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녘이 밝아오면 1 (밀밭 장편소설)

서녘이 밝아오면 1 (밀밭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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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밀밭 장편소설 『서녘이 밝아오면』제1권. 잃어버린 것들의 여신 서효가 제일 궁금한 건 단 하나. “올해는 시집을 갈 수 있을까?” 내게도 소중한 사랑이 찾아올까? 여신 ‘서효’는 다정한 짝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만, 지난 백오십 년간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그녀 곁에는 까칠한 집사 ‘차언’뿐이다. 그러던 중 평범한 일상에 연달아 사건이 터지고, 서효는 집사의 눈빛이 차츰 소유욕으로 물드는 것을 느낀다. 서효의 마음도 움직이고 있으니 분명 좋은 일이긴 한데…….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야기는 새로이 시작된다!
저자

밀밭

저자밀밭은
어둠속에서흐린빛을발견하는
환상적인이야기를좋아합니다.
놀러오세요.
blog.naver.com/maruby

[출간작]
君子를사로잡는법
파벽
사야
만국연담(e)
20㎝선인장
클로버부케
사신과달콤한계약(e)
달과떡(e)

목차

서장.백화약방의아가씨
1장.이상적정인
2장.영원한사랑의맹세
3장.야릇한연습
4장.축제여신은입맞춤을부추기고
5장.집사님,입술을열어주세요
6장.낯설지만달콤한
7장.과거,그지독한엇갈림

출판사 서평

잃어버린것들의여신서효는오늘도탄식한다.
그도그럴것이,혼담상대들이하나씩떨어져나간것이다.
모두다알수없는이유로!

"올해는시집을갈수있을까?"

진지한고뇌끝에돌아오는대답이라곤

“벌써백오십년이지났습니다.그냥포기하고저랑사시죠.”

냉정한집사의독설뿐.
그러나절대사내로보이지않던집사차언의눈빛이달라지면서
서효또한가슴이두근거리기시작한다.
하늘이정한제반려는사실가장가까운곳에있었던것일까?

※편집자코멘트

세상에는무수히많은신들이존재한다.영겁과도같은시간을살지만그들의수명도마냥무한하지는않는다.파괴의성향을가진삐뚤어진그의유일한반려는선한마음을가지고악인에게도베풀줄아는그녀가적임자였다.그런그들의인연은쉽게만풀리지않는데……!잃어버린것들의여신서효와그런그녀를돌보는충실한집사차언,과연이둘이어떻게이어질것인가!여러분들도함께상상해보아요!/(편집자C)

백화약방주인아가씨의유일한소원은좋은짝을만나사랑받으며백년해로하는것.하지만혼담은매번거절당하고,그녀의곁에는고개를절레절레젓는집사차언만이남아있다.하지만사실집사의정체는누구도상상하지못했던어마어마한것인데.혼인을바라는아가씨의옆에서차언은이제그만포기하라고하지만그의속내는과연?아가씨의마음이움직이기시작할때몇백년을이어온운명역시다시움직이기시작한다./(편집자L)

잘못전달된연서를받고찾아온서효에게겨울에천둥이치고,여름에눈이내리고,내일아침서녘이밝아오면혼인을고려해보겠다말했던차언의잔인한맹세가천년의시간이흘러설령서녘이밝아온다고해도절대잡은손을놓지않겠다는약조로변하기까지마음을들었다놨다하는요물같은판타지로맨스!/(편집자G)

