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디 시티 (조아라 장편소설)

윈디 시티 (조아라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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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아라 장편소설 『윈디 시티』. 시카고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담조는 어느 날 우연히 또 다른 한국인 유학생을 알게 된다. 지인으로부터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자살을 기도했었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시선을 준다. 그러다 퍼포먼스 공연에서 그녀를 다시 발견하고, 담조는 그녀에게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인 형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담조와 하다. 하다가 계절학기로 듣는 수업 조교는 바로 담조였고, 두 사람은 점점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담조는 그녀를 마음에 품게 되고, 하다 역시 그렇지만 그녀에겐 그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는데…….
저자

조아라

저자 조아라는 시카고 예술 대학에서 순수미술학부를 졸업하고 현재 뉴욕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두 젊은 작가의 저릿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러 형태의 인연들을 그린 <윈디 시티>(2016), 가족들의 사랑을 그린 <권씨 육 남매 장녀 이야기>(2012), 주방에서 펼쳐지는 두 청춘의 열정을 그린 <디어 셰프>(2013)를 썼다.

목차

1.
2.
3.
4.
5.
6.
7.
8.
9.
10.
11.
가고 난 자리에 피어난 바람
작가 후기

출판사 서평

유일하게 삶의 의지가 되어주던 사람을 잃고 찾은 바람의 도시 시카고.
거기에서 만난, 그리운 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


시카고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담조는 어느 날 우연히 또 다른 한국인 유학생을 알게 된다. 지인으로부터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자살을 기도했었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시선을 준다. 그러다 퍼포먼스 공연에서 그녀를 다시 발견하고, 담조는 그녀에게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인 형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담조와 하다. 하다가 계절학기로 듣는 수업 조교는 바로 담조였고, 두 사람은 점점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담조는 그녀를 마음에 품게 되고, 하다 역시 그렇지만 그녀에겐 그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는데…….

여름 하, 아름다울 다.
고요할 담, 새길 조.

여름을 아름답게 여길 수 없는 그녀와
고요하게만 살아야 하는 그가 만났습니다.

삭막한 겨울이 물러가고
봄기운이 가득한 어느 날
푸름이 가득한 곳의 윈디 시티.

“이렇게 가만히 시카고의 야경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거든요.
어쩐지 따뜻하고, 위로를 주는 것 같아서.”

꿈이 있는 그곳, 시카고에는…….

“돌아가자, 윈디 시티로.”

그들이 있다.

-출판사 리뷰 and 만든 이 코멘트

사랑하는 이를 잃고 떠난 타국에서 만난 운명 같은 사랑.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지닌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한다. 똑같은 사람을 잃은 기억에 두 사람에겐 잠깐의 아픔도 있지만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다시 마주보기를 택한다. 바람의 도시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그 바람 속에 슬픈 기억을 날려 버리고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 편집자L

담조는 왠지 형의 느낌이 나는 그녀에게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 되더라도 포기할 수 있었다. 하다는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관계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픔이 있던 이들이 낯선 도시에서 서로에게 이끌리듯이 사랑에 빠졌다. / 편집자C

태어난 땅에서 내 존재를 외면당하는 서글픔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괴로운 기억만 남은 고향을 떠나는 이의 마음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고향’은 꼭 장소일 필요가 없다. 그러니 서로에게 고향이 되어준 이들은 어느 곳에서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 편집자J

