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우리는동무잖아”
이지구에더는없는목소리의유랑인허수경의마지막,유고시집
『만일그대가나보다먼저간다면』출간
나는그대가먼저간길을아주오래보다가
이렇게쓸지도몰라
저녁은갑자기오더니어둠은천천히오시네,라고
떠난사람을죽은사람으로착각하며하루를보냈다,라고
오래된시간의영혼을노래하는시인이자한국서정시의독보적인존재허수경.1987년『실천문학』을통해등단하고『혼자가는먼집』『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에서』등을펴내며,동서문학상,전숙희문학상,이육사문학상을수상한그의유고시집『만일그대가나보다먼저간다면』이난다시편9번으로출간된다.2018년시인이세상을떠나고8년.6월9일시인의생일에그의유고시집이자마지막시집을내어본다.그간오롯했던시인의침묵가운데들어보게된42편의반가운시의메아리다.시인의편지를대신하여시인의산문세편을얹었으며표제작「만일그대가나보다먼저간다면(ShouldYouGoBeforeMe)」을소제(Soje)의번역으로영문수록했다.2018년이육사문학상수상당시,김민정시인에게대독을부탁한수상소감이자시인이지상에친필로남긴마지막시인의말을유고시집의머리로삼았다.“너덜너덜해질때까지한장한장”들을수있게된귀하디귀한시인의일곱번째시집이면서그가지상에남기는마지막시집이다.
총3부에나뉘어엮인이번시집은그가번호를매겨둔시의순서를유언으로알고따르는데서편집의기본방향을삼았다.1이라는숫자가붙어있던그첫번째시「공항에서」의마지막구절이라하면“나는이세상속,어떤예쁜사람이되어사라져간다”인데어쩔수없이시인의마음속으로기어들어가웅크리게되는우리를맞닥뜨리게도된다.“당신의얼굴은떠오르지않고/목소리도마치전생의무늬같다/취기만이당신인것처럼곁에앉았는데/많이잘해주지못해서마음은비었고/많이안아주지못해서손도비었다/꼭내가당신을배반한것같다”(「공항에서」)“그녀의시를들으면다시슬퍼져도통바깥으로나가지못할것같아”서.그는죽은사람일까,떠난사람일까.어느하루쯤은“떠난사람을죽은사람으로착각”할것이아니라죽은사람을떠난사람으로착각하며하루를보내도좋겠다싶은마음이들게하는시집이다.아이러니하게도시인의생일에선을보이게된이유고시집을필두로올10월3일시인의기일에는그의고향어딘가에허수경나무를심을예정이다.이제야말로온전히그를쉬게해줄때가아닌가해서다.평생나무곁에살던그였으니이제나무로다시태어나야할그가아닌가해서다.“뭔가다나간자리에도남아있는것은언제나있었다/몰랐을뿐이었다//새들은오늘눈으로목을축이다가/아직가지를덮어주고있는푸른나무속으로깃들어서는/따뜻하고견고한알을낳을것이다”(「종이눈꽃」)
시를쓰는삼엄함속에
지구반바퀴를돌아외국에서살면서공부하고시를썼습니다.
즐거움속에서벗들을만나고시를나누었습니다.
“다시태어나도시를쓸것인가?”
이모든시간을다합하여누군가나에게묻는다면
“예!”
하고저는답할것입니다.
2018년6월28일허수경
_시인의말전문
“박하의나날이었네,그렇지않았니?”(「박하의나날」)봄가고,여름오더니,“나는나에게물어본다”.진주라는곳.시인이태어나고자란곳.눈물많은시인이있던곳,빛많은사람이있는곳,그안에작은서점하나사람을모으는집을짓는곳.시인은독일에서대륙두개를넘어어스름한빛하나작은집을내마음에짓는그곳을생각한다.“오진주라는곳”(「진주라는곳」).“방을보았니?/텅빈햇살안에열린잠든방을보았니?/그방안에푸른우물이하나있지?”(「푸른계절이왔네」)푸른아이들이부르는즐거운노래,푸른아이들이즐기는그리운시절,사랑이먼휴식을취할때고단했던몸도푸르러지고만취의햇살이사과나무의방을빼곡히채울계절을뒤로하고.아직오지않는말을향하여이미왔던말들이창밖의바람을흔들고있다.(「시번역」)그바람속에는무엇이있었나화자는묻는다.
