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역지사지,
여기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여태 실천이 안 되어 아직껏 붙들고 사는 말
평생 붙들려 살겠구나 뒷목 힘껏 잡아보게 한 말
여기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여태 실천이 안 되어 아직껏 붙들고 사는 말
평생 붙들려 살겠구나 뒷목 힘껏 잡아보게 한 말
“경쾌한 산문의 춤”(신형철)으로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기를 화두로 권하는 시인 김민정의 산문집 『역지사지』가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2009년부터 2025년까지의 근 16년간의 한국 사회를 여성의 눈을 통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미시사를 담았다. 2009년부터 2025년까지 한겨레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문화일보, 『씨네21』 등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산문을 연도별로 정리해 묶고 2009년에서 2011년 사이에 쓴 산문 17편을 첫 산문집 『각설하고,』에서 추렸다.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쓴 산문 50편에, 부록으로 리뷰 ‘시인의 서재’ 14편을 더했다. 가볍고 무거운 나무, 가볍고도 질긴 백지를 땅으로 삼아 밥벌이를 한 것이 햇수로 27년이다. 안다고 확신했던 데로부터 왜라는 물음표를 갈고리처럼 걸고 과감히 미끄러지는 그의 질문들은 사사로운 기록이 덤덤한 나의 기록처럼 읽히게 하는 보편성을 갖는다. 남과 자신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사자성어 역지사지. 시인에게는 한문 배울 때 가장 쉽다고 맨 처음 배운 사자성어임에도 여태 실천이 안 되어 아직껏 붙들고 사는 말이다. 얼버무리기엔 속수무책으로 당혹스럽고 부끄러움을 가장한 어떤 두려움(254쪽) 앞에 “핑곗거리나 대고 있는 나에게 눈을 흘기면서도 그래 그 마음 알지, 일견 이해를 얹는 건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여 똑바로 진실을 바로 보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건지 다행히도 아는 나이는 된 듯해서다”(234쪽). 시인은 이런 기질로 태어나 결국엔 이런 태도로 죽을 사람임도 알겠다면서 나이를 먹는다 한들 애초에 타고남이 종지이니 잘하면 사발이 될 거란 기대 자체를 아예 버리겠다 하지만 이 작은 종지에 담긴 간장의 풍미는 검고도 깊다. “잘 태어나는 건 우리 탓이 아니지만 잘 죽어가는 건 우리 몫임을 알게 하는”(298쪽) 이 무서운 말. 그 앎과 실천의 거리는 얼마나 가깝고도 먼지, 둘 사이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종이처럼 얇은 틈을 시인은 책장 넘기듯 보고 있다.
역지사지 (김민정 산문)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