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문학평론가,한국디카시인협회회장)
1.왜차민기이며또디카시인가
지금우리가디카시라고부르는새로운형식의시쓰기,곧디지털카메라로촬영한사진에몇줄의신박한시를덧붙이는창작방식은21세기초부터여러시인에의해시도되었다.바야흐로활자매체문자문화시대에서전자매체영상문화의시대로전환되면서,이러한창작의유형은이미예고된바와다름없었다.더욱이누구나손안에들고있는소우주핸드폰의카메라로사진을찍고,여기에몇줄의시행을부가하는것은극히자연스러운일이었다.시간을거슬러올라가보면,우리선조들이동양화한폭을치고거기에몇줄의언술을더하던시화詩畵라는것이있었다.그런가하면지금기성세대의학창시절에그와유사한시화전詩畵展이여러모양으로흥행이었다.
세월이흘러그림이사진으로바뀌었을그기본형식에는변동이없다.이를테면디카시가어느한순간에하늘에서떨어지듯생겨난것이아니고,그와같은시대적흐름또한어느누구의전유물이아니라는말이다.2001년부터이방식의시쓰기를이어오다가2007년에디카시집『꽃에게바치다』(토방)를펴낸이상범시조시인을비롯하여,당시디지털한국문학도서관을운영하던제주대윤석산교수등여러문인이그언저리에있었다.‘디카시’란용어를처음사용하고2004년에첫디카시집『고성가도』(문학의전당)를펴낸이는창신대이상옥교수였다.이무렵부터소규모지역문예운동으로디카시의론칭이시작되었으나크게확산되지않았고,사회적확장과파괴력을갖기시작한것은2020년한국디카시인협회가창립되면서부터였다.
바로이러한디카시의초창기에,차민기는이문예운동의실질적인실무자였고현장담당자였으며동시에그태동과확산을지켜본산증인이었다.그는부산에서태어나경남일원과서울등지로옮겨다녔으며,문학박사학위를취득하고문학평론가로문단에얼굴을알렸다.디카시가우리문학과사회에수용되기시작하던초창기에행사·기획등을맡아일하면서그저변의성격과전개과정을누구보다도잘아는문인이다.그무렵차민기는「스마트시대의문화콘텐츠,디카시」(2012),「전통시론으로풀어본디카시」(2021),「매체발달에따른예술의일상화디카시」(2014)등의디카시론을썼다.첫디카시평론가라는호명呼名은그의것이었다.사정이이러하고보면,모두가그를디카시의초기지평을개척한시인이요이론가라고이해할것이다.그가이번에첫디카시집을낸다.만시지탄晩時之歎의감이없지않으나기껍고흔연한일이다.
2.처처에숨은자아성찰의은유
세상의모든풍광은우리의삶을반사하는거울이다.눈에보이든눈에보이지않든,우리는여러유형의‘객관적상관물’에서우리내부의은밀한형상을유추한다.객관적상관물objectivecorrelative이란말은T.S.엘리엇이사용하기시작했으며,감정을직접적으로말하지않고전달하는방식이다.이러한표현법에익숙해지면,우리주변의모든사물이입을열어말하기시작한다.이대화의길에들어서면내포적자아를탐색하는자아성찰의형용이한결쉬워질수밖에없다.요약하자면그성찰이자아의자리에서단독자로수행되는것이아니라,세상의경관에반응하는현상적자각에서말미암는다는말이다.이시집1부의시가운데「나르키소스」의못물에비친그림자,「영일만에서고래를만나다」의갯바위와고래의은유등이모두그렇다.
내몸의형상따라정해진시간이있었다
아득한시간너머에서도
나는늘똑같이차고기울었다
그럴때마다살아전하는이야기들이생겼다
-「월광의신화」
높은빌딩그위의하늘에만월滿月이걸렸다.밤이어두울수록달빛이밝은이치는우리삶의여러경로에소용된다.만월은‘가득참’의상징이지만동시에뒤이은‘기울어짐’의불안을함께안고있다.이러한관념들은깨달음이나결단과같은극명한심리상태를반영하기도한다.시인은이선명하고집중적인사진에‘월광의신화’란제목을붙였다.일찍이한시대의에포크를그은작가이병주가,그의장편『산하』에서에피그람으로사용한레토릭이다.“태양에바래지면역사가되고월광에물들면신화가된다”가그문면文面이었다.이때의월광은현실과대비된예술로서문학의다른이름이다.이시의차고기우는그과정과더불어‘살아전하는이야기들’의의미가그와다르지않다.
