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너 (박지영 장편소설)

그리고 다시 너 (박지영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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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3 종업식, 눈앞에서 자신을 원망하고 죽은 친구로 인해 모든 것을 놓아버린 제이는 도망치듯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9년의 시간이 흐르고…….
집안 사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한국에 되돌아온 그녀는 공항에서 첫사랑이었던 환과 재회하게 된다.

“……네가 왜…….”
과거의 상처를 품에 안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여자, 제이와

“나는 기다렸어, 너.”
한결같이 그녀를 기다린 남자, 환.

그렇게 그들의 인연이 다시 시작된다.
저자

박지영

눈을감는날까지뇌리에가득한영상을활자로그릴수있다면그것만으로도전부라는생각이듭니다.사랑을꿈꾸고,삶을그리는글쟁이가되겠습니다.

《당신의선물(동서문학상단편소설수상)》《심장에닿다(대한민국e작가상대상)》《잘나가는미쓰나(대한민국e작가상우수상)》

출간작
공포추리<살인에대한충동><피어스>
로맨스<그오후의거리><영점영일의확률><너를만나다><심장에닿다><잘나가는미쓰나><지극히평범함><마치마법처럼>
네이버웹소설<지극히평범한><실연천사>
저스툰웹소설<전설이왔다>

목차

Prologue
01.그시계는정지했다
02.멈췄던시계가움직인다
03.네시계소리
00.환
04.겨울비는아프다
05.우리는단순하지않다
06.꺼진촛불,돌고도는시계
00.환
07.휴식
08.우리의시간은역류한다
09.너는내세상이다
00.환
10.같이있다는건
11.Paris’s
Epilogue.환
Epilogue.제이
작가후기

출판사 서평

우리는서로가서로의사랑이었다.

그사랑은설탕가루같은눈이내린날,
산산이부서졌다.

그리고9년…….

정지된시계속에갇혀버린내게
세상의벽뒤에숨어버린내게

환은말한다.

“제이야.
내게있어너는,하늘이고빛이고숨이다.
너는내세상이다.”

언제나그렇듯
언제나그래왔듯
굳건히나를나로보아주는남자,환.
나의환.

온전한감성멜로

<그리고……다시너>

[출판사리뷰]
아픔의상처에서허덕이느라주변을살펴볼여력이없던여자와모든것을감내하고지켜내려했던남자.몸의시간은흐르지만,마음의시간은멈춰있던그들의시간이십년만에흐르기시작한다.과연그들이놓친시간은그값어치가있던것인가.사랑과상처그리고이겨냄이라는화두를담담히풀어놓은작품이다.그리고첫사랑은이루어지는것이분명하다./편집자C

뭐든지처음은어렵습니다.발을디뎌보지않은탓에두려움이동반되기때문일텐데요,여기이책속의두주인공에겐남들보다더혹독한‘처음’이찾아듭니다.억울함,상처,두려움등모든부정적인감정을끌어안은여자와그런그녀의닫힌방문앞을매일같이서성이던남자에게말입니다.하지만‘처음’의장점은실수해도괜찮다는데있고,그건새하얀눈밭을디디고서있을이들에게도해당되는이야길겁니다.누구의발자국도나있지않은이눈쌓인언덕위로,이들이찍을자취를뒤따라걸어주세요./편집자Y

