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볼의 중국 지성사 강의 (무주에서 본 리터라티의 학 1100-1600)

피터 볼의 중국 지성사 강의 (무주에서 본 리터라티의 학 1100-1600)

$35.00
Description
도학(신유학), 문학, 박학, 고증학까지
어느 것도 조정과 수도에서 시작된 것은 없었다
『피터 볼의 중국 지성사 강의_무주에서 본 리터라티의 학 1100-1600』(원제 Localizing Learning: The Literati Enterprise in Wuzhou, 1100-1600)는 중국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12세기 신유학의 확산에서 17세기 고증학의 시작까지, 중국 남동부 절강성의 무주에서 펼쳐진 신유학(도학), 문학, 박학이 각축했던 리터라티(사)의 ‘학문’을 5세기에 걸쳐 입체적으로 추적한다.
피터 볼 교수(하버드대)는‘왜 학문이 주제인가? 이 기간을 왜 다루는가? 사(士)란 누구인가? 그리고 왜 이 지역에 대해 썼는가?’라는 책을 관통하는 네 질문을 던지며 송-원-명 시기의 ‘사의 학’을 지성사와 사회사를 가로지르며 조망한다. 그런데 왜‘지역’의 시각에서 접근했을까? 12세기 여진의 침략에 따른 북송에서 남송으로의 시대적 전환은 ‘지역적 전환’을 동반했다. 남송 이후 특히 몽골 지배 시기를 지나면서 사대부의 존재 양상과 정체성 자체가 ‘지역’이라는 단위와 밀접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피터 볼이 제시하는 ‘지역적 전환’은 매우 강력한 논제다. 송-원-명 시대 문학(고문), 도학, 박학, 고증학 중 어느 것도 조정과 수도에서 시작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당시의 권력자와 주류의 학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이 다루는 지역의 사(士)들 사이에서 발생했고, 그들 스스로의 손에 달려 있었던 지적,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운동의 산물이었다. 사의 학이 지역에 따라 구체화하면서 정치적 중심지인 조정과 수도의 문화보다 이러한 ‘사의 학’은 중국 문화의 국가적 특성을 구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 남동부 절강성의 무주(지금의 금화)라는 지역을 통해 드러나는 사의 학의 구체적 실상은, 유학의 여러 학파와 문학, 박학, 그리고 의학까지도 포함한 다양한 지적 전통들 사이의 복합적인 상호 관계, 긴장·갈등·타협, 그리고 이에 대한 정당화와 비판의 논리가 동아시아 지성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을 열면 서론의 지도에서 부록까지 저자가 50년 중국 지성사 공부와 문제의식을 확장하기 위해 현지 조사와 디지털 인문학에 쏟은 뜨거운 열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피터 볼은 이 책이 중국사를 보는 데에만 유용한지, 아니면 한국사를 생각하는 데도 유용한지를 생각해 보길 권한다. 조선 사회에서는 신유학(도학) 성공이 문학, 박학, 의학 등을 지워 버린 것일까? 지역의 맥락에서 드러내는 통합적 역사의 시각이 중국의 절강성 무주에만 해당할까? 현재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적 전환’이 화두인 한국 사회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
저자

피터K.볼

저자:피터K.볼
미국당송대지성사연구의권위자로,그의연구는주로7세기이래중국에서일어난지성적·사회적변화와문화적변화에지대한관심을가지고있다.현재하버드대학동아시아언어문명과교수로재직중이며『SungDynastyUsesoftheIChing』(1990),『OrderingtheWorld:ApproachestoStateandSocietyinSungDynastyChina』(1992),『CultureandtheStateinChineseHistory』(1998),『EnergizingChina:ReconcilingProtectionAndEconomicGrowth』(1998),『WayswithWords』(2000)등의공저자이다.최근에는북송시대휘종(徽宗)에관한연구서인『EmperorHuizongandLateNorthernSongChina:ThePoliticsofCultureandtheCultureofPolitics』(2006)를공저했고『Neo-ConfucianisminHistory』(2008)라는연구서를썼다.학문적인연구외에도동아시아디지털컨소시엄을만들어서동아시아와서양연구자들사이의디지털정보교환의장을발전시켰고,하버드대학과푸단(復旦)대학의협조를받아‘중국의역사지리정보체계(TheChinaHistoricalGeographicInformationSystems)’를기획하고감독했다.또한2004년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이주관한‘조선시대전자문화지도개발과문화연구’에참여하기도했다.