길밖에서면
모든곳이길
고비에서깨달았다
-「고비」
중국의고비사막은몽골과의경계에있다.세계에서손꼽히는대형사막이며,거친평원과돌밭이주를이루어전통적인사하라식사막의이미지와는좀다르다.그러나여름의극심한고온이나겨울의영하수십도혹한은사막의냉엄한불모성을대변한다.그러므로고비사막은여러글에서생존·인내·고독의표본으로자주등장한다.시인이내놓은사진은돈황에이어진명사산鳴沙山인근의풍경으로보인다.사람이걸어내려가거나바람이불면모래가우는소리를낸다는뜻이다.시인은이곳을두고‘길밖의길’이라호명하고,그러면그자리가모두길이된다는중층적이고입체적인관점을피력했다.그생각의전환점,인식의‘고비’를‘고비사막’에서깨달았다는것이다.이때의어휘고비는한자어가아니라몽골어‘Gobi’에서왔으니,시의제목과마무리구절이사뭇절묘하다.
3.전설처럼남은기억의서사들
여기에소제목으로제시한이워딩에는몇가지유의점이있다.그것은반복해서떠올려졌고여러번말해졌으며,그때마다조금씩다르게언급되었고결국지금의나를설명하는데소용되는기억이다.그래야만‘전설의기억’이란명제를충족한다.전설은정확히하나의이야기로응결되지않더라도그객체의정체성을지탱하는역할을한다.이기억은선명하게현재적삶의전면으로나서지는않으나,오래사라지지않고조용한배경음처럼남아있는존재양식을가졌다.다시말하자면지금‘나’의삶이형성되도록추동하는정신의형태인터이다.2부의시들은주로이대목에연관되어있다.「비탈의서사」에서볼수있는도시의밀집형주거에서‘다옮기지못한서사들’이나,「성장통」에서볼수있는마천루빌딩들의‘매일밤신음’이그기억의그림자를숨기고있다.
발걸음낮춰
오신다기에
댓돌한쪽자리
한참을비워두었습니다
-「마중」
고풍스러운쌍여닫이방문과폭이좁은마루가있고댓돌위에는흰고무신한켤레가밖을바라보며놓여있다.이때의댓돌은경계의공간이다.마루너머의방과댓돌아래의마당을구분지으며,안에있을사람과찾아올사람을연계하는만남그리고기다림의장소다.시인은이상황을‘마중’이라고썼다.분명히누군가를기다리는누군가가있다는확신이거기에있다.공간은이토록유연한데문제는시간이정적으로멈추어있다는점이다.그러기에애타는마중이다.시인은‘발걸음낮춰’오신다는그분을위해‘댓돌한쪽자리’를한참비워두었다고고백했다.고요하고정갈하고목마른서정의시다.
장승같던외할배
아궁이마냥따습기만하던외할매
외삼촌,이모들까지,
오갈때마다
손흔들던비탈길이다
-「외가가비었다」
외가,특히어릴적외가는그야말로전설의원형이다.외가는친가곧우리집과는느낌도분위기도다르다.부모의채근이조금희미해지고어른들의눈길이한박자느슨해지는곳,잘못을해도크게혼나지않는곳이다.외가의어른들은‘왜그랬니’보다‘왔니’로기억되는,존재자체를먼저맞아주는경험으로남아있기십상이다.그러나그외가는오래머물지못하고돌아와야하는운명의기억으로각인되어있다.시인은이돌담고즈넉한시골길에서외할배,외할매,외삼촌,이모까지그모두를한꺼번에소환한다.그립고아쉽고잊을수없는추억의땅이다.그외가가비었으니,시절도변하고세월도달라졌다.그러기에이토록애틋한기억이이시의울림으로살아있다.
