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세 하우스

베네세 하우스

$15.00
Description
『히스의 언덕』으로 독자들과 친숙한 김현숙 작가의 신작 소설집으로 단편소설 7편과 스마트소설 2편을 싣고 있다. 평소 서정성 짙은 문장과 인연의 굴레에 관해 깊이 있게 천착해온 작가는 이 작품집에서도 양극단에서 벗어난 균형 감각을 적절하게 확보하면서, 혈연공동체 속 여성 의식과 사랑의 인연을 통한 세상에의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고운사 가는 길」은 형제들이 아버지의 흔적을 찿아서 경북 의성 고운사를 찾아가는 소설이다. 일본 유학 중 대동아 전쟁으로 불가피하게 학업을 중단했던 아버지의 더없이 외롭고 지난한 삶과 그것을 더듬어가는 자식들의 심리가 조밀하게 교차되고 있다. 시대의 아픔과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의 안타까움을 핏줄을 넘어서는 공감의 언어와 아버지가 일본에서 만난 유코를 비롯해 혜인, 그녀의 어머니와 형제 등을 통해 나타나는 여러 개의 갈라지는 목소리로 시대와 혈연의 상대성을 진정성 있게 들려주고 있다.
「베네스 하우스(Benesse House)」는 여행 가이드인 하현이 남편 진성과의 이별 후 쓸쓸한 마음을 안고 떠난 쿤민행 가이드 길에서 하준우라는 남자를 만나는 인연을 통해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삶을 차분하면서도 서정성 짙은 언어로 묘파하고 있다. 작가는 하현의 심리 변화를 촘촘하게 묘사하면서도, 인연으로 헤어지고 만나는 과정을 통해 인생이란 끝없이 옮겨 다니면서 지어진 후에 다시 헐려야 하고, 인연 또한 시간이라는 수레바퀴에 실려 돌고 도는 존재라는 것을 베네스 하우스(Benesse House)의 상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두렵고 사랑스러운 나의 목격자들』은 중학교 영어선생으로 재직하면서 만난 제자들이 나중에 작가가 되어 역시 소설가가 된 영어선생과 재회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화자부터) 자기 스타일을 완강하게 고수하고 끝까지 가고야 마는 집요한 인간들인데, 그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투명한 윤리성이 특히 눈에 띈다. 이것은 어쩌면 김현숙 작가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삶을 대하는 태도의 윤리성에 가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제목이 ‘두렵고 사랑스러운 나의 목격자들’인 것이다.
「비누풀꽃」은 군대에서 사랑하는 민하를 잃은 아픔을 겪은 화자(시내)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민하의 쌍둥이 동생 서하의 가슴 시린 이야기이다. 서하를 괴롭게 바라보아야 하는 시내의 마음과 감정의 파동은 아프면서도 애잔하다. 그렇기에 ‘온당하고 유연한 도피로의 가장 적절한 계기가 무엇인가’를 두고두고 되묻게 만드는 작품이다.
「엔하이폰 XO」는 미국 보스톤에서 온 15세 손녀와 한국의 할머니가 만나서 세대 차이의 간격을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몸과 마음의 부대낌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핏줄은 자기 판단이나 이해관계로 이루어지는 수익성 너머의 앞뒤 재지 않고 계산하지 않은, 혹은 계산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혈연공동체 운명의 겹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운중천의 안개」는 외로운 삶에 대처하는 60대 초반 남녀의 사랑과 생존의 서사를 다루고 있다. 뒤늦게 다신 만난 첫사랑을 그대로 직시하는 용기를 가진 남녀의 행동을 불륜이나 일탈이 아니라 공동체적 활력으로 변모시켜 허무와 외로움에 맞서는 생생한 현장이다. 이 소설은 복고적이거나 낭만적인 사랑을 넘어서서, 운중천의 생명체의 생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남녀의 만남을 생태학적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유폐幽閉」는 세 딸이 49제를 지내고 노모의 강원도 산골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는 현장이 배경이다. 오 남매를 낳아서 키우고 부대끼며 살다간 어머니에 관한 천양지차인 회상을 통해 그의 진면목을 알아가는 현장이다. 집을 지어주면서 배려와 돌봄의 생태적인 요소를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곳과 그 집은 어머니의 유폐 장소였다. 이 작품은 ‘생명줄’을 통한 혈연공동체 삶의 윤리에 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스마트 소설 「그의 세 번째 여자」는 화자의 막냇동생과 그의 여자들에 관한 삽화를, 「탈의 미소」는 30년 만에 만난 대학 4년 동안 꼬박 붙어 다니던 친구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김혐숙 작가의 소설집 「베네스 하우스(Benesse House)」에는 많은 인물의 제각각 다른 목소리가 등장한다. 이처럼 다성의 목소리가 일관되게 향하는 지점은 혈연공동체의 의미나 사랑의 상대성에 대한 말 걸기이다. 김현숙 작가는 특히 이들과 말 걸기에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설가 특징을 한껏 내밀하게 빛내면서 한 시대의 풍속도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그의 소설이 소재를 혈연공동체나 사랑하는 대상에서 육화하는 방식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혈연공동체가 현재의 이야기보다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과, 사랑의 대상에 대한 기억과 회상과 반추의 양식으로 단속적이고 계기적으로 떠오르는 기억 속 여행을 다니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자꾸 사라지려는 기억의 원천을 앞에 두고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될 수 있으면 많은 목소리를 통한 다양한 회상으로서의 소설 쓰기이다.
그래서 김현숙 작가의 소설은 몇 겹의 시간대를 감추고 있다. 서사적 현재로 표현되는 한 겹의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뒤에는 두 겹의 과거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 그 과거는 더 이전의 세 겹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회상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현재와 과거와 나누는 대화이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풍요로운 기억의 환유로서의 소설 쓰기라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만으로도 능히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김현숙 작가의 소설에 대한 집요함이 우리에게 그렇게 증명하고 있다.
저자