책속으로추가

배추벌레,배추벌레.
배추벌레는나중에허물을벗고나비가되기라도하지.
별다른이유도모른채정혼을거절당하기나하는자신에게희망은있을까.
지루한표정으로빨래를널던차언이그제야제주인에게눈길을주었다.그는덤덤한나머지살짝무례하게까지보이는눈으로서효의머리부터발끝까지를느리게훑었다.
“확실히,미인이라고하긴좀그렇죠.”
낮게울리는부드러운목소리로신랄한평을쏟아냈다.
“눈이큽니다,일단.너무커요.마주보기가부담스러울정도니까요.”
크면컸지,마주보기부담스럽다는건또뭔가.모르는사람이들으면서효눈이무슨왕방울만하다고오해할만한발언이었다.그냥크고또렷하다정도에서그치면안되나.조용히투덜대는서효였다.
거기서끝나나싶었는데혹평은아직더남아있었다.
“바람불면휙날아갈것같은몸매도문제고요.도대체가영양식을해다먹이는보람이없습니다.”
차언이한숨을푹내쉬었다.
그렇게심각하게한탄할것까지야.서효는왠지억울한심정이되어자신의어깨와팔뚝,허리를만져보았다.
모두한목소리로노래를부르는듯한착각이들었다.
아담아담,보들보들,나긋나긋.
죄다성숙한아가씨와는거리가먼느낌이었다.서효의눈이허공에서다소위태롭게흔들렸다.그녀는필사적으로자신의승부처를쥐어짜냈다.
에이,차언이제대로못봐서그런말을하는거야.딴건그렇다쳐도내가어머니를닮아서가슴은…….
서효의손이말캉한가슴에닿았다.굴곡확인,촉감확인,크기까지……확인?
“음.”
“아무리제가집사라지만엄연히사내인데.”
“괜찮은것같은데.”
서효는아직혼자만의세계에머물고있었다.
“괜찮은거……아닌가?”
“대낮부터실연당하고가슴만지는모습이참괜찮아보이네요.”
목소리는부드럽지만말에쐐기가박혀있었다.그는늘이런식이었다.태연한얼굴로주인아가씨의머리에얼음물을들이붓는식.
서효는그제야현실로돌아와괘씸한집사에게눈을흘겼다.
그러고보니우리집사가너무기다렸다는듯이주인흉을보네.
서효의볼이부루퉁해졌다.
“올해들어벌써셋이나반려를만났다잖아.”
흰매화나무로유명한백화약방에청첩장이세번이나날아들었다.
제일화사한봉투는축제의여신것으로,붉은바탕에수십송이의꽃을금박으로새겨봉투만보고있어도밤새터지는폭죽소리가들릴지경이었다.
먼길이라참석은못했지만들리는소문에의하면사흘내내웃고떠드는소리가끊이질않았다고한다.
즐거웠겠지.축제여신의혼사인데어련할까.
혼례야말로인생에있어다섯손가락안에꼽는잔치다.놀기회라고하면사흘밤낮을멀다않고달려가는여신아희가,자신의혼례라는크나큰놀이판을마다할리없었다.
후회없이기쁜시간을보냈을것이다.
서효가턱을괴고하늘을바라보았다.그녀의마음을아는지모르는지초가을하늘만은무심하게도맑았다.
“차언.”
“예.”
“벌써가을인데,나올해안에는시집갈수있을까?”
“……백오십년하고도열아흐레쨉니다.이쯤되면슬슬포기하시는게.”
가차없는말투.
서효는기품과는동떨어진소리를내며풀썩엎어졌다.
남들은잘도만나는짝을,자신을대관절무슨잘못을해서여태못만나고있단말인가.
서효의목은길어지다못해이제는간당간당떨어질판이었다.
하늘이점지한반려.
대체누구신가요?
얼굴만,아니,옷깃한번이라도좋으니스쳐지나가기라도해주세요.
이쯤되니까솔직히하늘을쳐다보며대놓고물어보고싶은심정이었다.
저기요,천제님!그사람태어나긴한거맞죠?
“하던일이나마저하시죠.”
그러나돌아온것은차언의매정한타박뿐.언제들고왔는지그녀가이층에두고온절구를돌탁자위에내려놓았다.
원망을품은서효의입술이댓발이나나왔다.괜히미움의화살이차언을향했다.
지난번사내도,지지난번사내도서효와단둘이있을때는분위기가좋다가차언을보면흠칫했다.
눈을제대로못마주치는가하면,찻잔이달그락달그락떨릴만큼손을떨기도했다.
“왜그러세요?몸이안좋으세요?”
갑작스런변화에서효가걱정하며물으면다들짜기라도한듯이억지미소를지었다.
사실차언이관련되어있다는것도몇번의혼담이실패로끝나고서야깨닫게된점이었다.곰곰이생각해보니모든사내들이비슷한모습을보였던거다.
이러다삼백년뒤에도차언이시키는일이나하면서사는건아니겠지?
그때까지혼인도못한채로?
“안돼애애…….”
서효의머릿속만큼이나새하얀빨랫감들이바람에하늘하늘날렸다.그앞에서있는차언은향후천년은거뜬할모습으로서효를쳐다보고있었다.
자긴혼인할생각이눈곱만큼도없다던그의말이떠올랐다.
서효는빻고,빻고,혼신의힘을다해또빻았다.
눈물이찔끔나온건기분탓이아니었다.

