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지절 (산하 장편소설)

청명지절 (산하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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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산하 장편소설 『청명지절』. 황제의 금지옥엽, 고귀한 공주님 청명. 그리고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교활한 황족 윤. 하지만 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관계는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여황제를 꿈꾸는 공주 청명은 단지 여인이란 이유 하나로 번번이 황태녀 자리에서 밀려난다. 그런 청명의 가장 큰 적수인 진왕 윤. 동궁을 두고 사사건건 맞부딪치는 둘은 다시없을 앙숙. 토욕혼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돌아온 윤을 보며 청명은 이를 갈지만 둘은 점차 엮이기 시작하고 아옹다옹하는 가운데 청명은 이전엔 몰랐던 윤의 다정함을 알아간다. 그리고 점점 그를 보며 떨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저자

산하

로맨스 소설 작가. 주요 출간작으로 <청명지절>, <오늘밤 잘자요>가 있다.

목차

1 / 2
3 / 4
5 / 6
7 / 8
9 / 10
11 / 12
마지막 이야기 / 외전
작가 후기 / 참고 문헌

출판사 서평

“내 앞을 가로막는 자라면, 그게 누구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장차 중주의 여황女皇을 꿈꾸는 야심 많은 공주, 청명.
직계 혈통에서도 고귀함으로는 단연 으뜸이요, 오만하고 대찬 성정.
영리하고 재기 발랄한, 그야말로 완벽한 왕재.
그러나 정작 십 년째, 청명은 일개 공주의 위에 머무르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닌, 단지 여인이란 이유 때문에!

“어둠 속에서의 밀회라, 취향 참 독특하십니다. 공주?"

그리고 그런 청명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교활한 친척, 진왕 윤.
황제의 앞에선 착한 딸의 흉내를 내느라, 뒤로는 동궁을 넘보는 그 '잡것'을 퇴치하느라 하루가 모자라게 바쁜 어느 날,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왜 자꾸 저 잡놈을 보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

출판사 리뷰 and 만든 이 코멘트

황제가 될 거라 믿었던 여자는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적이 눈엣가시다. 하지만 틀림없이 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의 다정함을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 다정함에 마음이 떨리고 말았다면? 여자의 지위가 바닥을 치던 때, 여자가 황제가 된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여겨지던 때, 청명은 공주이면서 황제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무조건 황제가 될 거라고 우기던 철없는 아이에서 황제가 되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찾는 현명한 여인이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도 찾게 된다. 이야기가 조금 더 길었더라면, 하고 기대와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 편집자L

여자는 황제가 될 수 없다는 편견과 맞서 싸우며, 어릴 때부터 티격거리고 황위를 경쟁하던 이가 첫사랑이었음 깨닫고 혼란스러워 하던 청명은 이어질 수 없었던 사랑이라 숨기려 하였지만, 자신의 사랑에 장애가 없음을 알게 된 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한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쟁취해 내는 청명의 이야기를 함께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 편집자C

여황을 꿈꾸는 야심 공주 청명과 그녀의 경쟁자 진왕 윤. 불구대천의 원수이건만 어느새 정원에 핀 붉은 매화에도, 흩날리는 분홍빛 도하에도,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도 서로가 그려진다. 세상 만물 모든 것이 서로가 된 두 사람. 그들을 둘러싼 야망과 욕심은 점점 부풀어 올라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데……. 과연 황위를 차지하는 이는 누가 될 것인가? 두 사람에게 꽃바람 불어오는 청명절은 찾아올까? 치열하고 애절한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 보세요! / 편집자G

