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나서 함안, 창원, 서울 등지로 옮겨 다녔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오래도록 글쓰기에 게을렀다. 디카시 초창기에 행사 기획을 여러 해 맡아 했고, 「스마트시대의 문화콘텐츠, ‘디카詩’」(2012), 「전통 시론으로 풀어 본 ‘디카시’」(2012), 「매체 발달에 따른 예술의 일상화-‘디카시’」(2014) 등의 디카시론을 썼다.
지금 우리가 디카시라고 부르는 새로운 형식의 시 쓰기, 곧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에 몇 줄의 신박한 시를 덧붙이는 창작 방식은 21세기 초부터 여러 시인에 의해 시도되었다. 바야흐로 활자매체 문자문화 시대에서 전자매체 영상문화의 시대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창작의 유형은 이미 예고된 바와 다름없었다. 더욱이 누구나 손안에 들고 있는 소우주 핸드폰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여기에 몇 줄의 시행을 부가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 선조들이 동양화 한 폭을 치고 거기에 몇 줄의 언술을 더하던 시화詩畵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금 기성세대의 학창 시절에 그와 유사한 시화전詩畵展이 여러 모양으로 흥행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림이 사진으로 바뀌었을 그 기본 형식에는 변동이 없다. 이를테면 디카시가 어느 한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지듯 생겨난 것이 아니고, 그와 같은 시대적 흐름 또한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2001년부터 이 방식의 시 쓰기를 이어오다가 2007년에 디카시집 『꽃에게 바치다』(토방)를 펴낸 이상범 시조시인을 비롯하여, 당시 디지털한국문학도서관을 운영하던 제주대 윤석산 교수 등 여러 문인이 그 언저리에 있었다. ‘디카시’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2004년에 첫 디카시집 『고성가도』(문학의 전당)를 펴낸 이는 창신대 이상옥 교수였다. 이 무렵부터 소규모 지역 문예운동으로 디카시의 론칭이 시작되었으나 크게 확산되지 않았고, 사회적 확장과 파괴력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20년 한국디카시인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였다. 바로 이러한 디카시의 초창기에, 차민기는 이 문예 운동의 실질적인 실무자였고 현장 담당자였으며 동시에 그 태동과 확산을 지켜본 산 증인이었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 일원과 서울 등지로 옮겨 다녔으며,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얼굴을 알렸다. 디카시가 우리 문학과 사회에 수용되기 시작하던 초창기에 행사·기획 등을 맡아 일하면서 그 저변의 성격과 전개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문인이다. 그 무렵 차민기는 「스마트 시대의 문화콘텐츠, 디카시」(2012), 「전통 시론으로 풀어 본 디카시」(2021), 「매체 발달에 따른 예술의 일상화디카시」(2014)등의 디카시론을 썼다. 첫 디카시 평론가라는 호명呼名은 그의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하고 보면, 모두가 그를 디카시의 초기 지평을 개척한 시인이요 이론가라고 이해할 것이다. 그가 이번에 첫 디카시집을 낸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으나 기껍고 흔연한 일이다.
2. 처처에 숨은 자아 성찰의 은유
세상의 모든 풍광은 우리의 삶을 반사하는 거울이다. 눈에 보이든 눈에 보이지 않든, 우리는 여러 유형의 ‘객관적 상관물’에서 우리 내부의 은밀한 형상을 유추한다.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란 말은 T.S.엘리엇이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표현법에 익숙해지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한다. 이 대화의 길에 들어서면 내포적 자아를 탐색하는 자아 성찰의 형용이 한결 쉬워질 수밖에 없다. 요약하자면 그 성찰이 자아의 자리에서 단독자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경관에 반응하는 현상적 자각에서 말미암는다는 말이다. 이 시집 1부의 시 가운데 「나르키소스」의 못물에 비친 그림자, 「영일만에서 고래를 만나다」의 갯바위와 고래의 은유 등이 모두 그렇다.
내 몸의 형상 따라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 아득한 시간 너머에서도 나는 늘 똑같이 차고 기울었다 그럴 때마다 살아 전하는 이야기들이 생겼다
- 「월광의 신화」
높은 빌딩 그 위의 하늘에 만월滿月이 걸렸다. 밤이 어두울수록 달빛이 밝은 이치는 우리 삶의 여러 경로에 소용된다. 만월은 ‘가득 참’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뒤이은 ‘기울어짐’의 불안을 함께 안고 있다. 이러한 관념들은 깨달음이나 결단과 같은 극명한 심리 상태를 반영하기도 한다. 시인은 이 선명하고 집중적인 사진에 ‘월광의 신화’란 제목을 붙였다. 일찍이 한 시대의 에포크를 그은 작가 이병주가, 그의 장편 『산하』에서 에피그람으로 사용한 레토릭이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가 그 문면文面이었다. 이때의 월광은 현실과 대비된 예술로서 문학의 다른 이름이다. 이 시의 차고 기우는 그 과정과 더불어 ‘살아 전하는 이야기들’의 의미가 그와 다르지 않다.
