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흐드러진 란꽃송이 1 (이미은 장편소설)

붉게 흐드러진 란꽃송이 1 (이미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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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미은 장편소설 『붉게 흐드러진 란꽃송이』 제1권. 자하국의 공주님 설란. 그녀는 날 때부터 몸이 약해 왕실의 금지옥엽으로 자란다. 그녀 나이 열여덟이 되어 혜조는 뒤늦게 가례를 준비하고, 그 상대는 자하국에서 제일가는 가문인 최가의 둘째 도령 지환이다. 천재로 이름 높았지만 과거를 보지도 않고 집 밖으로 두문불출하는 덕에 아무도 실체를 본 적이 없다는 그이를 부마로 삼겠다는 왕명이 떨어진다. 그 일환으로 세자의 스승이 된 지환을 처음 본 설란은 그이의 미모에 깜짝 놀란다. 아무 문제없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혼인은, 그러나 정작 지환의 거부로 난관에 부딪치고 여린 공주님일 줄로만 알았던 설란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 지환을 당혹스럽게 한다. 지환이 숨기고 있는, 그리고 설란이 감추고 있는 비밀은 두 사람 사이에 큰 고난을 예고한다.
저자

이미은

저자 이미은은
사랑하는 가족과, DS 그리고 PS가 있기에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 중

목차

1. 서막
2. 각자의 사정
3. 의심
4. 백여우의 저주
5. 대립
6. 대화
7. 가례
8. 호(狐)린
9. 첫사랑
10. 연애

출판사 서평

자하국 공주님과 최가의 도련님,
두 사람이 감추고 숨긴 비밀이 드러나며
파란이 시작된다.


자하국의 공주님 설란. 그녀는 날 때부터 몸이 약해 왕실의 금지옥엽으로 자란다. 그녀 나이 열여덟이 되어 혜조는 뒤늦게 가례를 준비하고, 그 상대는 자하국에서 제일가는 가문인 최가의 둘째 도령 지환이다. 천재로 이름 높았지만 과거를 보지도 않고 집 밖으로 두문불출하는 덕에 아무도 실체를 본 적이 없다는 그이를 부마로 삼겠다는 왕명이 떨어진다. 그 일환으로 세자의 스승이 된 지환을 처음 본 설란은 그이의 미모에 깜짝 놀란다. 아무 문제없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혼인은, 그러나 정작 지환의 거부로 난관에 부딪치고 여린 공주님일 줄로만 알았던 설란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 지환을 당혹스럽게 한다. 지환이 숨기고 있는, 그리고 설란이 감추고 있는 비밀은 두 사람 사이에 큰 고난을 예고한다.

그때였다. 바람이 분 것은.
그 순간이었다. 거짓말처럼 고통이 자취를 감춘 것이.
“그날은 제게 기적이 일어난 날이었습니다.”
지환은 남은 손을 뻗어 설란의 얼굴을 감쌌다.
기적을 말하는 이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당신이 있었고,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보는 시선에 깨달았습니다.”
부인이 나의 기적이라는 것을.

※편집자 코멘트

정치적 상황과 더는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갈 수 없는 공주 설란은 가장 명예롭고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최가의 사내를 부마로 맞으라는 왕명을 받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기로 한 설란과 달리 저주로 인해 가정을 꾸리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는 지환은 이 사태에 기겁한다. 하물며 왕실과의 혼례라니! 지환은 어떻게든 이 결혼을 피하려고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이유와 주변의 상황들이 둘을 결국 부부로 인연을 맺게 하는데, 과연 지환의 저주는 풀 수 있는 것인가! 이 저주의 근본적인 죄는 누구인가! / 편집자 C

