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내린 들녘 2 (김서은 장편소설)

별이 내린 들녘 2 (김서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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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서은의 장편소설 『별이 내린 들녘』 제2권.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아스텔은 갈 곳이 없어 수도원에 몸을 의탁한 견습수녀. 정식수녀로서의 서원까지 얼마 남지 않은 늦가을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세이지라는 이름의 낯선 남자가 수도원을 찾아온다. 세이지의 부친인 델플린드 백작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제안. 그것은 절친했던 벗의 단 하나 남은 혈육인 아스텔을 양녀로 삼고 싶다는 것.

아스텔은 고민 끝에 백작의 제안을 수락하지만, 무뚝뚝하지만 호의적이었던 세이지의 태도가 돌변한다. 세이지의 냉대에 낙담하면서도 백작 영애로서의 일상에 차차 적응해나가는 아스텔. 그에게 인정받기 위한 아스텔의 끊임없는 노력에 세이지도 차차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던 와중, 세이지의 생일에 두 사람의 관계를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그녀는 부모님의 과거에 얽힌 끔찍한 진실에 점차 다가가게 되는데…….
저자

김서은

출간작으로 『별이 내린 들녘 1』 등이 있다.

목차

Chapter Ⅲ. 안녕, 알트만
1. 추악한 진실
2. 탈출 시도
3. 성장통
4. 라그랑시아로

Chapter Ⅳ. 별이 내린 들녘
1. 뒤몽 자작가의 세 남매
2. 우연한 재회
3. 오해와 미련
4. 아벨과의 데이트
5. 끝나 버린 첫사랑
6. 5월의 무도회
7. 아스텔의 마음
8. 불타는 극장
9. 사랑, 혹은 용서
10. 영원한 서약

Epilogue - 그 남자의 외조 방법
외전 1.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기념일
외전 2. 어느 음악가의 회고록
외전 3. 장미의 연인

출판사 서평

[줄거리]
부모님과 양부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된 아스텔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 사람을 닮은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아스텔은 저를 둘러싼 세계가 결국 허상이었음을 깨닫고 백작가를 떠나고자 한다. 하지만 제 편일 거라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그 충격에 해서는 안 될 결심을 하고 마는데…….

[편집자 코멘트]
고아인 아스텔은 백작가의 양녀가 된다. 부모의 오랜 친구라는 사람에게로 라고 시작되는 이야기인 별이 내린 들녘. 그녀는 가족의 사랑과 연인의 사랑을 찾고, 받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녹록하지 않았다. 선의가 아닌 엉킨 실타래 같은 인연으로 아스텔의 인생은 험난하기만 하다. 과연 그녀는 자신의 인생과 사랑 모두를 쟁취할 수 있을까? / 편집자 C

19세기 그 어디쯤의 영국과 프랑스가 떠오르는 이야기다. 고아 출신의 견습수녀에서 하루아침에 귀족 아가씨가 된 아스텔. 자상한 양부님과 다정한 오라버니, 화려한 사교계의 이면에는 아스텔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여리고 순진한 소녀는 성장을 한다. 중근세 유럽풍의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거기에 격정적인 멜로까지 한 스푼 더 얹어 추천한다. / 편집자 L

하루아침에 고아에서 백작가의 양녀가 된 여자와, 그녀를 향한 증오와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남자. 유구한 비밀의 신풍 안에서 두 남녀가 겪게 되는 이야기. 이들이 쌓아올린 가파른 이야기의 언덕에 올라보시길 바랍니다. / 편집자 Y

