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나 말지

말이나 말지

$18.00
Description
글이라고는 하나 말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말보다 살찐 망아지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어쩌겠는가
모르는 게 아닌데 왜 이렇게 처음 같을까?
알 것 좀 안다 싶어지고 나니
그 세월 참 추웠겠다 싶네 그 쓸쓸

“눈은 천 개, 발은 만 개, 마음은 한 그릇 물처럼 한곳에서 찰랑이는 시인 김민정”(박연준). 시인을 본업으로 편집자를 주업으로 삼는 김민정의 신작 산문집 『말이나 말지』가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2012년 1월 1일부터 11월 10일까지 한국일보 ‘길 위의 이야기’ 코너에 열한 달 동안 매일같이 실었던 글 266편을 한데 묶었다. 680자라는 네모난 지면에 맞추어 일요일과 추석 연휴를 빼고 매일 쓰기를 했던 그다. 코너명에 걸맞게 원고를 컴퓨터가 아닌 길 위에서 휴대전화 블랙베리 자판으로 찍어 보내며 성실한 마감을 했다. 길 위에서의 다급한 통화나 펄쩍펄쩍 뛰는 말처럼, “하루가 인생의 다인 것처럼”(315쪽) 순간순간 살아간 기록이다. 마트의 말끔히 깐 도라지가 아니라 흙이 그대로 묻은 시장의 도라지(33쪽) 같은 글이다. 인정머리로는 타고난 힘이 장사였던 김민정. 삶에 있어 ‘인정’과 ‘머리’를 최우선에 두는 걸 순리로 알고는 살았다는데, 그가 680자로 포착해 시시콜콜 펼쳐 보이는 우리네 풍경은 경쾌한 웃음 속 비릿한 비애를 목젖 깊숙이 느끼게 한다.
평생 땀에 절은 작업복 입은 노동자 아버지의 딸로 살았던 시인의 눈이 향하는 건 사소하다 싶은 사물과 반복되는 정직한 일상이다. 그는 아이들과 나란히 서서 환호성을 지르며 사다리차를 구경하다 일층에 도착한 짐들의 남루함을 본다. “몇 알 안 달린 포도송이에 굳은 인절미에 봉지 반쯤 남은 쌀에 냄새나는 김치통까지.”(271쪽) 일회용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던 우산. 그러나 우산이 아니라면 명품 정장도 구두도 마음도 죄다 젖어 그저 바들바들 떨어야 할 우리……(286쪽) 우리들의 지갑, 저 안에 종잇장 두둑 채우려고 아등바등 매일같이 조금씩 늙어왔던 걸까(218쪽). 기쁨보다는 슬픔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짙은 그늘로 드리워진 우리 길. “삶의 반대말이 죽음이 아니라 포기라는 격려가 흔해빠졌다 한들 위로가 되지 못할 법은 아니지 않는가.”(357쪽) “여러분, 부디 돌이킬 수 없음을 돌이키는 헛됨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시라. 누구든 밥 세끼 먹고 산다. 누구든 안 죽는 사람 없다. 매일같이 오늘의 해가 어김없이 뜨노니!”(354쪽) “김치나 떡을 포장할 때 마지막 겉옷이 되어주던 보자기”(330쪽), 그 갖가지 문양과 패턴들이 절묘한 비례로 조각보를 이루도록 천 하나하나를 꿰맨 시인의 손이 귀하다.
저자

김민정

1999년『문예중앙』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날으는고슴도치아가씨』『그녀가처음,느끼기시작했다』『아름답고쓸모없기를』『너의거기는작고나의여기는커서우리들은헤어지는중입니다』,산문집으로『읽을,거리』『역지사지』가있다.박인환문학상,현대시작품상,이상화시인상,올해의젊은출판인상을수상했다.

목차

작가의말통장과이장사이4

1월9
2월41
3월73
4월109
5월141
6월177
7월211
8월245
9월281
10월313
11월345

출판사 서평

그게사는거다싶더라고.왜혼나는기분일까
내가삶을두고너무과한욕심을부렸던걸까

“할말이앞선다해도참아야하는말의귀함”(326쪽).“이해와오해라는양라켓사이에서핑퐁소리를내며잘도튀는말의그러거나말거나전법으로부터”늘속수무책인우리(76쪽).“말과행동에있어그보폭을나란히하는일은얼마나어려운가.말이한발앞서면무책임한사람이되고행동이한발앞서면의뭉스러운사람이된다.나는여전히아장아장그걸음마가어렵다.”(214쪽)김민정시인의어릴적꿈은어른,그러나어른이되어맞닥뜨린세상은입이없는데떠드는사람들과입이있는데침묵하는사람들이뒤엉켜벌이는부조리극의한장면같았다.그러나나도그들과쌍둥이처럼닮아있으니어쩌랴(296쪽).“그들에게서나라는평범을,나라는보통을”(56쪽)발견하게되는걸.“어른이된다는건매일매일모르는일이훨씬더많음을알게되는일이라두렵기마련”(325쪽),“자문하다보면필시침묵하게도되는바.그러니안다고믿는언덕에서가장쉽게미끄러지는거아니겠나.”(49쪽)상식과정의의온당함이라는기본적인얘기를어렵사리토로해야한다는씁쓸함(201쪽).말이안되는말을놓고말을나누려니슬픔으로탁해지는분노(21쪽).털어서먼지안나는건귀신일테니그건불가할테지만최소한제주제파악은해야하지않을까(295쪽).도통나도실천하지못하는주제에“에라,한입갖고두말이나말지!”(25쪽)“그래도그게난데,내스타일인데감추고가식을떨수는없는노릇아닌가”(23쪽).“힘들다고말하면엄살이고괜찮다고말하면체념이아닐까싶은순간에”(12쪽)겉어림의말말고속사정의말(69쪽)을헤아리는마음.“사랑하다미워지면욕을하고욕을하니미안해져더더욱사랑하게되는,사람이라는원이그리는바로그정”(13쪽)이여기있다.

장날에두부사러갔다가머리끄덩이를잡아채며죽일년살릴년하는아주머니들의뒤엉킴을보는데주책맞게왜내눈에서눈물이왈칵쏟아졌는지.엎어진좌판아래뭉개진두부의흰살을다시금탄탄히네모나게살릴수는없다는사실과그럼에도그걸쓸어담는아주머니들의데어붉어진손에서김이모락모락났다는거,그와중에콩비지바가지가쏟아지지않은게얼마나다행인가생각했다면이는특유의오지랖이었으려나.싸움은그릇도매점아저씨랑길건너좀약좌판아저씨사이의일이라기보다나란히옆자리를차고앉은두부장수아줌마들사이에서벌어지는일인법,우리삶을가만히돌이켜보면상처는생판모르는남보다생살속속알아온피붙이같은이들끼리주고받는고유의것이라할때이모순,이아이러니를나날이극복하며새날을맞이하는모든이가기적의생환자아닐까.
_「10월30일─어찌들살고계신지요」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