역자:민병희
서울대학교동양사학과와하버드대학교에서동양사를공부하였다.주희의사회·정치적구상으로서의‘학’에대한연구로하버드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은후,전남대학교사학과를거쳐홍익대학교역사교육과교수로재직중이다.중국과동아시아의지식,사상,사회를연구하고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서론사의학을지역화하기
학學
시기:12~16세기
출발점:북송시기를돌아보다
리터라티로서의사
사의지역화
무주
책의범위

1장송대의여조겸
과거시험,서원,스승
선생으로서의여조겸
동지의공동체만들기
전기작가로서의여조겸
학자로서의여조겸
사람들이본여조겸
사회적영향

2장학의정치화
정치화된학
과거시험을위한독서와작문그리고출판
무주에서의출판
학으로서의논증적글쓰기형식
소식:형식과아이디어
책쓰기

3장세편의유서(類書)
『기찬연해』
『여지기승』
『군서고색』

4장도학
금화사선생
하기,1188~1268
왕백,1197~1274
김이상,1232~1303
허겸,1270~1337
계보의끝

5장원정복에의대처
덕행(윤리적행위)
통치
문학:학과글쓰기
정복이후무주의문장
유학과문학을아우르기

6장연대와혈연
사회적맥락을양적으로살펴보기
“우리무주”?지역정체성과사의학
족보와가문
사가문의지형

7장명:부흥과분열
희망과실망
부흥
장무세대
장무
장무와무주의사전통
명시기금화사선생
왕양명으로의전환
넓어지는균열

8장끝과시작
“우리무주”를다시정의하기
사들의문제
지성사
호응린,새로운방향을모색하다

부록
2.1_도학저자들의저서목록
2.2_비(非)도학계열저자들의저서목록
4.1_왕백의저서
6.1_중국역사인물데이터베이스(CBDB)데이터
6.2_무주의인물및문학선집
8.1_호응린의현존저작목록

감사의말
미주
참고문헌
옮긴이의말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피터볼교수(하버드대)는‘왜학문이주제인가?이기간을왜다루는가?사(士)란누구인가?그리고왜이지역에대해썼는가?’라는책을관통하는네질문을던지며송-원-명시기의‘사의학’을지성사와사회사를가로지르며조망한다.그런데왜‘지역’의시각에서접근했을까?12세기여진의침략에따른북송에서남송으로의시대적전환은‘지역적전환’을동반했다.남송이후특히몽골지배시기를지나면서사대부의존재양상과정체성자체가‘지역’이라는단위와밀접하게결합되었기때문이다.

피터볼이제시하는‘지역적전환’은매우강력한논제다.송-원-명시대문학(고문),도학,박학,고증학중어느것도조정과수도에서시작된것은없었다는것이다.이들모두당시의권력자와주류의학에대한저항으로시작되었다.이책이다루는지역의사(士)들사이에서발생했고,그들스스로의손에달려있었던지적,도덕적,정치적,사회적운동의산물이었다.사의학이지역에따라구체화하면서정치적중심지인조정과수도의문화보다이러한‘사의학’은중국문화의국가적특성을구성하게되었다는것이다.중국남동부절강성의무주(지금의금화)라는지역을통해드러나는사의학의구체적실상은,유학의여러학파와문학,박학,그리고의학까지도포함한다양한지적전통들사이의복합적인상호관계,긴장·갈등·타협,그리고이에대한정당화와비판의논리가동아시아지성사를이해하는데필수적인요소임을잘보여준다.

왜신유학에단한장만할애한것인가?

『피터볼의중국지성사강의』가다루는송대에서명말에이르는1100년에서1600년사이의중국지성사는통상주자학에서양명학,그리고고증학으로이어지는신유학의계보로이해되어왔다.그러나“이책이지성사를다룬다면서,왜당에서청사이에일어난중국지성사에서가장중요한발전인신유학에단한장만할애한것인가?왜그토록많은부분을문학,과거시험공부,백과전서적학문에쏟고있는가?”라는물음에피터볼은학문을좋은사고,좋은행동,좋은글쓰기를위한‘실천되는것’으로정의하며“이곳에서는어떤학이실천되고있었는가?”에주목한다.따라서이책이조명하는대상은신유학의전개를중심에두지않고,이곳무주를배경으로각시기의단면속에서실제현실에서전개된다채로운지적,문화적추구와그복합적관계를살아있는주체로의‘사’의활동전반인것이다.

