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박연준 산문)

소란 (박연준 산문)

$16.00
Description
왜 슬픔은 나를 좋아해서
하필 내 위에서 요란하게 작두를 타고 싶어하는지,
아니 내가 슬픔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

소란하고 속절없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시인 박연준의 첫 산문집
사랑의 속성이 속절없음이라고 말하는 시인 박연준의 첫 산문 『소란』 개정판이 난다에서 출간된다. 2014년 초판 출간 후 받아온 꾸준한 사랑을 옷감 삼아 새 옷을 입게 되었다. 『소란』은 ‘어림’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여림, 맑음, 유치, 투명, 슬픔, 위험, 열렬, 치졸, 두려움, 그리고 맹목의 사랑 따위가 쉽게 들러붙는(10~11쪽) 어림의 시절.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 우리는 누구나 그 어림을 경험하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어림의 시절은 꿈처럼 따라붙어 우리의 약한 부분을 헤집는다. 시인에게 그 시절은 감정 과잉과 열망이 엉켜 소란하고, 걱정과 불안이 고약하게 활개를 치는 시기였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데도 우는 것처럼 보이던 때, 시인은 슬픔이 그를 침범하도록 그대로 두었다. 슬픔이 활활 타오르는 죽은 나무(191~192쪽)인 채로 시를 쓰고, 또 시를 버렸다. 가장 격렬한 슬픔과 치명적인 아픔만 골라 껴안았던 이십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슬픔은 이미 폭죽이 터지듯 사라졌으나 그렇게 한철 사랑한 것들과 그로 인해 품었던 슬픔들이 남은 삶의 토대를 이룰 것임(196쪽)을 시인은 믿는다. 그리하여 시인이 어림을 아끼고 늙어 죽을 때까지도 몸 한구석에 어림이 붙어 있길 원하는 것(11쪽)은 곧 연약한 어림의 날들을 꽉 끌어안고 발버둥치며 살아가겠다는 어떤 약속과도 같다.

나는 시간이 그리다 만 미완성작,
완성은 내가 사라진 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나 이루어질 것이다

『소란』의 제목은 두 가지 뜻을 가졌다. ‘시끄럽고 어수선함’의 소란(騷亂)과 ‘암탉이 알 낳을 자리를 바로 찾아들도록 둥지에 넣어두는 달걀. 밑알이라고도’ 하는 소란(巢卵). 시인은 가볍고 무거운 소란(騷亂)들이 모여 몸을 누일 소란(巢卵)이 되기를, 그 누구도 너무 많이는 아프지 않기를(44쪽) 바라며 계속해서 시를 썼다. 그리 써온 것이 어언 이십 년. 서툴고 소란했던 마음들을 한 권으로 엮고자 ‘사랑’과 ‘일상’과 ‘시’와 ‘가족’을 키워드로 4부를 꾸렸다. 지금 『소란』을 다시 펼치는 것은 박연준 시인이 그간 통과해온 수많은 ‘어림’을 차근히 톺아보며, 눈물이 흐르지 않는데도 우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191쪽)을 보살피는 일이다.
시인은 꺾인 채로 기다래지는 사랑을 위해 노래하는 버드나무가 되어 밤과 낮을 지새울(31쪽) 것이라 말하며 사랑하고 살았던 과거와 사랑이 당도할 미래를 가늠한다. 그렇게 가늠한 시간은 우리 얼굴에 금을 긋고 도망가고(26쪽), 기울어진 것들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기어코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미완성작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완성을 유예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글들의 묶음이 된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데도 우는 것처럼 보였던 시절(191쪽)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려는 뜨거운 열망과, 도대체 버림당할 수 없는 비밀들(65쪽)에 대한 빼곡한 기록. 소란(騷亂)한 것들을 잔뜩 사랑하며 소란(巢卵)의 자리에 곡진히 써내린 맑고 열렬한 사랑의 자국들이 여기 있다.

