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업고

아버지를 업고

$13.00
Description
난다시편 일곱번째 권
채길우 시집, 『아버지를 업고』 출간
손 놓으면 안 돼
겁먹은 내가 뒤를 건너보자
짐받이를 붙잡은 채
바큇살처럼 웃으시던

2013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제16회 김만중문학상을 수상한 채길우 시인의 신작 시집 『아버지를 업고』가 난다시편 7번으로 출간된다. 『매듭법』 『측광』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그의 이번 시집에는 총 49편의 시와 「채길우의 편지」가 실렸으며 대표작 「직립」(Upright)이 스틴 안(Stine An)의 번역으로 영문 수록되었다. 시인은 어린 줄기를 밀어올리다 어느 무렵 꽃 피우기를 멈춘 생물에 대한 0부 「평범」으로 시작해 다시 0부로 돌아와 자신을 간파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마무리한다. 두 개의 0부 사이에 놓인 것은 네 개의 계절. “기일에 타는/푸른 향에선/녹슨 들깻잎 냄새” 가득한 가을을 지나 “시린 침묵과 성긴 어둠”(「그믐」)의 겨울을 느끼고 “개나리/그늘 아래 나란히”(「부활」) 서 있는 아버지와 시인의 봄을 기억하며 “입 막힌 흐느낌이 손샅으로 새어”(「압력솥」) 소나기처럼 쏟아져내릴 때면 시인의 네 계절이 마무리된다. 아버지 떠나고도 하염없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 없이도 계절이 반복되듯 시인은 한 편의 시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따라오는 시에선 그 없이 하루를 보내며 매일을 반복하고 있다.
“아버지는 영이 될 수 없는 분모/나는 그 위에 올라선다/아버지가 커지면 전체가 작아지고/내가 커지면/흔들거리는 생활 속에서”.(「유전 법칙」, 『매듭법』) 누군가를 업는 행위는 누군가의 기둥이 되어주는 일. 시인이 아버지의 나무가 되어주었을 때, 아버지는 시인의 뒤에 남은 흉터를 보아주었다. 가만히 누군가의 뒤를 지켜보아주는 “게으른 사랑” 또한 사랑의 한 종류임을 믿으며, 이제는 아버지를 “느리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인의 낡은 그림자”와 “조그만 아이의 하품” 속에서 떠올릴 뿐이다. 말은 “자신과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속임수”(「채길우의 편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 이별의 도구를 이용해 말을 건네본다. “저는 아직도 잘난 척 아무 상관 없는 척 시나 쓰며 껍질뿐인 얼굴로 온 하루와 네 계절을 모두 보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잘 지내시나요?”(「채길우의 편지」)
저자

채길우

2013년『실천문학』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매듭법』『측광』이있다.김만중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005

0부
평범011

1부가을
형광등을갈때014
고백016
직립018
빈밭021
보조바퀴022
독신023
독024
노을025

2부겨울
결혼은언제하니028
달뜬이마를짚다030
그믐031
허기032
항암034
미소036
저온화상037
일기예보040
거울앞거울042
상여044
영혼046
제사048
환생049
앉아기다려옳지잘했어053
보리밟기054
잔광056

3부봄
호박060
만화경063
영정066
봄068
무표정070
파종073
버드나무074
매미껍질077
부활078
산수유080
태아처럼083
가로등086

4부여름
뻐꾸기소리090
항생제091
개기일식092
모래시계094
수세미096
순환계099
수확100
빛102
가지꽃104
무더위105
압력솥106

0부
사랑111

채길우의편지113
Upright-TranslatedbyStineAn117

출판사 서평

망자는말이없다.
비로소그가여기
있기때문이다.

사랑을나눌때나
신생아를처음받아안는순간
그리고무덤앞에서적막한

울음이외의다른말이
더이상필요치않은것은
서로가살을맞댄이곳에

깊숙하고가득히눈을감아도
잘보이는이토록가까운곁으로
이미함께와있기때문이다.
_「시인의말」전문


이전부가오직너의것이라하여도
이모든게다너의것이아니라하여도
이세상가질수없는
아름다움마저한껏이어서

아이는비틀거리며두어걸음걷다가쓰러지는자전거처럼까르르웃는다.함께터뜨리는둥근웃음이곧사라져버릴듯.시인은부풀어오른불안을닮아어린시절떼어버린보조바퀴가떠오른다.손을놓으면안돼,손을놓으면안돼.뒤에서들려오던거친호흡과뒤처진발소리를지울때까지페달을밟으며뒤를돌아보았을때시인의짐받이를붙잡던이는바큇살처럼웃고있다.핏줄에휘감겨도는체인은그렇게서로를묶고,아이는말을배우고,아이의등을지켜보아주던이의등은찌그러진소쿠리만큼어느새휘어있다.등을밟아달라는부탁에뒤에오르는“아이는아직가볍고/발걸음”(「보리밟기」)또한심각하지않다.구름같지만아직은흩어지지도쏟아져내리지도않을,새파란새싹같은시간속에잠겨있는동안의시인은아무런비애도가져보지않는다.그는맞잡은손을풀었다되잡는아버지와아들의뒷모습을바라본다.“다시금놓치기도하며비스듬한/타원궤도와일정하지않은공전/주기에도서로아주멀리/떨어지려하지않는”(「개기일식」)그들.교교히자리에멈춘아버지가자신의위상을그믐으로줄였다두팔벌려만월이되어줄때,아이는그품으로와락달려든다.아버지의가슴에감싸안겨아이는이제완전히보이지않지만그럼에도다숨기지못한금환이이글거린다.금세꼬물대기시작하는따스한척력에도아버지등뒤에는여전히식은역광이존재하고아이는감춰진채로도그림자를반짝반짝불태운다.“열살무렵개나리/그늘아래나란히//사십대아버지와/찍은사진을보면//중년이된지금의나는/사진속어린나보다/그시절아버지를더닮았다.”(「부활」)


