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령 궁주의 신랑 (임지영 장편소설)

태령 궁주의 신랑 (임지영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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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태한산의 산신과 갈문왕의 딸, 운명의 시작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에 접해 있는 신성한 산 태한산 태한산의 산신인 회색 늑대와 갈문왕의 딸이자 외군의 장군인 태령의 운명이 그곳에서 시작된다! 신라의 어린 왕 자비는 사촌 누이이자 외군의 장군인 태령을 태한산으로 보낸다. 흰 개구리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태한산으로 향하는 태령의 앞에 웬 여우가 나타나기도 하고 겨우 도착한 태한산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도 나타나는데.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산신과 태령이지만 산신은 인간이 아니고 태령 역시 인간이자 왕족으로서의 자신을 놓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태령은 겨우 산신을 데리고 금성으로 돌아오지만 왜적의 침입과 태령과 약혼하려 했던 남자의 개입으로 둘의 앞날은 평탄하지가 않은데. 과연 태령을 태한산으로 보낸 자비왕의 목적은 무엇이고 태령과 산신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저자

임지영

저자 임지영은 ‘재능은 끈질긴 인내다’라는 말을 삶의 신조로 삼고 있는 이야기꾼입니다.
아직도 인내가 모자라지만 계속 마일리지를 쌓듯 쌓고 있습니다.
언젠간 마일리지로 재능을 살 수 있기를!

종이책 출간작
김 상궁의 은밀한 매력. 강종사관의 은밀한 유혹. 나는 명랑하다. 야한 로맨스소설.

전자책 출간작
너를 위해 부르는 노래. 떡전교피바다. 장아와 원.

목차

서
장군
새로운 임무
태한산
제물
산신
산신제
돌아가다
전쟁
누명
작별
호국신
외전

출판사 서평

산랑이 어두운 대숲 은신처의 안에서 밖을 바라보았다. 태령의 하얀 얼굴이 달빛을 받아서 은은하게 빛났다. 손을 내밀고 볼을 붉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을 잡으면 안 돼.

자신의 안에서 뭔가가 속삭였다. 그녀의 목숨을 구하고 붉은 달과 검은 까마귀. 일식을 보았다. 파괴가 시작되었다. 감당할 수 있을까. 은회색의 눈동자에 흐릿한 고통이 차올랐다. 어두운 암흑 속에 파묻힌 은회색 두 눈이 달빛을 받고 있는 태령을 뚫어지게 보았다.

출판사 리뷰 and 만든 이 코멘트
왕족으로 태어난 여인은 군인으로 자라고 왕명을 받아 떠난 길에서 여인이 된다. 충성을 맹세한 왕의 명령과 사랑하는 이의 사이에서 태령은 바른 길을 찾고자 노력한다. ‘여인이라서’가 아니라 ‘여인이기에’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독자들은 역사 속 어느 한 구석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신비한 이야기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 편집자L

신라의 궁주이자 장수인 태령은 어느 날 왕의 명령으로 인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떠나는데, 그것은 모두 왕의 계략이었다. 바로 태령을 태한산의 산신의 신부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태한산에서 만난 산랑에게 이끌리는데.....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떻게 둘이 이어질 것인가를 상상하며 읽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 편집자C

한 권의 로맨스 소설을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이에게는 그 힘이 역사적 배경일 수도, 또 다른 이에게는 문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얘깃거리이자 독자가 기댈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건 아무래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에는 하루아침에 제물이 되어버렸음에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 여자주인공이 있습니다. 완벽하게 조각된 남자주인공이 차고 넘치는 이 로맨스 소설계의 한복판에서 태령은, 연약함·조신함과는 거리가 먼, 책임감과 용기를 가진 인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몸서리칠 정도의 달달함은 없어도 번뜩이는 주인공들의 눈빛을 매개로 금세 이 소설에 몰입하실 수 있을 거예요. / 편집자Y

