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용산을 위한 에세이 | 양장본 Hardcover)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용산을 위한 에세이 | 양장본 Hardcover)

$18.00
Description
망각의 속도에 맞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용산’이 있다!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
‘용산’이라는 장소 인문학에 관한 이광호의 글쓰기
속삭임과 한숨이 들리는 것을 기다린다.
너의 부재가 모든 순간들을 응축시키고
흩어지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또다른 작별 앞에서
남은 자가 되는 그 궁극의 순간을.

문학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 이광호의 산문집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의 개정판이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된다.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장소의 에세이스트로서 “‘그’가 머물던 공간과 ‘내’가 떠나온 시간 사이의 몽타주를 그리며”(『그의 이름은 만약에』, 2026, 난다) 글을 써왔다. 여행이 아닌, 관광이 아닌, 바야흐로 산책.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 줄 아는 예술가들의 산책길을 뒤따르는 과정 속에 저마다의 ‘나를’ 찾아보는 난다의 산문 시리즈 ‘걸어본다’의 시작을 맡았던 이 책이 12년의 세월을 통과하여 다시금 ‘용산’을 호명한다. 초판의 내용을 업데이트하고 수정하는 대신에, 또다른 글쓰기를 추가하여 총 20편의 글을 4부로 엮었다. 개정판 4부에 추가된 원고 3편은 지난 12년간 저자가 기록한 용산의 시간의 레이어들을 중심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적어도 두 겹 이상의 시간의 지층이 존재한다.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용산 자체의 극적인 역동성과 시간을 복수적으로 침전시키고, 권력과 욕망의 형태를 응고시키고, 반복적인 비극과 치욕의 구조를 만들어왔던 용산이란 도시의 시공간적 조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용산의 모든 곳이 품은, 누설할 수 없는 장소의 고독을 감각하면서. 그간 용산은 개발자본주의의 힘과 함께 정치 권력의 재배치와 공공성의 수사가 뒤섞여 긴장감이 넘쳐났던 장소였다. 용산의 시공간을 읽어낸다는 것은 곧, 한국 사회에서 어떤 구조적 폭력과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개정판 작가의 말).
저자

이광호

에세이와문학비평을쓰며,출판사에서일한다.에세이로『사랑의미래』『너는우연한고양이』『장소의연인들』『그의이름은만약에』가있다.

목차

개정판작가의말얼굴없는산책의흔적7

intro모든장소는시간의이름이다17

1부오래된망각
입체교차로가있던자리─삼각지28
기억의전쟁터─효창공원40
몇세기전의폐허─청파동46
세운상가의은밀한그림자─용산전자상가53
붉은빛의가설무대─용산역60
철교로가는고양이의시간─서부이촌동71

2부나누어진인공낙원
모작의풍경들─삼각지화랑거리80
가장비극적이거나가장희극적인─전쟁기념관85
비현실적인기다림─녹사평역92
단기체류의저녁연기─해방촌100
주의력이없는도시─이태원111
무한으로진입하는밤─후커힐127
사람과시간사이의신호─남산138

3부침묵의상속자들
닿을수없는언덕─한남동146
용산의옆얼굴─동부이촌동155
순결할수없는침묵─국립중앙박물관165
식민지의마지막장면─남일당터173

4부백년의침묵이귀환할때
망각의스카이라인─센트럴파크와새로운마천루들182
참사의크로노토프─10·26이태원참사와12·3계엄령193
백년후되돌아온정원들─용산어린이정원203

outro다른기다림이찾아온다213

출판사 서평

용산은지난10년간개발자본주의의시간성을가장극적으로보여주는장소가되었다.폐허와공터들에는새로운건축물들이앞다투어세워지고있다.용산을첨단의마천루와생태공원이어우러진미래도시로만들려는기획은여전히진행중이다.하지만그자리에어떤시간과장소들이있었는가를기억하는것은그늘에남은자들의삶의몫이다(182쪽).용산에서사라짐과망각은나날의삶을지배하는비밀의작동원리이며,‘사라짐’은용산이부여받은시간의특권인것처럼보인다.어느어두운저녁빛아래,이미사라진것들의그림자가내그림자쪽으로몸을기울일때,저자는그것들의속삭임과한숨이들리는것을기다린다.사라진존재들이지금의삶을관통하고무너뜨릴그날을.그리하여‘너의부재’가모든순간들을응축시키고흩어지게한다는것을깨닫게되는,결국내가또다른작별앞에서남은자가되는그궁극의순간을(14쪽).너를잊게된다는것’은곧‘네가있었다는것’에대한증명이므로(217쪽).

너를다시볼수없다해도,
나는너의시간과의교차를느낀다.

