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박문구 장편소설)

너나 (박문구 장편소설)

$17.00
Description
가장 순수한 사랑이 빚어낸, 가장 참혹한 비극
: 연인을 구하기 위해 살인자가 된 남자, 그 남자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올가미를 쓴 여자. 폭설이 내리던 그날 밤, 우리의 시간은 영원히 멈추었다.
갓 부임한 청년 교사와 기혼 여선생의 목숨 건 사랑, 이를 파고드는 예리한 시선.
사건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결론을 유추하며 번민에 흔들리는 경찰관의 선택.
기존 법질서를 비껴가는 또 다른 정의는 살아있는가, 목숨 건 사랑이 지금도 존재하는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나≫는 기억과 양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낸 문학 미스터리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제목이 품고 있던 진짜 의미를 만나게 된다.

국어 교사 김진수는 도시를 떠나 눈 덮인 산골 마을로 부임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발령이었지만, 실은 스스로를 밀어 넣듯 선택한 자리였다. 그가 떠나온 곳에는 끝내 정리하지 못한 과거-한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침묵이 남아 있다.
마을은 조용하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사람들은 서로의 사정을 깊이 묻지 않는다. 진수는 그 틈에 섞여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홀로 앉아 글을 쓴다. 그가 적어 내려가는 문장은 소설인지, 기록인지, 혹은 고백인지 스스로도 분간하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쓰는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늘 ‘그녀’(여주인공 허이루)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부터 진수는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눈 내리는 길목에서, 저녁이 내려앉은 골목에서, 노을이 번지는 강가에서 이미 사라졌어야 할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를 바라볼 뿐이다. 그 시선은 마치 과거의 어느 순간을 정확히 겨누고 있는 것처럼, 그가 외면해 온 기억들을 하나씩 끌어올린다.
진수는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환상인지, 기억의 재현인지, 혹은 미처 끝나지 않은 감정의 잔재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만남들이 그를 과거로 밀어 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도망치듯 이곳에 왔지만, 오히려 더 선명하게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학교에서의 시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를 흔든다. 조용한 학생 정우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글 속에서는 누구보다 솔직하다. 진수는 그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시간, 선택을 미뤄버렸던 순간들.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한편 동료 교사 선미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오늘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그녀의 태도는 진수에게 낯설지만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계절이 서서히 바뀌고, 눈은 녹기 시작한다. 강물은 얼음을 풀고 다시 흐른다. 그 변화 속에서 진수 역시 조금씩 흔들린다. 더 이상 ‘그녀’를 피해 다니지 않게 되고, 마침내 기억 속 한 장면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날, 떠나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던 순간. 그는 그 침묵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는 깨닫는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방식이 달라질 뿐이며, 사람은 과거를 지우는 대신 그것 위에 현재를 쌓아가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마지막 겨울이 지나고, 진수는 더 이상 ‘그녀’를 쫓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써오던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해 나간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문장이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건넬 수 있게 된다.
산골 마을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진수는 더 이상 멈춰 있지 않는다. 그는 떠나지 않는다. 대신 남는다. 그리고 살아간다.

≪너나≫는 누군가를 잃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 기억과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 그리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

박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