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의경계에선이가시로건넨화해의언어
―김정훈교수,두번째시집『해협사이에서서』출간
1.대립의바다를건너‘사이’에서다
한국과일본,양국의문학적접점에서평생을연구와번역,그리고민간교류의다리로살아온일본문학연구자이자시인인김정훈교수(전남과학대)가두번째창작시집『해협사이에서서』(도서출판작가)를세상에내놓았다.
이번시집은단순한언어적소통을넘어,한일관계를둘러싼소모적논쟁의격랑속에서국가와언어,역사와기억,그리고상처와화해라는묵직한근본문제를'사이'라는독보적인공간에서성찰해낸결과물이다.시인은어느한쪽의논리에치우치지않고,두세계의경계인해협사이에조용히서서서로를깊이응시하는새로운시적좌표를제시한다.
2.총4부로펼쳐진사유의여정
시집은총4부의깊고단단한서사로구성되어독자를사유의바다로이끈다.
1부'말과침묵사이'에서는일본어문자를처음배우던시절의기억과유학의서사속에서,두언어와문화사이에선존재가겪는정체성의감각을섬세하게포착한다.
2부'국경너머로'는오사카와고베를왕래하던청년시절의유학생기억을바탕으로,욱일기와식민의상처,강제동원피해자의아픔을직시하면서도국경을뛰어넘는화해의가능성을모색한다.
3부'사이의선풍경'에서는병원진료실,고장난신호등,채찍질당하는팽이등일상의사물들을통해현대사회의폭력성과생명파괴의현실을날카롭게비판한다.
4부'일상의위로'는책,붓,풀잎,둥근달등주변의평범한생명들을어루만지며인간에대한근원적이해와따뜻한위로의메시지를전한다.표제작인「해협사이에서서」에서시인은해협을단절과갈등의막이아니라,서로다른세계를고요히연결하는소통의통로로승화시킨다.
너의눈은
육지에서섬을비추는불빛
구석구석살피고이쪽저쪽들여다본다.
-「해협사이에서서」부분
김응교숙명여대교수(시인·문학평론가)는이시집에대해“경계에선존재가확보한제3의시공간에서탄생한시”라며기존의이분법적담론을넘어서는독창적인시적세계라고평했다.
3.“번역은꿀벌이꽃가루를나르는일”―국경을넘는소통의미학
김정훈교수의문학세계를관통하는가장눈부신열쇠는단연'번역'이다.그는시「번역은」을통해번역이단순한기계적언어변환이아니라,인간과인간의영혼을잇는가장생명력있는행위임을노래한다.
번역은국경을넘어
꿈과사랑을전하는일
꿀벌이꽃씨방에서
꽃가루를나를때처럼
소망을담아옮기니까.
-「번역은」부분
나아가이번시집은역사적상처를매만지는데그치지않고,현대사회의폭력성과생태적성찰에까지가닿는다.시인은'팽이'를통해전쟁과폭력이일상화된잔인한세태를고발하는한편,'숲길'과'둥근달'을통해인간의이기심을부끄러워하며자연과생명이건네는안부에귀기울인다.특히시집의대미를장식하는「둥근달」의"그래서/둥근달은/어머니얼굴."이라는구절은,역사의모든상처를감싸안는거대하고따스한인간애의진수를보여준다.
4.시인과학자의길,그묵직한발자취
전남무안에서태어난김정훈교수는조선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일본간세이가쿠인대학교대학원에서일본근대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저서『소세키와조선』을비롯해나쓰메소세키의소설과일본시집을우리말로옮겼고,반대로『문병란시집』,『5월광주항쟁의저항시』등을일본어로번역하며양국문학계의깊은신뢰를쌓아왔다.
특히한·중·일및북한의저항시인들을조명한편저『조선의저항시인―동아시아에서바라본다』는2023년하반기‘도쿄대생이고른책’에선정되며학계와독자모두에게큰울림을주었다.
김준태시인은“김정훈은한국과일본의경계에서묵묵히다리를놓아온사람”이라며,그의시가“확고한정체성을세운채마침내평화의미래로나아가고있다”고찬사를보냈다.또한이명한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은“아픔으로다가오는경계를어떻게극복할것인지곱씹게하며,진정한화해의의미를체감하게하는시집”이라며일독을권했다.
차가운대립의언어가난무하는오늘,『해협사이에서서』는상처를회피하지않으면서도서로의기억을이해하고보듬는가장따스하고품위있는상생의언어가되어줄것이다.
■시인의말
이시집은
파도의이야기다
잠잠한시가아니라
출렁이는시
요동치는시
부서지는이들의이름을
불러볼수록
여백은불거진다
옮기지못한
진한슬픔이남는다
해협사이에서서
오늘도
건너지못한것들이무엇인지를
바다를향해묻는다.
-2026년여름,김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