[책속으로이어서]
그의뜻깊은행동을환영하며선뜻입술을열었다.오픈더도어.적극적인태세전환에그의입술이웃었다.더불어적극적인공략도멈춤없이이어갔다.그동안우리가나눴던키스중가장진한키스였다.
학교옥상에서의비밀키스.이은밀한스릴은처음이자마지막일거다.그렇기에우린열성을다했다.딱딱한바둑판같은교실에두고온친구들에게양심적으로찔리지도않았다.
깊은키스를지속했다.
전력을다하는키스의영향인지차차옆구리와치골에이상야릇한전율이퍼졌다.전기오르듯찌릿찌릿퍼지는전율에무의식중발꿈치가파르르떨렸다.조금은부끄러운기분도들었다.이런느낌을욕망이라정의하나싶었다.
그기분은비단이쪽에만해당하는게아닌모양이었다.짙은키스를시도한당사자가비로소이성을차린듯별안간떨어졌다.그의동공이흔들렸다.자제안되는자신의행동에스스로도놀란기색이었다.자기가해놓고순진한척은.
나는슬그머니흘겼다.그도머쓱한듯흘끔내려다봤다.우리의시선이부딪쳤다.
“쿡.”
동시에웃음소리가났다.
우린이마를맞대고쿡쿡거렸다.쑥스러워서인지좋아서인지자꾸웃음이났다.가늘게휜눈매아래촉촉하게젖은입술이보였다.나는짓궂게손끝으로젖은입술을쓸었다.그가새하얀치아를드러내며내손끝을살짝깨물었다.
“아.”
자극만있을뿐아프지않았다.그러나일부러아픈시늉이섞인소리를내었다.소리도조금그랬다.어쩌면나의기질은천부적으로야한거같다.
아니다.
우린그냥소신껏사랑하는거다.19세다운방식으로애정을적절히표현하며.아마도우린무진장바람직한성인커플이될것같다.
교정에종이울렸다.
서로를묶었던팔과재킷을푼지채2분도안되어시끌벅적한소란이옥상입구로몰려왔다.우리반교실이옥상아래이니혈기왕성한녀석들의행동은당연히빨랐다.
“그거봐.여기있을거라했지?”
“둘이뭐했어!”
“몰래빠져나가더니…….엉큼한연놈!좋냐!”
사이좋게들어오지.문은하나인데친구들이한꺼번에통과하려고무식한어깨싸움을해댔다.쓸데없는실랑이의승자는어깨두툼한성진이아닌약빠른애은이었다.
“사진찍자!”
날쌔게빠져나온애은이머리에꽃꽂은미친년처럼교복치마를나풀거리며눈밭을뱅글뱅글돌았다.성진은새치기한명세에게끼어또못나왔다.
이쪽은역광이다,저쪽이낫다,하늘배경으로하자,산배경이좋다등녀석들이개떼처럼몰려다니며사방팔방난리를피웠다.한줄의발자국은순식간에너저분한발자국들에묻혔다.
“Good!”
마침내하늘배경이낙점되었다.친구들이옥상끝의가장자리로우르르몰려갔다.투덕거리고말도많으면서의기투합은잘되었다.
다들들떠있었다.
졸업식이남긴했으나어찌되었든오늘은고등학생으로서의마지막날이었다.종업식도무사히마쳤으니대학합격여부와관계없이지긋지긋한고3생활은끝이었다.
“지환!일루와.”
명세가키득거리며스케이트타듯발끝으로미끄러져갔다.성진이패딩재킷을까뒤집으며요염한춤사위를벌였다.골반튕기기까지하며‘환아’로노래를불렀다.환을유혹하는몸짓이었다.
“아,오두발정(發情)!돌은새끼.”
“더러워,새끼야!”
“꺼져!”
환이질색하며외면했으나성진의구슬픈노래는계속됐다.옆에서짜증난다고아우성쳐도소용없다.
“가.”
눈이썩을것같다.더는보기싫어,나는환의등을밀었다.넌지시내려다본환이마지못해느릿느릿움직였다.
“이제이종놈!마님말은듣냐!”
남자녀석들이환에게덤벼들었다.환이오합지졸들을제기차듯발끝으로툭툭물리쳤다.그틈에서애은은목을이리저리비틀며셀프카메라를찍었고,선영은화장에여념없었다.이거야말로개판5분전.
“하여간.”
한심한그들에게도도하게가려던참이었다.옥상입구에어스름한음영이드리워졌다.
채경.
돌아보니채경이서느런눈초리로쏘아보고있었다.나와눈이마주치자그녀가다가왔다.목적은나였다.나는걸음을멈추었다.내가먼저그녀를차단하는게나을듯했다.