슬픔을 지나온 힘으로
앞으로 올 새로운 슬픔까지 긍정할 수 있음을

‘헝클어짐이 사랑의 본질’(『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문학동네, 2024)인 박연준 시인에게 삶의 본연은 슬픔에 가깝다. 시인에게 슬픔을 감당하는 일이란, 떨어지는 꽃들의 무게를 무릎으로 감당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156쪽)과도 같다. 그는 슬픔이 즐거울 수 있음을, 슬퍼하지 않으면 더이상 어떤 시나 노래도 태어나지 못할 것임을(196쪽) 알고, 슬픔이 삶에 스며 있음을 기껍게 여긴다. 그러니 슬픔은 오히려 기쁨이고 사랑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니 슬퍼지고, 슬퍼하니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워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근작 시집에서 ‘깨진 것들을 사랑의 얼굴이라 부르는’ 곳에 당도하고, 이 세계에 사랑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먼저 소란(騷亂)해야 한다는 어떤 필연성을 그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첫 산문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꽃과 볕과 정을 탕진하듯 다 써버린(230쪽) 어린 날, 얼마나 절박하게 사랑하고 얼마나 절실히 시를 썼는지를 돌보듯 읽다보면 시인 박연준이 오래도록 품고 살았던 슬픔의 소란(巢卵)을 자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 자리에 찾아든 슬픔은 차근히 켜켜이 쌓여 기울어진 사랑의 더께를 만들어내고, 시인은 그것을 연료 삼아 더욱 살아간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살아 있다(214쪽).
표지에 들어간 정나온 작가의 작품은 김민정 시인이 박연준 시인의 생일에 선물한, 시인의 면면을 지독히도 닮은 그림이다. 고집 세고 눈물 많고 모든 게 처음인 여성. 여리면서도 질기고, 무슨 일이 있더래도 홀로 직진하며 뚫고 나가는, 그러면서도 겁먹은 속마음을 들키고야 마는 여성. 마주한 눈동자에서 『소란』 속 다정하면서도 소란한 시인의 말투와 ‘어림’을 간직한 표정이 고스란히 읽힌다.

쓴다는 것은 ‘영원한 귓속말’이다. 없는 귀에 대고 귀가 뭉그러질 때까지 손목의 리듬으로 속삭이는 일이다. 완성은 없다. 가장 마음에 드는 높이까지 시와 함께 오르다, 아래로 떨어뜨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박살은 갱생을 불러온다. (…) 끝내 시 속에서, 인생을 탕진하고야 말겠다. _「글쓰기의 두려움」 부분
저자

박연준

저자:박연준
무지몽매해서늘실연에실패한다.무언가를사랑해서까맣게타는것이좋다.2004년중앙신인문학상을통해등단했다.시집『속눈썹이지르는비명』『아버지는나를처제,하고불렀다』『베누스푸디카』『밤,비,뱀』『사랑이죽었는지가서보고오렴』과산문집『우리는서로조심하라고말하며걸었다』『내아침인사대신읽어보오』『밤은길고,괴롭습니다』『인생은이상하게흐른다』『모월모일』『쓰는기분』『고요한포옹』『듣는사람』,장편소설『여름과루비』등을펴냈다.

목차


개정판서문‘어림’을사랑하는일8
초판서문모든소란은고요를기를수있다14

1부누가사랑에빠진자를말릴수있겠어요?
서쪽,입술24
바둑돌속에잠긴애인29
하필何必,이라는말32
당신이아프다41
손톱걸음45
통화중51
사랑이어긋났을때취하는두가지태도53
비자나무숲56
나는나를어디에서빨면좋을까요?64
일곱살클레멘타인66

2부나는안녕한지,잘지내는지
첫,80
서른83
겨울바다,껍질88
그보다나는안녕한지94
뱀같이꼬인인생일지라도97
바보이반을사랑하는마음으로100
이파리들108
요리하는일요일110
완창完唱에대하여114
사과는맛있어117
오후4시를기보記譜함120
모란일기―토지문화관에서124

3부시는가만히‘있다’
당신의부러진안경다리132
똥을두고온적도,두고온똥이된적도있다135
글쓰기의두려움141
도레미파솔라‘시’도속에잠긴시詩147
하이힐―사랑에출구는없다151
청국장은지지않는다157
꼭지160
음경164
잠지166
계단168
꿈171
코―감기전感氣傳174
고양이177
춤,말보다앞선언어179

4부방금태어난눈물은모두과거에빚지고있다
슬픔은슬픔대로즐겁다190
고모방197
할머니201
잃어버린것들은모두유년에가산다205
내침대아래죽음이잠들어있다209
봄비216
신발가게219
겨울은사라지는것이아니라녹는것이다221
12월,머뭇거리며돌아가는달223
가는봄에게목례를―죽은아빠에게227
느리게오는것들233