“저렇게푸르고붉은채소와과일사이에서/고등어만바라보고있는쓴나날같아요/질긴소금의살속에들어가울고있는햇살같아요”(「간고등어」)잎새라는이름을가진새가있다면,아주조금먹고길게우는새일테고.잎새라는이름을가진바람이있다면,그바람속에서날려가는우산은가벼운우산일테지.잠드는해도잎새라는이름을가지고있다면,잎새라는이름을가진당신이있다면.(「잎새라는이름」).“그대”를먼저보낸“나”는이야기한다.그대가내옆에있을때우리가했던모든착각그리고착란만은우리의것이었다고.늦은밤까지불을밝힌과일가게앞에서백년전에사랑에빠졌던어느시인의시를생각하며우리는장님이되었노라고.만일그대가나보다먼저간다면나는그대의무엇을가장마지막까지쓸까.우리는우리의심장을보낸적도있었다고,그림들속에숨겨진웃음과울음은서로안아주었다고.우리는사람,이라는단수가되고싶었으나,우리는사람들,이라는복수였다고.오늘적었던연가를내일읽으면얼굴을붉어지겠지.그러니“나”는아주마지막날에이연가를써야겠다고나지막이말한다.“쉿,아직봄이오지않았어요깨어나지마세요이세기에한사람이한사람을사랑할때사랑을지켜주던신은도둑을지켜주던신이라는거,잊지마세요”(「만일그대가나보다먼저간다면」).
상냥한벗인취기에게말한다
사랑하는사람아,당신을기다리면서물들면서
나는이세상속,어떤예쁜사람이되어
사라져간다
시인허수경은1964년경남진주에서태어났다.그곳에서자라고대학역시그곳에서다녔다.오래된도시,그진주가도시에대한원체험이었다.낮은한옥들,골목들,그사이사이에있던오래된식당들과주점들.그인간의도시에서새어나오던불빛들이정서의근간이었다.대학을졸업하고밥을벌기위해서울로올라왔고그무렵에시인이되었다.간절한한사람의시간을붙들고있는것,그시간을공감하는것,그것이시를쓰는마음이라여겼다.시를쓰는순간그자체가가진힘으로살아가던그에게는“젊은시인들과젊은노점상들과젊은노동자들에게아부하는사회에서살아가는것”이(『빌어먹을,차가운심장』)소망이었다.처음에는봉천동에서살다가방송국스크립터생활을하면서이태원,원당,광화문근처에서셋방을얻어살기도했다.
1992년늦가을독일로왔다.그에게는집이라는개념이없었다.셋방아니면기숙사방이내삶의거처였다.작은방하나만을지상에얻어놓고유랑을하는것처럼독일에서살면서공부했고,여름방학이면그방마저독일에두고오리엔트로발굴을하러가기도했다.발굴장의숙소는텐트이거나여러명이함께지내는임시로지어진방이었다.발굴을하면서,폐허가된옛도시를경험하면서,인간의도시들은영원하지않다는것을뼈저리게알았다.도시뿐아니라우리모두이지상에서영원히거처하지못할거라는것도사무치게알았다.
서울에서살때두권의시집『슬픔만한거름이어디있으랴』『혼자가는먼집』을발표했다.두번째시집인『혼자가는먼집』의제목을정할때그것이시인에게는어쩌면'나'라는자아의미래가될것이라는예감이들었다.독일에서살면서세번째시집『내영혼은오래되었으나』를내었을때이미허수경은참많은폐허도시를보고난뒤였다.그는사라지는모든것들이그냥사라지지않는다는것을짐작했다.물질이든생명이든유한한주기를살다가사라져갈때그들의영혼은어디인가에남아있다는생각을했다.
뮌스터대학에서고고학을공부하고박사학위를받으면서학교라는제도속에서공부하기를멈추고글쓰기로돌아왔다.그뒤로시집『청동의시간감자의시간』『빌어먹을,차가운심장』『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에서』,산문집『길모퉁이의중국식당』『모래도시를찾아서』,장편소설『모래도시』『아틀란티스야,잘가』『박하』,동화책『가로미와늘메이야기』『마루호리의비밀』,번역서『슬픈란돌린』『끝없는이야기』『사랑하기위한일곱번의시도』『그림형제동화집』등을펴냈다.동서문학상,전숙희문학상,이육사문학상을수상했다.2018년10월3일뮌스터에서생을마감했다.그후출판사난다에서산문집개정판『그대는할말을어디에두고왔는가』(원제『길모퉁이의중국식당』)『나는발굴지에있었다』(원제『모래도시를찾아서』)와유고산문집『가기전에쓰는글들』『오늘의착각』『나는사랑을너에게서배웠는데』가출간됐다.