길밖에 서면 모든 곳이 길
고비에서 깨달았다
- 「고비」
중국의 고비사막은 몽골과의 경계에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형 사막이며, 거친 평원과 돌밭이 주를 이루어 전통적인 사하라 식 사막의 이미지와는 좀 다르다. 그러나 여름의 극심한 고온이나 겨울의 영하 수십도 혹한은 사막의 냉엄한 불모성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고비사막은 여러 글에서 생존·인내·고독의 표본으로 자주 등장한다. 시인이 내놓은 사진은 돈황에 이어진 명사산鳴沙山 인근의 풍경으로 보인다. 사람이 걸어 내려가거나 바람이 불면 모래가 우는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시인은 이곳을 두고 ‘길 밖의 길’이라 호명하고, 그러면 그 자리가 모두 길이 된다는 중층적이고 입체적인 관점을 피력했다. 그 생각의 전환점, 인식의 ‘고비’를 ‘고비사막’에서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때의 어휘 고비는 한자어가 아니라 몽골어 ‘Gobi’에서 왔으니, 시의 제목과 마무리 구절이 사뭇 절묘하다.
3. 전설처럼 남은 기억의 서사들
여기에 소제목으로 제시한 이 워딩에는 몇 가지 유의점이 있다. 그것은 반복해서 떠올려졌고 여러 번 말해졌으며, 그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언급되었고 결국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데 소용되는 기억이다. 그래야만 ‘전설의 기억’이란 명제를 충족한다. 전설은 정확히 하나의 이야기로 응결되지 않더라도 그 객체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이 기억은 선명하게 현재적 삶의 전면으로 나서지는 않으나, 오래 사라지지 않고 조용한 배경음처럼 남아 있는 존재 양식을 가졌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나’의 삶이 형성되도록 추동하는 정신의 형태인 터이다. 2부의 시들은 주로 이 대목에 연관되어 있다. 「비탈의 서사」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밀집형 주거에서 ‘다 옮기지 못한 서사들’이나, 「성장통」에서 볼 수 있는 마천루 빌딩들의 ‘매일 밤 신음’이 그 기억의 그림자를 숨기고 있다.
발걸음 낮춰 오신다기에
댓돌 한쪽 자리
한참을 비워 두었습니다
- 「마중」
고풍스러운 쌍여닫이 방문과 폭이 좁은 마루가 있고 댓돌 위에는 흰 고무신 한 켤레가 밖을 바라보며 놓여 있다. 이때의 댓돌은 경계의 공간이다. 마루 너머의 방과 댓돌 아래의 마당을 구분 지으며, 안에 있을 사람과 찾아올 사람을 연계하는 만남 그리고 기다림의 장소다. 시인은 이 상황을 ‘마중’이라고 썼다. 분명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거기에 있다. 공간은 이토록 유연한데 문제는 시간이 정적으로 멈추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애타는 마중이다. 시인은 ‘발걸음 낮춰’오신다는 그분을 위해 ‘댓돌 한쪽 자리’를 한참 비워 두었다고 고백했다. 고요하고 정갈하고 목마른 서정의 시다.
장승 같던 외할배 아궁이마냥 따습기만 하던 외할매 외삼촌, 이모들까지, 오갈 때마다 손 흔들던 비탈길이다
- 「외가가 비었다」
외가, 특히 어릴 적 외가는 그야말로 전설의 원형이다. 외가는 친가 곧 우리 집과는 느낌도 분위기도 다르다. 부모의 채근이 조금 희미해지고 어른들의 눈길이 한 박자 느슨해지는 곳, 잘못을 해도 크게 혼나지 않는 곳이다. 외가의 어른들은 ‘왜 그랬니’보다 ‘왔니’로 기억되는, 존재 자체를 먼저 맞아주는 경험으로 남아 있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 외가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운명의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시인은 이 돌담 고즈넉한 시골길에서 외할배, 외할매, 외삼촌, 이모까지 그 모두를 한꺼번에 소환한다. 그립고 아쉽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땅이다. 그 외가가 비었으니, 시절도 변하고 세월도 달라졌다. 그러기에 이토록 애틋한 기억이 이 시의 울림으로 살아 있다.
4. 남녘 제주 풍광과 사유의 깊이
우리의 정서에 새겨진 제주도의 의미는 나라 안의 땅이면서 나라 밖의 공간이다. 한반도와 격리된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고립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먼바다로 열려 있어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바다와 바람, 돌담과 오름의 여러 모양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으나 그 가운데서의 삶은 강한 인내와 생명력을 요구한다. 그렇게 상반되고 이중적인 인식의 대상인 제주도를 방문한 시인에게, 그 풍광이 공여하는 사유思惟의 심층이 없을 수 없다. 3부의 시들은 그와 같은 사유가 시가 된 형국이다. 제주도의 특징적 풍경을 포착한 「숨비소리」에서 해녀를 보는 눈, 제주도의 역사적 비극을 대변하는 4·3사건의 현장 「천장天葬」에서의 ‘검은 울음’ 등이 그 예증이다.
물길 끝자락에 선 하늘마중
다시,
설레는 제주
- 「하늘마중」
사진 속의 항공기는 황혼이 곱게 물든 하늘길을 가로질러 착륙을 앞두고 있다. 탑승객들은 어느덧 하늘의 시간에서 사람의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이 시간의 제주 바다는 말이 없고 등대만 하나 외롭게 서 있다. 밤의 시작을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가슴 설레기는 쉬운 국면이 아니다. 이 여행은 제주라는 독특한 섬의 리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시인은 이처럼 복합적인 정황을 한꺼번에 일러 ‘하늘마중’이라고 했다. ‘물길 끝자락에 선 하늘마중’이 그 서술부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이 다시 설레는, 그 소중한 동계動悸를 바라보는 시인의 심사는 부드럽고 고요하다. 동시에 사진과 시가 극도로 말을 줄이면서 오히려 더 많
하늘마중 (차민기 디카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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