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당록 (이이담 장편소설)

조선반당록 (이이담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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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꽃의 그림자로 자란 여자와 빛의 그림자가 되기로 결정한 남자. 역사 속 숨겨진 그들의 이야기.
형조참판인 아버지의 명으로 기루 영월관이 운영하는 상단의 밀수에 대해 조사하던 율은 어느 날 상단에 소속된 무사 화영과 맞닥뜨린다. 예상치 못한 위기에서 율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화영은 점차 그를 동경하게 되고, 자신을 길러준 영월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생모의 벗으로부터 경혜공주의 반당직을 권유받는다. 고심 끝에 반당이 되기로 결심한 화영은 공주의 궁방에서 다시금 율을 만난다. 화영이 여인임을 알지 못한 율은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치며 친아우처럼 살뜰히 챙긴다. 그런 그에게 갈수록 생경한 감정을 느끼게 된 화영은 행여 저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변할까 두려워 자신이 여인임을 더욱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작된 계유정난. 경혜공주를 모시는 반당인 화영과 영양위의 형인 율은 파란만장한 역사에 휩쓸리게 된다.
저자

이이담

저자이이담은겨울의끝자락에태어난첫째딸이자,여운이남는문장을쓰고싶은만년초보이야기꾼.[그대와함께마지막춤을],[미인도(美人圖):신수의여인]을출간했으며,현재[왕관을지켜라]와차기작을준비하고있습니다.

목차

1.영월상단
2.찬달
3.반아(伴兒)
4.전조(前兆)
5.불안의씨앗
6.어긋나는마음
7.탄야(歎夜)
8.차마하지못한말
9.피할수없는길
10.불씨
11.월하정인(月下情人)
12.끝나지않은비극
13.정해진인연
14.마지막또한너이기를
15.최후의결전
外.못다한이야기
작가후기

출판사 서평

“너는화영이라는이름으로,꽃의그림자로긴세월을살아왔다.지금까지그래왔고앞으로도그러할테지.하지만오늘밤만큼은전부잊거라.네가지금까지살아왔던삶도,짊어져야했던본분도.”

어찌하여그는이토록뿌리칠수없을만큼찬란한것일까.

“은애한다.온마음을다해.”

행화촌에서나고자랐지만,금이아닌검을잡은여인.
그리고공주의반당이된그녀의앞에운명처럼나타난한남자.

“폭풍우처럼몰아쳤던지난세월도훗날에는몇줄의문장만으로기록되겠지요.하지만간결해보이는글자뒤에도이토록수많은삶이잠들어있다는사실을,누군가는알아주길바랍니다.”

혼란하던역사의뒤안길,기록되지못한이들의숨겨진이야기.

[편집자서평]
역사에등장하지만또한등장하지않는사람들의이야기.‘반당’이라는조금은생소한이름을가진사람들에서이이야기는출발한다.드라마를통해익숙해진계유정난과경혜공주의이야기뒤에어쩌면이런일들도있었을지모르겠다는역사적상상을더하게되는흥미진진한팩션소설이라할수있다./편집자L

그들도이름이남겨진이들처럼같이아파하고힘들어한평범한우리네사람들같았다.누구나알고있는계유정난의뒷이야기들.작품의문구처럼‘간결해보이는글자뒤에도이토록수많은삶이잠들어있다’역사속의숨은민초의이야기./편집자C

숨겨진이야기,한발자국뒤에서있는누군가를궁금해하는그마음이따뜻함을향한첫걸음이라고믿습니다.그런믿음을안고,일평생누군가의뒤에서는것을목적으로살아온책속두남녀의그림자를따라밟아봅니다.그리고한발씩내디딜때마다주머니속무거운짐을떨구는겁니다.왼발로그림자를밟고오른발을힘껏내디디면서의무나상처를흘려보내는식으로요.그뒤를가만가만따라와주신다면화영과율,그리고그들뒤에서있었을누군가에게까지더할나위없이기쁜그림자밟기놀이가될거예요./편집자Y