채경의등장에친구들이다소껄끄러워했다.애은이‘우리부터찍자’며부러먼지점으로옮겨갔고,친구들도후다닥뭉쳤다.개입하지않으려는분위기가다분했다.
환은제자리선채이쪽을넘겨다봤다.나와의간격을좁히는채경을경계하는거였다.환의차디찬눈빛을알아챈채경의입술이쓴웃음으로비틀렸다.
“좋니?”
가까이온채경이물었다.대답할가치도없는빈정거림이다.무시하듯발끝을틀었다.
“넌네가환일차지했다고단정하지?”
도발적인질문이이어졌다.
반사적으로눈썹이꿈틀했다.차지?환에게그따위표현을쓰다니.매섭게쏘아보니그녀가성큼가까워졌다.밀착하듯선채입술을비꼬는채경의아우라가묘하게섬뜩했다.
“넌환일가질수없어.”
마치경고같았다.
그말을듣자마자이상하게도전기충격을당한양심장이쿵쿵뛰었다.불길한예감이있었는지도모른다.불규칙한심장박동으로잠시멍해진틈에채경이눈앞에서사라졌다.
“아.”
뒤늦게정신을차렸을때,채경은옥상난간에서있었다.마치단기기억상실에걸린것처럼머리가하얘졌다.채경이언제저기까지갔는지,어떻게저기에올라갔는지.
“까르르.”
다른반애들이옥상으로우르르들어왔다.깔깔거리며입구를통과하던그들이위태롭게난간에서있는채경을포착했다.멈칫한그들이멀뚱히쳐다봤다.
“야!미친년아!거기왜올라가!”
애은도채경을발견했다.애은이욕설을퍼부으며내려오라고고함쳤다.오지않고이쪽만본다고환의눈을가리고서장난치던성진도멈추었다.그제야환도난간의채경을발견했다.모두의시선이채경에게쏠렸고모두의동작이일시정지했다.
“너희들도알다시피…….”
즐기듯좌중을휘둘러보며채경이입을열었다.냉소적인눈동자가겨냥하듯천천히내게로왔다.
“제이가환을나에게서뺏어갔어.”
그녀가짐짓서글픈표정으로굵은눈물을또르르흘렸다.계산된연기같았지만오소소소름이돋았다.그때환이달렸다.어떠한직감이있었는지그가채경이서있는난간으로전력질주했다.
“난……제이가죽이는거야.”
제게로달려오는환을바라보는채경의입가에흡족한미소가감돌았다.다소슬퍼보인다는생각이든찰나,스르륵―채경의몸이슬로모션처럼뒤로넘어갔다.
“까악!”
넋놓고주시하던여학생들의입에서단말마같은비명이터졌다.투신장면을직접목격한남학생들도얼어붙었다.빠른속도로눈밭을달린환이발에브레이크를걸었다.그의팔이신속하게난간으로넘어갔다.
턱!
아슬아슬한순간,환이그녀를잡았다.허공에붕떠버린채경의팔을환이가까스로잡고서버텼다.
아래의채경을내려다보는환의뒤통수가미약하게흔들렸다.그의어깨도진동하듯연신부르르떨렸다.상대의죽음을직면한자의공포가뒷등에서배어나왔다.
채경의체중을혼자서감당하는환이힘겨워보였다.꿋꿋하게채경을잡은채그가고개를뒤로돌렸다.환이뒤의나를보았다.
‘도와줘.’
애타는눈빛.
두어발자국만움직이면난간이었다.크게움직이면채경의팔을지탱하는환의팔을붙잡을수있었다.
그러나나는움직이지않았다.아니,못했다.발도몸도꼼짝하지않았다.발바닥이눈에달라붙은양떨어지지않았고숨이막혀호흡도어려웠다.왜날봐……왜하필날봐…….그런비겁한원망마저들었던것같다.
“가서도와줘!멍청아!”
애은이외쳤다.
그제야얼빠져있던명세가뛰었다.허겁지겁눈밭을뛰던명세가미끄러져벌러덩자빠졌다.성진도뒤늦게움직였다.
환은무척괴로워했다.더는버티기어려운듯했다.난간을틀어쥔채지탱하던나머지손으로도채경의팔을잡았다.무게중심이아래로쏠리자상체가크게흔들렸다.환의몸도밑으로떨어질것같았다.
내발끝이움찔했다.
그때명세가점프하듯환의허리를강하게붙들었다.그러나늦었다.동시에환의손이풀렸다.
일순나의시계가멈추었다.그러나채경의시계는멈추지않았다.몇초허공에붕떴던채경의몸은그대로멈춤없이낙하했다.아래로,아래로.
그리고…….
쿵―!끔찍한소리와함께지면이내려앉았다.심장도내려앉았다.환의팔이무기력하게나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