김현숙

저자:김현숙

서울출생
이화여대영어교육학과졸업
일산중학교,고양중학교에서8년간교직생활
한국문인협회소설분과이사역임
현한국문인협회감사
현재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1989년동아일보신춘문예당선(단편「골고다의길」)
1989년현대문학신인상추천완료(단편「어둠,그통로」)
작품「출모」「삼베팬티」「어두워지지않는밤」「가지않은길」「꽃비내리다」「홋카이도3월의눈」「와디」「산우」「히스의언덕」「고운사가는길」「운중천의안개」「유폐」「베네세하우스」외다수.
장편「먼산이운다」「흐린강저편」
2002년소설집「하얀시계」출간(휴먼앤북스)
2010년소설집「노을진카페에는그가산다」출간(도서출판개미)
2013년장편「먼산이운다」출간(문학나무)
2018년소설집「히스의언덕」출간(도서출판개미)
2018년봄호부터2019년겨울호까지
계간「리토피아」장편「흐린강저편」연재완료
2020년9월장편「흐린강저편」출간(계간리토피아)
2025년10월소설집「베네세하우스」(도서출판도화)

2010년제14회이화문학상수상
2012년제1회아시아황금사자문학상(우수상)수상
2013년제10회한국문협작가상수상
2021년제11회한국소설작가상수상

목차


작가의말

고운사가는길/9
베네세하우스(BenesseHouse)/35
두렵고사랑스러운나의목격자들/59
비누풀꽃/95
엔하이픈XO/123
운중천의안개/147
유폐/173

스마트소설
그의세번째여자/191
탈의미소/199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첫창작집을낼때,아마도여섯번째쯤의창작집을펴낼즈음엔꽤나여유롭고널널한심경이리라예상했었다.그러나정작여섯번째저서,‘작가의말’을쓰는내마음은여전히안개속에갇힌듯모호하고혼미하기만하다.차라리쓴다는것의속성을깊이알지못했던등단초기의미숙이외려더담대를불러온것은아니었을까.집필에서흔히말하는,용불용설의이론이내경우엔잘들어맞질않는거같다.알수가없는일이다.