남송시기여조겸에서이야기를시작하는책을펼쳐보자.여조겸은주희의조력자로서도학(신유학)의기본교재가된『근사록』을주희와함께편찬하는등신유학의체계를세우는데중요한역할을한인물로알려져있다.그러나이책이보여주듯,주희는여조겸과무주지역의사들이추구한학이자신이생각하는올바른학과는어긋난다고맹렬한비판을가한다.여조겸은분명신유학자이지만그가행한‘학’의모든측면(지적,문화적,그리고실천적행위들)의다채로운스펙트럼이곧신유학으로환원될수없다는것이피터볼의주장이다.전작에서이미중국지성사의유학적지향과문학적지향의상호관련성과긴장관계를주된주제로제시한바있는저자는이책에서그시각을보다구체적이고풍부한사례를통해전개한다.이지역의출판사에서출간된인기있던산문문집에주목하면서12,13세기의‘과거시험교육’을살펴본후,『기찬연해』,『여지기승』,『군서고색』3편의유서(類書)를통해백과전서적박학(博學)을지향한사들을자세히다루고,문학적수련과표현을가장중시한사들을소개한다.또한주자학의정통을자처한금화의4선생,하기,왕백,김이상,허겸이주자의학을단하나의참된앎의방법으로여기며주자의학과학자체를동일시했음을보여준다.

신유학과고증학은어떻게병립하고단절되었는가

12세기중반,남송의무주(지금의금화)에는앞에서살펴본것처럼북송시대의유산인왕안석의경세학,정이형제의도학,구양수와소식의문학까지포함된다양한지적전통들이공존했지만,주희에의해성립된신유학(성리학,도학)은학의경계를새로그리며,리터라티로서사가학문을하는궁극적목표를재정의할것을요구했다.신유학의‘유일하게올바른학의방식’에대한배타적주장은그학문의내용과원리자체와밀접하게연결되어있다는점이두드러졌다.신유학이라는체계는그근본전제(형이상학적세계관과이에기반한학의실천방식)를인정하지않으면더이상신유학이라할수없다는명확한경계를가진학문이었다.이러한전제란곧,우주의모든존재와현상이하나의통합된근본원리에따라질서화되어있다는믿음을뜻하며,따라서신유학자의모든지적활동과추구는그질서를인식하고드러내려는행위로이해되었다.그러나도학이일부의사들에게는뚜렷한준거점이되었지만실제신유학자들의현실적행위는단선적이지않았다.그들은신유학이제시한학의방식외에도다양한학문을동시에추구했다.다만자신이진정으로신유학적정체성을가진사라면,문학,전장제도연구,의학,천문학등어떤학문을하더라도그것이자신이속한신유학의체계와어떠한방식으로든통합될수있음을정당화해야했다.그정당화가반드시성공적이거나논리적으로완결되지않았더라도말이다.

이책은바로그‘경계의전제’가학문을규율할필요가없다고생각한인물,호응린에서이야기를마무리한다.그는무주의전통에대한재해석과새로운종류의텍스트연구를통해학문의사명이도학적수양과문학적성취를결합하는것이라는관념을단호히거부했다.그는한시대의끝이시작되는지점을상징하는인물이다.호응린의관점은이후의고증학과유사성을지니는데,저자는신유학과고증학이어떤조건에서병립하고또어떤지점에서단절되었는가를들여다보는데호응린은하나의창문을제공한다고본다.

사는누구였을까?왜이들을‘리터라티’라이르는가?

지역엘리트가사엘리트로전환되는것은송이후중국사에서핵심적인부분이었다.그러나사는국가엘리트중하나였지,중국의유일한국가엘리트는아니었다.당이나송의황실가문은왕조말까지2만명에달했고,명대에도존재했다.원대에는몽골인과색목인이세습적엘리트였다.이밖에행정서리,불교승려와도교도사들도의심할여지없이국가엘리트였다.송대이전시기사라는용어는정부의행정관료를지칭했다.시간이지나면서1만5천에서3만명정도의관료와좀더광범위한집단으로식별되었는데주로관직을업으로이어온가문(세족)이었다.이들은전형적으로수도(장안과낙양)를잇는중심축지역을따라밀집해있었다.

저자는관직보유만으로사를‘리터라티’라한번역은정당하지못하다지적한다.송대에이르러텍스트전통과문학적작문을익힌사람들(리터라티)이사로취급되어국가엘리트중가장중요한집단이되었으며,출생보다는학문이전국적엘리트의구성원이되는자격을제공해주었다.이는학의본질,목적,방법에대한논쟁을불러일으켰다.글쓰기에서의고문과도덕사상에서의도학이라는사의학의국가적인경향은많은저항끝에조정에서인정받았으며,과거시험과학교를통해확산되었다.1126년여진이개봉을함락시키며북송에서남송으로바뀐뒤제도적변화를거친과거제도는세족들의지배적지위를약화시켰다.송대에사의숫자가가장많이증가한곳은현재의절강성,강소성,복건성등중국남부였다.13세기중반에는과거응시자가40만명에이르렀다.몽골의1234년화북,1270년대강남지배이후상당기간사의신분은국가가아닌사들스스로의힘에의해유지되어야만했다.부침이있었지만1315년과거제도는다시제도화되었고도학이공식적으로과거시험커리큘럼에포함되었다.명말에이르면과거응시자는50만명에달했다.

