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피는 꽃 1 (로토스 장편소설)

악에 피는 꽃 1 (로토스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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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불행한 삶을 끝내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지만,
죽지 못한 채 죽기 전 읽었던 소설에 빙의되었다.

“황위는 원치 않아. 오로지 원하는 건 황가의 멸문뿐.”

죽을 수 없다면 나를 이렇게 만든 모두에게 복수해 주겠어.
벤지안스는 단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움직일 뿐이었다.
복수를 위해 사람들의 기억을 바꾸고 그들을 이용하며 목표에 차곡차곡 다가간다.

하지만 맹목적인 디르케온의 사랑은 서서히 그녀의 마음을 녹이게 되고,
벤지안스는 그의 마음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기 시작하는데…….
저자

로토스

저자 로토스

떠오르는 이야기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열심히 쓴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간 예정작
내 남친 구하러 갑니다.

목차

1부
1. 뿌려진 씨앗
2. 자라나는 줄기⑴

출판사 서평

[편집자 코멘트]

현실에서의 삶이 최악인 상황에서 우연히 접한 책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를 만났다. 비록 단역이자 조연이었지만 그 아이만은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국 제물로 바쳐져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순간 진정한 저주받은 아이는 책의 주인공이 아닌 그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여 자신의 삶 역시 희망이 없다고 죽음을 결심한 순간, 책 속의 바로 그 아이로 빙의되었다. 이제 나의 선택은 그 아이의 몸으로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모든 것들에게 복수하는 것.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얽히는 남주. 과연 그들은 그 모든 역경을 이뤄내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저주받은 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로 작품을 보다보면 인간관계의 인과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 편집자 C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 저주받았다고 여긴 사람이 있다. 끝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된 삶. 이번만은, 너만큼은. 불행하지 않은 끝을 맞게 해주겠다고 결심하지만 새로운 삶 역시 만만치 않다.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내 목숨쯤은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주받은 아이’가 아니라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여정을 함께하길 바란다. / 편집자 L

어떤 짓을 하든,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길을 가며 어떤 말을 내뱉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살면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운일지도 몰라요. 그런 행운이 정말 일어난다면, 다른 모든 걸 다 잃어도 세상을 가진 기분이겠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소설 속 인물의 몸에 들어와 있던, 처절한 상황에 홀로 내던져진 이 작품의 여자주인공도 마지막에 가서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만 같기도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한 복수의 과정 뒤에 쓸쓸함이나 허탈함만 남을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그게 아닐 수도 있어요.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찾아오는 것처럼, 생을 유지해야 하는 여러 이유들은, 그런 불가항력적인 사랑처럼 계속 당신을 찾아들 거예요. / 편집자 Y

[책속으로 추가]