책속에서

저녁예불을알리는고운사의범종소리가들려왔다.더없이은은하고도가슴을파고드는알연한소리에혜인은긴회상에서깨어났다.우화루창가나뭇가지에곤줄박이한마리가날아와앉았다.흔히볼수없는매우희귀한새.주황빛가슴에잿빛날개가선명한,사람을잘따르는예쁜새.가슴을찌르듯맑고명징한울음이묘한위안과여운을안겨주었다.그옛날어린동자승,아버지도곤줄박이의고운울음소리에힘겹고외로운수행의길을거뜬히이겨낸것은아닐지…….

불현듯지난봄J대명예졸업장증정식을끝내고일행과함께이곳고운사를다녀갔을유쿄의모습이떠올랐다.그녀를만난지근3개월이지나고있었으나그간단한번도연락한적이없다는사실이한편은좀너무소원했다는생각이들기도했다.혜인은급히핸드폰을꺼내유쿄의전화번호를검색한후차분히문자판을두들겼다.

안녕하십니까.지난번한국에오셨을때뵌
스즈키님의딸,혜인입니다.
오늘남매들과고운사에오니유쿄님이생각나
급히몇자안부올립니다.사진도첨부하오니
일견하시길요.늘안강하시고복된나날이시길빕니다.

유쿄에게문자를보내고나니혜인은만감이교차,괜스레가슴이뛰었다.마치자신이아버지의심경이된듯야릇한일체감에휘말림은알수가없는일이었다.고운사경내를빠져나와마악차에오르려할때였다.경쾌한멜로디와함께유쿄의답신이도착했다.

잘지내시죠.지난번엔가족들모두만나
너무도반가웠어요.고운사가어찌나
유서깊고아름다운지
거길떠올리면지금도가슴이뜁니다.
한국엘다녀와무척기쁩니다.
내년봄,벚꽃이필때쯤일본에한번오시어요.
스즈키상과걸었던벚꽃길함께걷고싶어요.
꼭초대하겠습니다.온가족늘평안하십시오.

다정함가득한유쿄의문자는근원모를우울감을털어내는마법이었을까.산다는일의허망함,아버지를향한막연한연민과그리움,세월의흐름에대한끝모를허무와슬픔등이일거에사라지고다시금그윽한기분이몰려왔다.
혜인은그러한기분이좀더오래오래지속되길바라며아쉬움가득한마음으로고운사를떠나왔다.-「고운사가는길」

이별의빛깔이듯유독처연한가을빛이더없이견디기힘들어하현은더욱일에몰두하며여행팀을이끌곤여기저길돌아다녔다.그러나가이드로서더이상의기쁨이없음은참으로맥빠지는일이었다.4월,준우와함께한곤명여행이후그녀의내면에서진정한기쁨이란사라지고없었다.정말희한한일은1년간의연애기간을거쳐결혼3년차에접어들었던진성과의헤어짐보다곤명행단사흘간의만남이가져온이별이훨씬더저리도록가슴아프다는사실이었다.마치가슴한가운데심장이통째로구멍이난듯,아니얼이빠져나간듯그렇게텅빈몸과맘으로그녀는단지하루하루를연명해가고있을뿐인그런시간이흘러갔다.언젠간회복기가오겠지.그녀는가까스로자신을추스르며단지여행가이드로서의임무에충실한나날을이어갔다.
뉴욕의가을을거쳐캐나다의몇개도시를돌아보는긴패키지일정을마친후대형그룹을인솔,지친몸으로인천공항에도착한저녁,준우에게서톡이왔다.이즈음되도록그의전화나문자에응답하지않으려애를썼기에이제더이상은그로부터연락이없으리라예상했었다.-「베네스하우스(BenesseHouse)」

