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우리 땅과 함께 한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벌였던 그 사건에 대해 필자가 오랫동안 생각하고 새롭게 느낀 점을 정리해 본 글이다. 2022년 여름, 더위와 막판 작업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너무 힘들었다. 여행이 주던 ‘느낌’이나 ‘재미’는, 그것을 글로 나타내는 ‘작업’과는 완전히 별개였다. 점잖지 않아서는 결코 안 될 나이에 한밤에 괴성까지 질러댔다. ‘안 하면 그만인 일’ 혹은 ‘안 해도 되는 일’을 왜 사서 고생하는지 스스로 한심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 일과 얽힌 여러 사람들에게 심하게 폐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는 아직도 이 땅에서는 벼슬이기도 한 ‘나이 먹은 자’의 분명한 병통에 속한다.
조선 숙종 영조 연간,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신유한(申維翰)은 7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면서 ‘내 평생 시서(詩書)와 문장에 힘쓰며 살았지만 북으로 중국에 가서 사마천(司馬遷)의 옛터를 보지 못하였으니 운명이로구나’하며 애통해하였다. 젊어서부터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고 대과 회시(會試)에서 장원급제까지 하였으며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오며 『해유록(海遊錄)』이라는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에다 그 격심한 당쟁 속에서도 별 험한 꼴 보지 않고 천수를 누렸지만 그는 평생을 스스로 불우하다 여겼고 자신의 인생을 슬퍼하였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채워지지 않은 출세에의 갈망이었다. 시골의 지극히 한미한 집안 출신에다 외가의 서얼 핏줄이 관련되어 내내 승진의 발목을 잡았다. 물론 당시로선 결정적인 흠이었다. 그럼에도 서얼허통(庶?許通)이라는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 과거에 응시하는 행운을 누렸지만 실상 그런 것은 금방 잊혀지기 마련이다. 과거시험 동기(이때는 同榜이라 하였다)들은 한창 참판(지금의 차관)의 벼슬을 지나고 있는데도 나이 60이 되어서 시골 수령을 전전하는 신세가 그의 자존심을 죽을 때까지 건드렸다. 젊어서 서울 남산에 올라 도성 안을 내려다보며 ‘이곳 서울 출신은 저렇게나 잘 나가는데’라고 하며 ‘시골 출신의 비애’를 한탄하였고 ‘세 명의 임금을 섬기면서 그저 미관말직이니, 책을 만권 읽었다 한들 다만 속을 끓일 뿐이네’라 하였다. 그 안타까움에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도무지 자족(自足)함이 없었다.
내가 볼 때 그의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이른바 ‘잘 나갔던 왕년’이다. 자신의 시문에서 장원급제자로 자칭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그에 대해 ‘까다롭다’ ‘거칠다’는 평이 많았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젊은 시절 한때의 큰 영광은 자칫 후일 인생의 독이 되기 쉽다. 물론 그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본인이 남들보다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 불행을 끼고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또 그 점을 병통으로 여겼다. 그리고 깊이 궁구한 끝에 그 원인을 찾았으니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문장’ 그 자체였다. 문장액운진(文章厄運臻), 바로 그 문장이라는 것이 액운을 부르는 것이라고. 예나 지금이나 너무 뛰어난 글재주나 문장은 액운과 연관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찌 꼭 문장에만 한정되랴. 돈이든 명예든 출세든 애정이든 무언가에 도를 넘는 집착은 결국 액운을 부르기 마련이다.
조선 숙종 영조 연간,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신유한(申維翰)은 7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면서 ‘내 평생 시서(詩書)와 문장에 힘쓰며 살았지만 북으로 중국에 가서 사마천(司馬遷)의 옛터를 보지 못하였으니 운명이로구나’하며 애통해하였다. 젊어서부터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고 대과 회시(會試)에서 장원급제까지 하였으며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오며 『해유록(海遊錄)』이라는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에다 그 격심한 당쟁 속에서도 별 험한 꼴 보지 않고 천수를 누렸지만 그는 평생을 스스로 불우하다 여겼고 자신의 인생을 슬퍼하였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채워지지 않은 출세에의 갈망이었다. 시골의 지극히 한미한 집안 출신에다 외가의 서얼 핏줄이 관련되어 내내 승진의 발목을 잡았다. 물론 당시로선 결정적인 흠이었다. 그럼에도 서얼허통(庶?許通)이라는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 과거에 응시하는 행운을 누렸지만 실상 그런 것은 금방 잊혀지기 마련이다. 과거시험 동기(이때는 同榜이라 하였다)들은 한창 참판(지금의 차관)의 벼슬을 지나고 있는데도 나이 60이 되어서 시골 수령을 전전하는 신세가 그의 자존심을 죽을 때까지 건드렸다. 젊어서 서울 남산에 올라 도성 안을 내려다보며 ‘이곳 서울 출신은 저렇게나 잘 나가는데’라고 하며 ‘시골 출신의 비애’를 한탄하였고 ‘세 명의 임금을 섬기면서 그저 미관말직이니, 책을 만권 읽었다 한들 다만 속을 끓일 뿐이네’라 하였다. 그 안타까움에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도무지 자족(自足)함이 없었다.
내가 볼 때 그의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이른바 ‘잘 나갔던 왕년’이다. 자신의 시문에서 장원급제자로 자칭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그에 대해 ‘까다롭다’ ‘거칠다’는 평이 많았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젊은 시절 한때의 큰 영광은 자칫 후일 인생의 독이 되기 쉽다. 물론 그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본인이 남들보다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 불행을 끼고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또 그 점을 병통으로 여겼다. 그리고 깊이 궁구한 끝에 그 원인을 찾았으니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문장’ 그 자체였다. 문장액운진(文章厄運臻), 바로 그 문장이라는 것이 액운을 부르는 것이라고. 예나 지금이나 너무 뛰어난 글재주나 문장은 액운과 연관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찌 꼭 문장에만 한정되랴. 돈이든 명예든 출세든 애정이든 무언가에 도를 넘는 집착은 결국 액운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 땅에 그가 있었다 (땅과 사람의 인문학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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