어느곳에서도멀지않지만아무도아는사람이없었으며,이방의느낌이강하게스며들어있는용산.용산에서라면,형언할수없었던시간들로부터잠시나를숨길수도있으리라생각했다(19~20쪽).저자가용산의한구석이은둔하기좋은곳일수있다고생각한것은이공간이장소와시간을가차없이나누는방식때문이었다.함께하기힘든것들이여러겹의경계선들을사이에두고이웃하는공간.철길저편에서어떤시간이흐르는지를알수없는곳.담너머에서무슨일이일어나는지를알지못하는곳.담과건물과길을사이에두고벌어지는기이한단절과시간의고립은여기오래된삶의방식이다(23~24쪽).“친절한여행안내서도아니고글쓴이의얼굴이오롯이드러나는수필도아니며소설이나시라는이름의문학은더더욱”(8쪽)아니라고저자는말한바있지만,어쩌면각각의줄기가하나의다발로조화를이룬결과물이바로이책아닐까.저자는용산의거리를걸으며‘이발소그림’과‘모작’들로부터이질적인것들이뒤섞여져만들어내는풍경의내부를발견하고(82쪽),이태원의안쪽,어두운골목들과계단들이만들어내는단절의세계에서정지된시간의표정을마주한다(124쪽).또한외세가발을들였던150년간의순결할수없는시간이거리의지층에새긴나이테를감지하고(23쪽),밤이되었을때갑자기허약해지는세상모든안부와약속들을바라보게된다(53쪽).그걸음걸음사이에는익숙한무기력을견디는방식과더불어,바람도우울도비껴가는걸음걸이,기계적이고무심한작업,되도록시간을지키려는1인분의식사같은것들또한존재한다.다만그곳을걷던저자는문득,어떤의미도알수없는익명적인신호,설사네가아니라해도,내용이희박해서조금아름다운우연과도마주치게된다(37~38쪽).
산책자의말은가르침이아니라함께걷는자가곁일때발을맞추는리듬으로의이른바독백으로읽힌다.지극히사실적으로놓인길과건물앞에서절로유지되는객관적거리감에제감상이나제추측따위에궤변을늘어놓을겨를조차없는것.그래서참맑지만한편으로불투명한뒤끝이남는건,걷는다는행위,즉걷는다는일로맞닥뜨리게되는‘나’와의만남이그리명쾌하고흔쾌하지만은않기때문일테다.그맞부딪침으로번번이‘나’와대면하는일은그러나끊임없이나의허물을절로벗겨지게만든다.

용산이라는사라짐과망각의형식에
저항할수있는몸짓은가능할까?

2009년의용산참사가발생했던‘남일당’빌딩주변은10년사이에극적인외형적변화를가져왔다.용산역을중심으로한한강로일대는휘황한건축물들의각축장이되었다(183쪽).과거의낙후된저층상가와철거현장은흔적없이사라지고매끈한유리벽면으로완성된고층빌딩들이그자리를차지했다.거대한빌딩들은그안에있는개인의신체를가리고,땅과땅사이를걸어서이동하는산책자의자유를제한한다.용산에군림하는마천루들은현기증나는‘탈연결’의시대를만들고있다(186~187쪽).공간의교체는단지물리적인변화가아니다.용산참사를기억할만한장소는공원주변‘용산도시기억전시관’내부의‘2009년용산참사기억관’이유일하다.거대자본이만드는화려한스카이라인안에서,이도시의참혹한기억은작은공간에가두어놓을수밖에없다.어떤애도는자본과권력에의해배제되며,어떤애도는아직그죽음의의미를알수없어서멈출수없게된다(188쪽).저자는또한권력의점거와종말이라는사건의유형을구조적으로반복재생산해온용산의‘크로노토프’에대해이야기한다.3년7개월동안의용산대통령실이남긴문제는많은질문을던지고있으며,용산대통령실의종식은용산이라는공간에새로운시간의레이어를추가했다.군사기지한복판으로권력의핵심을옮기는모순성,용산대통령실에서선포된‘농담같은’5시간의비상계엄,정치와취향,놀이와저항의경계를허무는시위퍼포먼스로부터새로운시민성이탄생하는순간까지.더불어권력공간의재배치는이태원이라는공간에시민안전의공백지대를만드는결과를초래했다.내란과탄핵이라는역사적오류,갈등과대립의역사가용산이라는크로노토프에새겨지게되었다(193~199쪽).
저자가12년전삼각지에살던시절에는오피스텔창문으로남산타워가보였다.미군기지근처에는고층건물이존재하지않았기에,낮은집들의작은불빛들이마치땅에추락한별들처럼어두운대지에서반짝였다.서울에서찾기힘든비현실적이고목가적인밤풍경이었다(207쪽).미군기지가강제한수평성이오랫동안유지되던이지역은,휘황한마천루들의등장으로대지의깊이와연결을무의미하게만드는수직성을얻게되었다.저자가삼각지를떠난것은그의산책의리듬으로는저현기증나는개발의속도전을감당하기두려웠기때문일터다(12쪽).용산의밤,밤은계절을삼켜버리는시간이며영원한망각으로들어가는입구이다.술어가없는무거운대명사의밤.그리고허술한술어같은새벽이느리게왔다.새벽의뿌연공기가창에닿으면밤의의미작용은여기서끝나고,150년이넘는고독이한꺼번에몰려온다.다만거짓말처럼계절이지나갔다(216쪽),이지나치게산문적인거리속에서.

휴일의‘용산어린이정원’에는어린아이들을데리고온젊은부부들이적지않다.한류콘텐츠로다시각광받는국립중앙박물관의인파와는달리,이곳의입장객들은거대한녹지공원때문에여유롭게느껴진다.드넓은잔디위에서캐치볼을하는어린이들과그늘에앉아아이들을지켜보는젊은부부들의모습은,완벽하게평화로워보인다.그잔디아래시간의어두운지층들과백년을살아낸공원안‘가로수길’의나무들은침묵하지만,가끔은그침묵의두께를느낄수있을지도모른다.(…)
장소들에서배제된자들의시간을망각한다면,기억이없는유토피아에는미래도없을것이다.유토피아의피상적인아름다움은과장되어있다.기억이없는유토피아는몸과언어가없는유토피아이다.
_「백년후되돌아온정원들─용산어린이정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