[책속으로추가]
고관대작도,내로라하는재산가들도함부로가질수없는것이고래등같은기와집이라고했다.벼슬아치들이모여들며부촌으로이름이난양덕방향교동에도기와지붕은손에꼽을정도로적었다.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사대부가부럽지않은와가(瓦家)를무려세채나차지한곳이있었으니,바로행화촌(杏花村)에자리한주루영월관이었다.
본디향기였던관주영월은선상기로뽑혀상경했다가우연히면천을하게되었는데,작은주가(酒家)로시작한장사가큰성공을거두면서다시기생의길을걷게되었다고한다.거기다상단을운용하며도성에유통되는사치품의판로는꽉쥐고있으니,과연돈줄하나는기가막히게타고났음이라.
덕분에이름깨나날린다는사내들은너나할것없이영월관으로모여들어은밀히향락을즐기곤하였는데,이비밀스러운주연(酒宴)에서이루어진모종의밀담을모아보면수십권의책이되고도남을정도였다.
또어딘가에서기록되지못할역사가쓰이고있을지모를깊은밤,시끌벅적한웃음소리를뒤로하고조용히달을올려다보던영월의눈가에문득뜻모를미소가서렸다.긴세월이흘렀음에도,그녀는여전히아름다운용모를지니고있었다.
“아씨,화영이데려왔습니다요.”
때마침등뒤에서들려온목소리에천천히고개를돌린영월은곧여종뒤에서있는작은체구의아이에게로시선을옮겼다.그러자흑칠한삿갓을벗은아이가말없이영월을향해고개를숙였다.
사내의행색을하고있으나,그에맞지않게유약하고메마른아이의몸은치색의무복(武服)밖으로유난히도드라져보였다.하지만어둠처럼깊은눈동자는가냘픈얼굴선과달리매섭고단단하기만했다.
주루에서태어나기생들치맛자락속에서자랐다하여화중이라불리던동비(童婢),하지만금(琴)이아닌칼을잡게되면서여인이라는사실마저마음속깊숙한곳에묻어야했던검랑(劍娘).그런아이에게화영이라는새이름을지어준것이바로영월이었다.
과거를더듬자니새삼연민이깃든다.저도모르게씁쓸한미소를머금은영월은곧그기색을거두고는화영을향해따라오라는듯손짓을했다.그녀를따라소리없이방안으로들어온화영은무릎을꿇어앉은채굳게다문입술을조금도달싹이지않았다.아마도영월이먼저입을열기를기다리는것이리라.
“알아보았느냐?”
한참만에야은밀한기색을띠며흘러나온영월의물음에화영은천천히고개를끄덕이며들릴듯말듯나지막한목소리로대답했다.
“형조참판영감이십니다.”
“……쯧,곤란하게되었구나.”
혀끝을찬영월은이내연지가빈틈없이발린붉은입술을꾹다물었다.근자에형조의단속이삼엄해졌다는이야기는익히들었으나,이렇게빨리자신의상단을파고들줄은예상치못한터였다.
“미행이붙어따돌리기는하였으나,계속이쪽의움직임을주시할것같습니다.”
이어진화영의보고에,영월의고운얼굴위로일순어두운그림자가드리워졌다.하지만심증일뿐,아직증좌가없지않은가.거기까지생각이미치자,영월은애써아무렇지도않은척자신을안심시키며,마주앉은화영에게로시선을옮겼다.
“조만간재하가돌아올터이니,그때까지는잠자코상황을지켜보는게좋겠다.화영이너는되도록움직이지말고기다리도록해라.”
“예,알겠습니다.”
“피곤하겠구나.이만물러가쉬거라.”
화영은,가볍게손을휘젓는영월에게고개를조아린뒤들어올때와마찬가지로소리없이그녀의방을나섰다.그런데어쩐일인지처소로향하지않고툇마루에걸터앉은화영의아득한시선이깊은밤하늘로향했다.어느새그녀의손에는작은향갑이달린노리개가들려있었다.
이제는희미한잔향만남아있을뿐인그노리개를메마른손으로꽉움켜진화영은젖어드는숨을애써목구멍아래로삼키며무거운입술을달싹였다.
“……어머니.”
한껏애타게불러보았지만,이조차빈껍데기인것만같다.그도그럴것이얼굴도모를뿐더러목소리조차들어본적없는존재가아니던가.하지만어머니의유품인이노리개를볼때면,화영은막연하게나마그리움이무엇인지알것같다는생각이드는것이었다.
영월관에서허드렛일을하던화영의어미서련은화영을낳은뒤바로죽었다.서련의지기였던어리니가젖을물려준덕분에간신히목숨줄은부지할수있었지만,아비라던악공송학수는화영을거두어기를형편이되지못했다.
결국홀로남겨진화영은걸음을뗄무렵부터자연스럽게영월관을드나드는왈패무리를따라다니기시작했고,이를보다못한영월은화영을영월관의기생으로거두고자했다.그런데무슨연유인지아비인학수가영월의제안을완강히거부하고나섰다.
“계집으로살지말거라.네가계집이라는사실을잊어.그게너를위한길이니라.”
화영의작은어깨를짓누르듯붙잡고다짐을받아내는학수의목소리는쉬이흘려버릴수없을만큼어둡고짙었다.
아비에게버림받을지도모른다는두려움때문이었을까.아니면,어린마음에도그에게서간절한무언가를읽은것이었을까.정확한연유는알수없지만,그말이화영으로하여금사내아이의행색을하게한것은분명하리라.