책속으로 추가

“모란도 마마를 보면 부끄러워 꽃잎을 오므릴 것입니다.”
서안의 말을 필두로 줄지어 선 궁인들의 찬사가 뒤를 이었다. 청명은 슬쩍 거울을 끌어당겨 제 얼굴을 비추었다. 깨끗하게 닦인 거울 위로 단정하고 또렷한 미인의 얼굴이 그려졌다. 어딜 보아도 흠잡을 데 없이 어여쁘고 아름다웠다. 어디 그뿐이던가, 이 중주 안에서 그녀는 가장 고귀한 혈통의 소유자였다. 적통에서도 가장 으뜸이다. 죽은 선황의 무남독녀 외동딸인 그녀는 마지막 하나 남은 적통의 황족이었다. 그러니 삼촌이자 양부인 지금의 황제를 제하면 감히 청명이 고개를 숙일 사내가 이 나라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품이면 기품, 미모이면 미모, 게다가 총명하기론 웬만한 학사들을 뛰어넘으니 단연 발군이었다. 청명은 단 한 번도 자신이 다음 대의 여황제가 되리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현 황제가 다행히 후사를 보지 못했으니 이대로라면 황태녀의 자리는 당연히 저, 청명의 것이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한데 어찌 된 일일까, 금년 열여덟이 될 때까지 그녀는 여전히 일개 공주에 머무르고 있었다. 황태녀에 봉해졌어도 진작에 봉해졌어야 할 일.
그리고 그 순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면상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청명은 아득 이를 갈았다.
“연회의 주인이 나라니, 사람 지금 놀리는 거야? 유약하다 못해 비실비실해 보이는구나! 그 어떤 사내도 감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더 위엄 있게 치장하거라. 어서!”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햇살이 산산이 부서졌다. 잔잔한 호수의 표면으로 새하얀 물비늘이 찰랑 일었다. 오후가 되고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정오까지 바짝 기세 좋던 더위는 한풀 꺾이고 뜨겁게 달아오른 열기도 차차 식어갔다.
얇은 옷자락을 희롱하는 바람에 하얀 이마 곳곳 구슬같이 송골 맺힌 땀방울은 절로 말랐다. 한창 음식을 나르고 연단을 정비하느라 바쁜 궁인들을 대신해 바람이 뜨겁게 달아오른 볼을 식혀주었다. 호수 옆에 차려진 커다란 연단 아래로 길게 연회장이 차려졌다. 그 아래 하나둘 들어서는 악사들과 그들이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로 드넓은 광장엔 작은 소란이 일었다. 오색의 화려한 등롱들이 곳곳에 걸리자 태양은 등롱 위로 늘어져 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부산을 떠는 것도 잠시, 어느새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날이 저물기 무섭게 황족과 고관대작들을 태운 마차가 황궁으로 끝없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연회장은 호탕하게 웃는 사내들로 서서히 가득 찼다. 악사들이 연주하는 미려한 음률을 배경으로 그들은 간만에 그늘 없이 즐겁게 웃었다.
어디 오늘이 보통의 연회이던가. 서쪽 변방에 출몰해 한동안 골치를 썩이던 오랑캐들을 소탕한 승자가 귀환했다. 화친의 의미로 공주를 자신의 비로 보내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주장하던 이적들을 완전히 섬멸했으니, 다시없을 대승에 황성의 만백성이 다 함께 축제 분위기였다. 대군이 돌아오던 길엔 백성들이 흩뿌린 꽃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그 환호 소리가 십 리 밖까지 들렸다 하니, 얼마나 대단한 기세였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만의 군사로 이십만의 오랑캐를 전멸시킨, 대승 중에서도 대승이다. 한동안 서쪽 변방에선 아이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했으니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있으랴. 승전보를 들은 황제 역시 전에 없이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바로 그 공적의 중심엔 진왕이 있었다. 오만의 군사를 홀로 이끌고 대승을 거둔 드높은 무훈의 주인공이 귀환했다. 갓 스물을 넘은 이 미청년을 두고 호사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떠들었다. 진왕의 이번 대승이 가져올 이변이 과연 무엇이 될지, 그리고 필연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는 한 여인에 대하여.
