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조선황실의비극과저항을그린역사소설
잊힌황족의삶을문학으로복원
은미희작가의장편소설『히로시마의불꽃이된조선의왕자,이우』가식민지조선황실의비극적운명과한인간의치열한내면저항을밀도있게그려낸역사소설로주목받고있다.이작품은대한제국황족이우를중심에놓고,일제강점기라는격랑의시대속에서정체성과존엄,사랑과저항,그리고역사의상처를문학적으로복원해낸다.
작품은단순히비운의왕자를재조명하는데머물지않는다.일본군장교라는모순된위치에놓인이우가끝내조선인으로서의자의식과역사적책무를포기하지않는과정을통해,나라를잃은시대에도인간이마지막까지지켜내려했던품위와신념이무엇인지를묻는다.작가는역사적사실을바탕으로하되이를영웅적으로미화하지않고,오히려“역사를아는일은나를아는일이기도하다”는문제의식을바탕으로오늘의독자에게도깊은질문을던진다.
사랑과운명,
황실의비극과식민지의상처를관통하는묵직한역사소설
소설은이우가일본이정해준삶의궤적을거부하고스스로선택한사랑과관계,그리고독립운동세력과연결되는비밀스러운실천을통해내면의저항을구체화해가는과정을긴장감있게그린다.특히박찬주와의혼인,유정순을매개로한기밀전달,중국전선과히로시마로이어지는서사는한개인의서사이면서도동시에식민지조선이겪은집단적비극의축소판이다.
작품의가장큰미덕은역사성과문학성을함께확보했다는점이다.실제역사에기반한서사구조위에,감각적이고상징적인문장,비장한분위기,입체적인인물심리를촘촘히얹어독자의몰입을높인다.초반부의안개와까마귀,죽음의전령을연상시키는이미지부터작품전체를관통하는‘불꽃’의상징까지,이소설은역사의고통을서정성과긴장감이공존하는문장으로형상화한다.
또한『히로시마의불꽃이된조선의왕자,이우』는황실이라는특수한공간을통해식민지시대의상처를새롭게환기한다.나라를빼앗긴왕실의후손이라는존재가단지몰락한신분의표상이아니라,가장첨예한방식으로역사와충돌하는인간의초상으로제시된다는점에서의미가크다.작품속이우는적국의제복을입고있으나끝내영혼까지는내주지않은인물로그려지며,이는오늘의독자에게도역사적기억과정체성의문제를다시생각하게만든다.
은미희작가는이작품을통해100년전의이야기가결코과거형이아님을말한다.작가의말에서밝히듯,흘러간시간은오늘의토대를이루며우리는결코과거로부터자유롭지않다.그런점에서이소설은한왕자의비극적인생애를넘어,우리가왜역사를기억해야하는지,또그기억이현재의우리에게어떤윤리적의미를갖는지를되묻는작품이라할수있다.
『히로시마의불꽃이된조선의왕자,이우』는역사적비극과인간적존엄,민족의상처와개인의사랑을함께응시하는독자들에게깊은울림을전할것으로기대된다.역사소설의외연을넓히면서도,잊힌존재를문학으로다시호명해낸이작품은오늘의한국문학독자들에게묵직한감동과질문을동시에건네는작품이다.
책속에서
역사를아는일은나를아는일이기도하다.내가누구인지,어디에있는지.
우리는,우리의삶은,결코과거로부터자유롭지못하다.흘러간시간들이쌓이고쌓여오늘의토대를이루고,우리는그토대위에현재의시간들을차곡차곡쌓아간다.그토대는다시내일의토대를이룰것이다.강하든,약하든.자랑스럽든,부끄럽든.(4쪽)
“시간이없습니다.이일은속전속결로끝내야합니다.저들이제결혼을강제로집행하기전에제가먼저찬주양에게사주단자를보내야겠습니다.그리고약혼했다고발표하겠습니다.”
“사주단자를보내겠다고?”
이우는며칠동안자신이밤잠을설쳐가며세운계획을털어놓았다.그이야기를듣던아버지강은깜짝놀란표정으로우를바라보며물었다.
“그것이가능한일이냐?”
“아버님께서도와주시면됩니다.”(24쪽)
일본군장교.자신의역할이참으로마뜩잖았다.대한제국을위해서일해야하는데일본이라니.이우는우울한심정으로목까지올라오는깃을바로잡고지휘도를찾아허리에찼다.날이잘벼리어진칼날은사람목하나절단내는일쯤은그리어려운일이아니었다.다만애통하고찜찜한것이그칼날이동족을위협한다는것이다.(63쪽)
이우는그가내민봉투를열어내용물을확인했다.돈이었다.그것도큰금액이었다.
“아니이건돈이아니요?”
이우가봉투안에담긴돈과그의얼굴을번갈아바라보며물었다.
“네.돈입니다.이걸전하께드릴테니마땅한데에써주십시오.”
남자는혹여주변에있을듣는귀를염려하며말을조심했다.
“한국의아버지에게드려도될텐데굳이예까지저를찾아와서주시는데는이유가있을것같습니다.”
“부친께서는워낙일경들의감시가심한터라제가사동궁을드나들면저또한그들의감시대상에오를까봐걱정됐습니다.하여일본에오는길에전하를뵙자생각했습니다.”(94쪽)
이우는순간어찌할바를몰랐다.뒤로숨자니마땅히숨을곳도없었고또숨자니그것도우스웠다.이밤에아무도없는정원에서정순과맞닥뜨린이상황이어쩐지거북스럽기만했다.하지만이러한마음또한민망할일이었다.그러나무엇보다이우는사람의눈을피해한밤에행하는그녀의산책을방해하고싶지않았다.방안에만있는것이답답했을것이다.딴에는조심하느라사람의눈을피해야밤에나온산책이었을텐데이우는그것을지켜주고싶었다.하지만숨기에는이미늦었음을이우는알았다.(122쪽)
정순은사람들로북적이는역앞에서누군가자신을알아보고다가와주길기다렸다.하지만사람들은무심히정순을지나쳐갔고,눈여겨보지도않았다.이미국제도시로변한상해의풍경은어지러웠고,사방이시끌벅적했다.넘쳐나는차량들로도로는어수선했고,성장을한여인들의분내가코를간지럽혔다.한데그때였다.(184쪽)
자신에게떨어진명령이독립군들의활동을염탐하고,회유하라는것이었지만이우의계획은달랐다.이우는행여자신의속마음을일본의상관에게들킬까조심하고,또조심했다.그곳이라면보다더쉽게조선의독립군들과접촉할수있을터.전출명령을받고,이우는춤이라도추고싶었다.덩실덩실,한국춤을추고,펄쩍펄쩍신무라도뛰고싶었다.(248쪽)
이우는방공호가있는곳으로말머리를돌렸다.말이관절관절에옹골찬힘을실으며막달려나가려할때,이우는섬광과함께말에서떨어졌다.순식간의일이었다.그빛,태어나서한번도보지못한빛이었다.그빛에말이고꾸라졌고우역시나둥그러졌다.
세상이고요했다.비명역시들리지않았다.어느곳에서도.다만매캐한연기와정적만이한동안이어졌을뿐이다.(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