그러나정작학수는화영이열셋이되던해에말도없이행화촌을떠나버렸고바로그날,영월은환도하나를그녀의손에쥐어주며상단을지키는검객이되라하였다.화영이라불리게된것도그때부터였다.
“아직안가고예서뭘하고있었느냐?”
때마침들려온영월의목소리에퍼뜩상념에서깨어난화영은들고있던노리개를황급히품속에구겨넣었다.
“아무것도아닙니다,아씨.”
“얼른처소로돌아가거라.”
“예…….”
푸르스름해보이기까지하는화영의두뺨이달빛처럼처연하다.영월은들리지않게혀를차며아직연회가한창인객관으로걸음을옮겼다.
점점멀어지는영월의뒷모습을물끄러미바라보던화영은한참만에야무거운발을처소쪽으로돌릴수있었다.그러나바로다음순간,미적거리던그녀의걸음이우뚝멈춰섰다.
밤공기를가르는섬뜩한기운,날카롭고생경한냄새,그리고온몸을감싸는짙은위화감.
깊이생각할겨를따윈없었다.본능적으로위험을감지한화영은황급히품안의장도(粧刀)를향해손을뻗었다.하지만미처칼자루를잡기도전에,어둠속에서불쑥튀어나온차가운손이화영의입을순식간에틀어막는것이아닌가.
“또만났군.”
낮게속삭이는목소리는분명익숙했다.곧등뒤의침입자가나루터에서마주쳤던형조참판의수하라는것을눈치챈화영은그대로돌처럼굳어버리고말았다.이토록완벽하게제압당한이상반격은쉽지않을터였다.
“안심해라,죽이진않을테니.”
마치당한것을그대로갚아주겠다는듯,그날의화영과똑같은말을내뱉은사내는식은땀에젖은그녀의목을바짝당겨안으며한층더고압적인목소리로속삭였다.
“하나만묻지.관주가따로관리하는출납장부가있을터인데.”
“…….”
“그장부의위치를알고있느냐?”
화영은천천히고개를가로저었다.그러자작게실소한사내는화영의입을막고있던손을천천히내리며자못유쾌한목소리로중얼거렸다.
“보기보다제법강단이있구나.”
긴장한탓에더욱조여들었던숨통이자유로워지자,화영은저도모르게큰숨을들이마시며쿨럭쿨럭기침을토해냈다.하지만여유를부리고있을틈이없었다.
두다리가물에녹은듯휘청거렸지만,사내의결박이느슨해진틈을타재빨리몸을돌린화영은순식간에품에서장도를뽑아휘둘렀다.그러나손쉽게화영의공격을피한그는이내가느다란눈을치켜뜨고그녀를노려보았다.
“……더는밀어붙일생각이없었다만.”
때마침그의얼굴을가리고있던검은천이미끄러지듯바닥으로떨어졌다.달빛아래고스란히드러난자신의얼굴을말없이매만지는사내의입술은보일듯말듯옅은미소를그리고있었다.
그리고다음순간,믿을수없는장면을목도한화영은그만쥐고있던장도를힘없이떨어뜨리고말았다.단한번의움직임으로순식간에화영의목을휘어잡아담벼락으로밀친사내의검이어느새그녀의턱끝을겨눈채번뜩이고있었던것이다.
“읏…….”
점점더강하게짓눌리는목때문에제대로숨을쉴수없게된화영은앙다문잇새로가느다란신음을토해냈다.그러자사내의손이잠시멈칫하는가싶더니,곧차분한목소리가화영의귓전에내려앉았다.
“아프게해서미안하다만,너를놓아주면일이번거로워질것같으니잠시이대로있어줘야겠다.”
그의손아귀에서벗어나려안간힘을다해바르작거리던화영은점점흐릿해지는시야를붙잡기위해눈앞의사내를힘껏노려보았다.그런데가까이마주한사내의얼굴이놀라우리만치젊고수려하다.
저도모르게넋을잃고만화영은보기드문그미안(美顔)을뚫어져라바라보았다.날렵하고가느다란눈매에어둠보다새까만눈동자는그깊이를가늠하기힘들고,검결에반사된달빛이스며든콧날은유난히곧고매끈했다.
“……왜기척을느끼지못했는지궁금했는데.”
붓으로그린듯단정한선을지닌입술이불쑥침묵을깨고달싹이자,화영은제풀에놀라작게몸을떨었다.그러나이어진사내의말은그녀가전혀예상치못한것이었다.
“넌살기가없구나.”
화영은당혹감을감추지못한눈앞의사내를멍하니바라보았다.하지만그것도잠시.정체모를그림자여럿이영월의처소에서빠져나오는것을발견한화영은더욱거세게몸을비틀며으르렁거리기시작했다.
“거참,쓸데없는짓을하는군.”
그러나대수롭잖다는듯손안의화영을더욱강하게압박하던사내는때마침곁으로다가온복면의침입자들에게간결한목소리로물었다.
“장부는?”
“송구합니다만,찾지못했습니다.아무래도다른곳에숨겨둔모양입니다.”
“……역시그렇군.”
잠시고민하던사내는이내나지막하게말을이었다.
“자네들은영감께돌아가이사실을고하도록하게.”
“그자는어찌하시겠습니까?역시처리하는게…….”
“내가알아서할테니,먼저출발하게.시간이얼마없어.”
필사적으로저항하는화영을의식한듯잠시주저하던침입자들은이어지는사내의재촉에결국어쩔수없다는듯담장을넘어사라졌다.그러자가볍게한숨을쉰사내가화영을결박하고있던손을천천히떼어냈다.
갑작스레뚫린호흡탓일까.어지러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