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 마마의 정인 (조은조 장편소설)

대군 마마의 정인 (조은조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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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은조 장편소설 『대군 마마의 정인』.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서책을 훔쳐보다 저승으로 향하게 된 소희. 부용귀의 억울함을 풀어주라는 염라의 명을 받아 부용의 몸에 빙의하여 다시 이승으로 향하게 된다. 소희는 이승에 떨어지자마자 우연히 만나게 된 대군마마 이정에게 부용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청월루로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도리어 그는 제 정인이 되라는 조건을 붙인다. 부용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에 다가갈수록 소희는 저를 둘러싼 감춰져 있던 비밀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소희를 위협하는 손길도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저자

조은조

저자 조은조는
밤, 여로(Storyteller).

출간작
오픈 더 도어

출간 예정작
맞선 계절

목차

序章. 저승길
一章. 대군마마
二章. 적월루
三章. 낙화
四章. 황천
五章. 지밀
六章. 담판
七章. 가약
終章. 정인
작가 후기

출판사 서평

“신분은 그래, 내 정인으로 하지.”
“예에?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서책을 훔쳐보다 저승으로 향하게 된 소희.
부용귀의 억울함을 풀어주라는 염라의 명을 받아 부용의 몸에 빙의하여 다시 이승으로 향하게 된다.
소희는 이승에 떨어지자마자 우연히 만나게 된 대군마마 이정에게 부용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청월루로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도리어 그는 제 정인이 되라는 조건을 붙인다.
부용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에 다가갈수록 소희는 저를 둘러싼 감춰져 있던 비밀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소희를 위협하는 손길도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편집자 코멘트

아비가 쓴 책으로 명예가 더럽혀졌다는 부용귀의 원한을 해결하고자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다. 하여 그녀의 주변 인물들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과연 부용귀의 진정한 정인은 누구이고 그 원한은 무엇인가! 그것을 밝혀가는 소희의 여정이 맛깔나게 펼쳐진다! / (편집자 C)

아버지를 살리기 위하여, 부용귀의 못다 한 생을 다시 살고 그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하여,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소희의 여정. 부용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칠수록 소희는 그녀의 죽음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목숨의 위협은 커져 온다. 소희는 부용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사랑하는 대군마마와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까? / (편집자 L)

저승과 이승,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 그리고 풀지 못한 한.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한의 정서와 권선징악을 기본으로 신비로운 동양 저승관과 달달한 대군마마와의 로맨스가 합쳐진 소설이다. 대중적인 흥행 요소 세 가지가 완벽 삼합을 이룬 흥미로운 이야기! / (편집자 G)

책속으로 추가

“아이야. 정말 그리할 수 있겠느냐?”
“예. 예?”
“네 아비보다야 네 쪽이 좀 더 쓸 만해 보이기도 하고. 어떠냐. 네 아비를 구하고 싶으냐?”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림 속 여인이 고개를 돌려 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소희를 둘러싼 주위의 공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애잔하게만 보였던 여인은 어느새 요염한 구미호처럼 소희를 감싸 안았다. 온몸이 얼음장과 맞댄 듯 차가워 소희가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나 아비라는 말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 아, 아버지를 아십니까? 어디로 가셨는지 아, 아십니까?”
“물론이다. 하나 네 아비는 별 쓸모가 없더구나. 아마 저승길 어딘가에 있을 게야. 만약에 아이야. 너마저 날 실망시킨다면 너희 부녀는 지옥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야. 알겠느냐?”

추위에 이가 딱딱 부딪쳐 소희는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여인이 내뿜는 냉기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 그리하면 어머니는 더 이상 식음을 전폐하지 않을 것이고 예전처럼 단란한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니. 소희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예.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 제발 아버지를 구해주십시오. 약조해 주세요.”
“좋다. 내 약조하마. 하나 이건 알고 있으려무나.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것을.”