[책 속으로 추가]
“태한산이 어떤 산입니까? 하늘님이 천지에서 내려온 맥입니다. 그곳에서 갈라져 하늘님의 아들과 그 아들들이 나아간 길의 중심입니다. 그곳의 산신님은 천지의 호랑이도, 곰도 아니고 흰 사슴도 아닙니다. 그곳의 산신은 회색 늑대입니다. 수명이 이미 이백년이 넘으신 그분은 하늘님의 아들로, 지상의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그분의 마음만 잡을 수 있다면 하늘의 뜻은 비켜갈 것입니다.”
자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소년 왕을 지켜보는 천부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소년왕의 손을 붙잡았다.
자비는 신성을 입고 태어난 왕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별의 뜻을 읽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눈치 못 채게 할 정도로 영리했다. 가문의 힘을 업은 듯 겸손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가문의 막강한 힘이 없더라도 그는 자신의 권좌를 지킬 머리가 있었다. 그러나 신라는 약소국이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벌써 율령을 발표하고 국호를 세우고, 법전을 공포했는데도 신라는 신궁에서 점괘를 받고 신의 대리인이 왕의 정책에 개입을 하였다.
아비의 형이 계략에 빠져 고구려에서 오지 못한 적이 있었고 아비의 동생이 왜의 도움 요청으로 건너가 붙잡혀 삼십 년이 지나서야 재상의 용맹으로 겨우 돌아왔다. 게다가 이제는 고구려의 힘이 너무 강성했다. 광개토왕과 그 아들은 중국을 광대하게 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아래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백제와 가야의 협공으로 멸망의 위기를 겪던 그때, 고구려는 도움을 핑계로 서라벌에 군사를 입성시켰다. 그 군사들은 여전히 불량스러운 모습으로 서울의 번화가를 활보하고 다니곤 했다.
백제는 기운이 꺾였다고는 하지만 정교한 사회체계를 갖추고 있어, 타국으로 무수한 첩자와 군사들을 보내고 있었다. 국지전은 끝이 없고 틈만 나면 서로를 공격했다. 영토분쟁은 일상이었고 첩자를 보내고 간자를 잡아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별점은 신라의 멸망을 나타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그의 아비가, 또 그 아비의 아비가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태한산의 늑대를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천부인이 기억을 짜내며 인상을 썼다. 태한산의 신성을 적어놓은 두루마리에는, 이변들과 그것들의 대가가 적혀 있었다. 산신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는 산신이 원하는 것을 바치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가 원하지 않지만 원하는. 그가 갖고 있지 않은 오로지 단 하나. 그의 마음과 눈과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
“제물, 제물이 필요합니다.”
자비가 작은 손을 맞잡았다. 아이 같은 가느다란 목소리가 떨리면서 흘러나왔다.
“제물? 제사라도 지내야 한다는 것인가?”
천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아니었다. 제사 따위의 그런 뻔한 수로는 태한산의 산신을 속일 수 없다. 그리고 속이는 것이 아니라 계약을 맺어야 했다. 마지막까지는 어렵다 하더라도 마음을 얻는 순간에는 그를 완벽하게 속여야 한다. 멸망을 비켜가려는 의도를 들켜서도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제물이 허술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하늘의 뜻을 산신님도 아실 것입니다. 아무리 크게 제사를 지내보았자 받지 않으실 터이지요. 산신님의 눈과 뜻과 손을 속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제물은 특별해야 합니다. 사람을 바쳐야 합니다. 완벽하게 순결한 여인으로. 하지만 태한산의 산신을 속여야 하니 심약하고 나약한 여인은 가능치 않습니다. 그, 그것을 어떻게…….”
천부인이 말을 더듬었다. 냉철하고 까다로운 아미가 일그러졌다. 절망감이 밀려온다. 말하고 나니 조건에 맞는 여인은 없었다. 도대체 어느 여인이 순결하고 또 강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여인이 이 세상에 있기는 하단 말인가.
자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적임자가 있다. 그런 여인이. 산신을 속일 수 있는 여인이.”
천부인이 아직도 그의 뜻을 모르고 초조한 듯 손에 쥔 나뭇가지를 꽉 쥐었다. 하지만 소년 왕의 머릿속에는 계획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참 검토를 하고 나서야 실제로 충분히 자신의 뜻을 이루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자비가 천부인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일곱 살에 어울리는 환한 웃음이 얼굴에 퍼졌다.