연회장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자리한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그 어느 때보다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고 청명은 발을 옮겼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우아한 걸음걸이였다. 황제가 앉을 바로 아래 연단에 올라서 자리에 앉은 청명이 오만하게 좌중을 굽어보았다. 그와 동시에 다들 못 본 척 시선을 내리깔곤 제각기 떠드는 시늉을 한다. 예상했던 바나 참으로 가소롭기 그지없어 청명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는 사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멀리서 낯익은 현주 몇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슬쩍 허리를 곧추세운 청명이 느릿하게 그들을 훑어 내렸다. 얼마 전에 시집을 갔다던 괵왕의 딸, 정연과 그 바로 아래 동생 둘이다. 불쾌하게 이죽거리는 낯짝을 보니 듣지 않아도 저를 찾은 이유가 뻔했다. 가장 선두에 선 정연이 고개를 숙이며 먼저 인사를 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격조하였지요?”
“현주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항상 같지요. 한데 어쩐지 공주께선 안색이 좋지 못하십니다.”
저 독사 같은 계집애. 탁자 아래 감춰진 손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여린 손바닥으로 손톱이 파고들었다. 청명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내 안색이 좋지 못하다니 현주께선 눈이 좋지 못하신가 봅니다? 아주 멀쩡하여 현주의 걱정 따윈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제 눈보다 공주의 안색이 더욱 걱정되니 이리 말하는 게지요. 물론 그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정연이 사뭇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저 가증스러운 얼굴을 마구 할퀴어주고 싶다는 충동을 꾹꾹 억누르며 청명은 태연한 얼굴로 더욱 환하게 웃었다.
“함부로 짚으시는 것이 누가 보면 하늘의 기운이라도 읽으시는 줄 알겠습니다. 예, 이참에 속세를 떠나 여도사로 출가하시는 편도 나쁘지 않지요. 물론 그곳에서도 지금처럼 이리 헛다리만 짚어 앞에 선 이들의 얼굴을 면구스럽게 만드실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만.”
“공주! 같은 가족끼리 걱정이 되어 건넨 말에…….”
“가족이라, 여기 어디 가족이 있단 말이지요?”
나른하니 묻는 말과 달리 청명의 눈매가 날카롭게 번득였다. 비틀려 올라간 붉은 입술에 정연은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한 발 물러섰다.
“황상을 부친으로 둔 나와 괵왕의 여식인 현주가 어찌 같은 가족이라 할 수 있단 말이지요? 폐하께서 친히 수봉(受封)한 나와 그대는 엄연히 그 격이 다를진대, 이리 염의없이 구니 내가 이를 어찌 받아들이는 게 좋겠습니까?”
뒤에 몸을 움츠린 두 어린 동생들은 울먹거리느라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상황.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빨갛게 달아올라 바들바들 떨던 정연이 고개를 숙이며 간신히 중얼거렸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공주께서 부디 용서해 주시지요.”
“아랫사람의 잘못을 덮는 건 웃전의 몫이지요. 다음번엔 이런 불경을 저지르지 않길 바랍니다, 현주.”
빙긋 웃는 낯으로 청명이 정연을 내려 보았다. 비틀비틀 연단을 내려가며 궁인에게 부축받는 꼴을 보니 통쾌한 기분에 실실 웃음이 나왔다. 저 정도 깜냥으로 제게 감히 대적하려던 용기 하난 높이 사야겠다 애써 웃음을 갈무리하며 미소를 지우던 그 순간, 청명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황상께서도 분명 큰 상을 내리실걸세. 아마도 태원 부근에 식읍을 내리시겠지.”
“어디 식읍이 문제겠습니까. 이게 보통의 공적이어야지요.”
이부시랑과 이름 모를 한 젊은 조신이 마주 보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차마 못 들으려야 못 들을 수가 없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는 비단 저 둘만이 아니었다. 사방 천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모두가 제 일처럼 기뻐하며 크게 웃는다. 그깟 공적이 무어가 대수라고 저리 난리를 치는 걸까. 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