불능에관한기대가
사랑의권력일수있다면

생전처음타인의발톱을깎아보는어느겨울의저녁(「그믐」).붉은피가맺히는데도“아버지”는움찔하거나따갑다는시늉조차없이생각에잠긴듯하고핏방울만몽글하게부풀고있다.이마에손을얹으면아릿한이계절보다먼저느껴지는시린침묵과성긴어둠.대신수염을깎아드린뒤거울을비추어드리면이창백한추위처럼아버지는아무말이없다.“너무오래머물러빛바랜껍질만큼투명하고/너무오래노력했지만우화에실패해/날개꺾인파리한아버지가//그렇게고요할줄알았더라면”(「저온화상」).“자기가가진/전부를다주어도/모자라”(「일기예보」)자신에게없는것마저주려는것이사랑의시작이란것을알게해준아버지에게그는“맞닿은부분이계속함께/울릴수있도록노래를불러드렸으리라”.작고눈먼새까만씨앗흩뿌리는봄이오고.부디하나만이라도싹이트기를바라며새까만흙을덮고,새까만비바람을맞히고,새까맣게썩은오물을묻고.아버지가물려준필름카메라를메고바닥에엎드려이름모를풀꽃하나를찍으려하는데들려오는‘거기뭐있수’하는소리.그는“그냥잡초예요”(「무표정」)하고답하며“여전히잡놈으로살”고있지만더이상달뜨지도아프지도않는봄과함께바닥에서부터몸을일으키지않아도되는,“웃음짓지않더라도/스스로기뻐하는법을아는/나이가”되어있다.눈부시게새파란달개비한가득인올해이곳에서아무것도거두지않기로약속한다면.“모든파랑보다내가가장사랑하는”파란빛여기놓아두기로약속한다면.시인은그색깔들전부바랜시간과씨앗으로바꿀순없을까하고나지막이말해본다.“당신이여전히여기있다는걸압니다.//그래도당신이여기에있었으면좋겠어요”(「수확」).


손놓으면안돼
겁먹은내가뒤를건너보자
짐받이를붙잡은채
바큇살처럼웃으시던

뭉클한아버지의무릎같은
페달을밟으면
서서히움직이던바퀴의표정이
흐려져가는속도로
아버지의거친호흡과
뒤처진발소리를지울때까지

나는넘어질까두려워
뒤돌아보지않았지만
손을놓으면안돼
손을놓으면안돼
아무대답이없어
자전거를멈추었을땐
이미혼자서도
너무멀리와있었다.
_「직립」부분


ㆍ난다시편을시작하며

손에쏙들어오는시의순간
시를읽고간직하는기쁨,시를쥐고스며보는환희

1.
2025년9월5일출판사난다에서시집시리즈를시작합니다.시를모아묶었음에‘시편(詩篇)’이라했거니와시인의‘편지(便紙)’를놓아시집의대미를장식함에시리즈를그렇게총칭하게도되었습니다.난다시편의라인업이어떻게이어질까물으시면한마디로압축할수없는다양한시적경향이라말을아끼게되는조심스러움이있습니다.그러나모든것이시의대상이될수있고또모든말이시의언어로발산될수있기에시인에게그정신과감각에있어다양함과무한함과극대화를맘껏넘겨주자는초심은울타리없는초원의풀처럼애초부터연녹색으로질겼다고감히말씀드리고싶은단호함은있습니다.

2.
난다시편의캐치프레이즈는“시가난다wingedpoems”입니다.날기위해우리가버려야할무거움은무엇일까생각했습니다.날기위해우리가가져야할가벼움은무엇일까생각했습니다.바람처럼꽃처럼날개없이도우리들몸을날수있게하는건시가아닐까생각했습니다.사랑처럼희망처럼날개없이도우리들마음을날수있게하는건시가아닐까생각했습니다.하여온전히시인의목소리만을담아내기위한그릇을빚어보자하였습니다.해설이나발문을통한타인의목소리는다음을기약하자하였습니다.난다는건공중에뜰수있다는무한한가능성의말이니여기우리들시를거기우리들시로그거처를옮김으로언어적경계를넘어볼수있겠다는또하나의재미를꿈꿔보자하였습니다.시집끝에한편의시를왜영어로번역해서넣었는가물으신다면말입니다.시인의시를되도록그와같은숨결로호흡할수있게최적격의번역가를찾았다는부연을왜붙이는가물으신다면말입니다.

3.
난다시편은두가지형태의만듦새로기획했습니다.대중성을담보로한일반시집외에특별한보너스로유연성을더한미니에디션‘더쏙’을동시에선보입니다.“손에쏙들어오는시의순간”이라할더쏙.7.5×11.5cm의작은사이즈에글자크기9포인트를자랑하는더쏙은‘난다’라는말에착안하여디자인한만큼어디서든꺼내아무페이지든펼쳐읽기좋은휴대용시집으로그만의정체성을삼았습니다.단순히작은판형으로줄여만든것이아니라애초에특별한아트북을염두하여수작업을거친것이니소장가치를주기에도충분할것입니다.시를읽고간직하는기쁨,시를쥐고스며보는환희.건강하게지저귀는난다시편의큰새와작은새가언제어디서나힘찬날갯짓으로여러분에게날아들기를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