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집 : 허수경 산문집

아는 사람 집 : 허수경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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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수경

저자:허수경
경남진주에서태어났다.그곳에서자라고대학역시그곳에서다녔다.오래된도시,그진주가도시에대한원체험이었다.낮은한옥들,골목들,그사이사이에있던오래된식당들과주점들.그인간의도시에서새어나오던불빛들이내정서의근간이었다.대학을졸업하고밥을벌기위해서울로올라왔고그무렵에시인이되었다.처음에는봉천동에서살다가방송국스크립터생활을하면서이태원,원당,광화문근처에서셋방을얻어살기도했다.

1992년늦가을독일로왔다.나에게는집이라는개념이없었다.셋방아니면기숙사방이내삶의거처였다.작은방하나만을지상에얻어놓고유랑을하는것처럼독일에서살면서공부했고,여름방학이면그방마저독일에두고오리엔트로발굴을하러가기도했다.발굴장의숙소는텐트이거나여러명이함께지내는임시로지어진방이었다.발굴을하면서,폐허가된옛도시를경험하면서,인간의도시들은영원하지않다는것을뼈저리게알았다.도시뿐아니라우리모두이지상에서영원히거처하지못할거라는것도사무치게알았다.

서울에서살때두권의시집『슬픔만한거름이어디있으랴』『혼자가는먼집』을발표했다.두번째시집인『혼자가는먼집』의제목을정할때그것이어쩌면나라는자아의미래가될것이라는예감이들었다.독일에서살면서세번째시집『내영혼은오래되었으나』를내었을때이미나는참많은폐허도시를보고난뒤였다.나는사라지는모든것들이그냥사라지지않는다는것을짐작했다.물질이든생명이든유한한주기를살다가사라져갈때그들의영혼은어디인가에남아있다는생각을했다.

뮌스터대학에서고고학을공부하고박사학위를받으면서학교라는제도속에서공부하기를멈추고글쓰기로돌아왔다.그뒤로시집『청동의시간감자의시간』『빌어먹을,차가운심장』『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에서』,산문집『모래도시를찾아서』『너없이걸었다』,장편소설『박하』『아틀란티스야,잘가』『모래도시』,동화책『가로미와늘메이야기』『마루호리의비밀』,번역서『슬픈란돌린』『끝없는이야기』『사랑하기위한일곱번의시도』『그림형제동화집』등을펴냈다.

동서문학상,전숙희문학상,이육사문학상을수상했다.2018년10월3일,독일에서투병중별세했다.

목차

작가의말4

1부
발터벤야민이꾼꿈이야기11
왜‘분노하라’인가?15
알레포알레포19
잊혀진전쟁과자본주의의어떤불길한표정25
고골의「외투」를읽는2012년12월31
한시대에대한‘농담’39
백밀리언유로남자45
선택할수없는것들51
상징의여러얼굴55
수염을단여성61

2부
‘수메르문명’이라는것69
외국에서의꿈,혹은산책73
흑백사진한장83
인천공항의추어탕89
이야기를쓰는마음,읽는마음93
손삽97
어느날의시작메모103
시인됨의곤욕을함께이끌면서107
새이웃113
바쿠는오늘도오지않고121

출판사 서평

시?천천히천천히하자,돌아올거다,다시나에게로,나의시가
그꿈속에서는아주오랫동안보지못했던바다가보였다

어느날꿈을꾸었다.꿈속에서는시인은아주오랫동안보지못했던바다를보았다.독일로와서그는바다로갈기회가없었다.바다는너무나오랜만이었다.그는그안으로들어가고싶었다.들어갈수없었다.그가아무것도가진것이없었기에.손도눈도혀도없어서그바다앞에서아무것도할수없었다.그모든것을시인은“아는사람집”에다두고왔기에.“바다는검고깊어서그안에는수많은시어가출렁이고있는것처럼보였으나나는단하나의시어도내것으로만들지못했다.아니면시가되지못했던시간들이,아니면여러시적자아들이그도아니면수많은이미지가시자체의무의식이모여그바다는출렁이고있었다.”(「외국에서의꿈,혹은산책」)