***


세상엔사람들이알고있는것보다훨씬많은신들이있다.
하늘의천제,저승의대왕,사해의용왕이야다들알겠지만깊이들어가보면신기할만큼그종류가다양한것이다.
이렇게사소한데까지신이깃드나,고개가갸우뚱할정도여서신들사이에는이런농담도돈다고한다.
‘신발의신(神)도있는데도대체어떤신이없겠나.’
겉으로보기에평범한약방주인아가씨인서효는그중에서도‘잃어버린것’을담당하는여신이었다.
약방의한쪽벽전체를가득메우고있는약재함속에는그녀가잠시맡아두고있는것들이있었다.
미처닫지못한싸리문사이로나간새끼고양이.
졸음을참고겨우완성했으나길바닥에흘려버린서당숙제.
옛집에두고온낡은인형부터소중하지만슬픈기억까지도.
모두그녀의손님이었다.
다행히주인의품으로돌아가는것들도있었고,수십년그대로서랍한구석에서쓸쓸히잊히다가주인의죽음과함께사라지는것도있었다.
주인의생사와상관없이저스스로의숨이다하여끝나는것도많았다.
바닥과가까운두번째서랍안에서곤히자던새끼고양이가바로그러했다.
아직주먹보다조금더큰녀석이지만돌려보내라는소식이서효에게날아들었다.어미의보살핌이필요한시기에거리로떨어졌으니살아남기힘든것일터.
작은육신은골목어딘가에서느리지만사늘하게식어가는중이었다.
서효는약재함을열어졸린눈을한녀석의영을꺼냈다.
“나비야,집에가자.”
애옹.
아직잠이덜깨가물가물한눈으로새끼고양이가잠투정을부렸다.
서효는녀석을안아주고가르랑거릴때까지턱밑을긁어주었다.더이상시간을지체할수없어진쯤에야서효는허공에부드럽게호를그렸다.
이계와이어지는검은통로가모습을드러냈다.
“무서워할것없어.쭉가면돼.”
새끼고양이의털이바짝섰다.
끝모르게이어진어두운통로에겁을집어먹은것같았다.
서효는주춤거리며뒷걸음질치는녀석의엉덩이를톡톡두드려주었다.
“더는춥고배고프지않을거야.너도구름위를걷는걸좋아하게될거야.”
그녀의말을알아들은듯경계심이다소줄어들었다.그러나녀석은여전히앞으로나아가지못했다.
서효는쓴웃음을지은뒤통로를향해날갯짓처럼손을저었다.
그러자칠흑처럼어둡던길은순식간에오색찬란한무지개로덧씌워졌다.난생처음보는광경에새끼고양이의눈동자가커다랗게변했다.
황홀하고,신기하다.뭔가좋은냄새도나는것같다.하지만…….
녀석이고개를돌려다시한번울었다.
정말가도되냐고묻는듯한모습이었다.
“어서가보렴.”
그녀의말을끝으로녀석은용기를냈다.
처음한걸음내딛기가어려웠지,걸을수록신이나는듯보였다.
무지개위를구르고달리는녀석의뒤로강아지몇마리와늙은고양이가따랐다.
서효는작은것들의모습이보이지않게될때까지자리를지키다가통로의문을닫았다.
그녀가해줄수있는건여기까지다.
저릿하고쓰린가슴께를꾹누른채그녀는몸을일으켰다.
서랍몇개가비었다.빈공간은서효가들여다보기무섭게다른존재로채워졌다.
“이런,연서를잃어버리면쓰나.”
일부러혀를크게차며허한마음을달래보려했다.거의매일아침마다하는일이지만그렇다고익숙해질일은아니다.
그나저나연서라니달달하네.사람들은어떤말을정인에게보내는지좀볼까.
남의서신을몰래읽는거라양심이살짝찔리지만호기심은어쩔수가없다.
혹시누가아나.약속시간같은중요한정보가담겨있을지.
“인연의신이따로있는건아실테고.”
정인의입술을붉은동백꽃에비유하는대목까지읽었는데,차츰도취되는감상을깨뜨리는누군가가있었다.
한적한약방에또누가따로있겠나.
여지없이차언이었다.
“내일현감댁에서달포치약을타러올겁니다.그때돼서우는소리마시고미리해두세요.”
서효의눈이세상에서제일얄미운인간을향했다.
동네아가씨들의마음을모조리차지하는외모면뭐하나.시원하게틘눈매에선무심함이뚝뚝떨어지고,빈말로라도다정하게대해주지않는다.
곰곰이생각해보면차언이이상하리만치따스했던날도있는것같다.
그게……지금으로부터한백오십년전쯤?
눈가를살짝덮는앞머리를쓸어올리며그가서효를채근했다.
단정한손등에도드라진핏줄은혼인에목매단주인아가씨의가슴을술렁이게할법도하다.
입만안열면말이지.
“아무리신이라도인간의형체를하고있는이상먹어야합니다.”
저놈의잔소리.
“밥을먹으려면쌀을살돈이필요하죠.”
“네,네,제가잘못했네요.”
“그런말투는좋지않습니다.”
도대체천제님은하고많은시종중에왜저런사내를곁으로보내셨을까.
아무리생각해도궁합이맞지않았다.
태평하고낙천적인그녀는차언만아니라면해가중천에걸리도록침상에서일어나질않을터였다.
허리가끊어지기일보직전이되어서야마지못해일어나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