동시에 여인이 소희를 어깨를 낚아챘다. 날카로운 손톱이 여린 살을 파고들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여인은 원혼이었다.
필시 나를 산 채로 잡아먹으려는 게야.
어머니! 소녀가 어리석었어요. 서책을 보지 말 것을.
이내 검은 기운이 소희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서책의 글자들 역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도 모자라 저까지 사라져 버렸으니 어머니는 혼자였다. 어떻게든 바짝 정신을 차려 아버지를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에 소희는 시큰해지는 눈을 애써 깜박였다. 그런 소희를 흘깃 바라보던 노인은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찼다.
“대체 이 물건을 어디에 쓰려고 곧장 데려오라는 것인지. 늙어 힘에 부치는구만.”
“할아버지, 대체 어디까지 가실 요량입니까?”
“예끼, 이 녀석아! 네 아까 분명 누구를 찾으러 왔다 하지 않았느냐. 어찌 되었든 내 할 일은 끝났으니 이만 가보마.”
뭐라 물을 사이도 없이 노인은 소희의 등을 떠밀었다. 동시에 바람의 힘이 소희를 공중에 띄워놓았다. 삽시간에 소희는 앞으로 나아가 문턱 수십 개를 넘고는 툭 바닥에 떨어졌다.
아이구야. 절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귀에 꽂혔다. 높다란 계단 위 열 살은 되어 보이는 아이가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많이 아픈 게냐? 쯧. 조심히 좀 데려오라 하였더니 괜스레 노인네가 심술을 부렸구나.”
“얘. 꼬마야. 너 거기서 뭐 하니?”
“날보고 꼬마라 하는 걸 보니 죄는 없구나. 그래도 어쩌랴. 부모의 죄를 대신해 갚겠다는 갸륵한 효성은 높이 사마.”
아이치고는 말투가 꽤나 고상했다. 자신을 보려 한참이나 고개를 꺾어 올리는 소희의 몸짓에 아이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어려 보여도 저승에서는 그를 염라대왕이라 불렀다. 죄를 짓고 저승에 들어선 자들은 부리부리한 눈썹과 기다란 수염, 섬광처럼 쏘아보는 눈빛에 벌벌 떨기 마련이었다.
간만에 맑은 영혼을 가진 인간 앞에 본모습을 내보이는 것이 색다른 기분이었다.
“얘. 우리 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야. 꼬마야. 넌 꽤 높은 사람 같아 보이는데 염라대왕님을 아니? 누나가 꼭 좀 드릴 말씀이 있다고 전해줄래? 부탁이야. 응?”
“바로 네 앞에 있지 않느냐. 내 나이가 올해로 몇인 줄 알고 나면 그 누나 소리는 쏙 들어갈 게다.”
“바로 내 앞이라면……. 그렇다면 혹시 염라대왕님 되십니까? 하면 제 아버지께서 무슨 죄를 지으셨단 말입니까? 죄가 많이 무겁습니까? 어찌하면 갚을 수 있단 말입니까?”
염라대왕은 그저 빙긋이 웃었다.
그 죄가 아주 무겁고말고. 조그만 여자아이의 몸으로 갚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용이란 처녀귀(處女鬼)가 선택한 것은 저 아이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라 경고하였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 것이다.
한데 대체 이 부녀는 무슨 사연이 있어 처녀귀에 홀렸단 말인가. 아무리 세상이 요지경이라지만 인간사는 참 알 수가 없었다.
“죄의 경중은 죄를 지은 네 아비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죄인을 데려오라.”
잠시 후 검은 갓을 쓰고 몽둥이를 든 사내 둘에 이끌려 중년의 사내가 끌려왔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내는 품에 붓과 구겨진 한지를 꼭 감싸 안고 있었다. 이곳에 끌려와서도 소설 쓰기를 놓지 못하고 계셨나 보다.
아버지를 보자마자 소희는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아버지! 어찌 이런 험한 곳에 계셨습니까? 어머니가 많이,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소희야. 내 딸 소희야. 내 너를 보게 될 줄은……. 혹 서책을 본 것이냐? 내 그리 네게 못 보게 하라 네 어미에게 엄중히 당부했거늘.”
“아닙니다. 제가, 제가 경거망동한 것입니다. 혹 아버지께서도 그 처녀귀신에게 당하셨습니까?”
소희를 부둥켜안고 눈물 콧물 흘려대기 바쁘던 윤 진사는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녀귀신이라면, 이 아이도 부용에게 홀렸단 말인가. 결코 순탄치 못할 소희의 앞날을 떠올리자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아아. 다 내 죄로다. 이 못난 아비가 죄인이었다. 이미 소희가 이곳까지 온 마당에 돌이키는 것은 늦었다. 어찌하면 좋을꼬.
“부녀 상봉은 그쯤 해둬라. 소희 너는 이미 네 아비의 죄를 대신 갚겠다 약조했다지. 하면 속히 이승으로 떠날 준비를 하라. 가서 부용귀가 못다 한 생을 살아내거라.”
“저더러 그 여인의 삶을 대신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이것은 명령이다. 네게 한 달의 말미를 주마.”

소희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이승으로 온 뒤였다. 해는 저물어가고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보려고 해봐야 찾을 수가 없는 산기슭이었다.
“저는 앞으로 어찌하면 좋을까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소희가 떠나기 전 아버지 윤 진사가 귀띔해 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느 날 밤, 평소처럼 소설을 쓰는 작업에 집중하던 윤 진사 앞에 부용귀가 나타났다. 자신을 부용이라 소개한 여인은 한이 깊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도 기구한 사연인지라 윤 진사는 투철한 글쟁이 정신을 버리지 못하고 소재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말았으니. 그만 그것을 가지고 소설로 써버리고 말았다.

“아직 미완성된 소설이었다. 좀 더 손을 보려고 놔두었는데 잠시 장에 나갔다 온 사이 그만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냐. 한데 더 큰 문제는 말이다. 내가 쓴 것에서 여러 군데를 교묘히 바꿔놓은 글을 누군가가 세상에 퍼뜨린 것이지. 글쎄 부용이란 여인을 아주 사악하고 몹쓸 여인으로 그렸더구나. 온갖 치정과 불륜으로 얽힌 것이 낱낱이도 적혀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용은 악녀의 표본처럼 꼽히는 인물이 되어 장터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곱씹혀졌다. 그런 처죽일 년은 글쎄 팔다리를 그냥 몽땅 부러뜨려야 한다며 옆집 분이 어머니가 말하는 것을 소희도 들은 적이 있었다.
한때 장안에서 제일가는 기생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그 인물의 소설을 쓴 사람이 아버지였다니. 결과적으로는 그 여인을 두 번 죽인 꼴이 되고 말았다.
푸드덕. 우거진 나무 숲 사이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보였다. 새들도 돌아갈 곳이 있는데 나는 없구나. 어느 한 곳 길을 따라 내려가면 금방이라도 집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곳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소희는 어두운 밤에 집 밖을 나가본 적도 없었다. 부용귀가 이승을 떠돈다는 소문이 돈 뒤로 저녁만 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마당 문을 닫아걸었다.
어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어머니가 떠올랐다. 분명 잠도 못 자고 눈물짓고 계실 텐데.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는 먹먹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안 되지. 안 돼. 내가 이리 넋을 놓고 있어서는 안 돼.”
이왕 이리된 마당에 무엇이라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