[인당수에 핀 연꽃송이]와 [랑을 품은 나리송이]를 잇는 세 번째 시리즈.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신의 후손은 백여우의 저주를 받은 사내와 만난다. 저주, 혹은 천벌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면서 진짜 죗값을 치러야 하는 이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다. 스스로의 잘못이 아님에도 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 원하지 않는 이를 위해 하는 희생, 권력을 위해 손에 쥔 것들을 모두 내버리고 나서야 드는 후회, 누구도 완벽한 가해자도 없고 완벽한 피해자도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행복해지기 위하여 그들은 과거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 편집자 L

‘기적’은 기척도, 표정도 없이 누군가의 어깨에 고요히 날아들고는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기를, 그래서 언젠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왔을 남자 지환과, 참으면 참을수록 더 깊은 상처로 번지는 비밀을 품에 안은 여자 설란.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의 옛 사연과 닮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정말로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 때문에 여생이 예상 밖의 길로 내달리는 일도 생기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지는 이야기. / 편집자 Y

[책 속으로 추가]
“과인이 그래도 장남을 내놓으라 하진 않지 않은가.”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어깨를 쭉 펴고 말하는 혜조의 모습이 참으로 당당해 보여, 서 내관과 박 내관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속으로만.
그도 그럴 것이 최가가 어떤 가문이던가. 개국공신 가문에 대대로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해 내는 걸로도 모자라 언제나 왕의 편에 서는 충신이었다. 게다가 현 최가의 장남이자 차기 가주는 현재 서파의 미래라 불릴 정도로 수재였다. 어린 나이에 과거를 장원으로 통과하고 등청해 재능을 뽐내고 있는 최지문은 세간에서도 유명한 존재였다.
그러니 그를 공주의 부마로 삼게 된다면 대신들의 원망이 끝도 없이 늘어질 게 뻔했음에도 이를 입에 담는 혜조에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그뿐이랴. 왕은 주먹을 불끈 쥐곤 소리 높여 주장했다.
“우리 공주를 데려가겠다는 사내가 자하국 수도를 빙빙 돌고도 남음에도! 내! 오랜 친우인 재원 자네를 생각해! 우리 공주를 눈물을 머금고 보내겠다 이 말이네!”
되레 청하는 이가 더 당당한, 참으로 기이한 혼사가 아닐 수 없었다. 혜조의 딸 자랑에 말이 빙빙 돌았지만 결론은 단순하고도 명쾌했다.
‘네 아들 내놔!’
재원은 왕의 깊고도 심오한 속내를 짐작하며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반은 센 머리칼, 인자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두 눈엔 복잡한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그저 아들이 아까워 이런다는 게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 서파의 수장이자, 왕의 오랜 친우인 최재원은 반백년을 알고 지낸 혜조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얘기를 속으로 삼키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한 번, 두 번. 왕과 술상을 마주한 것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는, 그렇게 가까운 이 앞에서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등청, 혹은 가례이옵니까.”
바짝 마른 목소리에 혜조는 미간을 좁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딸 자랑을 늘어놓던 아비의 낯은 사라지고 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과인은 인재를 썩히고 싶지 않음을 말하고자 함이네. 자네도 자네야. 성인이 된 지 오래인 아이를 대체 언제까지 끼고 살 텐가.”
“그리하지 못할 연유가 있다 해도 말이옵니까.”
또다시 같은 말의 반복이다.
연유가 있다는데 그 연유가 무엇인지는 말해주질 않는다. 스무고개를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길고도 굵은 왕의 인내심도 한계였다. 혜조는 답답함에 성큼성큼 재원의 앞으로 걸어갔다.