어두운 밤이다. 왕궁을 바라보는 태령의 눈이 어둡게 변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기와의 끝에 부정과 재난을 막으려는 작은 괴수들의 동상들이 지상을 노려보며 줄지어 서 있었다. 사실 이렇게 늦은 밤에는 누구도 왕궁의 출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낮에도 왕궁에 들어오기 싫어했다. 더구나 제일 싫어하는 것은 전쟁에서 돌아온 직후이다.
전장에서 돌아온 밤이면 부하들과 함께 술집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술을 끝없이 퍼마시는 것이 태령이 유일하게 하는 일이었다. 아침에 보좌관들의 손에 질질 끌려서, 아니면 근처의 관에서 나온 관병들에 의해서 집에 던져지는 것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태령이 야밤에 왕궁의 앞에 서있다.
출격 후 돌아온 밤에는 절대 궁에 들어오지 않는 버릇을 언제나 소년 왕은 무시한다. 서쪽의 국경에서 적들의 침입이 일곱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군대를 끌고 가서 격퇴를 했지만 적들은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듯 밀려났다가 다시 슬금슬금 발을 들이민다. 태령이 내궁의 앞에서 피곤한 얼굴로 호위군을 노려보았다. 호위가 안으로 말을 전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명이 떨어진다.
“외군, 국경군을 책임지는 급찬. 장군 김태령이 대왕을 뵙습니다.”
인사를 하는데 그녀를 부른 어린 왕은 어디에도 없다. 궁은 어두웠다. 내궁의 안으로 들어가자 소년 왕의 후원이 넓게 펼쳐졌다. 간간히 얼굴을 아는 궁인들과 귀족의 여인들이 지나가며 친근하게 눈웃음을 보였다.
나무가 무성하고 새들이 많아서 작은 숲을 연상시키지만 나무들은 억세고 새들은 길들여지지 않아 숲으로 들어가기 좋아하는 대신들은 많지 않았다. 태령이 숲의 입구에 무심하게 서 있자 뒤에서 따라 들어온 부장군 교운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또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태령이 한숨을 쉬었다. 낮에 활에 비껴 맞은 팔뚝은 욱신거리고 대충 닦은 갑옷은 피로 끈적거려 움직일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났다. 기분도 나쁘고 머리는 더 아프고 화는 치솟았다.
“모르겠다. 술이나 마시고 들어가 잤으면 좋겠다.”
교운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숲에서 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부장군은 술이나 마시고 들어가 잘 것이지 어째서 과인의 궁 안에 있는가?”
태령과 교운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가 숲에서 걸어 나왔다. 뒤에서 호위군 대장인 커다란 몸집의 적신이 따라 나왔다. 다시 그 뒤로 신녀이자 신의 사제인 천부인이 우아한 얼굴로 서 있었고 또 그녀의 뒤로 호위와 시녀들이 한 무리 줄지어 서 있었다.
작은 새들이 왕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 소년의 입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 말투와는 전혀 동떨어진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김태령, 외군 사령관 장군. 그래, 내 혼인 요구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태령이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과 함께 한숨을 쉬었다. 이제 화도 나지 않는다. 말마저 냉담하고 매끄럽게 흘러나온다.
“불가합니다.”
자비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생긴 얼굴의 표정이 앙증맞게 귀엽다. 그런데도 입에서는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 말들이 쏟아진다.
“이제 ‘죄송합니다만’이라는 어휘도 빼먹습니다. 어째서요? 장군이 이미 혼인 적령기는 넘겼다고 다들 그러던데?”
태령이 인상을 썼다. 처음에는 화도 내고, ‘죄송합니다만 불가합니다’라고 또박또박 말을 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죄송이고 나발이고 다 떼고 그냥 불가하다고만 하고 있다. 그녀는 자비왕을 냉담하게 바라보았다.
자비왕의 어머니, 눌지대왕의 왕후는 대왕의 장례를 치르고 겨우 감기에 걸려 갑작스럽게 죽었다. 어차피 여리고 여린 감성의 주인이라 어린 왕의 의지가 되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존재만으로 큰 의미였을 텐데. 살짝 누그러지려던 마음이 순간 흠칫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