선을 그은 것이고, 그럴수록 현실에서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그 좁은 부분에서부터 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오히려 거기야말로 가능성의 자리라는 예감을 주저 없이 밀고 나간다. 이 책이 직접적으로 건축을 다루지 않고 몇몇 사회적인 현상들을 바라보는 저자 자신의 다채로운 시각의 레이어들을 예지적인 분위기로 엮어내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항상 이전에 만들어진 결과물의 후속 작업으로밖에 태어나지 못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축 전문 에디터 작업의 바탕이 보다 근원적이고 독자적인 별도의 작업에 근거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그 나름의 진지한 물음이자 탐색인 것이다. 그는 거칠게, 거침없이 생각을 흘려보낸다. 현상이 기술되고, 비유가 작동하고, 신조어가 나타나고, 구조를 더듬고, 현실로 돌아온다. 때로는 허덕이고 때로는 허겁지겁 읽히는 문장들은 아가미도 산소호흡기도 없이 생각 속으로 다이빙하여 속이 울렁거리고 숨이 가빠오면 몸부림치듯 생각 밖으로 달아나기 바쁜 저자를 고스란히 닮았다. 문장 하나, 어쩌면 단어 하나도 건지지 못 하는 채로 자신을 괴롭히기만 하는 생각하기와 글쓰기의 과정은 가치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고픈 기대감만큼이나 반복되는 과정에 지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만들기 위한 기획이다. 건물을 만들 몸을 갖췄지만 이야기를 발견하고 만들어 낼 몸까지 만들지는 못한 대부분의 건축가들에게서 건축의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는만큼, 저자는 건축가들에게 기대해야 할 것과 건축 전문 에디터로서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구별하려는 의지가 있다. ‘건축’이라는 하나의 분과 안에서 ‘건물’을 짓기 위한 고민과 ‘생각’을 짓기 위한 고민은 많은 부분 교집합을 이룬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다른 영역일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기술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그것들을 포함하여, 무엇보다 저자는 글 안에서 건축 전문 에디터를 통해 발견되거나 떠올려져야만 하는 여러 가지 겹쳐진 기대를 지어진 책이라는 형식으로 소개하고/제안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건축가들의 오픈하우스처럼 건축편집자가 생각 속에 짓는 집을 독자들에게 개방하는 일종의 오픈북(open book)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이중용

1974년생.대학에서건축을공부했다.처음에는설계·디자인분야가애매모호하기만해서명료해보이는시뮬레이션분야에흥미를느꼈다.하지만당시에관련공부는대학원에서만가능했고,그사이대학에서설계수업을피하다필수전공한과목에걸려어쩔수없이들었던설계수업을통해건축에흥미를느끼기시작했다.결국설계를전공했다.대학원을마칠즈음글을쓰고싶다는생각을했다.설계사무소를가게될거라는일반적인예상과달리건축잡지사로취직했다.이후다양한소속과직함으로활동했지만작업을하는순간외에는만족을얻지못했다.《와이드AR》2대편집장(2016.2~2018.1)을역임한이후에도여전히만족하지못하고있으며,현재는‘건축편집자’라는역할과건축·정보·매체·인간등에대해사색하는매일을살아가고있다.

목차

·글앞의글

·첫번째생각_탈피
·두번째생각_피라미드
·세번째생각_연체
·네번째생각_왜곡
·다섯번째생각_사례
·여섯번째생각_이터링과레미징
·일곱번째생각_독사와불독
·여덟번째생각_질문과답변
·아홉번째생각_믿음과알음
·열번째생각_우리
·열한번째생각_필문요화

·추천의글_메타포로서의기계,신에대한방백

출판사 서평

메타포로서의기계,신에대한방백(傍白)
전진삼_와이드AR발행인

이글을쓰기위해가제본하여보내온이중용의문집을완독한후책장을덮으면서보니이책의가제목(못생긴생각들)이눈에거슬린다.본문내용과너무다르다.이것은필시저자가작명한것이아니다.확인결과그렇다는답을들었다.최종본이다른책제목을달고나올지,그냥이대로나올지모르겠지만저자이중용은스스로가고백하듯이‘기계가되지못한인간’의전형이다.그런그의생각에입히는옷이라면신중할필요성이있다.
이중용은20대후반부터기계가되기를소망하며인생을설계해왔다.그는‘말그대로평범하고지루한시간을잘견디는’사람으로자신을소개한다.‘가끔은제가마치입력되는정보들을처리하는기계같다는생각’에빠져든다고말한다.그럼에도불구하고이솔직순수한사람은‘기계가되면좋을텐데,기계가되지못하는인간의상태’로늘‘앓는중’이라고자신의현재위치를정의한다.
내가이중용을처음만나게되는시점은그가건축잡지《건축과환경》(현,C3)편집부기자로재직할때로거슬러올라간다.20대인청년이중용은당시건축동네를대표했던웹진《아키누드》에서‘지노(JINO)’라는아이디로활동할때에이미유명세를타고있던인물이었다.온라인상의명성과다르게오프라인에서그를처음봤을때느껴졌던순수무구함은그가40대중반에접어든오늘의시점에도여전한걸보니,이사람은분명나이를먹지않는‘기계인간’에근접해있다는생각을갖게된다.그의표현대로라면이중용은지금‘생각하는기계’다.
그가본문을통해보여주는글쓰기방식은포스트모던하다.사유의파편화된구성,패러디적전략,상호텍스트성,자유연상법등에기댄글쓰기는이중용특유의문장을구성한다.그가‘생각의화살이라는이미지를떠올’리며글을쓰고있다는것,그리고결정적으로‘인간은중력을느끼지만텍스트의장소는무중력상태’여서‘문득저는생각의화살에무게를넣어보고싶어졌’다는고백과함께‘조준해서쏜화살이···슉날아가다가중력을못이겨낙하하고는어딘가툭꽂히듯이···텍스트가감성소비의대상이아니라사유의긴장을만들어낼수있다면좋겠’다는바람으로각각의장은꼬리에꼬리를무는생각의지도와도같다.
책의각장에는고대와현대에걸쳐서그가주목하고있는‘스페셜리스트들’이교묘하게행간을채우며등장한다.앨런머스크(탈피)-절대자(피라미드)-브루노와갈릴레이(연체)-장발장(왜곡)-신(이터링과이미징)-인공지능A.I.(독사와불독)-탈레스(믿음과알음)-슈퍼맨(우리)-스티브잡스(필문요화)가그들이다.모두가신그자체이거나신에근접한세기의존재들이다.저자가이들을콕찝어서생각의화살을쏘는배경을따라잡는것도책을읽는재미가될것이다.이중용이말하는기계는신에대한메타포다.저자가은유적삶을선택한이유를조금은이해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