공작의 질문에 날카롭게 소리쳐 대답하는 유모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떨리는 목소리에서 어느 정도의 두려움도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워? 공작이? 왜? 그에 대한 답은 금방 얻을 수 있었다.
유모는 지금껏 우리를 알아볼 수도 있는 높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시골 깊은 곳에서 살아왔다. 그래, 가령 눈앞의 공작 같은.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 유모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의심스러웠던 모양인지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아, 아니에요. 아이가 백치라서 그럽니다. 이제 보내주세요. 저희는 빨리 집에 가야 해요.”
“아니에요! 아침마다 어머니가 저를 마구잡이로 때려요. 저녁에는 아버지가 매일마다 저를 강간하러 방에 들어와요! 제발 이거 놔주세요. 살려주세요!”
나는 유모의 손을 뿌리치듯 팔을 휘저으며 우연인 것처럼 그녀의 로브를 뒤로 잡아당겼다. 그에 로브 안에 숨겨놨던 유모의 얼굴이 나타났다. 당황스러운 표정. 그리고 곧이어 떠오르는 공포에 질린 얼굴. 황궁에 있을 적 제일 호의를 갖고 황녀를 찾아주었던 것은 공작이었다.
지금도 황녀를 찾아 이 변방의 작은 시내까지 달려온 공작이 유모를 못 알아볼까? 그것도 성인이 된 이후의 유모를? 절대 아니지. 유모의 눈과 공작의 눈이 마주쳤다. 잠시 기억이라도 더듬는 듯 인상을 찌푸리던 공작의 눈이 커졌다.
“세니아 백작부인,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네년의 본명이 그거였구나. 공작의 한마디에 유모는 바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아니,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유모의 팔을 낚아챘다. 내 힘에 유모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눈까지 가리고 있던 로브를 살짝 올려 유모와 눈을 마주쳤다.
드디어, 이 이능을 쓸 때가 왔다. 이 능력을 어디에 쓸까 그렇게 고민했는데 드디어 적절한 상황을 찾았다. 타인의 기억을 볼 수 있는 이능을 타고난 황족 중 강한 이들은 하나를 더 할 수 있었다. 타인의 기억을 개조하는 것. 하지만 한 사람에 단 한 번만 사용이 가능하기에 뒤로 미루고 미뤘다. 적재적소에 사용하기 위해.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나는 유모의 눈을 응시한 채 간절히 바라며 생각했다.
자, 기억해 봐. 눈앞의 공작이 네 아들을 죽였어. 네 아홉 살 난 아들, 휜을 죽였어. 아주 잔인하게. 기억나지 않아? 유모의 눈이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다시 눈을 마주쳐 읽어낸 유모의 기억에서 그녀의 아들은 공작의 손에 죽어가고 있었다. 사지가 찢긴 채로. 유모의 눈에 광기가 일렁였다.
유모를 잡고 있던 손을 풀어줬다. 주변을 둘러봤다. 이 소란을 듣고 경비병들마저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 손에서 풀려 자유가 된 유모가 공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말 찰나였다. 사냥개가 달려든다면 저 정도일까 싶을 정도의 사나움이었다. 유모가 공작의 목을 세게 쥐었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디르케온 세그다드! 네 가문을 갈가리 찢고 한 점 살도 남기지 않은 채 짐승의 먹이로 줄 것이야!”
유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연하지. 제 딸처럼 생각하던 황녀마저 물건 취급할 만큼 그리도 바라던 아들의 복수인데. 지금 눈앞에 그 대상이 버젓이 있는데. 주변에는 공작의 호위도 없는데. 이성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리가.
멀리서 이쪽을 주시하던 경비원들이 달려왔다. 공작이 유모의 팔을 떼어냈다. 공작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인,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진정하고…….”
“닥쳐! 내 아들의 원수. 위선자. 공작가의 수치!”
분노에 휩싸여 주위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악귀 같은 그녀의 모습에 공작의 미간도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하면 귀족 모독죄로 체포됩니다. 무엇보다 당신은 지금…….”
반역자의 신세지. 그것도 도망간 반역자. 공작으로서도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가 나를 데리고 궁을 빠져나가는 유모를 도와준 것을 유모가 모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척을 지고 원수 취급할 사이는 아니었다.
“아니, 체포되기 전에 먼저 내가 네 숨통을 끊어놓을 거야!”
유모가 바락바락 악을 썼다. 그 모습에 기쁨의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지척의 경비원들마저 다 듣고 있는 상태. 귀족 모독죄라는 것이 있는 모양인데 공작이 제 신분을 밝히자마자 유모는 연행될 것이다. 경비원들이 이 소란 속에 들어와 유모를 떼어내고는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공작에게 말을 걸었다.
“치안 경비대입니다. 신분 확인 부탁드립니다.”
공작은 여전히 악을 쓰고 있는 유모에게 잠시 시선을 멈췄다가 망가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품에서 견장을 하나 꺼내 보여주며 대답했다.
“디르케온 세그다드. 세그다드 공작가의 차남이다. 불미스러운 꼴을 보여줘 유감이군.”
깔끔한 대답에 경비원들은 허리를 숙여 예를 취했다.
“시, 시, 시, 실례했습니다. 이 변방에 대귀족님이 오시는 경우가 드물어서. 예를 갖추지 못한 것 송구스럽습니다!”
“아니, 괜찮네. 그보다…….”
다시 한 번 공작의 시선이 유모에게 향했다. 유모는 여전히 저를 잡고 있는 경비원의 팔을 빼내려 애쓰며 악을 쓰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모습에 공작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저 부인부터 처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고는 내게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내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나는 로브를 뒤집어쓴 어떤 소녀일 뿐이었으니. 하지만 또다시 한 번 바라본 그의 얼굴에는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유모를 벗어나야 해요! 절대 안 돼요!”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 말에 공작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당신이라면 똑똑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거야. 그는 저 부인이 황녀의 유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 눈앞에서 로브를 뒤집어쓰고 주저앉아 유모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울부짖는 소녀가 그가 찾던 황녀, 벤지안스라는 것도 알아챘겠지.
공작의 커진 눈이 다시 제 감정을 찾는다. 조금 전보다 훨씬 차분해진 어조로 경비대에게 명령했다.
“저 부인을 우선 연행해 가두게. 그 차후의 처리는 내가 알아서 하겠네. 그리고 오늘 있던 일은 공작가의 수치가 될 수도 있으니 입조심 부탁하네.”
책에서 읽었던 대로 그의 언변은 논리적이었다. 누가 듣더라도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이유를 대며 그들의 입을 막았다. 경비들은 남작도 백작도 아닌 대공작가의 명령이기에 함부로 어기지 못하리라.
그래, 깔끔해. 내가 원하던 흐름이야. 그 말에 경비원들이 ‘네!’ 하고 대답하고는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나는 어찌하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저 소녀는 내가 보살피겠네. 우선은 그 부인부터 연행 부탁하지.”
“예,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우렁차게 외치며 경비대원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작이 나에게 다가왔다. 팔을 잡고 일으키려는 행동에 흠칫 나도 모르게 뒤로 몸을 빼냈다. 정신과 치료로 그나마 나아졌던 혐오 증상이 다시 도지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야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손길을 참아냈지만 굳이 필요하지도 않을 때 용납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내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제 손길을 피하는 내 모습에 공작이 약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 손길을 피한 것이 다른 이유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이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로브에 묻어 있는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곤 그를 바라봤다. 드디어 만났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공작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와는 달리 함부로 손을 내밀지는 않는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디르케온 세그다드. 세그다드 공작가의 차남입니다. 레이디는 누구십니까?”
내 로브를 여기서 강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