출판사 서평

나는시간이그리다만미완성작,
완성은내가사라진후
누군가의기억속에서나이루어질것이다

『소란』의제목은두가지뜻을가졌다.‘시끄럽고어수선함’의소란(騷亂)과‘암탉이알낳을자리를바로찾아들도록둥지에넣어두는달걀.밑알이라고도’하는소란(巢卵).시인은가볍고무거운소란(騷亂)들이모여몸을누일소란(巢卵)이되기를,그누구도너무많이는아프지않기를(44쪽)바라며계속해서시를썼다.그리써온것이어언이십년.서툴고소란했던마음들을한권으로엮고자‘사랑’과‘일상’과‘시’와‘가족’을키워드로4부를꾸렸다.지금『소란』을다시펼치는것은박연준시인이그간통과해온수많은‘어림’을차근히톺아보며,눈물이흐르지않는데도우는것처럼보였던시절(191쪽)을보살피는일이다.
시인은꺾인채로기다래지는사랑을위해노래하는버드나무가되어밤과낮을지새울(31쪽)것이라말하며사랑하고살았던과거와사랑이당도할미래를가늠한다.그렇게가늠한시간은우리얼굴에금을긋고도망가고(26쪽),기울어진것들에대한시인의애정은기어코영원히완성되지않을미완성작으로남는다.그러므로이책은완성을유예하며자신을둘러싼세계에대한이해에도달하고자하는글들의묶음이된다.눈물이흐르지않는데도우는것처럼보였던시절(191쪽)로부터멀어지지않으려는뜨거운열망과,도대체버림당할수없는비밀들(65쪽)에대한빼곡한기록.소란(騷亂)한것들을잔뜩사랑하며소란(巢卵)의자리에곡진히써내린맑고열렬한사랑의자국들이여기있다.

슬픔을지나온힘으로
앞으로올새로운슬픔까지긍정할수있음을

‘헝클어짐이사랑의본질’(『사랑이죽었는지가서보고오렴』,문학동네,2024)인박연준시인에게삶의본연은슬픔에가깝다.시인에게슬픔을감당하는일이란,떨어지는꽃들의무게를무릎으로감당하며조금씩앞으로나아가는것(156쪽)과도같다.그는슬픔이즐거울수있음을,슬퍼하지않으면더이상어떤시나노래도태어나지못할것임을(196쪽)알고,슬픔이삶에스며있음을기껍게여긴다.그러니슬픔은오히려기쁨이고사랑이되는것이다.사랑하니슬퍼지고,슬퍼하니세상은참으로아름다워진다.그리하여시인은근작시집에서‘깨진것들을사랑의얼굴이라부르는’곳에당도하고,이세계에사랑이존재하기위해서는그전에먼저소란(騷亂)해야한다는어떤필연성을그린다.그러므로우리는그의첫산문집으로다시돌아올수밖에없다.꽃과볕과정을탕진하듯다써버린(230쪽)어린날,얼마나절박하게사랑하고얼마나절실히시를썼는지를돌보듯읽다보면시인박연준이오래도록품고살았던슬픔의소란(巢卵)을자연히발견하게된다.그자리에찾아든슬픔은차근히켜켜이쌓여기울어진사랑의더께를만들어내고,시인은그것을연료삼아더욱살아간다.‘한번도멈추지않고’살아있다(214쪽).
표지에들어간정나온작가의작품은김민정시인이박연준시인의생일에선물한,시인의면면을지독히도닮은그림이다.고집세고눈물많고모든게처음인여성.여리면서도질기고,무슨일이있더래도홀로직진하며뚫고나가는,그러면서도겁먹은속마음을들키고야마는여성.마주한눈동자에서『소란』속다정하면서도소란한시인의말투와‘어림’을간직한표정이고스란히읽힌다.

쓴다는것은‘영원한귓속말’이다.없는귀에대고귀가뭉그러질때까지손목의리듬으로속삭이는일이다.완성은없다.가장마음에드는높이까지시와함께오르다,아래로떨어뜨리는일이내가할수있는전부다.박살은갱생을불러온다.(…)끝내시속에서,인생을탕진하고야말겠다._「글쓰기의두려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