[책 속으로 추가]
원장실은 수도원장이 다른 사람의 손을 타는 것을 싫어하는 탓에 항상 먼지가 많았다. 어디에 뭐가 적혀 있는지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대량의 문서철이 책상과 책장마다 수북이 쌓여 있었고, 구석에 놓인 지구본은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때를 탄 상태였다. 창가의 커튼은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으며, 가장 깨끗한 건 원장실 중앙에 놓아둔 탁자와 소파였는데 손님이 없을 시기에는 그나마도 문서철과 책들로 점령당하기 일쑤였다.
늘 보던 것과 비슷한 원장실의 풍경에서 아스텔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소파에 앉아 있는 낯선 손님이었다. 그것도 척 봐도 귀족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실크햇과 검은 프록코트 차림을 한 성인 남성이었다.
이름 모를 손님에게는 무척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소파는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다. 어쩌면 귀족인 손님이 모처럼 찾아온 덕분에 원장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소파를 정리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스텔은 자신에게 시선을 던지는 젊은 남자를 너무 노골적으로 관찰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조금 전까지 초를 만들다 온 터라 온몸에서 진동하는 꿀 단내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이분은 델플린드 백작의 영식이시란다. 백작께서는 우리 수도원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 중 한 분이시지. 인사하렴, 아스텔.”
“처음 뵙겠습니다.”
백작 영식이라는 남자는 아스텔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고개를 살짝 까닥여 보였다. 수도원장은 곧이어 아스텔을 남자에게 소개했다.
“이 아이가 아스텔 메이어입니다. 이곳에 온 지는 칠 년쯤 되었지요. 또래인 견습 수녀 중에서 가장 총명하고 부지런한 아이랍니다.”
“그런가.”
남자는 흔한 인사치레조차 하지 않았지만 아스텔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봐온 몇 안 되는 귀족 중에는 이보다 더 재수 없게 거들먹대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태도보다 더욱 신경 쓰이는 건 프랜신 원장이 굳이 일하는 도중에 자신을 불러 이 사람에게 소개하고 있는 이유였다.
“이분에게 수도원을 안내해 드리렴.”
“예, 원장님.”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아스텔은 자신을 뒤따르는 남자와 함께 원장실을 뒤로했다. 여전히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한 것과 별개로,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한 삶을 살고 있는 아스텔에게 낯선 손님과의 만남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속세를 동경하는 것은 성직자의 길을 걷는 이가 품기에 적절한 마음가짐은 아니었지만, 아스텔은 본래 자신이 수녀에 어울리는 인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이 와인 숙성실이랍니다. 특히 이맘때 생산하는 아이스 와인은 저희 수도원의 자랑이라고 원장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렇군.”
남자의 목소리에는 티끌만큼의 관심이나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스텔은 원장실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와인과 치즈의 숙성실, 양초, 성화 태피스트리 등의 작업실을 그에게 보여주었지만, 남자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뜨고 싶은 듯 무심하게 굴기만 했다. 이런 시시한 견학 따위는 그가 이 수도원을 방문한 진짜 목적이 아니라는 것처럼.
아스텔은 남자의 저런 무신경한 태도가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것은 아닌지 내내 마음을 졸였다. 원장에게도 어떤 뜻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 남자의 안내역을 맡도록 지시했겠지만, 자신의 미숙함으로 인해 수도원의 원조가 끊긴다면 이후에 일어날 일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뒤를 따라오는 남자의 발소리가 마치 자신을 다그치는 것 같아 아스텔은 더욱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뒤이어 포도원과 양조장, 서고와 기도실, 식당, 숙소 등을 차례로 거쳐 갔지만, 대화의 진전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마지막 행선지인 대 예배당에 들어서고 나서야, 아스텔은 간신히 남자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이 아스텔 메이어라고 했나.”
아스텔은 속으로 뛸 듯이 기뻐하며 남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물론 높으신 귀족 나리의 눈에는 경박하게 비칠 수 있었으므로 기뻐하는 기색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스텔보다 머리 하나쯤 키가 더 큰 남자는 그녀의 자그마한 얼굴을 관찰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스텔은 그제야 남자가 자신과 단둘이 될 때까지 일부러 말을 붙이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얼굴은 어느 쪽을 닮았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아스텔은 잠시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초상화조차 남기지 않은 채 오래전에 타계한 부모의 얼굴이 제대로 기억날 리도 없었지만, 오늘 처음 만난 귀족 남성이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도 짐작이 갈 리 없었다.
“두 분 다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은 잘…….”
“…….”
아스텔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듯이 턱을 매만졌다. 아스텔은 그 틈을 타 머뭇거리며 남자의 얼굴을 관찰했다.
이목구비는 석고 조각처럼 아름답고 섬세했지만, 가늘고 여린 인상과는 거리가 먼 미남자였다. 나이는 이제 이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선명한 시안 블루의 눈동자가 제법 인상적이었다.
남자는 제단과 스테인드글라스를 등지고 서 있었는데, 덕분에 종교적인 엄숙함과 위험한 성적 매력이 공존하는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남자가 생각에 잠긴 사이 그를 몰래 훔쳐보던 아스텔은 갑자기 눈이 마주치자 엉겁결에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시선을 회피해 버렸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 밖에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나이는.”
“열일곱……. 석 달 뒤에 열여덟이 됩니다.”
“딱 맞는군.”
무엇이 딱 맞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아스텔의 얼굴을 지켜보던 남자는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세이지 램버트 알트만이다. 너와는 머지않은 시일 내에 다시 만나게 될 것 같군.”
자신의 이름을 세이지라고 밝힌 남자가 떠난 후, 프랜신 원장은 아스텔을 다시 원장실로 불러들였으나 그녀를 세이지에게 소개한 이유는 일절 설명해 주지 않았다. 만약 그가 정말로 다시 찾아온다면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될 거라고 하면서.
저녁 식사가 끝난 후에야 간신히 방으로 돌아온 아스텔은 낡은 일기장을 펼쳐 오늘 만난 기묘한 손님에 대한 감상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펜촉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종이를 스칠 때마다 희미한 촛불도 함께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알고 계시겠죠? 그 사람이 어째서 여기에 온 건지.”
아스텔은 로사리오 대신 품에서 꺼낸 장미 무늬의 펜던트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내일의 일과를 위해서는 슬슬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일기장을 덮고 촛불을 끈 아스텔은 이윽고 싸늘한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얼마나 왔지?”
“이제 로즈몬드입니다요, 도련님.”
지루한 표정으로 마차의 창밖을 내다보던 세이지는 손안의 회중시계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수도원의 정문을 통과한 뒤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삼십사 분 동안, 그는 벌써 열네 차례나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추수가 끝난 초겨울의 황량한 벌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고, 간혹 눈에 띄는 나무들은 나뭇잎이 전부 떨어진 채 앙상한 나뭇가지만 드러내고 있었다. 지겹긴 하지만 저택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동안은 이 따분한 풍경을 참고 감상해야만 한다. 눈이라도 잠시 붙일라치면 그때마다 포장이 덜 된 시골길의 돌부리에 걸린 마차가 덜컹거렸기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수도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본가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사 개월. 도시 청년이나 다름없는 세이지에게 영지의 시골 생활은 그야말로 죽음과 같은 권태의 연속이었다. 그의 유일한 소일거리였던 사람 찾기는 두 시간 전에 막을 내려 버리고 말았다.
몇 번인가의 허탕 끝에 드디어 ‘진짜’를 찾아냈지만 줄곧 상상했던 것 같은 희열이나 절망은 없었다. 그 소녀가 진짜라는 확신이 들었던 순간, 세이지의 머리를 스친 감상은 고작 한 가지뿐이었다.
이걸로 전부 끝났군.
품을 뒤져 펜던트를 꺼낸 세이지는 로켓의 표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런 조잡한 단서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는 이미 아스텔이 찾고 있던 소녀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스텔 메이어라는 소녀는 그가 아버지의 비밀 방에서 봤던 초상화와 정말 똑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