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후진하지 않는다 (박규현 시집)

강은 후진하지 않는다 (박규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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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시집은
47쪽에 달하는 장시와 열 편의 연작시(「산」)를 시(詩)라는 양식 안에서 대단히 이질적인 양식적 간격을 굳이 무너뜨리거나 허물지 않으면서 서정과 서사를 절묘하게 통섭하고 있는 시집이다.
1부 「강」은 7편으로 이루어진 장편 연작시이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수많은 이야기가 내장된 강렬한 서사를 배경으로 한 시대의 표정들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박규현의 ‘강’이 특별한 점은 그것이 오직 ‘물’로만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우리를 출산했던 분 / 고통을 안으로 숨기고 / 한 하늘을 인 채 / 견고한 바위로 누워 / 시대를 넘어 / 한을 노래”(「산 1」)하는 산이 있어 결코 가볍지 않다. 모두 열 편의 ‘산’이 있다. 산은 모든 것을 품어내면서도 아무 말 없이 고고하고, 강은 때로 우르쾅쾅 소리치거나 때로 소곤대면서 낮고 낮게 흘러간다. 박규현의 대작 「강」은 처음부터 우리 인간들의 매우 보편적인 삶의 차원을 시정(詩情)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연이어 제2편에서 제6편에 이르기까지 인생지사 신산고초가 유장한 가락을 타고 흐른다.
『강은 후진하지 않는다』가 담고 있는 또 다른 노작이 모두 열 편에 이르는 「산」 연작이다. 「강」은 한 편의 시를 7마디로 나누어 썼지만, 「산」은 낱 편이 10마디이다. 맨 처음 우리는 저 높은 곳에서 태어났다. 산을 넘어 천상의 어느 빛나는 궁전에서 살다가 그만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이 지상에 내려 온 것이다. 박규현이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은, “한 하늘을 인 채 / 견고한 바위로 누워 / 시대를 넘어 / 한을 노래한다”에서 알 수 있다.
‘강’이 흐르고 흘러 우리가 나아가는 물길이라면, ‘산’은 우리를 낳고 우리를 굽어보는 생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이 작품에 있다. 그것은 이어지는 다른 시편들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 길이 펼쳐져 / 나를 아득한 곳으로 데려갑니다”(「산 2」). “어르신, 수천 년 생명으로 남아 / 비바람을 견딘 / 산정의 모진 기억들이 회한의 이름으로 / 오늘도 나뭇가지 흔들거린다”(「산 5」).
박규현의 시집 『강은 후진하지 않는다』가 ‘강’과 ‘산’이라는 근원적 이미지를 통한 서사와 서정의 절묘한 균형뿐만 아니라 이밖에도 다양한 삶의 편린들과 시적 자아의 애상의 그림자가 수없이 어른거린다. “밤의 창가로 한 걸음 다가가 /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모든 것은 음악 소리를 낸다」)라는 예민한 감각이 있는가 하면, “별이 반짝거리고 있는 것은 / 우리의 영혼이 속삭이고 있기 때문”(「별」)이라는 섬세한 떨림이 있다. “임이여 / 사랑하는 임이여 / … / 임의 포옹 속 따뜻했던 혈기는 / 내 가슴 속 불씨로 타오르고 있습니다”(「임」)라는 데 이르러서는 만해나 소월이 남긴 ‘임’의 웅숭깊은 민족적 정한(情恨)까지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이르면 박규현의 ‘의욕적이며 노련한’ 시적 열정이 궁극적으로 서정의 지평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알 수있다. 어느덧 70년을 넘어 100년에 가까워지는 분단의 시간에도 “대동강 물비린내 바람결에 드문드문”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남으로 가자 / 둥지 차고 비상하는 반가운 날갯짓”을 감각하기 때문이다. 박규현이 지난 세기 대립의 역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이와 같은 시편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가 “내 숨결인지 아시는지요”(「임」)라고 절규하는 심사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강은 후진하지 않는다』 제4부의 시편들은 일상의 소묘이자, ‘우리 땅’에 대한 그윽한 사랑의 깊이로 넘실대고 있다. “반도의 만년빙에 봄은 오는가 / 팔다리가 부러져도 / 빙산에서 내리는 한 줌 햇살 그리워 / 동트는 새벽을 기다린다”(「1980년」)라는 시가 있는가 하면, “잉걸불 앞에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 단맛에 취해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것도 모른다”(「공」)라는 작품이 있다. 또 “산과 산이 마주 앉아 산아 산아, 흔들어 깨우는 술렁임에 새벽잠을 털고 하루를 시작한다”(「능선과 하늘 사이」)는 대목도 보인다.
이처럼 박규현의 시집 『강은 후진하지 않는다』 79편에 달하는 분량도 그렇지만, 47쪽에 달하는 대작 「강」과 열 편의 「산」 연작으로 서사와 서정의 절묘한 균형 속에서 폭넓은 시적 탐색과 의욕적이면서도 노련한 시적 경영이 보여주는 맛과 멋을 절묘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

박규현

전북정읍산외에서출생하여그곳에서성장과정을보냈다.1998년명지대사회교육대학원에서문예창작학을전공하여석사(윤흥길소설연구)학위를받았다.1990년계간지「문학과비평」에신인투고단편소설「벼랑위의집」이당선되었으며1991년경인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벽에대한노트혹은절망연습」이당선되기도하였다.소설집으로「걸어가는달」「흔들리는땅」「우리는이렇게흘러가는거야」「강의문서」가있고장편소설로「사랑노래혹은절망노트」「별리시대」「단진자는멈추지않는다」가있으며장편융합소설로「벽과꿈의소나타」가있다.제18회한국문학백년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
강1~7

2부
나의시간을차압합니다/모든것들은음악소리를낸다/별/창가에서서/강물이흘러간다/그냥곁에있는것만으로도/그리워/길/꽃/꽃으로피라/나무와새와/난쟁이/내소녀/임/물을뿌리고나서/밤의소묘/배/백두산/변방에부는바람/별하나외출한자리/북풍/신탁구교본/위험한밥상/적요를흔들면고독이울려온다/철조망/신화에게/어둠아,어둠아!/그런나라

3부
5월의노래/걸레/겨울나무에게/계단/귀향/길의운율/눈을깜박이는이유/바랭이/밤의변주/벽타기/산1/산2/산3/산4/산5/산6/산7/산8/산9/산10/그림/이렇게외면하고길을걷는것은/전주에서수원까지/지금은촛불을켤때가아니다/지날재/처방전/촛불/현대시

4부
1980년/겨울나무/길2/능선과하늘사이/다도해/비봉산에는이상한나라들이있다/살아있는동안/새터가는길/옥구슬들의행진/육각기둥/지하철노선도/진단서/참회록/창/칠봉이/품사론/피파온라인3/홍수/돛단배

해설
서사와서정의절묘한균형,그리고‘강’과‘산’/김재홍

출판사 서평

무려47쪽에달하는장시(「강」)와모두열편의연작시(「산」)를포함하고있는박규현의시집『강은후진하지않는다』는매우의욕적인양식주유하기의성과라고할수있습니다.그것은또한매우노련한도전이자실험이기도합니다.(김재홍시인ㆍ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