“바다가안기지못하고서성인다돌아선다/가지마라가지마라하고싶다/혀가없다그어디인가/아는사람집그집에다두고왔다”(「바다가」,『내영혼은오래되었으나』).잠에서깨어종이에다꿈을옮겨적고난뒤드디어시인은알게되었다.이제아주괴로운날들이오리라는것을.독일이라는곳에서살고공부하면서그는많은것을얻었는데정작자신의시를서서히잃어버리고있었던것이다.독일에서육년이넘는시간을보내고있었지만정작시를쓸수있는모든기관과마음은아직그곳에두고왔던것이다.그리고그꿈뒤에알게된것.“모든것을다두고온“아는사람집”을내속에서짓지않는한나는나는쓸수가없으리라는것을.”그런데도대체,이독일도시에는없는나의“아는사람집”은어떻게생겼을까?아님이독일도시에이미“아는사람집”이있는데도그는보지못하고있을까?도무지,시의일생을끌고나갈그“아는사람의집”은어디에있을까?그는옥수수밭을오래바라보며진짜고독은이제시작되었다는것을뼛속까지짐작했다.그고독은지금도마찬가지이다.“아는사람집”은아직시인의속에서보이지않고그는이대학도시에서계속산책중이다.

나는이글을통하여문학의윤리성을강조할생각이전혀없다.
다만문학이한사회의다양한소수자의전통을
끌어안을수밖에없는필연성,같은것만이떠오를뿐이다.

“유대인들은역사적으로뚜렷하게소수자로구분이되었던사람들이다.그런데문제는소수자의경계가그렇게분명하고뚜렷하지않은시간속에우리는산다는것.”발터벤야민의꿈속에서괴테는쓰기를멈추고고대의꽃병하나를벤야민에게선물했다.식사를마치고벤야민이괴테의팔을살짝건드렸을때벤야민은울기시작했다.꽃병이아마도괴테와벤야민이공통으로지니고있는유럽문명을관통하는전통을의미하는것은아닐까.벤야민은어쩌면나치독일사회속에서전대미문의핍박을당할유대인의운명을예감한것은아닐까.(「발터벤야민이꾼꿈이야기」)

2013년콘치타부르스트가오스트리아를대표해서유로비전송콘테스트에참여하는것이발표되자오스트리아는술렁거렸다.드래그퀸의모습이방송에중계될경우청소년의성적지향에영향을끼치고성문란을조성할것이라는이유로.콘치타부르스트는묻는다,만일당신이나처럼태어났다면,당신은어떤삶을살았을까?시인은말한다.“자신의정체성이다수에속해있으므로내정체성은자연이고소수자의정체성은죄악이라는태도는언젠가는조직적인폭력으로나아갈것이다.나치처럼,수많은소수를죽음으로몰았던어떤역사처럼.”(「수염을단여성」)

시리아의두번째로큰도시인알레포.인간의역사에서는그곳이잠깐전쟁휴지기였던시기시인은그곳에방문한적이있다.시인은도시의낭만에자신을잠수시킬수있었고저녁이오자그도시의노을에기대어멀리있는이들을그리워하기도했다.그리고그시간속에도시근교를어슬렁거리는양들은울면서도시의노을쪽으로얼굴을돌렸다.“사랑하는사람들이여,내가그도시에머물때나는십여년뒤에이도시가다시전쟁에휩쓸릴것을예상하지못했다.”(「알레포알레포」)

한인간이93세가되면무슨말을후학들에게할수있을까.레지스탕스에참여한스테판에셀은분노하라고말한다.잿더미만남은이차대전직후보다지금이더풍요로운데왜,그때는모두가동의하던,그리고정열로밀고나가던그프로그램들이지금,우리는왜위기에처해있는가.그래서그는말한다.분노하라고,젊은당신들이여,분노하라고,분노에서저항은나온다고.세상을바꿀수없다는낙담이야말로이세상을이렇게지속하게만드는거라고.“새로운것을만든다는것은저항을하는것.저항의의미는새로운것을만든다는것”이기에.(「왜‘분노하라’인가?」)

작가의말

섞이자.
말은,
한인간의말은아주순수하고도순수하니
순수한제말만이있다,라는철조망을넘어버리자.
조금이라도벗어나자.

스민말들이짜놓은
세계의양탄자위에미끄럼틀을놓고
내려왔다가다시올라가자,야호!
다시내려오자,야호!

우리가순수한말이있다는믿음으로부터자유롭다면
어떤경계는풀려말은우리로부터자유로우리.
우리도말에게서자유로우리.

어떤말도순수혈통이아니며단일하지않으며
우리에게는지킬말이있는게아니라
경계를열어받아들일말만이있으리.
낯선말들을받아들이자.
섞이자.

2013년가을
허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