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가진 것을 다시 바라보는 법
욕심과 만족을 새롭게 바라보는 인문 에세이
삶이 달라지는 순간은 더 얻었을 때가 아니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때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으면 비로소 만족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결핍이 고개를 들고, 어제의 만족은 어느새 오늘의 부족함과 슬픔이 된다. 그사이 창밖의 빛과 익숙한 사람의 얼굴, 평범한 하루에 깃든 작은 기쁨은 시야에서 희미해진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무언가가 아니라, 이미 곁에 있는 것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채우는 일에 몰두하느라 놓쳐 버린 삶의 풍경을 되짚으며,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 대신 무엇을 보지 못한 채 살아왔는지 묻는다.
고대어 뿌리에서 길어 올린 삶의 새로운 의미
이 책은 영어 단어의 어원을 실마리 삼아 익숙한 언어와 일상의 경험을 새롭게 해석한다. 단어에 남은 오래된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만족과 슬픔, 선택과 집착, 시간과 기억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로운 질문으로 돌아온다. 언어에서 시작된 사유는 개인의 내면을 지나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단어 하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삶을 이해하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언어와 일상을 교차시키는 독특한 접근은 추상적인 철학을 생활 가까이 끌어오면서, 평범한 경험 속에 감춰진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비워 둔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충분함
몬스테라 잎의 구멍은 비어 있는 결핍처럼 보이지만, 바람과 비를 견디게 하는 자연의 지혜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모습에서 모든 공간을 채우지 않아도 온전할 수 있다는 삶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내가 설 자리를 마련하되 다른 존재가 머물 자리까지 차지하지 않는 것, 비움은 부족함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여백이다.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도 모든 바람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묻고 소유의 경계를 다시 살피는 일이다. 이 책은 삶을 바꾸라고 재촉하는 대신 익숙한 풍경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라고 권한다. 충분함은 더 많이 얻은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보는 순간에 시작될 수 있다.
책 속에서
원하는 걸 채우면 기쁨은 잠시뿐, 다른 무언가를 또 구한다. 그러니 채우면 채울수록 슬픔도 계속될 것이다. sad는 만족의 수준을 끊임없이 올리는 어리석음을 경고한다. sad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다 채웠니? 그러면 이제 내가 슬프게 해줄게!”--p24
어쩌면 삶은 과장된 돌출을 서서히 깎아 평평하게 만드는 과정, 포르테에서 피아노로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지금껏 나는 얼마나 많이 네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내 생각이 옳다며 큰 소리를 내어 왔을까. 마음대로 안 된다고 불평하고 화내는 일은 또 얼마나 잦았을까. 빡빡한 시간에 갇혀 숨이 가빠지고, 누워 쉴 만한 공간조차 없어질 때면, 늘 나에겐 돋보이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함께하고 있었다. --p33
어쩌면 상상이란 그런 생각의 한계를 넘어 보라고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 틀에 박힌 규정과 미리 정한 잣대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세상을 바라봤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생각의 오류들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러니 우리에겐 여백이 필요하다. 상상이 살아 숨 쉬고 나아갈 공간이 필요하다.여백을 뜻하는 영어 단어, blank는 텅 빈 상태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가 유래된 고대어 ‘bhel-’은 밝게 빛난다는 뜻이다. 밝은 빛으로 가득 차서 하얗게 보이는 곳, 그것이 곧 여백이고 공백이다. 우리 말 속에도 흰 백(白)이 들어있는 걸 보면 흥미롭다. 여기에서 유래된 단어들은 대부분 불과 관련되어 있다. blaze(활활 타다), blush(얼굴을 붉히다), bleach(표백하다)처럼 b로 시작되는 단어도 있고, flame(불꽃), flamingo(홍학)처럼 f로 변형된 것도 있다. black(검은색)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p40~41
결정한다는 뜻의 단어 decide도 어원이 흥미롭다. 앞에 있는 ‘de-’는 중심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고, 뒤에 있는 ‘cide-’는 고대어에서 자른다는 뜻이다. ‘cide’가 들어간 말은 끔찍한 의미가 많다. 예를 들면 suicide(자살), genocide(대량 학살)와 같은 단어들이다. 반면 세균(germ)을 죽이는 germicide(살균제), 해충(pest)을 죽이는 pesticide(살충제)도 있다. ‘cide-’가 조금 변형되어 생긴 단어가 scissors(가위)이다. 그러니 decide를 어원대로 해석하면 잘라 떼어 버린다는 뜻이다. 어떤 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능성을 잘라 버려야 한다. 모두 자르고 남은 것을 선택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결정이라고 부른다. --p47
채워 완성한다는 말과 뜻이 반대인 단어도 있다. ‘com-’ 대신 ‘de-’를 붙인 deplete이다. ‘de-’는 떼어 낸다는 뜻이므로 deplete는 채워진 걸 써서 고갈시킨다는 뜻이 된다. 움직이려면 에너지를 써야 하듯, 한 번 채웠다고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complete와 deplete는 먹고 사는 우리 삶을 닮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면서도 매번 실수하고 넘어지는 우리의 일상이다. --p62
conceive는 ‘함께’라는 뜻의 ‘con-’과 ‘가지다’는뜻의 ‘-ceive’가 합쳐진 말이다. 그래서 conceive는 서로를 함께 품고 있다는 속뜻이 있다. 어원으로 풀어보면 임신이란 엄마가 아이를 일방적으로 품고 있기보다는 엄마는 아이를, 아이는 엄마를 서로 안아 주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 그때 아이도 엄마를 안아 주며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p76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의 모든 것은 빛보다 빠를 수 없고,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오히려 느려진다. 번개를 가지고 있는 제우스의 장난일까?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빨리빨리 해 봤자 시간은 오히려 더 느려질 뿐이라니…. 다람쥐 쳇바퀴에서 속도 경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이아는 무슨 생각을 할까. 빠른 사람이나 느린 사람이나 시간은 공평하게 날카롭고 공평하게 부드럽다. 그 친구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저는 느린 게 매력이라 마음이 쫄리는 법이 없어요. --p92
“자네는 자기 세계가 분명한 것 같네.” 20대, 나의 모난 곳이 세상과 부딪치며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직장 선배는 내게 이렇게 말하였다. 개성 있다는 얘긴가 하고 웃고 넘겨 버렸다. 이제 내가 선배의 나이가 되어 그 말을 되새겨 보니, 세상 말을 내 편한 대로 해석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세계에 갇혀 있다는 말을 그렇게 에둘러 말했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좁은 식견으로 울타리 밖을 보지 못했으니, 늘 입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닫힌 얼굴을 보듬고 품어주었던 많은 사람에게 늦게나마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제라도 그들에게 진 빚을 조금씩이라도 갚아 나가고 싶다. --p112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지금도 눈을 맞으며 약속 장소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왕이면 내 앞에 있는 악마를 뚫고 힘겹게 나아간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앞에 내려앉는 함박눈이 포근하고 아름답다고 되뇌면서. 그러면 악마는 천사에게 자리를 내어줄지도 모른다. 약속 시간에 늦었지만, 하얀 눈은 모든 것을 용서해 주었다.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