소현이장편을연재하는문예지화보사진을보곤긴가민가의아해하며잡지사에전화를걸어소현의소재를확인한민의음성엔짙은반가움이묻어났다.샘,저기억하시나요.L중1학년마치고전학갔잖아요.그때샘께서전학가서도공부잘하라며안아주신게생각나요.그럼생각나고말고!소현도감격에겨워어쩔줄을몰랐다.전화선을타고들려오는음성은까까머리시절의음성그대로인데그새무려35년이란세월이흘러갔다니!아득한시간의흐름에소현은가슴이먹먹해왔다.민은그녀의예상대로매우유명한각자장이되어있었다.국내유수대학행정학과를나와한동안직장생활을하며부업으로인테리어일을병행하여한때는상당한돈도모았으나타고난끼는그도어쩔수가없었다.마침내오랜세월꿈꿔오던각자를시작하려모든걸정리하곤산골로내려와몇년에걸쳐직접황토집을지었다.남들은돈을들여단시일에완공할것을몇배나더걸려한칸한칸손수지은것이다.강한투지와집념이이뤄낸성과였다.작업을하는틈틈이늘마음속에서타오르던시공부도시작했다.우연히이름난시인두사람이그의산방이웃인것도큰영향을미쳐은연중그의시작에많은격려와도움을주었고,몇해전그또한일간지신춘문예를통해등단,꽤이름난시인이되었다.-『두렵고사랑스러운나의목격자들』

두사람은2호선강변역시외버스터미널에서와수리행버스를탔다.이심전심시내도어렴풋이생각해오던계획을서하가먼저조심스레내비쳤고둘은동시에뜻이맞아가족전원이참배할현충일을한주앞둔주말,마침내와수리행계획을단행하기에이르렀다.버스엔빈자리가많아다행이었고,두사람은한좌석에나란히앉았다.그의고백이있은후어쩜두사람은암묵적으로서로의마음을재확인하는시간이필요했을지도모를일이었다.
작년가을시내혼자왔던길을서하와둘이서오다니!당시그녀로선상상조차할수없던일이었다.삶이란정말한치앞을헤아릴수없는불가사의임을절감하는시내의눈에후룩,물기가배어났다.그땐단풍이절정인가을이었고지금은초여름.불과몇개월만에상황은완전바뀌었고민하가이제이세상에부재한다는사실이시내는아직도저히믿겨지질않는다.
버스가신길로접어들어차체의요동이심해지자서하가한팔을올려시내의어깨를가만히끌어안았다.
잠시눈감고제어깨에좀기대요.멀미가날수도있으니.
바로그런점이그의형,민하와너무도닮아놀라울정도였다.시내는말없이서하의어깨에머리를기댄채긴긴상념에빠져들었다.-『비누풀꽃』

지난겨울잔뜩얼어붙은몸과맘으로홀로운중천을걸을때면외다리로홀로서있는흰두루미의존재에자주눈길이머물곤했다.꽁꽁얼어붙은개울에외발을딛곤무언가를기다리듯하염없이서있는모습을보노라면마치자신의실체를목격한듯외로움이엄습해옴을피할길이없었다.누군가다가오는기척이느껴지면반짝이는얼음발찌를찬채순식간에허공으로날아오르는모습이짙은공허감을안겨줌은알수가없는일이었다.아들네를미국으로떠나보내고아무도모르는낯선동네에서홀로사는까닭일까.근원을알수없는외로움이었다.
상헌을만난것은바로그즈음이었다.그가판교로달려와둘이함께운중천을걸을때면그런외로움따윈씻은듯이사라지고없었다.바로그러한점이그녀가상헌을전혀경계하지않고마냥지속적만남을이어간가장큰원인이었을것이다.사실그와의만남에전혀걸림돌이없을수는없었다.그는엄연히유부남에직장에서의업무도제한을둘만큼세심히돌봐야만할병든아내가있다.그러한사실을한시도잊지않고그녀는늘스스로를견제하며일정선을넘지않으려안간힘을쓰기에그나마둘사이가보다오래지속되고있는것일지도모른다.지난12월에서5월사이.근6개월간그들은최소한일주일에한두번은만남을이어가고있었다.열애도아니고결코불륜이랄수도없는,초교동창과의만남.하지만그러한우정은그들의무미건조한삶에엄청난활력과즐거움을안겨주었다.우선판교로이사온후유증으로인해그녀는한동안전혀글을못쓰고있는상황이었으나,그를만난후부턴이상하게도작품을쓰고싶다는의욕이불타오름은스스로도알수가없는일이었다.-「운중천의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