재원의 바로 앞에 멈춰 선 그는, 화를 내는 대신 한쪽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낮췄다. 갑작스러운 왕의 행동에 다들 놀랄 법도 했건만 그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최재원이라면 흔히 있는 일이라, 하나같이 그저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할 뿐이었다. 혜조의 깊게 가라앉은 두 눈이 재원을 담아냈다.
“연유를 말해보아라. 서풍-재원의 호-, 과인은 친우의 문제를 헤아려 주지 못할 만큼 속 좁은 군주가 아니다.”
심려 가득한 왕의 목소리에 재원이 고개를 떨궜다. 왕의 손이 늙고 주름진 제 것을 꽉 붙드는 것이 약해진 마음을 잡아 흔드는 것만 같았다. 살갗을 타고 넘어오는 온기에 재원은 턱을 악물었다. 속에 묻은 얘기를 꺼내자면 시작해야 할 곳이 너무도 명백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왕가(王家)를 겨눈 날붙이인지라, 재원의 턱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원망한 적도 있었다.
매일 밤, 매일 낮 홀로 있을 때는 가슴을 치고, 왕과 마주할 때는 바짝 마르는 속을 달래며 견뎌온 세월이 그리도 길었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극단적인 생각을 향해 달려가더라도 고개를 들어 올리면 그곳에는 저를 살피는 왕의 낯이 있었다. 반백년을 알고 지낸 친우가 있었다. 재원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따뜻이 저를 바라보는 왕의 두 눈이었다.
무슨 말을 하건 서기관은 그것을 기록하지 않을 것이며 혜조는 저를 문초하지 않을 터다. 또한 내관들의 입은 돌덩이보다 무거우니 말이 새어 나갈 리도 없었다. 그것을 재원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이…… 실언을 했나이다.”
재원은 오늘도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평생 제가 지고 가겠다 다짐한 고통을 다시금 속에 파묻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답답할 뿐이다. 자하국의 왕은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에 진절머리가 나고 말았다. 혜조는 쇠심줄보다도 더 질긴 친우의 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포기했냐고? 그럴 리가. 혜조가 포기한 것은 재원의 협조를 얻는 것이었다.
“그 마음,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게지?”
“송구하옵니다.”
이렇게 된다면 최후의 수단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설득이 불가능하다면 명령하면 그만인 일. 권력 만세인 것이다.
혜조는 굽혔던 몸을 바로 세우곤 말했다.
“좋다. 그럼 이렇게 하지. 마침 세자의 스승 중 하나가 노쇠해 고향에 내려가 쉬고 싶다 청해 그 자리가 비게 되었다. 어명이다. 최지환은 부마가 되거나, 과거를 치르기 전까지 세자의 스승이 되어 미래의 군주를 위해 분골쇄신해야 할 것이다.”
근엄한 목소리에 재원은 참담함을 느끼며 더욱 고개를 숙였다.
오랜 친우이자 주군인 자하국의 왕이, 최후의 수단을 빼든 것이다.
어명(御命).
거절할 수도 물릴 수도 없는 왕의 명령에, 신하에 불과한 재원은 한숨을 삼키며 그 명, 받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혜조의 시꺼먼 속내를 가리기 위함이라는 것을 눈치챈 서 내관과 박 내관만이 재원을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봄꽃이 막 움트는 이월.
혜조와 재원의 대화를 알 리 없는 설란은 둥근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곁에서 바삐 움직이던 도아의 발걸음이 일순 우뚝 멈췄으니,
“가례야.”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던 설란이 무척이나 가벼운 어조로 툭 뱉어낸 한마디가 어마무시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 있는 도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으나, 생각에 잠긴 설란에게 그 낯이 보일 리 없다. 툭, 툭, 턱을 괸 채 아랫입술을 두드리던 설란은 몸을 일으켰다. 말로 뱉으니 확신이 더욱 커졌다. 방 안을 빙빙 돌던 그녀는 이번에는 꽤나 비장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가례를 올려야 해.”
그 단호한 말에 도아는 슬쩍 설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혹…… 무언가 들으신 건 아니시죠, 마마?”
“듣다니 무얼?”
“아니어요! 그런데 무얼 하신다 하시었죠?”
“가례를 올려야겠다 했어. 이제 더는 힘들다 그리 말씀드려도 고려조차 하지 않으시니 출가외인이라도 되어야지 어쩌겠니.”
“마, 마마…… 설마 다짜고짜 사내 하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