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도- 허밍북스 슬릿 1

동백도- 허밍북스 슬릿 1

$13.91
저자

조강우

저자 : 조강우
199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과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 곁에 오래 머무는 삶을 꿈꾼다.

목차

동백도 - 3p

출판사 서평

모두가 기록하는 섬에서, 기록이 멈추는 순간

동백도의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기록한다. 기자는 기사 제목을 먼저 짓고, 유튜버는 언니의 실종을 썸네일 문구로 바꾼다. 개발업자는 해수면이 오르는 속도를 장부 속 숫자로 읽고, 공무원은 반듯한 문장으로 공문을 쓴다. 각자의 기록은 각자의 이익을 향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11시 47분, 섬의 모든 장치가 일제히 멈춘다.

조강우 작가는 이 순간을 출발점으로 삼아 한 공동체의 밑바닥을 끝까지 따라간다. 휴대폰이 꺼지자 확인되지 않은 말이 그 자리를 채운다. '봤다'는 말은 어느새 '봤다더라'가 되고, '그랬대'로 끝나는 문장은 모두 사실이 된다. 사람들은 원인을 찾기보다 자신의 공포를 담을 그릇을 찾고, 그 그릇은 가장 손쉬운 대상인 이방인과 의심하는 자에게로 향한다. 질서를 외치던 목소리가 폭력이 되고, 구원을 말하던 입이 심판을 선고하는 과정을 소설은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이 단순한 재난 스릴러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화자인 기자 자신도 이 과정 바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혼란을 지켜보며 특종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다가도 다시 수첩을 편다. 결국 권력을 쥔 이들이 그에게 원하는 것도 결국 '문장'이다. 누가 이야기를 쓰느냐가 세계를 고정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은 섬만이 아니다. 이름이 사라지고, 기록이 사라지고,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는 일이 사라진다. 그 속에서 끝까지 한 사람의 이름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다.

《동백도》는 군중 심리, 혐오, 미디어의 윤리라는 동시대의 질문들을 한 편의 긴장감 있는 서사로 엮어낸다.


책 속에서

1.
바다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날씨 예보에선 열대저기압이 북상 중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여기선 태풍과 관련된 그 어떤 비스무리한 움직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곧 사라질 섬, 동백도
그곳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은 건 이틀 전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기후 위기, 해수면 상승, 이주 정책. 그런 단어들은 이미 너무 많이 닳아 있었다. 문제는 닳은 단어에도 실적은 붙는다는 점이었다. 입사 3년 차. 아직 내 이름으로 된 대표 기사는 없었다. 회사에서는 나를 기자라고 부르기보다 막내라고 불렀고, 현장에서는 어른들이 내 명함을 받아든 뒤 꼭 한 번씩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정말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누군가 대신 보낸 어린 손인지 가늠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이번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데스크가 말했다.
"이번엔 좀 다르대. 누가 실종됐어."
실종
그 단어만큼은 닳지 않았다. 뭔가 될 것 같았다. 감이 왔다. 드디어 내가 뭔가 돋보일 것 같은 감. 그리고 그 감이 든 순간, 나는 이미 이 일을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2.
"뉴스! 뉴스 떴대!"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그 누구의 핸드폰도 켜지지 않았다. 비명은 스스로 부끄러워진 듯 금방 잦아들었다.
"…떴다고 했대."
봤다가 아니었다. 봤다더라. 소문은 그렇게, 전기가 없는 섬의 유일한 연료가 되었다. 구름은 낮고, 바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 입에서 새어 나온 핵이라는 한 글자가, 바람도 없는 공기 속에서 빨리 퍼져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는 수첩에 적었다.
동백도 혼란 시작
사진이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부끄러워졌다. 이수민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기삿감이긴 했다. 그것도 1면. 그러니 이수민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알 권리가 있으니까.

3.
이수민이 바위틈으로 몸을 낮췄다. 손끝이 닿자, 천 조각이 성긴 소리를 내며 끌려 나왔다. 그러나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다. 바위 안쪽 어딘가에 단단히 물려 있었다. 정부 보급 방호복의 소맷자락이었다. '정부 보급'이라는 글자가 소금에 절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이수민이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소맷자락을 들어 보였다. 안쪽 천에는 검은 매직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수아
글자는 거의 지워져 있었지만, 읽을 수는 있었다.
"언니 이름이에요. 이거 기자님이 보는 걸 찍어야 하는데…."
소매 끝에서 탄 쇳내가 났다. 익숙한 냄새였다. 바다는 여전히 조용했고, 등대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전기도 통신도 없었다. 이수민의 카메라도 죽어 있었다. 나는 수첩을 꺼냈다. 펜을 눌렀다. 잉크가 한 박자 늦게 흘렀다.

아침 7시 추정
서쪽 절벽
방호복 소매 발견
정부 보급

글자는 반쯤 젖은 종이 위에서 조금씩 번졌다. 내가 적는 동안 이수민은 죽은 카메라를 든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표정에는 짜증과 불안, 그리고 작은 질투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나는 아직 적을 수 있었지만, 이수민은 찍을 수 없었다. 그것이 아마 질투의 원인일 것이다.
"보여주시려던 게 이겁니까?"
"네."
"꺼내서 가져가야겠는데요."
이수민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왜요?"
"안 빠져요. 아주 꽉 끼어서 안 놓아줘요."
내가 다가가 세게 당겨보았지만 허사였다. 아무리 세게 당겨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방호복은 바위틈에 단단히 물려 있었다. 이상한 건 찢어진 자국이었다. 파도에 뜯겨나간 것치고는 선이 지나치게 반듯했다. 누군가 칼이나 가위로 잘라낸 뒤, 바위틈 깊숙이 밀어 넣은 것처럼 보였다. 숨기려고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