- 책속으로 추가

복도 맨 끝에 있는 실기실에서 남색 앞치마를 입은 수아가 문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뭘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오라고 해?”
빈 교실에서 홀로 작업 중이었는지 넓은 공간에 학생이라곤 달랑 수아 한 명뿐이었다. 담조처럼 그녀의 등쌀에 못 이겨 이곳까지 행차한 석진은 ‘내 말이 그 말이다’라는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일 크리틱 있다고, 그림 좀 봐달란다.”
“……우리는 영상이랑 사진 전공이잖아.”
바지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담조는 고개만 돌려 수아를 쳐다봤다.
“차라리 네 친구들한테 물어보지그래.”
“전공 다르다고 그림을 못 봐? 둘 다 아무 전시회나 잘만 쏘다니면서 내가 부탁만 하면 그렇게 생색내더라.”
눈을 가늘게 뜨고 비죽거리던 수아는 어서 보라는 듯 벽에 늘어놓은 그림 네 점을 가리켰다.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담조는 몸 방향만 슬쩍 비틀어 그림들을 주시했다.
“뭐…… 잘했네.”
“그게 다야?”
“그럼 여기서 더 얘기할 게 있어?”
“크리틱 하는 것처럼 말해 달라고, 크리틱!”
“정말 진심으로 할까?”
슬쩍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짓궂어졌다. 장난스러워 보여도 그 안에 감춰진 진지함을 알고 있는 수아는 뭐라 반박하려다가 포기한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됐어. 보나마나 감동이 없네, 취향이 아니네, 독설만 늘어놓을 거면서.”
“잘 아네.”
씩 웃은 담조는 수아의 앞머리를 장난스럽게 흩뜨렸다. 그런 그를 쳐다보는 수아의 눈빛이 은밀하게 흔들리는 걸, 석진은 묵묵히 지켜보았다. 꾹꾹 숨기려 해도 못다 한 순정을 전부 감추기엔 그의 사촌동생은 아직 어렸다.
“그럼 우리 간다.”
“잘 가라! 하여간 둘 다 쌍으로 못됐어.”
일하러 가기 전에 잠시 들른 거라 그들은 수아가 뒷정리하는 걸 기다려 줄 수 없었다. 반쯤 빨다 만 붓을 손에 쥐고서 소리치는 그녀를 뒤로하고 석진은 킬킬거리며 교실 문을 닫았다.
“어휴, 저 녀석 갈수록 피곤해지네.”
“봐줘야지. 한국에서 힘들게 붙은 대학들 다 놔두고 형 따라 여기까지 온 거잖아.”
“나를 따라?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 아니지?”
담조는 별다른 대답 없이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그것이 더 이상 이 주제로 입을 열지 않겠다는 것임을, 그리고 그걸 꺾기엔 그가 소고집임을 잘 알기에 석진은 그저 속으로 ‘불쌍한 내 동생’ 하며 찌뿌듯한 목을 문질렀다.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가던 중, 담조의 눈에 유리 진열장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가 들어왔다. 걸음이 저절로 느려지다가 이내 그 앞에 멈춰 섰다. 꽤 널찍한 진열장 안을 가득 채운 캔버스 한 점. 두 팔 벌려야 간신히 잡힐 것 같은 너비와 그의 상체만 한 높이의 유화 작품이었다.
젯소를 칠하지 않은 날것의 캔버스 위에 여러 개의 사람 손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검은 물감 사이로 유영하고 있었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비율에도 맞지 않고 시점도 맞지 않았지만 역동적이고 난폭했다. 보는 이에게 한 차례씩 폭격을 퍼붓는 것 같았다. 발바닥 밑에서부터 피어오른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뭐 해? 어서 가자.”
“아, 응.”
학생들 작품을 보여주려고 만든 진열대 같은데, 아쉽게도 이름이 없었다. 문을 열고서 기다리는 석진 때문에 담조는 결국 뭉그적거리며 억지로 발걸음을 떼었다.
“왜 그래?”
“아니, 좀…… 오랜만에 맘에 드는 그림을 봐서.”
“호오, 구담조의 극찬인데. 옆에 수아가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거야.”
석진이 키득거리며 응수하는 사이, 그들은 계단을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와 복도 맨 끝에 있는 퍼포먼스과 전용 대강당으로 향했다.
「조명 다시 한 번 켜봐.」
「프로젝터 점검 끝났어?」
「누가 샌드백 좀 더 가져와 봐! 삼각대 흔들리잖아.」
크림색 불빛이 은은하게 깔린 대강당은 분주했다. 내일 저녁에 있을 퍼포먼스 쇼의 오프닝 리셉션과 그 전에 있을 리허설에 맞추려면 오늘 반드시 모든 설치 작업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모두들 정신이 없었다.
총괄 지휘자인 데이빗은 대강당 한복판에 서 있었다. 카메라 배치에 대해 의논하는 건지 퍼포먼스과의 학장과 도면을 보며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을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왔어?」
담조보다 두 살 많은 석진은 작년에 석사를 마친 뒤 학교 행사 전담 스태프가 되었다. 그런 그가 아직 학생인 담조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내일 있을 MFA 퍼포먼스 쇼를 준비하던 중 촬영 어시스턴트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귀찮은 건 죽어도 하지 않는 도도한 구담조를 설득하느라 조금 애먹었지만 꽤 높은 일당은 그의 콧대를 부러뜨리기엔 충분했다.
「우리가 혹시 늦은 거예요?」
데이빗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딱 맞춰서 왔어. 아 참, 미디어 센터에서 연락 왔는데 우리가 맥클린까지 갈 필요 없대. 여기 콜럼버스까지 사람 보내준다고 했거든.」
「그거 다행이네요.」
맥클린 빌딩은 학교 건물들 중 하나로, 그곳에 위치한 미디어 센터가 영상학과들이 쓰는 전문 카메라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콜럼버스 빌딩은 다른 건물들과 제법 떨어져 있어서 직접 장비들을 보내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어라, 쟤는…….」
촬영 계획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도중, 문득 고개를 든 석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담조도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을 따라 강당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스무 살 갓 넘었을까. 강당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아담하고 앳된 동양 여자였다. 미디어 센터에서 왔는지 그녀는 카메라 가방을 잔뜩 실은 검은 카트를 끌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푸른 스키니 진에 하얀 티셔츠. 그 위에 걸친, 자작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빈티지 풍의 조끼. 오목조목한 인상과 옷 스타일을 보자마자 한국 유학생일 거란 직감이 들었다. 담조는 다시 석진을 쳐다봤다.
「왜?」
「아니, 그게…….」
데이빗은 다른 쪽을 점검하느라 잠시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망설이듯 머리를 긁적인 석진은 주위를 살피다가 이내 목소리를 낮추며 한국말로 입을 열었다.
“수아가 한국에서 예고 나온 거 알지? 저번에 집에 데려다주다가 우연히 저 애랑 길에서 마주쳤거든. 짧게 인사를 나누기에 아는 사이냐고 물었더니, 예고 일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 자살 기도한 애로 유명했다더라.”
무심하기만 하던 담조의 눈이 그제야 석진을 향했다.
“자살 기도?”
“응, 여름방학 후에 갑자기 학교를 안 나와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애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있었대. 그 후엔 시골로 전학 갔다는 얘기만 들리고 아무도 소식을 몰랐는데 여기서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더라고.”
아무 말 없이 미간을 찌푸린 담조는 손에 든 카메라 배치도를 보다가, 다시 여학생을 흘긋 쳐다보았다. 카메라 담당자를 찾고 있는지 여학생은 여전히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자살. 그 위화감 섞인 단어에 기분이 나쁘거나 측은함이 드는 건 아니었다. 호기심도 들지 않았다. 그저, 본의 아니게 뒷담을 하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찜찜했다.
여자와 눈이 마주친 건 그때였다. 옆에 있는 남자의 도움으로 카메라 담당자를 찾은 게 분명했다. 순간 뜨끔하는데 여학생이 카트를 밀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두 분 중 누가 석진이죠?」
여자의 영어발음은 부드러웠다. 과장스럽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