4.남녘제주풍광과사유의깊이
우리의정서에새겨진제주도의의미는나라안의땅이면서나라밖의공간이다.한반도와격리된섬이라는지리적특성때문에고립의이미지를갖고있지만동시에먼바다로열려있어자유와해방의상징이되기도한다.바다와바람,돌담과오름의여러모양이그림처럼펼쳐져있으나그가운데서의삶은강한인내와생명력을요구한다.그렇게상반되고이중적인인식의대상인제주도를방문한시인에게,그풍광이공여하는사유思惟의심층이없을수없다.3부의시들은그와같은사유가시가된형국이다.제주도의특징적풍경을포착한「숨비소리」에서해녀를보는눈,제주도의역사적비극을대변하는4·3사건의현장「천장天葬」에서의‘검은울음’등이그예증이다.
물길끝자락에선
하늘마중
다시,
설레는제주
-「하늘마중」
사진속의항공기는황혼이곱게물든하늘길을가로질러착륙을앞두고있다.탑승객들은어느덧하늘의시간에서사람의시간으로되돌아온다.이시간의제주바다는말이없고등대만하나외롭게서있다.밤의시작을바라보면서도이렇게가슴설레기는쉬운국면이아니다.이여행은제주라는독특한섬의리듬속으로들어가는일이다.시인은이처럼복합적인정황을한꺼번에일러‘하늘마중’이라고했다.‘물길끝자락에선하늘마중’이그서술부다.그리고자신의가슴이다시설레는,그소중한동계動悸를바라보는시인의심사는부드럽고고요하다.동시에사진과시가극도로말을줄이면서오히려더많은말을전하는,어법의묘미를익혔다.
지붕들은섬마루에올라서지않았고
파도는함부로담장을넘지않았다
-「가파도에서배우다」
제주가파도는말수가적은섬이다.그래서더오래마음에남는곳이기는하다.가파도加波島의어의는글자그대로‘물결이더해지는섬’이라는뜻을품고있다.실제로이섬은바다위에낮게,조용히얹혀있는느낌을준다.제주도가한라산의위용과더불어웅장하다면,가파도는수평선과손을맞잡은조화로움을추구한다.높은오름대신넓게열린들판,현무암담장사이로스미는바람,시야를가로막지않는낮은지형이가파도의모습이다.그러기에시인이“지붕들은섬마루에올라서지않았고파도는함부로담장을넘지않았다”고판독하여술회한것이다.가파도는외래인의관광지이기보다섬사람들이지켜온삶의자리다.시인이여기서세상살이의지혜로운관점을배운것은극히온당하고자연스러운결과다.
5.자연의경물이소환하는각성
자연의경물景物을선택하고시를부가하는디카시는,그경물로부터의식을흔들고마음을깨우는각성을얻지못한다면평범한시로전락할가능성이크다.눈앞의풍경이단순한배경으로그치지않고인식주체의심경에육박해올때의그감동은,마치월척의고기를낚아채는낚시꾼의손맛에비견된다.어떤경우에라도자연은사람을직접가르치지않고우회적으로각성시킨다.예컨대끝없는수평선은나의사소함을,저무는빛은시간의유한성을,바람에흔들리는풀은그러면서자란다는생각을공여한다.4부의시가운데는이러한각성의제재題材가많다.「순리」에서어른들의말씀,「등푸른날들」에서등대와바다의재해석등이여기에해당한다.
깊고깊어서
수십번자맥질에도끝닿을줄몰랐다
미역줄기같은섬자락끝을잡고
숨한번고르고나면
푸른빛은또저만치,아득했다
-「깊고푸른」
검푸른하늘과낮은산과잔잔한바다와작은배한척으로구성된그림같은사진이다.이구성요소들의정체성은서로다른높이와방향을가졌지만,한장면에서하나의의미망으로통어統御된다.하늘은늘먼저있고산은움직이지않으며,바다는끊임없이변하고배는이세요소사이에놓인인간의선택지다.하늘처럼멀어질수없고산처럼머물수도없으며,언제나바다위를떠다니면서이동하는존재의자화상이다.시인은이전체의형상을압축하여‘깊고푸른’이란형용어를사용했고,그것이‘저만치아득’한것이라고정의했다.이언표를풍경에국한된해명으로보는상식적단견短見을벗어나면,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