관직이나가문의명망은어느시대에나매우바라는것이었지만송대를기점으로사가공유한정체성은‘학’을통해규정되었다.텍스트를읽고문장을쓰도록훈련받는교육이이제는잠재적관료집단인전국적엘리트에누가소속되는지를정의하게되었다.학과사의신분사이의등식이성립된것이다.

“그들이행한학이국가적의미를가진것이었다면,왜지역적관점이필요한가?”

북송에서남송으로의시간적전환은공간적(지역적)전환과함께했다.절강성,강서성,복건성등출신의지역엘리트가사엘리트로전환되는것은송이후중국사에서핵심적부분이었다.지역적전환에서중국의남동부가두드러진까닭은기후,교통,상업,전쟁지역과의거리,그리고통치의질등여러측면에서북부지방보다더많은사대부가문을지원할수있었기때문이다.절강성의무주는이책의서론에수록된지도들에서드러나듯이정치적중심지나상업이번성한소주와도다소떨어진,한국의안동이나남원이연상되는산지내륙이다.피터볼이무주를선택한이유로,12세기중엽이곳이도학의초기중심지의하나이면서도한편으로도학운동비판자들의고향이었으며,특히현존하는자료가가장풍부했기때문이라밝힌것처럼이곳은지방지와지역기록이흔했다.

이책은중국인물데이터베이스에기반한무주의친족및사회적연계에대한비교정량분석을활용하여사들의행동에서나타난실질적변화를보여준다.남송과달리원대무주의혼인네트워크는거의전적으로지역내에서이뤄졌으며,그대신학문을기반으로한연계가강화되었다.사당을짓고족보를작성하고유지하는것은공통된사의정체성을형성하는데병행되는수단이었다.사대부의숫자는지속적으로증가했으며이들은지역의일에더적극적이었고교육에더많이투자했다.12세기중엽에이곳의현시는200대1로전국에서가장경쟁률이높았으며,12세기말에이르면무주사람은모든과거시험에서대략10명의진사를배출했다.과거시험이거의중요하지않았고,신분에서몽골인,색목인,한인(북부)에이어가장아래인남인으로서원대무주의사는자신들지역의학의역사를바탕으로정체성을만들어냈고이러한정체성은명대에부활했다.

무주의역사는어떻게학문의문화가지역사회에뿌리내릴수있었는가에대한통찰을제공한다.이책은이렇게12세기부터17세기까지한지역에서학문이어떻게공통된과업으로자리잡았는지,독특한지역정체성의추구가지역적인것을통해어떻게‘전국적’인것이가능한지를보여준다.

지은이의말
철학자들은사상자체에관심이있지만,지성사연구자들은그들의사상자체뿐아니라철학자를사회적행위자,즉청중에게말을건넨인물로서관심을가집니다.이책에서저는주희의철학을깊이이해하고자했던사람들,그리고주희의다음인물이되길바랐던몇몇사람들을다루지만,그들을사회적행위자로서도바라보려고하였습니다.(중략)‘철학’,‘문학’과달리‘학’은우리가‘주희의학’이라고말할수있듯이명사이지만,동사이기도합니다.이는학과학을하는사람들의활동에주의를기울이게합니다.학의역사는지성사입니다.그러나이는문화사이자사회사이기도합니다.이는사회문화사이지만아이디어는때로아이디어자체로다루어져야만함을이해해야만하는‘사회문화사’라고할수있습니다.

옮긴이의말
피터볼교수가오랫동안선도적으로이끌어온디지털인문학을적절히활용하여,무주지역의성격과그안에서형성된관계망을한층선명하게분석하고조명하였다는점에서도주목할만하다.특히중국전기자료데이터베이스분석과GIS(지리정보시스템)기법을이용한지리적분석을통해,무주지역의사들이활동한공간적범위와상호관계,그리고지역과제국을잇는지적네트워크의구조가구체적이고정밀하게드러난다.이책은절강성무주,현재의금화지역에서이루어진현장조사fieldwork에서많은도움을얻었음을알수있다.이러한현장기반의접근은과거와현재를잇는생생하고밀도높은역사서술의토대를이루고있다.