한때나는당신의시가아니라당신을잘전달하고싶었다
쉼표를찍을때마다칼처럼돋아드는숨표를
숨표밑을지나간빛이갈고있는모서리를
정갈한우물에내리던꽃잎들과고사리밭에서푸르러지던별들을
전쟁을죽음을당신이시도했던살인을
그밤들을정신병원의오후창밖의햇빛들을
한때이국의시어들은겉돌았고
아직오지않는말을향하여
이미왔던말들이창밖의바람을흔들었다
그바람속에는무엇이있었나
_「시번역」부분
?난다시편을시작하며
손에쏙들어오는시의순간
시를읽고간직하는기쁨,시를쥐고스며보는환희
1.
2025년9월5일출판사난다에서시집시리즈를시작합니다.시를모아묶었음에‘시편(詩篇)’이라했거니와시인의‘편지(便紙)’를놓아시집의대미를장식함에시리즈를그렇게총칭하게도되었습니다.난다시편의라인업이어떻게이어질까물으시면한마디로압축할수없는다양한시적경향이라말을아끼게되는조심스러움이있습니다.그러나모든것이시의대상이될수있고또모든말이시의언어로발산될수있기에시인에게그정신과감각에있어다양함과무한함과극대화를맘껏넘겨주자는초심은울타리없는초원의풀처럼애초부터연녹색으로질겼다고감히말씀드리고싶은단호함은있습니다.
2.
난다시편의캐치프레이즈는“시가난다wingedpoems”입니다.날기위해우리가버려야할무거움은무엇일까생각했습니다.날기위해우리가가져야할가벼움은무엇일까생각했습니다.바람처럼꽃처럼날개없이도우리들몸을날수있게하는건시가아닐까생각했습니다.사랑처럼희망처럼날개없이도우리들마음을날수있게하는건시가아닐까생각했습니다.하여온전히시인의목소리만을담아내기위한그릇을빚어보자하였습니다.해설이나발문을통한타인의목소리는다음을기약하자하였습니다.난다는건공중에뜰수있다는무한한가능성의말이니여기우리들시를거기우리들시로그거처를옮김으로언어적경계를넘어볼수있겠다는또하나의재미를꿈꿔보자하였습니다.시집끝에한편의시를왜영어로번역해서넣었는가물으신다면말입니다.시인의시를되도록그와같은숨결로호흡할수있게최적격의번역가를찾았다는부연을왜붙이는가물으신다면말입니다.
3.
난다시편은두가지형태의만듦새로기획했습니다.대중성을담보로한일반시집외에특별한보너스로유연성을더한미니에디션‘더쏙’을동시에선보입니다.“손에쏙들어오는시의순간”이라할더쏙.7.5×11.5cm의작은사이즈에글자크기9포인트를자랑하는더쏙은‘난다’라는말에착안하여디자인한만큼어디서든꺼내아무페이지든펼쳐읽기좋은휴대용시집으로그만의정체성을삼았습니다.단순히작은판형으로줄여만든것이아니라애초에특별한아트북을염두하여수작업을거친것이니소장가치를주기에도충분할것입니다.시를읽고간직하는기쁨,시를쥐고스며보는환희.건강하게지저귀는난다시편의큰새와작은새가언제어디서나힘찬날갯짓으로여러분에게날아들기를바랍니다.
[시가난다WINGEDPOEMS]
001김혜순시집싱크로나이즈드바다아네모네
002황유원시집일요일의예술가
003전욱진시집밤에레몬을하나먹으면
004박유빈시집성질머리하고는
005정일근시집시한편읽을시간
006곽은영시집퀸앤킹
007채길우시집아버지를업고
008문혜진시집무증상환자
009허수경시집만일그대가나보다먼저간다면
010고명재어깨에머리를기대던시절(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